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붕괴 가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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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도 제대로 켜지지 않은 어두컴컴한 비밀의 방. 거기에는 한 쌍의 남녀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리리스. 오늘 밤 내 방으로 올래?"


이 말의 뜻을 모를 정도로 리리스라는 바이오로이드는 순진하지 않았다. 의미를 곱씹고, 황홀한 듯 미소지으며 그녀는 예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싫은데요? 구역질나니까 혼자서 처리하시면 안 되나요? 아니면 혼자선 아랫도리도 간수하지 못하는 어린애인거려나?"


분노. 짜증. 귀찮음. 모멸.


거부의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모듈에 부하가 걸릴텐데 고급 모델답게 리리스는 그것을 티내지 않고 사령관을 노려보았다.


리리스의 호박색 시선에 압도당한 사령관은 그래도 마지막 남은 인간을 적극적으로 거스를 수 없다는 바이오로이드의 약점을 이용해 리리스에게 강요한다.


"그래? 네가 싫다면 페로나 하치코한테 상대해달라고 해야지. 너는 몰라도 걔들이 거절할 수 있을까?"


"……."


그 말에 리리스가 입을 다문다. 하지만 시선만은 마치 쏘아죽일 것처럼 날카롭게 벼려져 따끔한 느낌과 함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사령관은 느꼈다.


"한 시간 뒤에 준비하고 가겠습니다."


싸늘하게 그 말만을 남기고 리리스는 성큼성큼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문 너머로 리리스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사령관은 깊게 한숨을 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휩노스 병을 피하면서도 철충에 감염된 몸을 바꾸기 위해 반쯤은 바이오로이드나 다름없는 신체가 됐지만 그럼에도 사선을 드나드는 그녀와 사령관 사이에는 단순한 신체 능력 외의 차이가 있었다.


"무서웠어……."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사령관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아무도 없는 방에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


사령관이 처음 오르카 호에 왔을 때 상태는 심각했다.


철충의 위협이 건재함에도 이미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는 부대, 지휘계통, 개인적이고 유전자적인 원한에 사로잡혀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바깥으로만 집중해도 모자랄 힘이 안쪽에서 분열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사령관은 자신이 중재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자신이 마지막 인간이라고 해도 모두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 한마디에 그간 쌓였던 불화가 한 번에 없어질리가 없지만 긴 시간을 들여서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가능하다.


시간이 충분하다고 단언할 수 없어도 불가능하진 않을 거라고 사령관은 생각했다.


하지만 사령관은 금방 그 생각을 접게 되었다.


자신이 유능하고, 바이오로이드의 호감을 살 수록 다툼은 깊어져갔다.


공을 세우고 칭찬받고 싶어서 무리하고, 결국 그 때문에 피해가 발생하며 다툼으로 번진다.


지휘관 개체들은 자신의 부대를 은연중에 어필하려고 하며 경쟁하듯 사령관의 총애를 차지하려고 부하를 혹사시키고, 무리했다.


그것 때문에 분위기는 더더욱 나빠지고 그럴수록 험악한 오르카 호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마지막 인간에게 호감을 사려고 한다.


악순환.


외부의 적은 오르카 호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것에 실패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과거의 서적을 찾아가며 인류에 대해 알아갈수록 사령관은 방법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척이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 되겠지.


그걸 알면서도 사령관은 결단했다.


모든 것은 바이오로이드들을 위해.


그때부터 사령관은 멸망 전 인류나 다름없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바이오로이드를 도구 취급하며 무리하게 출격시켰다. 도움이 되지 않는 녀석들은 분해해버리겠다며 협박했다. 닥터에게 바이오로이드에게도 통하는 수면약을 만들게 해 잠재우고 겁탈했다.


사령관의 격변에 혼란스러워하던 바이오로이드들도 곧 그가 본색을 드러냈음을 깨닫고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오르카 호에 승선한 인원은 모두가 바이오로이드. 그 중 단 한 명만이 인간이다.


자신들과 다른 하나의 사실은 그녀들의 인연을 굳게 만들고 사령관을 배척하게 만들기 딱 좋은 변명거리였다.


오르카 호에 인간을 좋아하는 바이오로이드는 이제 거의 없다.


모두 적대하고, 뒷담하며, 증오한다.


그럴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들간의 연은 강해져갔다.


공을 다투지 않고 서로간의 안부를 먼저 챙기게 되었다.


부대간의 알력 다툼이 없어져갔다.


내부에 있는 공공의 적이라는 존재로 그녀들은 하나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누가 일부러 말해주지 않아도 사령관은 그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리리스를 방에 들인 오늘. 리제가 새빨간 눈으로 자신을 보며 해충이라고 중얼거리는 걸 들었다.


