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글들
https://arca.live/b/lastorigin/9726290 
어떤 분이 이렇게 정리를 해 주셨네... 감사하구만


약간의 변경점
-시작 시간이 2103년에서 2107년 4월로 변경되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우리 주인공에게는 준비할 시간이 절반나버렸군요.

 청년: 에라이 시발


.
.
.


 청년이 벽장 안에서 두터운 솜이불을 꺼내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먼지가 조금 앉은 걸 제외하면 멀쩡해 보이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여름용 이불을 차곡차곡 개서 벽장 안에 집어넣었다.

 2107년 12월.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생에서의 연말은 고달플지언정 마음만은 따뜻한, 집 안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생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나마 연말행사스러운 건 옆집 할머니께 팥죽 한 그릇을 받은 거 정도이러나. 저번에 계단 밑에서 쌀 한 포대를 간신히 짊어지고 올라오는 할머니를 도와드린 적이 있었다. 그 뒤부터 옆집과 조금 친해져서 어떻게 한 그릇을 얻어먹었지만, 다르게 말하면 그것 말고는 연말이라고 친인척이나 이웃과의 행사는 전무했다.
 
 그나마 특이한 점이라면 1억원을 어찌 저찌 모았다는 점이었다. 그는 수없이 많은 시간들을 인터넷 세계를 돌아다니며 적절한 가격의 강화복을 찾아해맸고, 결국 블랙리버 사의 계열사 중 하나인 블랙마커사의 RIG 한 벌을 구매했다. 아직 2차 연합전쟁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제 슬슬 전쟁이 끝나려는 건지 구매는 별 문제 없이 이루어졌다. 상품은 치수에 맞게 주문제작되기에 주문 후 2주 뒤에나 도착한다고 했고, 다행히도 무이자 할부 6개월이 되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쪽으로 결제했다.

 그 외에는... 그러고 보면 더치걸 소녀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다른 조에 비해 월등한 성취를 연속해서 이뤄낸 덕분인지, 그와 더치걸들의 5조는 어느 새 일종의 엘리트 팀의 취급을 받고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기존 20시간 노동 4시간 휴식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조건은 간단했다. 하루 중 가장 효율적인 시간표를 그가 직접 작성하고, 매번 업무 달성량을 기록하는 것. 말 그대로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시간표였다. 소장님의 말로는 그들의 성취가 상부에도 올라가 일종의 실험조로 편성된 거라고 했다. 
  그로서는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는 이야기였다. 만약 그들이 높은 성취를 이뤄내면 어쩌면 더치걸들의 생활이 바뀔 수도 있었다. 마치 노예처럼 부려지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어쩌면 조금의 휴식시간과 여가시간을 가지며 살아갈 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그녀들에게 광산 밖의 맑은 하늘을 보여줄 수 있을 지도 몰랐다.

 물론 이것과는 별개로, 더치걸들도 좋아했다. 그의 계획 하에 광산 내에 작은 생활관을 만든다던가, 쓰고 남은 고철과 천들로 개인 침대를 만든다던가 하는 것들이 그녀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이러한 사소한 생활공간도 가져본 적 없는 그녀들에게는 커다란 선물로 다가왔는지, 개중에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 마구 환호성을 지르는 더치걸들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사실 그녀들이 이번 생의 가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면 연말에는 가족과 같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광산 안에서의 연말 파티는 드릴과 기계소리 때문에 시끄러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는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떠오르자, 당장 해야할 일이 생겼다. 연말 하면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의 아이들 하면 선물 아니겠는가. 그녀들에게 줄 선물을 신나서 찾기 시작했다.


.
.
.


 "...그래서, 그 이야기를 저에게 하는 이유가 뭐죠?"

 "아니, 즐거운 일 있으니까 미리 기대해 두라고. 두근두근대지?"

 "두근두근은 무슨. 힘-들어 죽겠는데! 카트에 광석 실을때 말 걸지 말랬죠!"

