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 재단에서 작년 10월에 쓴 글인데 SCP 재단 및 아카 재단챈 홍보차 가져왔습니다

한 번에 업로드하기에는 용량이 커서 여러개로 나눠 순차적으로 올릴 생각입니다

읽고 질문, 감상, 비평 무엇이든 댓글로 남겨주시면 최대한 답변하겠습니다

SCP 재단 채널도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들리는 바로는 현재 챈에서 제8차 오컬트 대전 경연을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원본 링크: http://scpko.wikidot.com/on-the-border-of-the-purple-court

SCP 재단 한국어 위키: http://scpko.wikidot.com/

SCP 재단 채널: https://arca.live/b/scpfoundation


-------------------------------------------------------


여왕의 자줏빛 언어가 신부들을 매혹시켜
그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바치도록 만들었다.

여왕은 만인의 여주인이자 엄격한 판관이 되었으나
동시에 굳센 보호자이자 다정한 배우자가 되길 원했다.


마법사는 그런 그녀를 먼 곳에서 바라보며
그만이 감지한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여왕에게 내어준 지 오래였으나
그가 받아적은 여왕의 언어는 빼돌려 스스로 간직했다.

자줏빛 궁정의 여왕은 자신이 배신당한 것을 알지 못한 채
궁정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경계 너머를 바라보았다.


---------------------------------------------------


내가 여왕님의 신부로서 맞이한 첫날밤 이후로 침대에서 감히 여왕님께 반항하지 않았느냐 하면, 유감스럽게도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이건 어느 정도는 여왕님의 탓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 여왕님의 신부 자격으로 정당하게 그분의 궁전에서 거처하면서 여왕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황금빛 언어를 배우게 되었다. 자줏빛 궁정에서 사용되는 흰빛 언어가 우리의 본능을 밖으로 표출하는 역할을 한다면, 황금빛 언어는 그 자체로 정신을 고양하는 힘이 있었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언어는 세계에 대한 일종의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법이고, 황금빛 언어는 가장 세계의 근원에 근접한 언어 중 하나였기에 그 자체로 하나의 마법과도 같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황금빛 언어를 배우게 된 이후 말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취해버렸고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가 된 것 같다는 환상에 빠지고 말았다. 이 순수한 힘이 있으면 이번에야말로 여왕님을 내 앞에 무릎 꿇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다시 여왕님을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었고, 여왕님은 기꺼이 도전을 받아들이신 뒤 버릇없는 신부를 침대에서 반쯤 죽음의 경계로 몰아넣으시면서까지 혼을 내셨다.

하지만 나는 두 번 패배하는 것 정도로는 멈추지 않았다. 근위대원으로서 사는 동안 완벽히 봉인했다고 생각했던 반항아의 정신이 황금빛 언어의 후광과 함께 풀려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내 실력이 늘어나거나 이미 첫날밤에 여왕님께 빼앗겨버린 이런저런 것들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여왕님께 주제넘게 도전했다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당하고는, 몇 달이 지나서 또다시 그분께 반항할 정도의 자신감을 되찾는, 다른 신부들의 평가를 인용하자면 '자업자득이지만 불쌍하기 그지없는' 악순환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악순환을 몇 번이고 반복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내 도전이 실패로 끝난 뒤 이어진 무자비한 체벌로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채 침대에 누워, 나는 사실 여왕님께 벌을 받는 것을 내심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계신 여왕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아," 나는 말했다. "이번엔, 이번엔 진짜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 슬슬 너 상대해 주기 귀찮아." 여왕님은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그분의 어투에는 유쾌함과 승리감이 가득 묻어나왔다.

"왜 저는 이기지 못하는 거죠? 황금빛 언어로 구사할 수 있는 모든 권능을 배웠는데도 여왕님의 힘과는 조금도 차이를 좁힐 수가 없어요. 그건 왜 그런 거에요?"

"내가 그 이유를 알려주면, 너는 그걸 가지고 뭐 할건데?"

"당연히 여왕님께 다시 도전해야죠."

"쯧, 못된 아이 같으니."

"아, 아파요! 당기지 마세요."

"아무튼, 너 때문이 아니더라도 내 힘의 비밀은 이야기해 줄 수 없어." 여왕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갑자기 변한 공기에 이상함을 느끼고는 급히 몸을 일으켜 여왕님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등지고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그분의 모습에 나는 두려움, 아니면 위화감, 또는 그 두 가지 모두와 비슷한 어떤 감정을 느낀 것 같았다. 여왕님의 신부가 된 이후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어쩌면, 그래. 때가 되면 내 신부들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여왕님이 침묵을 깨자 갑자기 멈춰 있던 공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돼. 마법사의 배신이 자줏빛 궁정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혔어. 내게도 상처를 입혔고."

