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나서 자라던 들에서 잠자리가 날고 나비가 날며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있을 때


매미소리가 숲을 메우고 새소리가 하늘을 메우고 귀뚜라미 소리가 땅을 메우고


녹빛의 여인이 바람을 맞으며 들의 한켠을 바라보고 있을 때


두 명의 소년이 들의 동산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을 때


아름다움이 당연하고 행복함이 당연한 그런 시대에


검은 그림자가 논밭과 파도 위로 드리워지고 있었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이동 작전도


황력 2010년 8월 10일, 대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은 일본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극동에서 중립을 표방하던 일개 섬나라와 세계 유일의 압도적인 초대국 브리타니아의 자라나던 갈등의 씨앗이 결국 망울을 터뜨린 것이다. 브리타니아는 중화연방의 강토인 필리핀과 상하이를 총칼을 앞세워 점거하고 12만 명의 군대를 진주시키는 한편, 하와이에 주둔하던 21만 6천 병력과 120여 척의 군함으로 일본 내해에 진입한다. 일본은 필사적으로 맞서 싸우면서 브리타니아에 저항하였으며 브리타니아는 1개월간 일본과 대대적인 접전을 치렀다.


브리타니아가 일본 같은 섬나라, 그것도 산투성이에 지형도 최악이고 태평양을 건너는 장대한 보급로를 구축해야 하는 곳에 굳이 전면전을 시도한 까닭은 둘뿐이었다. 첫째는 태평양이라는 어마어마한 대자연의 방벽을 믿고 브리타니아의 반도 안 되는 국력으로 까불어 대는 중화연방을 견제하기 위한 일종의 전초기지로 사용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불의 고리에 끼어 끊임없이 퇴적이 일어나는 일본 열도가 상온 초전도체이자 상온 핵융합을 가능케 하는 동시에 막대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꿈의 물질 사쿠라다이트(원소기호는 Sk. Sakuradite. 영문발음은 세큐러데잇)를 대량으로 채굴할 수 있는 지구상에 단 둘뿐인 초광맥(Hyperlode)이 자리잡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브리타니아는 일본과의 전쟁을 앞으로의 대대적인 팽창정책을 위한 하나의 실험적인 전쟁으로 취급하였다. 총동원령을 내려도 도합 60만여명의 군대밖에 모으지 못한 일본과, 일본 내해에만 100만 대군을 진입시킨 브리타니아 간에는 어찌해볼 수 없는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다. 브리타니아는 이제까지 제대로 사용해본 적 없는 신개념 병기 나이트메어 프레임을 일본 본토결전에 투입시켰다. 실패해도 브리타니아의 압도적인 우세는 변하지 않고, 성공하면 좋을 뿐이었으니까.


브리타니아 제국의 대량양산형 실전 나이트메어 "글래스고"


그러나 나이트메어는 상상했던 것 이상의 성능을 냈다. 통상의 전차를 압도하는 속력으로 다른 무기들을 대적해 나갔으며, 전차가 제대로 나이트메어를 조준하기도 전에 전차에 접근해 쳐 버리는 방식으로 기갑전력을 대적하였다. 브리타니아의 압도적인 제공권 장악 능력이 더해지면서 나이트메어 조준을 위한 시스템들도 남김없이 무력화되었다. 기갑전력의 사거리는 1킬로미터 수준이었는데, 압도적인 속력의 나이트메어 두 대만 동시에 덤벼들어도 웬만한 전차는 속절없이 깨졌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글래스고는 물량도 압도적이었다. 즉 일본은 속력과 조준능력에서 전차를 압도하는 글래스고를 물량으로도 못 따라갔다. 일본의 육군이 사용하는 C-76 전차는 도합 458대가 있었고 전시에 128대가 추가 양산되었는데, 브리타니아가 본토결전에 시범 운영을 위해 풀어놓은 글래스고만 490기였고 그 뒤로 상륙한 본대가 나이트메어의 진가를 알고 대량 재배치하면서 상륙한 글래스고는 800기에 달했다.


일본의 중좌 토우도 쿄시로(藤堂 鏡志朗)가 이츠쿠 섬에서 매복전술과 유인책으로 나이트메어 34기를 앞세운 브리타니아군 5,200여 명을 저지했지만 그뿐이었다. 그것으로 브리타니아군, 1,280,000명에 이르는 대군의 발목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브리타니아는 곧 일본 본토에 대군을 상륙시켜서 닥치는 대로 밀고 올라갔다.


결국 9월 10일, 일본은 브리타니아에 무조건 항복하였다. 브리타니아의 속령이오 식민지로 전락한 일본은 더 이상 나라도 아니었고, 주체도 아니었다.


에이리어 11.


그것이 일본의 새로운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