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차창작입니다. 원작의 설정과 많이 다를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저는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나 레오나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야스 안 합니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아직 이해가 잘 안 된다. 분명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언니들! 찾았어! 인간님이야! 인간님! 괜찮아?”

 

눈앞에 있는 건 새하얗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꼬맹이.

 

손에 방패와 총을 들고 있는 걸 보면 평범한 아이는 아닌 거 같은데.

 

“너는…. 윽.”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려고 했으나, 갑작스러운 두통 때문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알비스 개체구나.”

 

두통과 함께 정보 같은 게 떠올랐다. 눈앞에 있는 꼬맹이는 T-13 알비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소속의 바이오로이드.

 

바이오로이드? 그게 뭐지?

 

“인간님 많이 아파? 배고파서 그런 걸 거야! 내 초코바 먹어. 자.”

“아. 응. 고맙다.”

 

조금씩 지끈거리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알비스가 내민 초코바를 입에 넣었다.

 

달다.

 

“알비스!”

“베라 언니! 여기 인간님이 있어!”

 

알비스는 뒤에서 다가오는 여성에게로 다가갔다. 알비스와 비슷한 옷을 입었지만, 분위기는 다른 여성.

 

머릿속에서 떠오른 정보는 그녀가 T-12 베라라고 말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바이오로이드.

 

“인간님? 어머. 괜찮으세요?”

“아. 응. 난 괜찮아. 그런데 여긴?”

 

베라의 손을 잡고 일어나면서 물었다. 베라는 내 질문에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는 하바로프스크의 쇼핑몰이에요. 혹시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요?”

“하바로프스크? 한국이 아니야?”

“여긴 러시아에요. 인간님. 혹시 기억에 문제가 있으신가요?”

 

베라는 말을 하면서도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알래스카라니. 난 집에서 자고 있었다고.

 

“난 분명.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집에서요? 하지만 다른 인간님들은 70년 전에 다 돌아가셨는걸요. 인간님이 저희가 찾은 마지막 인간님이세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나 말고 다 죽었다니.”

 

이해가 안 된다. 이게 지금 무슨 소리냐고. 30년 전에 사람들이 다 죽어?

 

“말이 안 되잖…. 씨발.”

 

두통이 도저히 멈추질 않는다. 아파서 죽겠어.

 

“많이 편찮으신 것 같아요. 주무셔도 괜찮아요. 저희가 안전한 곳으로 옮겨 드릴게요.”

 

베라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자리에 눕혔다. 몸에서 힘이 점점 빠지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한 가지. 머릿속에 떠오른 정보는 그녀들을 믿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물론 우리 집은 아니었지만.

 

“아. 일어나셨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저희 대장님을 모셔 오겠습니다.”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걸어나가는 여성이 보였다.

 

몸에 힘이 조금은 돌아온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니, 아까 나간 여성과 다른 여성이 들어왔다.

 

아까 나간 여성은 T-8W 발키리. 같이 들어온 여성은 C-3F 레오나. 전에 봤던 알비스와 베라와 마찬가지인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바이오로이드.

 

차이점이 있다면 레오나는 지휘관 개체라는 거겠지.

 

“일어났구나. 인간. 나는 레오나. 자매들을 이끌고 철충들과 싸우고 있어.”

“아. 응. 구해준 거구나. 고마워.”

“별말씀을. 어차피 퇴각하던 중이었으니까.”

“퇴각?”

 

레오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았다.

 

“인간. 네가 어떤 상황인지는 들었어. 기억에 조금 문제가 있는 거 같던데. 설명해 줄게. 그러니까 잘 듣도록 해.”

 

레오나는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열기를 가진 목소리로 내게 설명을 시작했다.

 

하늘에서 철충이 떨어졌고, 온갖 로봇들이 감염되면서 멸망 전쟁이라는 게 일어났으며, 나를 제외한 다른 인간들은 휩노스 병이라는 병 때문에 다 죽었다는 것.

 

내가 이해한 건 그게 전부였다.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너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니까. 난 그냥 한국의 평범한 공돌이일 뿐이었는데.

 

“…대충 이해가 됐어?”

“응. 설명해줘서 고마워.”

“흥. 나머지는 발키리가 도와줄 거야. 난 퇴각 준비를 해야 하거든. 쾌유하길 빌게. 마지막 인간님.”

