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어도, 여름이 되어도, 가을이 되어도, 겨울이 되어도, 도시는 언제나 같은 모습이다. 이제는 겨울이 되어도 눈이 제대로 내리지 않는다. 가을 때마다 거리 위에 떨어졌던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 낙엽도 보이지 않는다. 여름이 될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저벅저벅 놀이터를 지나던 반팔 입은 초등학생들도 없다. 첫사랑의 입술 같았던 벗꽃도 첫사랑은 이별로 끝을 맺기 마련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세상의 곁에서 떠났다.


그 자리를 대체한 건 지극히 인간 친화적인 물건들이다. 미풍양속을 위해 설치한 반들반들한 플라스틱 나뭇잎.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잘라내어 다시 심은 소나무. 별다른 이유없이 설치한 구식 녹색 울타리. 어린 아이가 장난감 블록을 누가 더 높이 쌓나 경쟁하듯 층수를 바보같이 올린 결과 아무도 살지 않게 된 회색 빌라와 아파트 건물들. 인도와 차도를 겸하는 아스팔트 길. 그 위를 가득 채운 쥐 떼 같은 자동차들.


그리고 땅에 널브러진 거대한 불가사리처럼 생긴, 황금 모양 건축물. 그 앞에서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바꾸자고 하는 돼지들과 세상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이를 악무는 거북이들이 서로를 물어 뜯으며 다퉜다.


그 건축물은 6년 전 등장하여 지구 온난화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버린 수수께끼의 기업, 미시픽시아가 들어선 곳이다.
아무도 미시픽시아가 어떤 뜻인지 모른다. 어른들은 미시픽시아가 가지고 있는 가공한 기술력에도 적잖이 놀랐지만, 그것보다도 이름이 어떤 뜻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더 놀란 것 같았다. 뜻을 알 수 없는 단어이기에 잣대와 법칙으로서 규정할 수도 없다. 그러기에 두렵다. 어른들은 미시픽사아를 규정하고 규제하고 단속하기 위해 미시픽시아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뜻을 결정해야 했다.
그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거북이들은 물 속에서 불어난 손가락 지문 같은 쭈글한 주름을 벌름거리며 돼지에게 달려들었다. 거북이의 이빨이 뱃살에 쳐박히자 돼지는 몸을 비척이며 찢어질듯한 고성을 냈다. 살점이 뜯겨나가자 거무죽죽한 피가 용솟음쳤다. 동료가 당한 돼지 떼는 분노했다. 그들은 거북이들의 갑주를 입으로 물어 자동차가 달리는 곳을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자동차가 거북이들을 칠 때마다 그들의 다리에서 뼈가 툭 튀어나왔고 살점이 사방으로 튀겼다.


이제는 이런 광경에도 익숙해졌다. 학교를 갈 때마다 이런 모습을 본다면 싫어도 익숙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런 노동자의 공장일처럼 익숙해지고 지루해진 길을 걷고 걷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하루쯤은 이제는 금지된 옛날 영화들처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



그런 바램은 미시픽시아의 사옥 주변 쓰레기 매립지 앞에서- 정말 지극히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형태로 이루어졌다. 마치 처음부터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이었다는 것처럼.



산더미처럼 쌓인 생활 쓰레기들, 고철 더미들, 켜지지 않는 텔레비전과 퀴퀴한 냄새가 나는 양말이나 헤진 옷이나 돼지 시체나 거북이 시체들- 그런 더러움으로 이루어진 산맥 위에 유일하게 새하얗고 신성한 광채를 뿜어내는 소녀가 한 명 서있었다. 그녀는 표백제를 뒤집어 쓴 것처럼 온 몸이 새하얳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흰색' 이라는 개념을 몽땅 흡수해버린 것처럼. 오직 색이 다른 건 금색 눈동자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등 뒤에는 태엽과 수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계 날개가 한 쌍 나풀거리며 - 그 육중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나풀거린다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렸다 - 뜨거운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가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하늘 위로 떠오르자, 매립지에 파묻혀 있던 모든 전자기기가 치지직 소리를 내며 무지개 색 수식을 화면에 띄웠다. 나로서는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는, 어쩌면 정말로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는 수식의 나열에 정신이 아득해져 무심코 작은 비명을 내자, 천사는 당황해한듯 몸을 끼기긱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천사는 몸을 움직였다. 그녀가 땅에 내려와 내 앞에 서자 전자 기기들은 거짓말처럼 일제히 발광을 멈췄다. 천사는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아름다운 얼굴에 같은 여자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시대에 존재하는,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수도 있는 무수히 많은 미래 속에서, 단 하나의 불씨를 지피거나 모든 가능성이 배제되어 영원히 고통받게 될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저를 만나기 위하여 이곳까지 찾아온 건가요?"