 
 빨간모자 더치걸은 카트 안에 삽으로 광석들을 마구 퍼넣으며 말했다. 발파 작업에서는 위험하긴 해도 힘은 덜 들지만, 적재 작업은 언제 해도 힘든 일이었다.
 물론 그도 같이 적재 작업을 하고 있었고 당연히 그도 힘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입을 쉬지 않을 수 있는 기적적인 능력을 가진 그였기에 그의 입은 한 순간도 쉬지 않았다.



 "너 입이 거칠기가 마치 바닐라 모델같구나! 송곳이 따로 없구만!"

 "바닐라 모델은 무슨 얼어죽을! 이 신체가 바닐라 모델로 보여요?"

 "킹치만, 나의 더치걸짱은 이렇게 입이 거칠지 않은걸?"

 "진짜 돌았어요 관리자님?"

 "돌았냐니...과거의 내 더치걸을 돌려줘! 인형 공연을 보고 수줍게 '감사해요~' 하던 더치걸을 돌려달라고!"

 "꺄아아아아! 그 얘기는 안 하기로 했잖아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빨간모자 더치걸은 결국 삽을 던져버리고 그를 쫓아갔고, 그를 예상했던 청년도 "이게 내 도주경로다!"라는 알 수 없는 말을 외치며 도망다녔다. 언제나와 같은 행동에 나머지 더치걸들도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그 중 초록 모자를 쓰고 있던, 빨간 모자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더치걸이 야유하듯 말했다.



 "호오. 우리 조장님은 그런 일면이 있던건가? 상당히 문학 소녀같은데?"

 "아니야! 아니라고! 나 그런 적 없어!"

 "문학 소녀는 나쁜 게 아니야! 용기를 내 조장!"

 "잡히면 진짜 죽어요!"



 상당히 잘 도망다니던 그였지만 한정된 공간, 그리고 바이오로이드와 인간의 차이로 인해 금방 따라잡혔다. 목덜미를 잡고 짤짤짤 흔드는 더치걸과 보블 인형처럼 머리를 마구 흔드는 청년의 모습은 장관이 따로 없었다.


 
 "어? 나도 장난칠래!"

 "나도! 나는 목마 태워줘!"

 "나도오~ 나도 놀아줘~"

 "어? 얘들아 잠깐만. 자연스럽게 팔다리를 하나씩 잡지 마. 당기지 마 당기지 마아아아아!!! 끄아아아아아아!!!"



 더치걸들이 몰려들어 사지를 잡고 바이오로이드의 근력으로 당겨대기 시작했다. 마치 과거의 거열형마냥 그의 팔다리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실제로 그의 입은 괴성을 섞은 비명을 내질렀다.

 평화로운 하루였다.


.
.
.


 "으에에에...다 젖었네..."

 "그러니까 적당히 놀리라고 했잖아요..."


 축축하게 젖은 옷을 벗어서 땀을 짜냈다. 한동안 거열형에서 벗어나겠다고 몸부림친 탓인지 완전히 젖어버린 옷은 지하의 차가운 기운으로 인해 얼음장처럼 차게 변했다.
 에취! 하고 답지 않게 재치기를 하는 그를 한심한 듯 바라보는 빨간 모자의 더치걸이었다.


 "...그런데, 매번 여기로 올 때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네요."

 "음? 왜? 카트가 좀 무거워? 바꿔줄까?"

 "...그런 건 아니고...주변의 시선이 안 느껴지시나요?"


 그 말에 청년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몇몇 관리자들이 서둘러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네. 왜 처다보는 거지?"

 "인간님들은 언제나 질투심에 차 계시니까요. 전에 다른 조에 비해서 성과를 잘 내는 조는 종종 이렇게 주목을 받곤 했어요."

 "요즘 내 감이 좀 무뎌진 감이 있긴 하다만, 별로 좋은 주목은 아닌 거 같은데?"

 "실제로 관리관님들 사이에 폭력 사건도 있는 듯 했어요. 그나마 관리관님이 워낙 힘이 센 걸로 유명하니 지금까지는 사건사고가 없었던 듯 해요."

 "나 그래도 처신 잘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문제가 터지긴 하네..."


