"..그래서 말이야 리리스" 


"후후..착한 리리스는 주인님 말을 열심히 듣고 있답니다."


리리스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주인의 말에 호응했다. 호탕하게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커다란 손이 리리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애 취급 이신가요?” 


리리스의 툴툴거리는 한마디에도 그녀의 주인은 그저 미소지으며 리리스를 쓰다듬을 뿐이다.


따뜻하고 커다란 손, 주인과의 산책에 기분이 좋아진 리리스가 미소 지으며 사령관의 품에 기대었다.

늘 지켜줘서 고마워, 애정섞인 목소리,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그 옆에 자신과 걸음을 맞추어 걷는 사령관, 나의 하나뿐인 주인님… 리리스는 애정 가득한 얼굴로 사령관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사령관 역시 맑게 웃으며 리리스를 내려다 보았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서서히 멈추고 열띤 침묵이 둘 사이에 내려 앉는다.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필요 없다는 듯 둘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리리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리리스가 기대했던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다. 

주인님? 의문을 표하며 눈을 뜬 리리스는 주인의 손에 핀 붉은 꽃에 경악하며 푸른 방어막을 펼쳤다.  


주인님! 제 곁에 꼭 붙어계세요!”


사령관은 침음을 삼키며 피가 흐르는 손을 부여잡았다. 소리 소문 없이 날아온 총알로 인해 사령관의 오른손은 기능을 잃어 추욱 늘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리리스는 입술을 깨물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칙 스나이퍼가 남아있었나? 하지만 주변에서 철충의 반응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아악! “


그리고 등 뒤에서 주인의 비명이 들린다. 


리리스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삼안 사업의 자랑이기도 한 피해 무효화 방어막은 주인의 몸을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주인은 반대쪽 손에 생긴 상처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떠오른 물음표의 끝이 리리스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방어막을 부드럽게 뚫고 지나간 세번째 총알이 사령관의 무릎을 부순다. 무릎의 연골을 조각내는 끔찍한 고통에 사령관의 입에서 또 다시 비명이 터져나왔다.


“크아아악!” 


“꺄아아악! 주인님!”

리리스는 그 주인의 목소리보다도 크게 비명을 지르며 발작적으로 총을 들어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쏘았다. 하지만 리리스의 필사적인 행동을 비웃듯, 네번째 총알이 날아와 사령관의 반대쪽 무릎을 뚫어 버렸다.


“아..아파 리리스..너무..아파..”

 

이제 비명을 지를 기력도 없는듯, 양손과 다리가 모두 부서진 사령관은 자신이 만들어낸 피웅덩이 위에 주저앉아 고통에 찬 신음만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리리스는 황급히 자신의 몸으로 주인을 감싸안았다. 


‘언제 다섯번째 총알이 날아올지 몰라..’


팔,다리를 조각냈으니 다음은 어디로 날아올지 모른다. 어찌 되었던 이미 팔다리가 다 조각 났으니 다음은 몸통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같은 고급 바이오로이드의 튼튼한 몸이라면 총알쯤은 충분히 막아주겠지.


하지만 그 다음순간 리리스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리리스의 몸에 둔탁한 충격이 전해졌다.

그리고 자신이 껴안고 있던, 사령관의 입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고장난 테이프처럼 사령관의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리리스..아파..리리스..아파..리리스..아파.. “


곧 말은 입에서 흘러나온 피에 섞여 알수 없는 그르륵 소리로 변했다.


“주인님! 제발! 안돼요!” 


리리스는 절규하며 주인을 끌어안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퍽, 퍽 총알이 몸에 박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리리스의 품에 안긴 사령관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와 피웅덩이의 크기를 늘려나갔다.

패닉에 빠진 리리스는 아,주인님만을 반복하며 필사적으로 사령관을 껴안았지만 그 행동으로는 사령관의 몸이 고깃덩어리로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어느세 리리스는 다진 고깃덩이와 다를바 없게 변해버린 주인의 모습을 직시한다. 

그리고 바닥에 생긴 피웅덩이에 비친, 생채기 하나 없는 자신의 모습까지도...


“아아아아아악!!!”


리리스가 비명을 지르자, 그에 반응하듯 입인지조차 알아보기 힘든 기관이 꾸물꾸물 움직이며 소리를 낸다. 