여왕님이 일어나 옷을 입으시는 모습을 뒤에서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이상하게도 그분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여왕님, 당신이 어째서? 당신을 사랑하는 신부가 당신 바로 옆에 있는데......?

"만약 내 상처가 치유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때는 네게 제일 먼저 내 비밀을 알려주마." 여왕님은 어깨너머로 말씀하시고는 문 바깥으로 사라지셨다.


-------------------------------------------


배반은 빠르게 들통났다.
마법사는 저항하지 않았다.


여왕의 신부들이 그를 사슬로 묶어
준엄한 여왕의 심판대에 세웠다.

"너는 나를 배신했다." 여왕이 말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지금까지 누려온 것을,
지금까지 지켜온 것을,
그 모든 것들을 네 손으로 무너뜨려 버렸다. 왜?"

마법사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여왕을 바라보았다.
자줏빛 궁정의 권능이 한 가운데 모인 그 자리에서
그는 분노한 여왕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 무너지면 네게 알려주지."


----------------------------------------------


여왕님께서 나를 그분의 왕좌 앞으로 호출하신 그 운명적인 날에, 나는 장난기 많은 어린 신부가 아니라 한 명의 신하로서 여왕님 앞에 섰다. 그 날 나와 여왕님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뀔 사건이 시작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고, 또 누구도 경고하지 않았지만, 떠오르는 아침 해와 함께 주변에 나타난 온갖 무거운 징조들이 그 모든 것을 알려 주었다.

"자줏빛 궁정은 내가 세운 나의 왕국이다." 여왕님은 그렇게 서두를 여셨다. "나는 영겁의 세월 이전에 비밀스러운 언어의 권능을 깨우쳤고, 그 정제되지 않은 권능을 세 가지 언어로 주조했다. 첫 번째 언어는 흰빛 언어로, 나는 이를 통해 땅을 다지고 구조물을 세웠다. 두 번째 언어는 황금빛 언어로, 나는 이를 통해 궁정의 경계를 선언하고 정원을 가꾸었다. 그리고......"

나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여왕님이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고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분의 무한한 인내심 속에 간직했던 비밀에 대해 들으며 숨을 죽였다.

"......그리고 세 번째 언어는 자줏빛 언어로, 나는 이를 통해 정원에서 고귀한 생명들을 만들어 냈다. 나의 가장 소중한 창조물들, 너희 자줏빛 궁정의 백성들이 그렇게 태어났고. 나의 왕국은 계속해서 그 영광과 힘이 더해져 갔다."

여왕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뒤에서 조용히 한 신부가 여왕의 보검을 들고 다가왔다.

"그 모든 것이 마법사의 배반으로 무로 돌아가 버렸다. 그는 내 권능의 정수가 담겨 있는 자줏빛 언어를 빼돌려 내 계획을 막는 데에 이용했지. 나와 내 가장 오래된 신부들은 그를 붙잡아 경계 너머로 추방했지만, 그는 그 어떤 속죄의 의사도 보이지 않은 채, 그대로 먼 세계로 사라져 버렸다."

여왕님은 검을 집어들고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어젯밤, 그가 내 경계 너머에서 자줏빛 궁정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파수병들이 발견했다."

여왕님이 그 팔로 검을 칼집에서 뽑아들자 날카로우면서도 맑은 소리와 함께 그 새하얀 검날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전사의 정신이 눈을 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로서 두 가지를 알게 됐지. 첫째로는 그 마법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둘째로는 그자가 나를, 자줏빛 궁정의 힘을 존중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그는 우리가 지금껏 맞이했던 적들 중 가장 위험한 자다. 이 자줏빛 궁정의 영화를 노리고 경계를 넘은 이들 중 황금빛 언어에 맞설 만한 힘을 지닌 존재는 없다. 하지만 그는 달라. 그는 내가 세 가지 언어를 깨우칠 때 바로 그 옆에 있었다. 그는 흰빛 언어에 통달했고, 황금빛 언어의 전문가이며...... 나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해야 할 자줏빛 언어를 이해하는 자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여왕님의 눈동자 속에서 이글거리는 증오와 분노가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내게 그분이 느끼는 똑같은 분노를 전달해 주었다.

