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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2020년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아주 어릴적, 2020년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2000년에 태어난 저는 2020년하면 굉장히 밝고 희망찬 그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과학공상그림대회 비슷한 것을 하면 저는 항상 우주에 도시가 지어지고, 그곳에 사는 모두가 웃으며 행복하게 사는 그림을 그렸죠. 그러나 이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과학은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했을지언정, 우리들의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고 씁쓸해졌습니다.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저에게 있어 성소수자 이슈는 굉장히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저와 제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 중 성소수자는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처음 트랜스젠더 학생이 숙대에 입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여자대학교의 단체가 공동으로 발표한 반대 성명문을 보며 처음에는 씁쓸했고, 이내 굉장히 슬퍼졌습니다. 


사실 저들의 반대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낯설거나 새로운 것을 보면 경계하거나 공포에 떨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은 사소한 계기로 쉽게 혐오와 같은 강렬한 감정으로 발전되기 마련이죠. 특히나 그것이 오늘날의 한국사회와 같이 각박하고 갈기갈기 찢어져있다면 더더욱 강한 배타성을 띄게 됩니다. 이와 같은 반응들은 인류의 선조들로 부터 내려온 것들이기에 그것을 억제하거나 할 방법은 없습니다. 유전자 깊숙히에 박혀있는 본능을 바꿀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이런 것들이 타인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크나큰 문제가 됩니다. 


저들이 발표한 성명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는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갈등구조가 표면화 된 사회에서 저쪽에 속하던 사람이 '우리'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다는 데에서 굉장히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죠. 굉장히 직관적인 이 감정을 포장하기 위해 이들은 갖가지 근거를 제시하지만 결국은 이점이 핵심입니다. 무언가 설득력있고 논리적인 근거를 기대한 제가 바보일 정도로 근거는 빈약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결국 이것입니다: 


1. 여대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차별받는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간을 남성들이 침범하는 것은 안된다


2.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허용하는 것은 여성의 권리와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국회는 성별변경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여야 한다

(근거: 헌법 제 34조 3항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거칠게 요약하기는 하였으나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굉장히, 굉장히 구시대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들이 말하는 여자는 결국 '염색체가 xx인 상태로 태어난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평생을 여성성을 가지고 자신과 맞지 않는 남자의 몸으로 고통받으며 살아온 사람에게, 그리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위해 용기를 낸 사람에게 이들은 '그래봤자 너는 가짜'라며 주홍글씨를 새겨 버렸습니다.  그분 발언을 꼬투리 잡아 '여대는 그에게 있어 단지 여성으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수단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하면서요. 정작 그곳에 입학하기 위해 한 그의 노력과 땀을 무시한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입장을 단정지어버렸습니다. 맥락에 합치하는지 여부는 보지 않고서요. 더구나 이들의 주장은 모순되는 부분 또한 있는데, 입학하려고 하시던 분이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허용받은 상태라는 점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서 헌법 제34조 3항의 대상에 이분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언뜻봐도 이상한 일이죠. 


저 성명문을 비판하려면 논지 이탈을 시작해서 지적할 부분이 끝도 없으니 넘어가겠습니다. 이 글의 목적이 성명문 첨삭은 아니니까요. 아무튼 저들의 움직임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저 자신들의 파이를 지키기 위한 추악함을 일견 타당해보이는 감언이설을 방패삼아 싸우는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결국 제가 하고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그저 존중하라는 것. 이해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됩니다. 당장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타인을 이해했다는 것은 그래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존중하세요. 우리는 인간이잖아요. 똑같은 피가 흐르는 인간. 생각없는 아이들처럼 자신과 다르다고 배척할 수준이 아니잖아요. 이해하지 못하니 존중하세요. 그분들을 존중할 자신이 없다면, 더 이상 여성이 약자라는 말을 하지 마세요. 성소수자를 핍박하는 사람을, 어떻게 약자라고 하겠습니까. 


나치가 가장 먼저 한 작업은 자신들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자연히 우리와 나머지로 나뉘었고, '경계 밖'에 서게 된 이들에 대한 무제한적이고 초법적인 조치들이 자연스럽게 정당화되었죠. 혐오가 당연시되었으니까요.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혐오가 감언이설을 감싸서 고귀한 이상처럼 보였으니까요. 그렇게 모든 이들이 일상화된 혐오를 가지자, 지옥이 펼쳐졌습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성소수자를 배척하고 혐오하신다면 침묵하세요. 그저 침묵하세요. 불의에 침묵하고 악에 침묵하고 부조리에 침묵하세요.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에 침묵한 결과는, 역사가 말해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