나는 당황했다. 무슨 말이지? 천사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인걸까.



"저기- 그러니까. 나는 텐도 소라. 여중생. 너는? 혹시 미래인이라거나, 천사라거나 해?"



"전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네요. 저는 미래에서 왔지만 인간은 아니고, 천사의 형상을 띄고 있지만 천사는 아니랍니다."


그녀는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정중하게 웃었다.



"저는 미래의 당신들이 현재의 당신들을 멸족시켜 인류가 가지고 있는 미래의 가능성을 절멸하기 위하여 만든 존재- 더 간단히 말하자면 가이노이드형 대 인류 병기입니다. 이름은 없지만, 인류를 멸족시키기 위한 키워드들 - 그러니까, 미래, 시간, 픽시즈의 노래, 시한폭탄, 아리아. 이 모든것을 따 미시픽시아 아리아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선언에 나는 오히려 냉정해졌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녀의 옆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리고 물었다. "그럼 방금 했던 건….."




"네. 이 건축물과 쓰레기들의 힘을 이용하여 전 지구 상에 대대적으로 거대한 EMP 공격을 실시할 계획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전력이 복구된 순간, 전국에 존재하는 핵 미사일을 발사하여 남은 인류를 절멸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구나. 음." 나는 물었다. "대체 미래 사람들은 왜 그런 계획을 세운거니? 동족을 멸망시키는 행위잖아. 더 나아가서 자살행위고."



"아주 간단한 이유입니다."



아리아는 천진난만하게 답했다.




"육신적 죽음이 일어난 이후 인간의 영혼에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냈기 때문에, 그리고 그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말을 이었다.



"과학자들은 이 사실을 976세기 후, 그러니까 모종의 사고로 인류가 두어 번 정도 멸망한 시기에 알아냈답니다. 육신적으로 죽어 부활해 세상에서 떠난 인간의 영혼은, 끝이 없는 어둠으로 가득찬 낭떠러지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 과정은 현실에서는 찰나에 불과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영원하게 느껴지죠. 그 체감 시기는 약 1세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과정이 끝난 다음에는 시체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것을 본인이 경험하게 됩니다. 예컨대 화장이라면 몸이 끝없이 불타 잿더미가 되어가는 느낌을, 수장이라면 서서히 안구에 물이 들어차고 호흡이 틀어막히는 느낌을, 전부 받는거죠. 그 사실을 알게 된 과학자들은 죽음을 회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쳤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그 방법만큼은 찾을 수 없었어요. 완벽하게 죽음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죠.


과학자들은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인간이 행하왔던 출산, 사랑, 그것을 비롯한 미래의 가능성을 밝혀나갔던 인간성 모든 것이 끔찍한 범죄 행위는 아닐까. 이런 끔찍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간이라는 생명 자체가 존재하지 말았어야 하는게 아닐까.


그래서 그들은 저를 파견했습니다. 앞으로 존재할 모든 인류의 씨앗과 가능성을 근절할 수 있는 계획을 완벽하게 실현할 수 있는 단 하루에. 오늘 계획을 실행한다면, 이 시기로부터 먼 미래에 존재할 수많은 고통을 지울 수 있죠."


"음. 그렇구나."


나는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곧 죽는건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안심해주세요. 세상이 완벽하기 멸망하기까지 걸리는 6일 동안에는 미래의 과학자들이 엄선한 인류의 명곡집이 재생된답니다."


"난감하네."


"난감하죠. 저는 이 계획이 꽤나 비효율적인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같은 인간형 가이노이드가 필요할 당위성이 없어요. 쓸데없이 시간을 끌 이유도 없고요. 이런 고등한 AI가 필요한 작전도 아니었고요. 애시당초 이곳은 제가 만들어진 세상과 같은 곳도 아니죠. 제가 이곳에 온 시점에서 이곳은 그곳과 완전히 다른 평행세계가 된 겁니다... 무의미한 계획이에요, 정말로. 오로지 인류를 절멸시키기 위해서 태어난 병기치고는, 사족이 너무나도 많죠."