"자줏빛 궁정은 감히 경계를 넘은 자 외에는 모두에게 자비를 베푼다. 하지만 그는 살려두기에는 너무 위험해. 그는 처단되어야 한다." 여왕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며 검을 다시 칼집에 꽂고 내게 내밀었다. "검을 잡아라."

나는 천천히 두 손을 뻗어 칼자루를 잡았다.

"나의 가장 어린 신부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신부여. 네게 이 일을 맡기겠다. 자줏빛 궁정을 배반한 마법사를 찾아 처단해라. 그가 더 이상 그의 지식이나 힘으로 자줏빛 궁정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라. 그의 위협이 사라진다면 내가 그에게 입은 상처는 마침내 치유되고, 자줏빛 궁정은 다시금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질문이 있습니다."

"말해라, 신부여."

"마법사를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습니까?"

"좋은 질문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며 그분의 왕좌로 돌아가 앉으신 여왕님은 팔걸이를 천천히 두들기며 잠깐 고민하시더니 입을 여셨다. "자줏빛 궁정의 경계는 왕국 전체를 둘러 보호하고 있지만, 그곳에 닿는 길은 많지 않다. 그리고 모든 길과 비밀 통로는 너를 포함해 내 신부들이 은폐하고 있지. 제아무리 자줏빛 궁정에 대해 잘 아는 마법사라도 내 권능으로 숨겨진 통로를 찾아낼 수는 없으니, 아마 공공연히 사용된 역사가 있는 길을 찾아내 그리로 들어왔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노출된 통로는 단 한 군데 뿐입니다...... 제가 잘 아는 길이죠." 나는 갑자기 기억 속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발소리와 채찍 소리에 몸을 떨었다. "도모코로."


-----------------------------------------------


언제 들어도 하등 유쾌할 것이 없는 비명과 광소가 들려오는 거대한 전함들 사이로, 내가 탄 흰 배는 도모코로의 해안을 유유히 항해하며 피냄새가 풍기는 해안에 닿았다.

내가 배에서 내려 도모코로의 관문을 향해 다가가는 동안, 주변을 무겁게 덮은 핏빛 안개들 속에서 도모코로의 가학에 취한 노예 상인들과 고문 기술자들이 내게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그 악귀들 중 하나가 내게 한 발 거리까지 다가오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내게 손을 대면 그 더러운 사지부터 영혼까지 모두 태워버리겠어." 나는 차갑게 말했다. "너희는 지금 황금빛 언어의 전달자, 위대한 여왕의 신부를 보고 있는 것이다. 당장 떠나 네놈들의 주인에게 내가 왔다고 알려라."

"그럴 필요 없어." 관문 앞에서 또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 어두운 힘이 담긴 목소리를 들은 도모코로의 백성들은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몸을 돌려 달아났다.

잠시 후, 내 앞에 검은 가죽 옷을 입은 흰 여성의 형체가 비슷한 옷차림을 한 수행원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녀는 아주 오랜 시간 전에 내가 전쟁터에서 보았던 도모코로의 전사들보다 가냘프고 여려 보였지만, 그녀 눈에 담겨 있는 적의와 분노는 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그녀는 왼손에는 커다란 두개골을 강철 막대에 꽂아 만든 홀을 들고 오른손에는 마치 사냥개처럼 딱딱거리고 으르렁거리는 채찍을 감아쥔 채 나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희고 아름다우면서도 당당한 자태로구나, 아주 마음에 들어, 흐으음. 하지만 노예나 포로 같아 보이지는 않는군...... 여기에 온 목적이 뭐냐?"

"도모코로의 노예와는 말을 섞을 생각 없어." 나는 차갑게 말했다. "네 주인을 만나러 왔다. 아우게워스는 어디 있지?"

여인은 잔혹하면서도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왼손에 힘을 줘 그녀의 홀을 흰 모래 위에 꽂았다. 그러고는 마치 자신의 걸작품을 촉감으로 음미하는 장인처럼 천천히, 그러나 탐욕스럽게 그 거대한 머리뼈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 해골의 주인이 누구인지,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제 이렇게 됐지?" 내가 물었다.

"그가 네 동족들에게 패배한 직후에." 여인이 대답했다. "아우게워스는 그 야만적인 힘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왕이었지. 하지만 그 힘이 네가 섬기는 그 여왕의 검에 꺾이고 말았어. 그는 패배자가 되어 돌아왔고, 도모코로는 패배자가 왕좌에 앉는 것을 용납하지 않지."

"그래서 네가 그를 죽였군. 네 왕을."

