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연쇄키스마에게 찍혀서 하루하루 고통받고 있는 악역영애입니다.


자업자득이라고는 하지만, 제가 저지른 게 아닌 일로 미움받아서 그거 중화시킨다고 열심히 노력했더니 그게 과해서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적잖게 억울하네요.


하지만 어쩔 수 있나요? 이미 일어난 일인데. 살인마를 피하는 생존자처럼 키스마를 피하기 위해 은신 스킬을 나날이 발전시키는 중입니다.


오늘도 열심히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은밀한 곳을 중심으로 돌아다니던 중.


“쥴리아나 레이첼란스.”


“힉!”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누군가에게 붙잡혔습니다.


돌아보니 회백색의 머리카락에 동물귀와 꼬리가 달린 남자가 있었습니다.


티자일 융. 


『성녀에게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의 남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따라와라.”


그렇게 말하고 제 손목을 붙잡은 채 잡아끕니다. 그의 행동에는 배려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죄인을 포박하여 연행하는 병사도 이것보다는 친절했을 것입니다.


항의할까요? 항의 해버릴 거예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소시민에게 이건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되는데요!


물론 소심인인 저는 항의하나, 찍소리 하나 하지 못하고 벌벌 떨며 끌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지랄 같은 일이 저를 반겨줄까요?


참으로 기대되네요.



* * *



제가 연행된 곳은 학교 구석의 인적이 드문 교실입니다.


교실에 들어가니.


다양한 매력의 미남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거 참. 저도 죄가 많은 여자네요.


……죄송합니다.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과드립니다. 용서해주세요. 살려주세요!


저는 속으로 사과하며 절규했습니다.


교실에 모여 있던 미남들은, 그리고 저를 끌고 온 미남은 각자의 방식으로 저에게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었으니까요.


기절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기절해도 억지로 절 다시 깨울 거라는 확신도 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맹수의 아가리에 제대로 들어왔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유서를 써 둘 걸 그랬습니다.


유서에는 아리시아 폴라리스의 이름을 써 두고 말입니다. 다 당신 때문이에요, 아리시아!


“대답해!”


이런 현실도피에 집중하다가 말을 못 들었나 봅니다.


방금 저를 윽박지른 사람은 평소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대중을 휘어잡는, 다정한 오빠 타입의 미남입니다.


브레톨리우스 나셸라.


이 왕국의 왕태자입니다.


이런 사람의 말을 무시하다니 저도 대범해져 가나 봅니다. ……또 현실도피했어요!


저는 벌벌 떨면서 물었습니다.


“저, 저기. 저하. 뭐라고……하셨나요?”


저의 말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내려갔고, 반대로 브레톨리우스의 눈꼬리는 올라갔습니다.


브레톨리우스는 저를 노려보다가 씹어 내뱉듯이 말했습니다.


“아리시아에게 무슨 짓을 했나?”


어어어어어엄청 억울한데요? 제가 아리시아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투입니다.


아닌데요! 반댄데요! 아리시아가 저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데요! 매일 매일 마주치면 키스하려고 달려드는데요! 어떻게 좀 해주시면 안 되나요!


……라고 항의하고 싶지만 지금 이런 소리를 했다간 살기만으로도 죽을 게 분명하기에 꾹꾹 눌러참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방에 저와 함께 있는 미남들 전부 아리시아에게 반한 남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한테 이런 소리를 하면 무슨 반응이 나올지는 눈에 훤하지요.


그리고 이들이 이러는 이유도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저에게 적대적으로 굴던 아리시아가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꿔 저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죠.


그것도 그냥 호감이 아니라 연애 감정 이상의!


저는 어떻게든 답을 하려고 머리를 쥐어짰습니다. 하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세계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소설 속의 세계이고, 저는 이 소설의 독자입니다. 그러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소설 속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악역영애에게 빙의해서, 비참한 최후를 피하기위해 원작 지식을 총동원해서 어떻게든 주인공과 친해지려고 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력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라고 어떻게 말하나요.


‘돌았음?’ 같은 반응 혹은 이 와중에 장난질이냐고 욕이나 처먹겠죠.


엄격해 보이는 미남자 안시엘 유스텔라 경이 끼어들었습니다.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무슨 사술을 쓴 건가?”


이건 또 무슨 소리래요?


“일전에 사람을 세뇌시키는 마족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들었다.”


“아!”


그 친구요? 일전에 아리시아를 세뇌시키려고 했다가 실패해서 아리시아의 손짓 한 번에 순식간에 소멸한 그 친구요?


그러나 저의 깨달음으로 인한 탄성은 다른 의미로 해석되었나 봅니다.