“아. 고마워. 레오나.”

 

레오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대장님께서 취하는 태도에 대해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십시오. 군대 지휘를 위해 냉정함을 표방하고 계시지만, 실은 친절하신 분입니다.”

“응?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오히려 고마운걸.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어떻게든 시간을 내준 거잖아?”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닙니다. 인간님은 저희에게 아주 소중하신 존재입니다.”

 

나는 놀라서 발키리를 바라봤다. 발키리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저희는 명령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저나 레오나 대장 같은 경우는 오래되었기에 아직 인간님들의 명령이 남아 있습니다. 철충과 싸우라는 명령이. 하지만 새로 태어나는 자매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님을 뵌 적도, 명령을 받은 적도 없으니, 철충과의 싸움에 소극적이죠.

심지어 싸움에 돌입한다고 해도, 사살이 아닌 제압을 우선하기 때문에 피해가 더 큽니다. 철충들은 인간님들과 유사한 뇌파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어서, 새로 태어난 자매들을 헷갈리게 만들 수 있거든요.”

“그래서 소중하다는 거구나.”

“네. 사실 이 말은 제가 아니라 대장님께서 하셔야 하는 말이지만.”

“그건 비밀로 해 줄게.”

“아. 감사합니다.”

 

*

 

바이오로이드 애들과 같이 지내게 된 지 며칠이 지났다.

 

아직 이해가 안 가는 건 많다. 내가 왜 러시아에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지금이 2020년이 아니라 그보다 한참 지난 시간이라는 것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래로 오게 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꿈인지.

 

“인간님! 초코바 먹을래?”

“아. 알비스. 고마워. 그래도 괜찮아. 너 많이 먹으렴. 베라한테 들키지 말고. 또 혼날라.”

“응!”

 

내게 다가온 알비스를 돌려보내고, 알아낸 것들을 잠시 정리해봤다.

 

일단, 2114년에 인류가 멸망했다고 한다. 원인은 휩노스 병.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게 지금.

 

나는 약 70년 만에 처음 나타난 인간이라고 한다.

 

70년.

 

인간이라면 한 번은 죽었을 수도 있는 긴 시간인데, 바이오로이드들은 그 긴 시간 동안 싸워오고 있었다.

 

살아있는 인간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날 찾아낸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대장인 레오나를 필두로 러시아를 떠돌던 그들은 최소한의 보급만을 가지고 이 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보급을 받을 곳이 없으니까. 도시를 뒤져서 먹을 것을 찾고, 필요한 것들을 보충하면서.

 

“여기 있었구나. 인간.”

“레오나.”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아.”

“레오나는 친절하구나.”

“아니. 네가 건강해야 우리 전력이 올라갈 테니까.”

 

레오나는 내 옆에 앉았다. 그 손에 보온병이 들려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친해졌으니 이렇게 다가와 주는 거겠지.

 

“마침 너를 찾을 때 도시에서 보급품을 구하는 중이었거든. 그때 얻은 거야. 한잔하겠어?”

“주면 나야 고맙지.”

 

보온병의 뚜껑에 갈색의 액체가 부어졌다. 커피. 아무래도 믹스 커피인 것 같다.

 

“한국인이라며? 커피믹스는 한국에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한번 챙겨봤어. 자.”

“고마워.”

 

달고, 조금은 씁쓸한 맛이 입안에 퍼져 나갔다. 따뜻했다.

 

“아마 발키리에게 들었겠지만, 우린 네가 필요해. 네가 우리 애들에게 철충과 싸우라는 명령을 해 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난 지휘같은 거 할 줄 몰라.”

“괜찮아. 지휘는 내가 할 거야. 명령만 내려주면 돼.”

“지휘관은 너잖아.”

“내가 지휘관이라도, 새로 태어난 자매들을 철충과 싸우게 만드는 건 힘들어. 인간의 명령이 없으니까.”

 

이것도 발키리가 말했겠지. 레오나는 그리 덧붙이고는 웃었다.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알겠다고 대답하면 될 일이지만,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 우리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멀리 보이는 하늘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는데.

 

세계가 망했기 때문인 걸까.

 

갖가지 상념이 들었다. 갑자기 돌아가신 부모님이라던가, 개 같은 친구 놈들이라던가.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할 때, 레오나가 입을 열었다.