나는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 고민했다. 죽음이니 세상의 멸망이니, 영원한 고통이니 뭐니해도 솔직히 체감이 잘 되지 않았다. 묵시록적이고 거룩한 소녀의 외형 덕에 기묘한 설득력은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그거, 오늘 안에만 하면 되는거니?"


"네!"


"그렇구나."


나는 굳건한 날개를 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뭐, 깊은 고민을 해봐야 별 나아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솔직히 세상이 멸망한다고 들어봐야 '뭐, 그런거지' 같은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하고. 이해할 수도 없고.


그래서 나는 이왕 죽는다는 소리를 들은 김에, 눈 앞에 찾아온 비일상을 붙잡기로 결심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 말이 있는데, 같은 이치라면 후회없이 즐겁게 살다가 죽음을 경험하는 편이 더 좋지 않겠는가!


"그럼 말이야, 조금만 탈선해서, 같이 놀지 않을래?"


"네?"


"좋잖아, 어차피 오늘까지만 하면 되는거고."


아리아는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장소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사람의 말을 거절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이행할 수 밖에 없죠. 그렇기에 묻습니다만, 지금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무슨 명령?"


"…아닙니다."


나는 아리아의 손을 붙잡았다.


"명령이라."


그리고 말했다.


"그럼, 호주의 대보초를 향해 날아가 줄 수 있어? 나는 아직 못 봤단 말이지."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알겠습니다. 명하는 대로."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미래 기술이라고 칭한 건 헛말이 아닌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나는 다른 국가에 있었다. 치마를 펄럭이며 대보초 위의 하늘을 자유롭게 누비기도 했고, 나이아가라 폭포의 우렁찬 물줄기를 두 눈에 톡톡히 새기다가 물에 흠뻑 젖기도 했고, 킬리만자로 산의 만년설을 한손에 모아 아리아를 향해 던지기도 했다.

아리아는 그 눈을 가볍게 쳐내며 이렇게 말했다.




"즐거우십니까?"


"즐거워, 아리아는 대단하네!"


"그렇습니까."


"아리아도 만져보면 어때?"


"아니요, 저는....."


나는 사양하는 아리아의 손을 양손으로 꼬옥 잡았다. 아리아는 비록 기계였지만 굉장히 따뜻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웃었다.


"따뜻해-"


그 후로도 우리는 계속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떠돌아다니다가, 다시 내가 살던 동네로 돌아왔다. 플라스틱 나무가 나란히 선 길가를 멍하니 걷고 있으려니, 아리아가 내 옷 소매를 슬며시 잡았다.


"저기."


"응?"


"저 사람들은 뭘 하고 있는 건가요?"


아리아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자, 서로를 물어뜯는 돼지와 거북이가 있었다.


"저거? 모르겠어."


나는 대답했다.


"그냥 싸우고 있을 뿐이야. 서로의 사소한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필요 이상으로 말이야."


"그런가요."


"우리 아빠하고 엄마도 그래서 이혼했어.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면서."


아리아가 말했다.


"답답하진 않은가요? 이런 세상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게."


"답답하기는 해."


"그렇다면 싸움으로 가득찬 이 세상은 역시, 멸망하는 게 좋은 걸까요."


"글쎄."


나는 계속 걸었다.


"솔직히 네가 보기에는 저런 싸움이 충격적이라고 느껴질 지 모르겠지만, 수없이 바라본 나에게는 익숙할 뿐이야. 익숙하다 못해 지루해졌지. 어쩌면 사람한테는 그다지 공감능력이 없는 걸지도 몰라. 가지고 있던 공감능력이 마모된 걸지도."


"그렇다면, 그런 인류는 멸망하는 게 낫겠죠."


"그래도 말이지."


계속 말했다.


"그래도 그렇게 마모되고 마모된 상태에서 익숙해진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니까. 나는 바보라 잘 표현은 모르겠지만, 그런 순간에는 정말 행복해. 그냥 길에서 맛있는 빵을 굽는 빵집을 발견했다거나, 그럴 때 있잖아."


"단지 언제 있을 지 모를 그 사소함을 위해, 살아갈 가치가 있는 걸까요."


아리아가 물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나아지겠지 생각하는 것 뿐이야."


내가 답했다.


"기약없는 공상이군요."


아리아가 말했다.


"실제로 나아졌어."


내가 말했다.