"왕? 헛소리." 여인이 대꾸했다. "남에 의해 몸에 상처가 난 자는 다른 이들의 위에 군림할 자격이 없어. 너도 잘 알지 않아? 우리가 네 몸에 상처를 냈고, 그리고 지금 너는 여왕의 노리개가 되어 있지."

"노리개가 아니야, 신부다."

"아아, 결국 다 같은 뜻이야, 미련한 년." 여인이 으르렁거렸다. "네 뒤에 있는 것이 그 저주받을 여왕만 아니었다면 내 가신들을 시켜 널 몇번이고 겁탈하라고 시켰을 거야.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널 채찍으로 후려쳐서, 우는 소리도 내지 못하게 만든 다음에는 야수들 틈에 던져 네가 자랑스러워 하는 그 아름다운 육체가 박살이 나도록 내버려 두었을 거다. 제 분수를 모르는 노예들은 여기서 그런 대접을 받지."

여인은 그렇게 말하며 왼손을 뻗어 내 목을 잡았다. 그녀가 천천히, 그러나 무자비하게 손에 힘을 주자 내 발이 땅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네가 이 땅에 서 있는 이상, 난 그 따위 무례를 용납할 생각이 없어. 나는 니카, 아우게워스의 살해자이며, 도모코로의 여주인이다! 내가 이 손을 놓았을 때는 둘 중 하나다. 네가 엎드려 내 발에 입을 맞추던지, 아니면 목이 부러진 네 몸이 이 모래 위에 널브러지던지. 네 운명을 선택해라."

"자줏빛 궁정의 신부는 그리 쉽게 굴복하지 않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황금빛 언어의 힘을 해방했다. 섬광과 함께 충격파가 터져나가 니카의 왼손을 불태우고 그녀의 수행원들을 넘어뜨렸다. 나는 다시 땅에 두 발을 디디고 섰다.

니카는 몇 걸음 물러나 순식간에 불타버린 왼손을 붙잡고 잠시 아픔과 분을 삭이려는 듯 얼굴을 찌푸리더니, 반쯤 재로 변해 떨어져 나가려는 왼손을 달랑거리게 내버려 두고 다시 내 앞으로 다가왔다.

"강력한 권능이군, 여왕의 노리개." 니카가 말했다. "그 힘을 함부로 과시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여기에 온 이유가 뭐냐?"

"얼마 전에 마법사 하나가 우리 경계에 닿았다. 이 저주받은 땅을 거쳐간 게 분명해." 내가 대답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말해."

"아, 그 마법사!" 니카는 그렇게 말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오, 물론 그를 찾으러 나온 것일 테지! 그는 여왕의 유일한 약점이니까...... 그리고 여왕의 유일한 오점이기도 하지. 그런데 그 여자가 네게 왜 그를 찾아야 하는지는 얘기를 안 하든?"

"네가 관여할 바가 아니야." 나는 불쾌감을 느끼며 말했다. "묻는 말에 대답해. 방금은 네 왼손으로 끝났지만 더 많은 것이 불타게 될 수도 있으니까."

"하하하! 내가 아까 힘을 함부로 과시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향기를 여기저기로 풍기는 과일에는 벌레들이 꼬이는 법이야. 네 주인도 자기 힘을 여기저기에 자랑하는 대신에 골방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어. 그랬다면 그녀는 이렇게 제 하인을 사지로 보내어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지."

"허황된 소리는 집어치워. 여왕께서는 모든 것을 계획하고 나를 보내신 거야. 그분은 총애하는 신부를 사지로 보내지 않으신다."

"오, 물론, 물론 그렇겠지. 누가 자신이 총애하는 노예를 쓸데없이 죽이고 싶어 하겠어? 그런데 말이야......" 니카가 자신의 왼손을 입으로 가져가 힘껏 물어 뜯었다. "만약에 자기 손이 불타 버려서 그 재가 혈관을 타고 심장에 들러붙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뜯어내야 하지 않겠어? 이렇게 말이야."

니카는 그녀가 물고 있는 손을 힘껏 잡아당겼다. 마침내 혈관과 신경이 뜯겨나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불탄 왼손이 바닥에 떨어졌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입에 고인 피와 검댕을 뱉어낸 니카는 입에서 진한 피 냄새를 풍기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걸어다니는 불덩이란다, 꼬마 신부. 네가 그를 쫓아서 마침내 따라잡은 순간, 그 마법사는 너를 불태워 여왕의 아픈 손이 되게 만들 거야. 그 순간이 오면 네가 사랑하는 여왕님께서는 울면서 네 목을 베어야 하겠지. 자기를 지키려고. 자기 왕국을 지키려고."