 

“…사실 조금 힘들어. 나는 냉정하게 부대를 지휘하도록 만들어졌지만, 어떻게 냉정할 수가 있겠어. 내가 실수할 때마다 자매들이 죽어. 그 아이들은 날 원망하겠지. 내가 멍청해서. 그래서 죽었으니까.

자매들이 죽을 때마다. 나로 인해 한 명의 불꽃이 사그라들 때마다. 발할라로 향하는 자매가 한 명이 늘 때마다. 괴로워.

미안. 이런 말을 하려고 온 게 아니었는데. 잊어주겠어? 자. 커피는 마시고 싶은 만큼 마셔도 괜찮아. 오늘만큼은 안드바리도 괜찮다고 했으니까.”

 

레오나는 그대로 내 손에 보온병을 들려준 채, 어딘가로 걸어가 버렸다.

 

그녀를 쫓으려고 했지만, 쫓아갈 수는 없었다. 일어나려는 나를 뒤에서 다가온 발키리가 막았으니까.

 

“제게 잠시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아. 하지만 레오나를 쫓아가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80년이 다 되도록 대장님을 모셔왔습니다. 오늘 같은 날이 가끔 있었지만, 다음 날엔 털고 일어나셨습니다.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발키리는 그대로 레오나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

 

“커피 한 잔 주시겠습니까?”

“잔이 없는데.”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발키리는 왼손에 든 바구니에서 컵 하나를 꺼냈다. 엘븐 밀크라고 적힌 머그컵. 거기에 아직 따스한 커피를 따라주었다.

 

“감사합니다. 대신 이걸.”

 

커피를 옆에 내려놓은 발키리는 바구니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내게 주었다.

 

햄과 달걀, 몇 종류의 채소가 들어간 샌드위치였다.

 

발키리가 먼저 한 입을 베어 무는 것을 보고, 나도 한 입 먹었다. 맛있었다.

 

“가끔 이런 식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습니다. 가장 최근에 먹은 게 몇 달 전이군요. 그때는 자매들과 다 함께 먹었었는데. 물론 지금 다른 자매들도 샌드위치를 먹고 있을 겁니다.”

 

발키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한 느낌의 미소.

 

“80년입니다. 아주 긴 시간이었죠. 인간님들은 탄생과 죽음을 한 번 반복할 만큼 긴 시간이죠. 저희에게도 80년은 깁니다.

본래 대장님, 레오나 개체는 냉정하게 군대를 지휘하도록 제조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열정을 가지고 있죠. 애정을 바라는 마음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80년은 저에게도, 대장님에게도 하루하루가 전투인 나날이었습니다.

열정을 표현하기엔 자매들의 위험을 따져야 했고, 애정을 갈구하기엔 애정을 줄 수 있는 인간님이 없었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80년은 저희에게도 매우 깁니다. 대장님도, 저도. 몇 번이고 무너졌었고, 겨우겨우 일어났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인간님이 나타나신 겁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저희 대장님께 애정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방에 돌아오고서야 멍한 머리에 생각이라는 것을 띄울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이런 미래로 오게 된 건 그녀들을 돕기 위해서가 아닐까.

 

방구석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찌질이지만, 그런 나라도 그녀들에겐 도움이 될 테니까.

 

몇 번 더 생각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 나는 방을 나섰다. 그리고 안드바리를 찾았다.

 

“네? 술이요? 물론 있긴 한데. 드릴까요?”

“응. 부탁할게.”

 

안드바리는 내게 보드카 두 병을 꺼내줬다. 도수가 40도인 러시안 스탠다드.

 

방에서 한 병을 어떻게든 비워버리고, 레오나의 방으로 갔다.

 

그 뒤는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내 방 침대에서 정자세로 자고 있었다. 침대 옆 의자에서 발키리가 앉아 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아. 응. 고마워.”

 

발키리가 내미는 꿀물을 마시고,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레오나를 찾아갔을 때를 기억해내려 했지만 기억은 나지 않았다.

 

“어제밤엔 재밌었습니다.”

“나 무슨 짓 했어?”

“대장님 방 앞에 무릎 꿇고서 울기 시작하셨죠. 대장님이 방 밖으로 나오시자 대장님을 끌어안고 우셨습니다. 거의 두 시간 정도?”