제가 ‘아!’소리를 내자 안시엘 경은 확신에 찬 눈으로 저를 노려보았습니다. 그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마신을 숭배하는 사교도지? 그래서 마족의 힘을 빌린 거지?’


“절대로 아닌데요!”


억울함의 한계를 넘어버려서 저는 제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외치고 말았습니다.


“저를 마족이랑 엮으려고 하시는 거 같은데요!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오히려 마족 쪽에서 저를 적대하면 적대했지! 일전에 사교도 비밀 사원 제보한 거 전데요! 그리고 방금 말하신 그 마족 신성기사단에게 제보한 것도 전데요!”


저는 어떻게든 저의 무고함을 어필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적극적으로 변호를 해도 남주들의 시선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환장하겠네요!


이 사람들 증거가 없어도 말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여기서 최대한 해명을 하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사교도라는 누명을 쓰고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요.


“제가 사교도라는 증거 가져오세요! 증거! 얼마든지 반박해드릴 테니까요!”


저는 씩씩거리며 외쳤습니다.


당연히 아무런 증거도 못 가져올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한 말입니다. 있을 리가 없죠! 저 사교도 아니니까요!


“……다른 마족일 가능성도 있다.”


푸른 머리의 이지적인 미남, 클라우드 벵기엥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그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습니다.


“최근 아리시아에게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조사해봤다.”


‘스토커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습니다만 어떻게든 참았습니다.


“특별히 아리시아에게 누가 사술이나 마법을 썼다는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최근에 아리시아가 너와 엮이는 일이 지나치게 빈번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우연이라고 치부해버리면 자신의 지성의 소유권을 포기해버리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태도가 바뀐 것은 아리시아뿐만이 아니다. 너도 아리시아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


“지금까지 아리시아를 괴롭히는 데에 전력을 다하던 네가 언제부턴가 아리시아를 위해서 행동하기 시작했다. 어째서일까?”


어투는 의문이지만 실상은 자백을 강요하는 말입니다.


“…….”


저는 대답 못했습니다. 제가 쥴리아나가 아닌 빙의자라는 것을 믿어줄지 확실하지도 않고, 믿어준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칫 이것을 악마가 들린 빙의자라며 사교도로 몰아갈지도 몰랐습니다.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클라우드는 제가 대답이 없자 자신의 추리를 이어나갑니다.


“최근 아리시아가 너랑 엮이는 일이 빈번했지. 그 모든 사건을 네가 조장했다는 것은 확대해석하는 것이지. 그것보다는……”


클라우드는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지 조금 주저하다가 말을 꺼냈습니다.


“미래를 알고 있는 거 아닌가?”


“!?”


“미래예지는 마법으로는 아직은 불가능한 영역이다. 하지만 마족에게는 아니지.”


아니, 씨! 잘 나가다가 왜 갑자기 마족으로 꺾어버리나요! 마족한테서 좀 멀어지세요!


안시엘 경이 한 발자국 내디디며 말했습니다.


“미래를 아는 대가로 악마에게 무엇을 요구받았지? 아리시아와 친해져서 그녀를 꾀라고 하던가?”


기사로서의 정의감과 남자로서의 질투심이 섞여 있습니다. 추해요, 안시엘 경!


등 뒤에서도 살기가 느껴집니다. 티자일입니다. 제가 무슨 수작을 부리면 저를 해하겠다는 의지가 확실하게 느껴지네요.


이 사람들 진실을 밝힐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저를 처리할 건수를 잡으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부정하려고 해도 이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겠죠. 그렇다고 긍정도 못합니다. 그랬다가는 제 목숨이 날아갑니다.


환장하겠네요. 돌겠네요. 미쳐버리겠네요.


저보고 어쩌라는 건가요!


원래의 쥴리아나라면 비난하고 욕하며 온갖 난리를 다 치겠지만 저는 그런 배짱 없어요.


단지 고개만 푹 숙이고, 벌벌 떨면서, 나오려는 울음을 억지로 참는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좀……도와주세요.


“쥴리아나!”


누가 제 이름을 부릅니다.


남자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청명합니다.


그 목소리에는 저에 대한 적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자……아리시아가 보입니다.


그녀는 단걸음에 저에게 다가와 와락 저를 끌어안습니다.


저보다 작은 그녀지만 한껏 위축되었던 저에게는 충분히 넓었습니다.


아리시아는 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저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괜찮아요, 쥴리아나. 괜찮아요. 제가 왔어요.”


아리시아의 다정한 목소리가 저의 귓속에 남아있던 적의를 녹여갑니다.


떨리던 몸도 아리시아의 체온을 받게 되자 어느새 사라집니다.


그러나 울음은. 지금껏 간신히 참아왔던 울음은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어지자 방울방울 흘러나오다가 주르륵 흘러나와 아리시아의 어깨를 적십니다.