“리..리..스..아…..파..아파..아..파..”


반쯤 정신이 나가버린 리리스는 그 소리만을 듣고 허겁지겁 손을 뻗어 떨어진 주인의 잔해를 모은다. 주인님! 아직 살아계셨군요!!그래! 닥터라면,닥터라면 아직 고칠수 있을꺼야! 

망가진 주인님의 새 몸을 만들어낸 것도 닥터니까!


하지만 한때 사령관이였던 덩어리는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 빠져나가 바닥을 더욱 붉게 물들일 뿐이였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고깃덩어리, 그리고 잦아드는 사령관의 목소리…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더 이상 사령관이라고 부르기도 힘들어진 무언가에서 나오는 소리가 완전히 멎어버리고. 리리스는 한때 사령관이였던 핏물 위에 스르르 주저앉았다.


‘주인을 지키지 못한 바이오로이드는 어떻게 되는 것이지?’ 


떠오른 의문에 꼬리처럼 달린 것은 작지만 사악한 속삭임이였다. 


[주인을 지키지 못한 바이오로이드는, 폐기 처분이야.]


폐기처분이라는 말의 뜻을 인식하기도 전에 리리스는 반사적으로 총을 뽑아 관자놀이에 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 거리라면 자신같은 고위 개체도 단숨에 파괴 될 것이다. 


그리고 날카로운 총성이 리리스의 귀를 찢어발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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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다치면 안 돼요! 흐아아아앙." 


"리리스 언니?? 정신차려요!'"


리리스는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령관과 걷던 풀밭은 사라지고 익숙한 컴패니언의 숙소가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자신의 잠자리, 그리고 자신을 걱정스럽게 올려다보는 동생 하치코, 페로의 얼굴까지도..


"흐앙~ 갑자기 총을 쏴서 하치코,깜짝 놀랐어요"


 "..갑자기 총을 쏘다니, 침입자라도 나타난 건가요? "


자매들의 걱정어린 목소리를 듣자 리리스의 손에서 떨림이 멎었다. 그나저나 총이라니? 반사적으로 손을 바라본 리리스는 경악했다.

불과 몇 cm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머리를 빗겨나간 총이 따뜻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리스는 침을 삼키고 까칠해진 혀로 마른 입술을 훑었다. 


“흐아아..하찌꼬, 정말정말 놀랐어요~.”


 힘이 빠진 리리스가 스르르 총을 내려놓자 하치코가 치켜들었던 방패를 내려놓고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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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은 방문이 부서지는 소리에 기겁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총소리에 놀라 깨어나 있던 포이가 냐앙..하는 소리와 함께 발톱을 세웠다.


"주인님!!! 주인님" 


다급하게 뛰어들어오는 리리스의 모습을 확인한 사령관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리제가 주인님의 순결을 노린다. 소완이 내온 차가 수상하다 등의 이유로 리리스가 방문을 부수고 쳐들어오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늦은 시간에 별다른 이유도 없이 막무가내로 사령관실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당황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사령관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리리스가 LRL처럼 울음을 터트리며 그 자리에 주저 앉은 것이다. 


"으어어엉!! 사령과아안!! 다행이야!!”


그야말로 목놓아 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준 리리스는 무언가 떠올린 듯 황급히 콧물 범벅이 된 손을 들어올려 사령관의 몸을 - 포이가 제지했지만 사령관이 조용히 손을 들어 그것을 말렸다- 더듬거렸다. 

평소의 불순한 마음이 묻어나는 손길과 다르게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한 유리 장식품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몸짓에 정말 사령관은 쓰게 웃었다. 무엇이 이토록 당돌하고 도도한 아가씨를 두렵게 만들었을까. 


사령관은 엉엉 울고 있는 리리스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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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로이드들도 꿈을 꿀까? 꾼다면 어떤 꿈을 꿀까? 하고 생각하다가 짧게 써봄...

에밀리편 쓰려다가 리리스 먹은 김에 리리스 악몽편 썼음.. 

개인적으로 다른애들 악몽편도 써보고 싶음 소완, 리제는 생각해둔게 있긴 한데...

모자란 필력이라 늘 올리면서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