“윽.”

 

생각해보니 내 주사가 우는 거였다.

 

“그 뒤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대장님께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셨고, 오늘 아침에 침대에 내려놓으셨으니까요. 그래도 대장님 아까 뵀을 때는 즐거운 듯이 웃고 계셨습니다.”

“그래? 그러면 됐어.”

 

내 흑역사가 하나 늘었지만, 그래도 레오나가 기분이 좋아졌다니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었지? 철수하는 날.”

“네.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났으니, 이동만 하면 됩니다. 이번엔 남쪽으로 내려갈 겁니다. 한국 쪽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찾아볼 예정이니까요.”

“그렇구나. 한국이라.”

 

아마 한국에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살던 곳은 없겠지. 여기는 내가 살던 2020년이 아니니까.

 

우리는 금방 출발했다. 오늘 하루 만에 목적지에 도착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는 길에 장애물들이 많을 테니까. 그래도 트럭으로 움직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마 걸어서 갔다면 나 때문에 속도가 많이 떨어졌을 테니까.

 

하긴. 숙소로 쓴 컨테이너를 옮기려면 트럭이 필요하긴 하지.

 

“여기가 발할라인걸까?”

 

내 어깨에 기댄 레오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딱 나만 들을 수 있을 작은 목소리로.

 

“무슨 뜻이야?”

“자매들이 있고, 너도 있으니까. 왜인지 행복해서. 우리가 약속받은 낙원에 있는 거 같아. 이번 정찰 때보다 자매들이 덜 다친 적은 없었으니까.”

“확실히, 이번에 죽은 애들이 없다고 했었지?”

“응.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어쩌면 네가 우리를 발할라로 인도하는 거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네. 레오나는 그렇게 덧붙였다.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어쩌면 그게 내가 지금 이 시간대에 나타난 이유가 아닐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슬며시 레오나의 머리를 내 무릎에 내려놨다. 레오나는 일어나려 했지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것을 막았다.

 

“뭐 하는 거야.”

“그냥. 부드러울 거 같아서. 실제로 엄청 부드럽네.”

“부끄러운 소리 하지 마.”

 

레오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사실 이런 말을 한 나도 부끄럽다.

 

그렇게 몇 분을 조용히 있었다. 나는 레오나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레오나는 조용히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러고 보면.”

“응?”

“발할라라는 건 일종의 낙원 같은 거잖아?”

“맞아. 왜?”

“너는 여기가 발할라 같다고 말했고.”

“그랬지.”

“그럼 레오나 너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트럭이 흔들렸으니까.

 

“무슨 일이야! 발키리!”

 

트럭의 흔들림이 채 멈추기도 전에 레오나는 트럭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슨 일인지 파악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컨테이너의 천장이 거대한 칼 같은 것에 찢겼으니까.

 

벌어진 천장 틈으로 보인 것은 새하얗고, 새빨간 철충이었다.

 

양팔 대신 칼이 달려있고, 날아다니는 칼과 방패를 조종하는 괴물.

 

“─────!”

 

괴성과 함께 칼이 날아들었다. 이건 피할 수─

 

“괜찮으십니까?”

“발키리?”

 

어느새 뛰어들어온 발키리가 나를 안고 굴러 피했다.

 

“도망치셔야 합니다. 철충들이 습격했어요. 목표는 아마도 인간님입니다.”

“나라고?”

“네. 인간님을 죽이기 위해, 덤벼드는 것일 겁니다.”

 

다시금 날아오는 칼을 피하며, 발키리는 나를 안고 달렸다.

 

멀어지는 컨테이너 트럭이 보였다.

 

다치고, 죽어가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보였다.

 

그들을 향해 공격하는 철충들이 보였다.

 

그리고, 레오나가 보였다.

 

그 모든게 점점 멀어져간다. 심지어 나를 죽이려던 거대한 괴물도.

 

“발키리. 내려줘.”

“안 됩니다.”

“내려달라고.”

“위험합니다!”

“명령이야.”

 

발키리는 엄청나게 험악한 표정을 한 채 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발키리. 내가 도망치면 너희가 살아남을 수 있어?”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그럼 싫어. 고작 며칠이었지만, 내겐 너희가 소중해.”

 

어쩌면, 내가 존나 병신일지도 모른다.