아리시아는 저의 눈물에 어깨가 젖어가지만, 저를 내치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더 다정한 목소리고, 더 부드러운 손길로, 저를 위로해줄 뿐입니다.


“다른 데로 가요, 쥴리아나. 여기는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아리시아는 제 어깨를 감싸고 저를 이끕니다. 저는 그 인도를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갑니다.


“자, 잠깐, 아리시아!”


누군가가 아리시아를 부릅니다. 그러자 아리시아는 누군가를 돌아보며 말합니다.


“닥치시고 꺼지세요. 지금 댁들 꼴도 보기 싫으니까. 안 부끄러우세요? 남자 넷이서 여자 한 명을 윽박지르는 것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는 단지……”


“다시 말해드려요? 닥치시고 꺼지세요.”


남주 4인방은 아리시아가 적의를 드러내자 더는 붙잡지 않았습니다.


“가요, 쥴리아나.”


저를 향한 아리시아의 말에는 다정함만이 가득했습니다.



* * *



아리시아는 저를 인적이 드문 쉼터로 이끌었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저는 아리시아의 인도에 따라 벤치에 앉았습니다.


적대적인 환경을 벗어났지만 저는 여전히 얼굴을 가리며 훌쩍거리고 있었습니다.


무서워서요? 아뇨.


슬퍼서요? 아뇨.


부끄러워서요? 아뇨.


눈물로 화장이 지워져 얼굴은 엉망일 게 분명해서요? 아뇨.


지금의 저는 인적이 드문 곳에, 아리시아와 단 둘 뿐인 상황이니까요.


연쇄키스마와 단 둘뿐인 상황이니까요!


지금 이 상황에서 고개를 들면 무슨 일을 당할지 상상도 못 하겠네요!


자칫하면 키스보다 더 심한 짓을 당할지도 몰라요!


방금과는 다른 의미로 두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 울음이 그치지 않은 척을 하고 있습니다.


“쥴리아나.”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리시아는 저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제 등을 토닥여주었습니다.


아리시아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제가 진정되기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진정은 이미 옛날에 되었지만 방금 말한 이유로 저는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슬픈 생각. 슬픈 생각. 슬픈 생각.


어떻게든 눈물을 쥐어짜려고 노력했습니다마는 쉽지 않네요. 눈물이 안 나오네요.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녀 같으니. 


그렇게 하릴없이 시간이 흐릅니다.


제가 이대로 울다가 지쳐 잠들어버린 체를 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죄송해요.”


아리시아가 사과를 했습니다.


“저 때문에……당신이 험한 일을 겪으셨네요. ……죄송해요, 쥴리아나.”


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반쯤은 사실이었고, 괜찮다고 말하려고 고개를 들면 키스 당할 것 같았으니까요.


남주 관리 제대로 안 하세요, 아리시아?


“저도 그런 사람들일 줄은 몰……아뇨. 죄송해요. 쥴리아나.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남주들 욕을 하려던 아리시아는 말을 바꾸고 사과를 했습니다. 남주들을 욕하는 게 저를 달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욕해도 되는데! 저도 욕하고 싶은 기분인데!


그런 제 마음도 모르고 아리시아는 조용히 저를 달래주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쥴리아나.”


아리시아가 제 이름을 부르더니 기습적으로 제 얼굴을 들어 올립니다.


“다 우셨죠?”


아뇨, 더 울 거예요. 더 울 거라고요. 엉엉엉!


하지만 이미 눈물이 말라버린 제 눈에선 더는 눈물이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또 키스 당하나요? 아니면 오늘은 그것보다 심한 일을 당하나요?


제가 두려움에 떨 때 아리시아는 제 손을 붙잡았습니다. 도망도 못 치겠네요!


아리시아는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쥴리아나.”


“녜…….”


목소리가 살짝 샜습니다.


하지만 아리시아는 웃는 대신에 말했습니다.


“제가 당신을 좋아해서 오늘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아요. 아니, 같은 게 아니라 사실이겠죠. 제가 당신을 좋아해서 당신은 앞으로 겪을 필요가 없는 힘든 일을 겪겠죠.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니.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거예요.”


아리시아의 눈과 목소리에 결연함이 서립니다.


“쥴리아나. 저는 당신이 힘들어지는 것이 싫어요. 당신이 아픈 것도 싫어요. 당신이 나쁜 일을 겪는 것도 싫어요. 저는 당신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이심전심이네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힘들어지는 것이 싫고, 제가 아픈 것도 싫고, 제가 나쁜 일을 겪는 것도 싫어요. 저는 제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이야! 이렇게 마음이 맞다니.


