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간&기분나쁨 주의


새벽같이 일어나 서류를 처리하고 전투 지휘를 하며 바쁜 하루를 보내는 사령관의 업무는 늦은 새벽까지도 계속되었다.


"..후"


레이시의 실험 기록을 반쯤 읽어낸 사령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푹신한 의자에 몸을 묻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볼까.." 


문득 시계를 바라보니 시간은 벌써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잠을 자 두지 않으면 내일 있을 지휘관 회의에서 실수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사령관은 손에 든 서류를 책상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응?"


사령관은 서류더미 사이에서 흘러나온 종이 한장을 집어들었다. 다른 서류보다 유난히 하얀 빛을 띄고 있는 종이에는 한장의 그림과 글 몇줄만이 쓰여있을 뿐이였다.



"부정형...리리스?"


사령관은 더듬더듬 글자를 읽어내려갔다. 


"부정형 리리스.. 부정형 리리스는 정말 귀여워..? 부정형 리리스 최고..?"



삼안 그룹의 마커도 찍혀있지 않은 종이에는

어딘가 기괴하게 녹아내린 리리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의 장난인걸까, 사령관은 책상 위에 던져두었던 서류더미를 뒤져보았지만 레이시의 실험기록에 관한 내용만 있을뿐 더 이상 '부정형 리리스' 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수 없었다.


역시 좌우좌나 다른 아이들이 장난친건가? 관심을 잃은 사령관이 종이를 서류더미 사이에 끼워넣으려고 하는 순간 사령관은 그림속의 리리스를 실제로 보고 싶다는 알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녹아내리는 머리카락과 그 속에 숨은 눈동자까지도 사랑스러웠다.


형체를 갖추지 못해 녹아내리는 몸뚱이는 아름다웠다.


이따금 갈라진 배 사이로 수줍게 모습을 보이는 이빨들을 보았을때 사령관은 지난 탐사때 발견했던 와인 한 병을 꺼내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근 탐사에서 이상할 정도로 많은 리리스가 발견되어, 새로운 리리스는 차고 넘칠정도로 많았다.


레이시의 보고서를 읽은 뒤여서 그런 것이였을까?피로감과 알 수 없는 충동에 휩싸인 사령관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을 했다.


"리리스, 지금 바로 사령관실로 와 줄 수 있을까?"


"헉..네! 쥬인님! 착한 리리스가 지금 갈게요!"


잠에서 막 깬듯한 목소리였지만 리리스는 목소리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언가 바삐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통신이 뚝하고 끊어졌다.


사령관은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솜씨좋게 와인을 따랐다.

아껴두었던 향초가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기 시작하자 사령관은 책상속 깊은 곳에서 희미한 빛을 내는 작은 병을 꺼내 들었다.


 별의 아이, 알수 없는 미지의 생명체의 조각.


'닥터에게 다 보내지 않고 한 조각 정도 남겨두길 잘했네...'


사령관은 망설임 없이 병을 열어 리리스의 잔에 내용물을 쏟아부었다.


한때 별의 아이였던 빛나는 살조각은 뜨거운 물에 담긴 얼음처럼 녹아내렸다.


충성스러운, 나의 사랑스러운 리리스, 그 리리스가 더욱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것을 상상하자 사령관의 입에서 기괴한 웃음이 흘러 나왔다.


"헉..헉..쥬인님! 부르셨나요?"


문이 열리고 리리스가 들어오자 사령관은 황급히 웃음을 지웠다.


"무슨일로 리리스를 부르셨나요..?"


리리스는 조심스러운 ,하지만 기대하는 표정으로 사령관실을 둘러보았다.

평소보다 어두워진 사령관실을 밝히는 은은한 촛불, 작은 탁자위에 놓인 두개의 와인잔을 본 리리스는 속으로 빙고를 외쳤다.


"어서와 리리스."


사령관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로 리리스를 반겼다. 평소와 같은 웃음, 평소와 같은 몸짓, 하지만 그 속에는 옅은 긴장이 베여있었다.


하지만 사령관의 부름으로 기대심에 가득 차있던 리리스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리리스는 페로의 조언대로 준비한 승부속옷을 슬쩍 강조하며 사령관의 옆에 걸터앉았다.


사령관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와인잔을 내밀었다. 챙, 잔이 부딫히는 소리가 적막을 깨고, 몇번의 목넘김, 몇가지 시시한 대화가 오고 가자 잔에 담긴 와인이 점점 줄어들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둘의 조급한 마음 탓이였을까, 두 잔의 와인은 곧 비워졌다.


"자? 주인님, 이제..."


묘한 미소를 지으며 리리스가 사령관의 가슴팍 위로 올라탔다. 역시 실패인건가? 사령관은 미소로 씁쓸함을 감추며 리리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이렇게 된 이상 이것도 나쁘진 않겠지. 평소의 사령관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생각, 하지만 사령관은 그 기묘한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했다.


[쨍그랑!]


힘이 빠진 리리스의 손에서 미끄러진 잔이 바닥에 부딫혀 깨어진 것은 순간이였다. 유리 파편이 튀며 사령관의 허벅지에 작은 생채기가 생겼다.


"주..주인님? 죄송해요..리리스가 전부 치울게요!"


송글송글 솟아나는 핏방울을 본 리리스가 경악했다. 고의던 아니던, 보디가드가 그 주인을 다치게하다니. 보디가드 실격이다.


리리스는 서둘러 일어나 유리 파편을 치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려면 치우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취 주사를 맞은것 처럼 리리스의 몸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주...인..님.....?"


리리스는 섬뜩한 눈길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령관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리리스의 마지막 기억이였다.


사령관은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녹아내리는 리리스를 바라보았다. 별의 아이의 조각에 의해 변해가는 리리스의 몸은 예의 그 "부정형 리리스"의 사진과 굉장히 비슷했다.

녹아내리는 몸도, 빛을 잃은 눈동자도 모두 아름다웠다.


"..아름다워." 


사령관은 홀린듯 중얼거리며 흐물거리는 리리스의 팔뚝에 입을 맞췄다.

물컹거리는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흘러내리는 팔다리를 모아 안아올리자 리리스는 힘없이 사령관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어느세 아주 작아진 리리스는 "쥬..쥬.." 소리만을 반복하며 사령관의 품속에서 힘없이 꾸물 거렸다.


"응,응 나 여기 있어 리리스."


사령관은 이제 환희에 찬 표정으로 리리스였던 무언가를 쓰다듬었다. 사령관은, 이제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리리스, 이제 영원히 함께야."


"쥬...쥬...."


뇌까지 모조리 녹아내린 리리스는 영원히 사령관의 말을 알아 들을수 없을 것이다. 

사령관 또한 언어모듈이 녹아버린 리리스의 말을 영원토록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머니 속에 들어갈수 있을정도로 작아진 리리스와 그런 리리스를 사랑하는 사령관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것이다.



부정형 리리스 유행해서 함 써봄 ㅎㅎ 

라오 단편 쓰는거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