 그로서는 조금 억울한 감이 있었다. 그도 자신과 자신의 조가 얼마나 이질적이고, 눈에 띄는 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종종 5조의 간식을 사 올때 관리관이나 다른 조의 것도 사온다거나, 다른 관리관들에게 친밀하게 말을 건다거나 하는 등. 인간관계를 적당히 쌓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듯 했다.


 "이거, 조금 몸조심을 해야 하겠구만... 이대로 가다간 뒷골목에서 뒤통수를 얻어맞을 지도 모르겠어."

 "...조금 의외네요. 이런 쪽에 눈치가 있는 분일줄은 몰랐는데."

 "푸하핫. 내가 좀 다양한 면모가 있긴 하지."


 청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슬쩍 주위의 사람들을 째려봤다. 타고난 강골에다 최근에 고된 광산일을 하며 근력이 더 붙은 그가 작정하고 노려보자 주위의 사람들도 그 분위기에 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방심할 수 없었다. 22세기의 한국은 21세기의 한국과는 달랐다. 이전의 두 차례의 연합전쟁으로 인해 길거리 건달들도 권총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치안이 점점 악화되는 상황이었다. 에초에 그도 여윳돈으로 살 만한 개인화기를 찾는 정도였다. 그저 이번 일로 인해 그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느꼈을 뿐.


 "어쨋든 고마워. 날 걱정해 준 거지?"

 "흥, 그저 새로운 관리관님이 오셔서 지금까지의 생활이 깨져버릴까 걱정한 것 뿐이에요."

 "응? 둘이 무슨 이야기 하고 있어?"

 "오빠! 일 끝났어! 오빠 것만 넣으면 되!"


 그들이 그렇게 밍기적거리고 있자, 다른 더치걸 두 명이 더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한 더치걸은 아까 야유를 했던 초록 더치걸. 다른 더치걸은 그가 선물한 안개꽃 장식의 머리핀을 한 더치걸이었다. 둘은 더치걸들 중 가장 먼저 청년과 친해진 이들이었기에 빨간모자와 그가 이야기하고 있으면 종종 이렇게 다가오곤 했다.


 "아니, 딱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어. 이제 넣으러 갈게."

 "응! 아 그리고 오빠, 오늘은 무슨 장난감 가져왔어? 아니면 연극? 애들이 다들 궁금해하고 있어!"

 "관리관의 연극을 기대하는 애들이 더 많긴 했어. 최근에는 카드게임만 줄구장창 했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이네! 오늘은 연극이니까. 다들 밥 먹고 생활관에서 보자!"

 "와!!! 오빠 최고! 빨리 밥 먹고 오자!"

 
 머리핀의 더치걸의 뒤로 초록 모자의 더치걸이 빠르게 따라갔다. 그 모습에 청년도 빨간 모자의 더치걸의 등을 툭 쳤다.


 "빨리 가 봐. 밥먹어야지. 나머지 정리는 내가 할께."

 "...아니, 저도 그 정도로 양심이 없진 않은데요."

 "카트만 쏟으면 되는데 뭐. 어차피 너희랑 나는 밥도 따로 먹어야 하잖아. 친구들이랑 가서 같이 먹어."

 "...감사합니다. 다녀올게요."


 빨간 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친구들의 뒤를 따라갔다. 눈빛을 보고 내심 따라가고 싶었던 것을 알았기에 그는 그저 씩 웃을 뿐이었다. 
 물론 그 웃음도 광산 구석의 다른 인간들을 보고는 조금 잦아들었다. 계속 그의 쪽을 눈길질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호의적인 모습은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살짝 불안한 기분이 드는 그였다.



-----------------------------


 이거 페이스 조절이 어렵구만. 좀 더 빨리 가야 15화 안에 철충강림 1기가 끝날 거 같은데 이거보다 더 빠르면 날림진행임...

 그나저나 앨리스 그녀는 쓰레기인가. 거의 300판을 돌렸는데 엘리스 하나 나오는 건 뭔가. 정말 가슴이 웅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