……그러니 손 좀 놓아주실래요?


하지만 아리시아는 제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잡으며 말합니다.


“하지만 쥴리아나. 저는 당신을 좋아하는 것을 멈출 수 없어요. 네. 알아요. 이기적이라는 거. 하지만 알아도 저는 멈출 수 없어요. 죽는 한이 있어도. 미안해요. 당신을 사랑해서.”


무거워요! 너무 무거워요! 사랑이 너무 무거워요! 그래서 무서울 지경이네요!


“하지만 쥴리아나. 당신에게 힘든 일이 일어나면 제가 제일 먼저 당신에게 달려와 도와드릴게요. 당신을 아프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릴게요. 당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난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세상을 바꿀게요. 그리고…….”


아리시아는 웃었습니다. 세상에 그녀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밝은 웃음이었습니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당신의 존재가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당신을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아리시아는 제 손을 자신의 가슴 위로 옮겼습니다. 쿵쿵하고 격렬하게 뛰는 심장이 느껴집니다. 아리시아의 몸은 뜨거웠고, 그녀의 얼굴도 한껏 상기되어 있습니다.


키스 당할 거라 생각했는데, 키스보다 더 심한 짓을 당할 거라 생각했는데……제 생각이 반만 맞았습니다.


키스보다 더 강한, 결의에 찬 고백을 받았습니다.


저의 거절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고백입니다. 이는 고백이라기보다는 선언입니다.


‘너를 사랑할 테니 각오해라. 너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두. 나의 사랑을 가로막으면 그게 무엇이든 분쇄해버리겠다.’


그리고 그 사랑을 가로막는 것에는 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가 거절하면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제 마음을 돌려버리겠다는 결연함이 느껴집니다.


그녀의 결의는 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저는 멍청이입니다. 적당한 선이라는 것을 지켜서 이런저런 일을 해야 했는데, 무턱대고 아리시아의 일에 끼어들었다가 이런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쩌죠? 거절해도 거절해도 아리시아는 끝까지 들이댈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계속 거절하면 납치감금세뇌조교까지 당할지도 모른다는 확신까지 듭니다.


다 포기하고 아리시아의 마음을 받아줄까?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직 영 내키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아직 발버둥 칠 수 있을 때 최대한 노력해서 아리시아의 마음을 돌려야겠습니다.


물론 제 마음은 입 밖에 내지 않습니다. 긁어 부스럼일 테니까요.


“쥴리아나, 이제는 괜찮으시죠?”


고백을 마친 아리시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하고 제 손을 놓아줍니다.


다행스럽게 이 상황도 끝이 났나 봅니다.


“재차 오늘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서 사과드릴게요. 제가 그 사람들에게 단단히 말해둬서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아리시아는 꾸벅 고개를 숙여 사과했습니다. 저는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 나온 김에 지금 당장 처리할게요. 쥴리아나, 오늘 하루 행복하세요.”


그렇게 말을 하고 아리시아는 자리를 떠납니다.


아리시아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 하루 겪었던 일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망했어요.


이대로라면 여생을 아리시아에게 시달리면서 살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이 별로 없는 변경으로 야반도주해버릴까요?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으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구가할까요? 저의 능력, 그러니까 마법능력이라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각하입니다. 후작가 후계자의 생활을 버리기에는 제 몸은 너무 편리함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이 생활을 버리라니. 결코 못 합니다.


그리고 아리시아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저를 찾아낼 거라는 확신도 듭니다. 그러니 각하.


이를 어쩌나. 앞으로 어쩌나.


제가 이런저런 고민을 할 때 다급한 발소리가 들립니다.


제가 그 발소리에 긴장해서 주위를 둘러보자 사라졌던 아리시아가 종종걸음으로 다시 저에게 돌아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러고보니 깜빡했던 것이 있네요.”


“뭐……무엇을 깜빡했나요?”


아리시아는 저의 지척까지 다가오더니. 저의 허벅지 위에 올라탑니다.


‘이거 왠지 익숙한데?’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아리시아는 제 입술에 입을 맞췄습니다.


또 키스당했어요! 엉엉! 이 연쇄키스마!


아리시아는 자신의 입술을 핥으며 말했습니다.


“쥴리아나. 당신은 우는 모습도 아름다워요.”


그거 참 위로가 되네요! 참으로 큰 위로가 되어요!


자기 용건이 끝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자 아리시아는 다시 자리를 떴습니다.


그리고 아리시아가 떠나자 저도 즉시 이 자리를 떠났습니다.


또 다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으니까요.


앞으로 저에게 펼쳐질 미래는 지루할 일이 없겠네요. 네, 평온과는 서먹서먹해질 거라는 말입니다.


누가 좀 어떻게 해주세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