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으로 쓴 야설임


(후편) "어서 젠틀맨과 세 번째 의식을 해라, 뽀끄루."





위이이이잉!!!


"히익?! 사장니임!!!"


이젠 월례행사와도 같은 소동이었다. 백토는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꼭지가 돌아서 문라이트 체인쏘의 토크를 올리며 뽀끄루를 뒤쫓고, 뽀끄루가 기겁을 하며 그런 백토에게서 도망친다. 귀기를 뿜어내며 갈갈갈 돌아가는 전기톱을 마구 휘둘러대는 백토의 형상은 마법소녀라기엔 악마에 더 가까웠다.


"거기 서라 이 배신자! 대체 이번이 몇 번째지? 동료가 된 척 하고 다시 마왕의 모습으로 돌아와 악행을 저지르는 게! 감히 내 마음을 이용하다니! 나도 더이상 속고만 있지 않아! 이번에야말로 네놈을 기필코 근절하고야 말겠어!"

"그, 그그러니까 이거언... 백토나 모모처럼... 솔직해진 제 마음을 표현하는 블랙 버전 코스튬이라고..."

"헛소리!"


왜애애애앵!


"꺄악!"


흉흉한 모터의 소음과 함께 뽀끄루가 몸을 한껏 숙였고, 잘린 머리칼 몇 올이 허공으로 휘날렸다.


"골타리온이 네 그 모습을 두고 우주 대마왕이라 칭하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아? 기만은 이제 끝이야. 네 동료 놀이에 놀아나는 것도 이제 질렸어!"

"에엣..."


열이 오른 백토가 이미 충격받은 뽀끄루에게 더 상처가 될 말을 하기 전에, 사령관은 둘 사이를 부드럽게 가로막았다.


"거기까지."

"젠, 젠틀맨..."


아무리 그래도 젠틀맨 코앞에 무기를 들이댈 정도로 눈이 뒤집히지는 않았기에, 백토는 한 발 물러섰다.


"뽀끄루가 우리 마법소녀 편에 서서 함께 철충과 맞서고 있는 지도 오래됐잖아."

"철충이 뽀끄루 대마왕의 휘하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잠시 공공의 적을 배제하기 위해 우리를 이용하고 있을 뿐. 지금도 골타리온을 필두로 마왕군의 세를 불려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철충을 상대하느라 약해진 틈을 타 배신할 지도 몰라요!"


요전에 발렌타인 데이라고 이그니스랑 사디어스가 노출도 높은 마왕군 코스프레를 하고 골타리온과 함께 초콜릿 판촉 행사를 뛰었던 걸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사령관은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그... 그건... 그냥 멸망 전에도 인기 많았던 대마왕 뽀끄루의 다크 초콜릿 홍보 때문에..."

"그렇게 쌓은 부로 결국 강성해지는 건 마왕군 뿐이겠지! 뽀끄루 네가 우리 편이라면 자금이 오로지 골타리온의 주머니로 흘러가고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거지?"

"하, 하지만 회계 경리는 골타리온 경이 훨씬 나아서 그냥 일임하고 있을 뿐이라서..."


점점 더 험악해지는 백토의 표정에, 뽀끄루는 다급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회계 자격증도 있고."라고 덧붙였다. 사령관은 골타리온이 재무회계를 맡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까지는 이해를 했지만, 회계 자격증까지 땄다는 것을 듣고 잠시 뇌가 멈추었다. 아니 그 녀석, 회계 자격증도 있었어? AI 코어로 연산하는 주제에 왜 굳이? 아니 그리고, 애초에 회계 자격증을 누가 심사하고 누가 발행해 주는 거지?


사령관이 잠시 굳어 있을 동안, 잠시 느슨해졌던 백토의 추궁은 더 집요해지기 시작했다.


위이잉!


"히익!"

"...더 나은 변명은 없나?"


거친 구동음에 억지로 상념에서 벗어난 사령관은 다시 백토를 제지했다.


"백토야, 그만!"

"비키세요, 젠틀맨!"

"대체 어떻게 하면 믿어줄 거야? 내가 아군이라고 보증해도 못 믿겠어?"

"...그건."


백토의 눈에 망설임의 기색이 엿보였다. 기회가 보인 사령관은 추격타를 넣었다.


"뽀끄루를 보증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게!"

"..."


보증까진 너무 간 건가? 사령관은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질러버린 말이었다. 그래도 이 잠시간의 침묵이 안식이 되었는지, 뽀끄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숨을 골랐다.


이윽고, 한동안 고개를 숙이며 골똘히 생각하던 백토가 얼굴을 들었다.


"그럼... 젠틀맨과 뽀끄루가 제가 보는 앞에서 달의 세 번째 의식을 치르십시오."

"...뭐?"

"...에?"


다시금 충격에 빠진 둘 앞에서 백토의 설명이 이어졌다.


"뽀끄루가 여전히 마에 사로잡혀 있다면 의식을 통해 마의 기운을 쫓아낼 수 있을 것이고, 아군 마법소녀라면 아무런 해도 없이 마력만이 더 충만해지겠죠. 아닌가요?"

"음, 듣고 보니 그렇네."

"사, 사장니임?!"


잠시 정지했던 사고를 돌려보니 사령관 입장에서는 딱히 손해볼 게 없었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였다. 수치심에 얼굴이 빨개진 뽀끄루는 아닌 모양이지만.


"그그그, 백, 백토 앞에서 사장님이랑 그런, 그런 짓을 한다구요?! 그, 달리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뭔가... 매지컬 파워를 이용한 기술을 보인다던가!"

"변명이 길어지면 들통나는 게 두려운 걸로 간주하겠다. 아니면, 매지컬 아쿠아 스플래시로 네가 진짜 악인지 자백할 때까지 감별하는 조금 고전적인 방법을 원하나?"

"아아아, 아니예요! 할게요! 할게요!"

"흥, 진작에 그럴 것이지. 기껏 위해가 가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 줬더니만..."


졸지에 친구 앞에서 정사 장면을 보이게 된 뽀끄루는 여전히 울상이었다. 사령관은 백토의 인도에 따라 비밀의 방으로 뽀끄루를 데려가며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래도 예전보단 훨씬 낫잖아. 옛날이었다면 인정사정 볼것도 없었을 백토가 네가 다치지 않도록 신경써주는 거 보면."

"히잉, 사장님. 변태..."


위로 아닌 위로에, 뽀끄루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내딛으며 작게 투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