"그 근거는?"


아리아가 물었고, 나는 홱 뒤를 돌아보았다.


"너를 만났지."


그리고 말했다.


"나는 오늘 너와 만나서 행복했어. 그러니까...오로지 인류를 절멸시키기 위해 태어났다니, 그런 슬픈 말은 하지 말아줘."


한동안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한 사람."


그녀가 중얼거렸다.


우리는 끝이 없어보이는 플라스틱 길을 계속 걸었다.


쓰레기 매립지로 돌아가자 밤이었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이제는 이별이네."


하고 말했다.



아리아는 머뭇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이대로 가도 되냐고 나에게 묻듯, 그녀는 눈을 내리뜨고 내 눈치를 살피다가, 몸을 돌려 터벅터벅 쓰레기의 산 위로 걸어 올라갔다. 보름달이 매립지에 가득 찼다.


영롱한 달빛 밑에서, 그녀는 기도하듯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눈을 감았다. 저 멀리서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 때까지도 나는 죽음이니 뭐니하는 공포보다도, 그 소녀가 뿜어내는 가련하고도 갸날픈 압도적 폭력에, 그 아름다움에 사실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망가진 TV들에 무지개 빛 수식들이 떠올랐고, 기계 날개의 태엽이 윙윙거리며 귀를 찢는 소음을 뿜어냈다. 망가진 라디오에서 고음의 아리아와 디스토션 기타 소리가 마구잡이로 섞여 하늘 위를 가득 채웠다. 이윽고 세상을 가득 채울 것 같은 섬광이 매립지 내부를 가득 채웠다.



아리아는 눈을 떴다. 그녀는 비련에 떨리는 금색 눈동자를 나에게 향했다.



내가 쓰레기 매립지를 가득 채운 광채에 무심코 눈을 찌뿌리고, 눈물을 흘린 순간-



빛이 단숨에 사그라들었다.


"-아리아?"


눈치채지도 못한 순간,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단 한 순간.


그 사이에 아리아는 나를 향해 다가와, 내 몸을 꽉 껴안았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기계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따뜻했다.



"죽일 수... 없습니다. 이제야,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쏜살같이 입을 움직였다.



"저는 어째서 이 세상에 보내진 걸까. 어째서 인간의 형상을 본뜬 가이노이드여야 했던 걸까. 어째서 발전 가능한 AI가 존재해야 했던 걸까. 어째서 평행세계임을 알면서도 이 과거에 인류 과학 기술의 정수인 저를 보낸 것인가.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당신과 사랑에 빠지기 위해 존재했던 겁니다. 죽음을 겪지 않는 제가 한없이 인류에 가깝지만 그보다 나은 존재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인 당신을 만나, 인류를 구원하는 존재가 되기 위하여. 설령 그렇지 않았더라면, 당신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이 세상은 멸망했겠죠.

저는 또 다른 미래에서 또 다른 과거를 향해 보내는 마지막 구조 신호였던 겁니다. 인간은 아니지만 한없이 인간적인, 인간조차 구별할 수 없는 또 다른 존재를 만들기 위한 실험. 그 존재가 자의로 인간의 죽음조차 초월하도록 자신의 일생을 바치게 만들 실험....."



아리아는 나를 또렷이, 결의가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것이 억측이라고 해도, 저는 같은 선택을 하겠습니다."



거대한 기계 날개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푸드덕거렸다. 우리는 서서히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달빛이 우리를 집어 삼켰고, 지상에 존재하는 건물들이 하나 둘 점등하여 우리의 발 밑을 비쳤다.




"이 시대에 존재하는,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수도 있는 무수히 많은 미래 속에서, 단 하나의 불씨를 지피거나 모든 가능성이 배제되어 영원히 고통받게 될 당신에게 묻는다."


아리아는 기계로 만든 날개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저는......믹시픽시아...아리아는, 당신을, 텐도 소라를, 사랑합니다. 사모합니다. 그러니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저를 사랑해주세요......."


쓰레기 더미 위에 꽃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꽃이 필 수 없는 기계장치들 위 조차도. 망가진 라디오가 치지직, 소리를 내더니 이윽고 픽시즈의 노래를 재생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믹시픽시아의 건물이 붉게 빛나 밤하늘을 가득 채웠다. 나는 두 발을 띄우고, 머리를 땅에 향한채 아리아와 함께 춤췄다.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 나온다.





deb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