"지금 네가 하는 말은 전부 다 공허한 수사에 지나지 않아. 내가 어떻게 아픈 손이 된다는 거지? 그 마법사가 내게 저주라도 심을 거라는 말인가?"

"맞아, 네가 생각하는 방식은 아닐 테지만." 니카는 즐겁다는 듯 말하며 내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마법사는 자줏빛 궁정의 비밀을 알고 있어. 원래대로라면 여왕 자신 말고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해야 할 그 비밀을 말이야! 여왕은 지금까지 잘 숨겨오고 있었지만, 너무 오래 그 마법사를 내버려 두고 있었어. 그래서 이야기가 새어나가기 시작했지. 심지어 나조차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안 그래? 응?"

"나한테서 떨어져."

"그런데 그런 마법사를 처단하러 여왕이 자신의 심복을 보낸다? 그러면 마법사는 제일 먼저 뭘 하려고 들 것 같아? 공범을 늘리려 하지 않겠어? 같은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 그와 똑같은 배반을 저지른 사람 말이야? 그리고 그 비밀이 내가 예상하는 대로 하나의 '지식'의 형태를 한다면, 그렇다면 네 의지를 꺾어 여왕에게 칼을 돌리도록 조종할 필요도 없어. 그냥 네 귀에 대고 말하면 끝이야! 워!"

그녀는 갑자기 내 옆에서 큰 소리를 내고 즐거워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종종걸음으로 물러났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로 인해 칼자루에 손을 대었지만, 여왕이 주신 검을 이런 하찮은 존재를 베는 데 사용할 수는 없었다.

"너는 아직도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 나는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말을 이었다. "설령 네가 말한 그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여왕께서 내게 내린 명령을 왜곡하거나 거부하지 않겠다. 나는 그분에게 모든 것을 바치기로 맹세했으니, 그 맹세를 지키겠어."

"마음대로 하셔. 어느 쪽이든 내게는 이득이거든." 니카는 키득거렸다. "그 마법사? 그자는 며칠 전에 동쪽 바다 위를 날아서 도모코로의 경계를 벗어났어. 지금쯤 세계의 중심에서 상처입은 자기 몸을 돌보고 있을 거야. 거기가 어딘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마법사가 상처를 입어? 너희들과 전투라도 벌였나?"

"오, 그럴리가. 우리 말고 훨씬 무시무시한 놈들이랑 싸우는 중이지. 그 마법사는 너나 우리와 다르게 죽음의 운명을 지닌 필멸자야. 그 놈들을 아나? 하찮은 것들이지!" 니카는 그 '필멸자'라는 단어의 음절 하나하나를 경멸을 담아 발음했다. "놈들은 늙어, 놈들은 약해져, 놈들은 죽어. 그런데 수만 많아. 그런 주제에 계속 늘어나고. 죽음 녀석들은 그 망할 것들을 한 번에 십만 명씩 추수하진 못할 망정 그 하찮은 놈들이랑 카드 게임이나 하고 있으니."

니카는 필멸자에 대한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려는 듯, 손이 잘려나간 왼팔을 들어올려 휘적거렸다. 잠시 후 그녀의 잘린 팔에서 살과 골편이 점점 자라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멀쩡한 손이 재생되어 있었다.

"마법사가 싸우는 것이 죽음인가?"

"그 중에서도 제일 악질인 막내와 싸우는 중이지. 지금까지는 모든 경우가 마법사가 막내를 두들겨 쫓아내는 결말로 끝났지만, 그렇다고 필멸의 운명을 벗어날 수야 없지 않겠어. 그는 늙어가고 있는데, 죽음은 약이 올라서 더더욱 강해지고 있지. 결과는 분명해. 어쩌면 네가 그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지도 모르겠네."

니카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닐 테지. 네가 마법사를 죽인다면, 네 여왕은 마법사가 죽기 전에 네게 무언가를 말하지는 않았을런지 궁금해 할테고, 원래 이런 종류의 의심이 늘 그렇듯이 가장 절망적인 방식으로 흘러가겠지. 그렇다면 결론은 뭘까? 자줏빛 궁정에서 또다른 암살자들을 보내게 되지 않겠어?"

나는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어 그녀 앞에서 몸을 돌려 내가 타고 온 흰 배를 향해 걸어갔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그리고 어떤 뒤틀린 운명 덕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살아남게 된다면, 나를 찾아와라!" 니카가 내 등뒤에서 소리쳤다.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채찍과 이빨에 너를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