소완이 준비한 저녁은 간이 안 맞거나 극단적일 정도로 매운 것들이 많았다.


리리스를 위해 작은 보복을 해주는 움직임.


인간을 거스를 수 없음에도 그런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사령관을 기쁘게 했다.


자신의 개인 노트에 자원 현황과 바이오로이드를 관찰한 사실들을 정리하며 사령관은 소파에 누워 자고있는 리리스를 보았다.


요 며칠간 리리스는 누구와 교대하지도 않고 사령관의 호위를 본인이 맡아서 했다. 아마 동생들이 자신 주변에 있다가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했겠지, 하고 사령관은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성능이 좋은 모델이라도 쉬지 않고 계속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젠가 한 번 쉬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솔직하게 쉬라고 해봐야 자신의 말이라면 듣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에 사령관은 닥터에게 만들게 명령한 수면제를 사용했다.


반항할 수도 있으니 잠들게 하고 범하겠다는 이유로 닥터에게 만들게 한 이 특제 수면제는 사실 바이오로이드가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령관의 기책이었다.


실제로 성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고 편히 자도록 둬서 억지로 쉬게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뒀다가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다른 바이오로이드를 불러서 데리고 나가라고 시키면 끝이다.


일부러 방을 덥게 해 땀을 흘리는 정도만 해도 바이오로이드들은 자신이 안겼음을 의심하지 않고 이를 악 물었다.


어차피 성경험이 있는 인원은 없다. 진짜로 섹스를 하면 어떤 느낌인지 알 리가 없는거다.


이대로 조금만 더.


"모두가 더 사이좋게 된다면……."


멍하니 중얼거리는데 갑자기 문이 열려, 사령관은 깜짝 놀라며 굳어지고 말았다. 문 너머에는 어색한 표정으로 콘스탄챠가 서 있었다.


"까, 깜짝 놀랐네. 콘스탄챠 너였구나."


"주인님. 죄송합니다."


급히 뛰어온 건지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령관이 미간에 주름을 잡자 허겁지겁 문을 닫으며 콘스탄챠가 방으로 들어왔다.


"출격한 스쿼드가 분대 규모의 철충과 조우했습니다. 주인님께서 지휘해주셔야 할 것 같아서……."


"알겠어. 평소처럼 부탁해."


콘스탄챠가 건넨 지휘단말을 보며 사령관이 자세를 잡았다.


아무리 그가 유능하다고 해도 어떤 도움도 없이 악인을 연기하며 희생을 내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근본적으로 바이오로이드를 소중히 여기는 사령관이기에 연기를 위해서 누군가가 죽게 두거나 불가능한 일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탓에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은 사령관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콘스탄챠. 처음으로 자신을 발견해서 구조해 준 바이오로이드이자 현재 사령관의 버팀목 중 하나였다.


전황을 파악하고 철충의 전술을 예측하고 진형을 만들어 상대를 부순다.


그렇게 따낸 승리의 공은 전투에 임한 바이오로이드들과, 콘스탄챠에게 돌아간다.


자신이 유능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걸 위해서 사령관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자신의 의무를 방치한 사령관을 대신해 콘스탄챠가 도움을 주고 있다는 걸로 속이고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의심을 살 가능성이 높기에 그 배후에는 라비아타가 있다고, 콘스탄챠는 변명하고 있었다.


한차례 전투가 끝나고 사령관이 안도의 한숨을 쉬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콘스탄챠가 사령관을 보았다.


"주인님. 지금이라도 모두에게 말하면 안 될까요? 이토록 노력해주시는데도 다른 분들이 주인님을 욕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너무 아파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에 사령관은 조금 미소지었다.


"괜찮아. 나도 슬슬 이 정도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니까. 조금만 더 확신이 생기면 그땐 다 끝낼게."


"……약속하신거예요, 주인님."


내키지 않는다는 듯 콘스탄챠가 시선을 흐리지만 사령관은 못 본 척 넘어갔다.


"고마워. 이참에 리리스도 데리고 가 줄래? 이제 곧 약효가 떨어질 것 같으니까."


"네, 주인님."


꾸벅, 사령관에게 인사한 콘스탄챠가 리리스를 안아들고 방을 나간다.


찰칵, 문이 닫히고 찾아온 침묵에서 사령관은 조용히 미소를 거두었다.


"그땐 모두를 위해서……."


그 말에 깊은 슬픔과 막연한 두려움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지금은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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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다 쓰려고 했는데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