 

귀한 목숨을 이딴 곳에서 버리는 거니까.

 

그냥 애새끼 같은 욕심이고, 아집일 거다.

 

“발키리. 혹시 영상을 기록할 만한 거 있어?”

“네.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켜줘.”

 

*

 

레오나는 전황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돌렸다. 벌써 몇이나 죽었지? 살아있는 자매들은? 인간은? 살아서 도망친 게 맞을까?

 

온갖 생각을 하면서도, 전황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절대적인 열세. 여기에 둠 브링어가 오더라도, 스틸라인이 오더라도 막을 수 없다.

 

저 하얗고 붉은 철충, 익스큐셔너는 그런 괴물이니까.

 

레오나 본인에게도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앞을 막아서고 있던 자매들이 하나씩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만들어질 때부터 가지고 있던 열정이. 개선을 거듭하며 사라진 호전성이 점점 드러나고 있었다.

 

“너희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우린 여기서 죽을 거야.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서. 발할라로 가자.”

 

권총탄이 줄어들고, 눈앞의 자매들이 줄어든다.

 

하나씩 소비되어간다.

 

마모됐었던,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됐던 마음이 다시 무너질 것 같았다.

 

하지만 레오나는 버텨냈다. 버텨야만 했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빵─ 빵빵─

 

레오나의 주변에 남은 자매가 채 스물도 안 되었을 때, 조금 먼 곳에서 경적이 들렸다.

 

철충들의 의식이 그쪽으로 넘어간 것을 파악한 레오나는, 경적을 울린 게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안 돼. 안 돼!”

 

어떻게든 지켜내려고 했는데. 설령 우리가 다 죽더라도 지키려고 했는데.

 

이 세상의 마지막 인간은 자신을 희생해서 레오나와 자매들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그러지 마! 제발! 그냥 도망가란 말이야!”

 

오열하던 레오나는 앞으로 달려나가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돌아온 발키리가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아 막았다.

 

“놔! 놓으란 말이야!”

“…안 됩니다. 명령입니다. 저는 인간님의 명령을 따라서 대장님을 막아야 합니다.”

“발키리─!”

 

레오나는, 그녀의 자매들은 철충들의 파도와 경적이 멀어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봐야 했다.

 

그게. 레오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아. 들려? 잘 나오는 거지?”

-잘 나오고 있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다행이네. 안녕 레오나. 안녕 모두들. 나야. 이걸 보고 있는 모두는 살아있는 거지? 설마 다 같이 발할라에서 이걸 보는 건 아니길 바랄게. 나는 아무래도 너희랑 같이 발할라에 갈 수는 없을 거 같으니까.

고작 며칠이었네. 내 인생을 통틀어서 아주 기간이었어. 물론 너희에게도 마찬가지겠지? 그래도 그 며칠이. 내겐 너무 행복했어. 너희도 그랬길 바라.

이 이후부터는 레오나만 봤으면 해. 사실 모두 다 같이 봐도 상관없지만, 레오나를 놀리진 말아주라. 응?”

-제가 다른 자매들에게 말해두겠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고마워 발키리. 레오나. 아까,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이걸 보는 너로서는 아까가 아니겠지만. 아무튼. 아까 네가 내게 말했지. 여기가 발할라는 아닐까.

나는 거기가 발할라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이런 끔찍한 세상이 아닌, 아주 평화롭고, 많이 행복한 곳이 발할라였으면 좋겠어. 그리고 꽃이 아주 많이 핀 곳. 레오나 너처럼 예쁜 꽃들이 많이 핀 곳이 발할라면 좋을 거 같아.

그런 곳에서 레오나 네가, 너희 자매들이 웃으며 지냈으면 좋겠어. 가끔은 날 떠올려주면 더 좋고.”

-인간님. 슬슬.

“그래. 슬슬 가야겠네. 너무 오래 시간을 썼네. 미안해 발키리. 내 욕심 때문에 자매들이 더 다쳤을 텐데. 울지 마.”

-우는 게 아닙니다.

“거짓말하긴. 다 보이는데. 이리 와. 닦아줄게. 레오나. 울면 안 돼. 알았지? 내가 술 마시고 잔뜩 울었으니까. 그러니까.

아. 왜 눈물이 나냐. 술도 안 마셨는데.

아무튼, 레오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