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돌려 다시 열린 문 쪽을 바라보니, 아직은 혼자서 이런 거리를 돌아다니기에는 많이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환하게 웃으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황금처럼 반짝거리는 머리카락이 눈에 띄는 아이인데, 제가 보기에도 군침이 살짝 돌 만큼 예쁘다는 느낌이 들었죠. 이올레와 라네비아도 그쪽을 돌아보았는데, 왠지 라네비아는 저보다도 더 그 아이에게 홀린 듯한 눈빛을 띠고 말았죠.

혹시 마음에 든 걸까 생각하며 다시 라네비아를 돌아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라네비아가 먼저 입을 열었어요. 저 아이와 맞먹을 정도로 환하게 웃으면서, 마치 첫사랑이라도 만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청량한 목소리로요.


"그럴까? 그 전에, 누군지 들려줄 수 있어?"


라네비아의 대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이도 더 맑게 웃으며 답해주었죠.


"아, 전 영원교단의 아시카라고 해요. 저, 실례지만... 혹시 이곳은 처음이신가요?"

"아, 응. 우리 셋 다. 그래서 슬슬 친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지. 그렇지?"


그러면서 라네비아가 저를 돌아보는데, 잠깐 등 뒤가 서늘해지더군요. 대장인 자기를 놔두고 비서에 불과한 저에게 시선을 돌린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이올레가 손가락 끝으로 등을 쿡 찌르는 거 있죠. 라네비아도 그걸 알아챘는지, 고개를 살짝 돌려 이올레 쪽을 지그시 바라보았고요. 아시카도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조금 더 밝은 웃음꽃을 피우며 한 마디 더 건넸답니다.


"마음을 나눌 정도로 친해지시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네요."

"뭐, 그렇지."


이올레도 아시카의 말로 기분을 풀었는지, 그쪽을 돌아보면서 싱긋 웃어주네요. 마침 제가 둘 사이에 끼어 있어서 이올레 옆 자리가 비어 있기도 했고요.


"좋아. 내 옆으로 와."

"네!"


그렇게 해서 저희 일행이 넷이 되자, 여관주인의 얼굴도 방긋 피었어요. 손님이 늘었다면 역시 받을 돈도 늘었다고 생각한 거겠죠. 마침 우리도 방금 의뢰 하나를 끝낸 덕분에 여윳돈이 좀 있어서, 한 명 정도는 합석해도 별 탈 없었고요. 그래서 이올레가 은 한 조각을 내미니, 이번에는 다섯 명이 환하게 웃게 됐답니다.

넷이서 나란히 앉아 여관주인에게 주문한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다시 한 번 자기소개를 나눴어요. 그 다음에는 아시카한테서 영원교단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까 했는데, 라네비아가 먼저 입을 열더라고요.


"저,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이야기인데요?"

"좀 안 좋은 꿈 이야기야."


라네비아가 말하길, 이곳으로 떠나기 며칠 전부터 파랗게 불타는 왼손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꿈을 꾸었다고 해요. 그래서 아는 점쟁이에게 그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동쪽으로 가서 그 손을 붙잡으라'는 예언을 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손의 주인에 대한 단서를 찾으러 여기까지 온 거고?"

"맞아. 대화는 잘 통해서 언젠가는 알아낼 수 있겠지만, 당장은 이 꿈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는 사람을 못 찾고 있어."

"그럴 거예요. 누군가의 꿈을 다른 사람이 온전히 이해하는 건 이래저래 힘들지 않겠어요?"


아시카도 의외로 라네비아의 말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조금 놀랐어요. 겉보기에는 아직 어린아이처럼 보이는데도 저렇게 어려운 대화를 잘 따라갈 정도의 지혜를 안겨주는 걸 보면, 영원교단이 그만큼 대단한 곳인 걸까요? 어쩌면 이 영원교단을 통해서 우리가 다음에 받을 의뢰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라네비아의 이야기가 끝나면 제가 다음에 입을 열기로 마음먹었는데, 그 기회는 점점 멀어져 가기만 했어요. 사실 제가 생각하기에도 라네비아가 꽤 좋은 이야깃거리를 잘 풀어내긴 했거든요.


"어쩌면 오래지 않아 그 인연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일단 예언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했다면, 언젠가 이뤄지지 않겠어요?"

"뭐, 그렇지. 꺼림칙한 일일수록 잘 이뤄진다는 게 그 예언이라는 거잖아."

"맞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여차하면 우리가 도와줄 수도 있고."

"그래요. 같이 힘낼까요?"

"도와준다면야 나도 좋지."


그렇게 넷이서 의기투합한 채 재잘거리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더라고요. 식사와 이야기를 더 나누고 밖으로 나오니, 벌써 그림자가 눈에 띄게 길어져 있었죠. 항구에 드나드는 배들도 몇 척이 바뀌어 있었는데, 저희가 여기까지 호위해준 상인들은 그 앞에 그대로 서 있네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여기서 만나기로 했던 '크셰아'라는 상단인 모양이에요. 이올레도 그걸 알고, 저쪽의 대화가 잠시 멈춘 틈을 타 살며시 앞으로 나섰어요. 괜찮아야 할 텐데...


"이야기는 잘 되어 가나 보지?"

"아, 자네인가?"


이올레는 상인들과 다시 짧은 악수를 주고받은 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젊은이에게 고개를 돌렸어요. 여러 지방의 혈통이 섞였는지 제법 이국적인 인상의 사내였는데, 조금 전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던 모습을 되새겨보니 그렇게 높은 지위는 아닌 것 같았어요. 붙임성은 좋은 것 같은데, 오히려 그게 이올레의 마음을 조금 언짢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고요.


"이사크, 그쪽이 이번에 거래하겠다고 한 상인들이지?"


그래서 별로 중요한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던 차에, 그 젊은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저와 라네비아의 귀를 간지럽혔어요. 아시카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사크에게 반말을 던지는 것도 놀라운데, 아시크 쪽에 서 있던 이들 중 절반 정도 되는 이들은 그 모습이 익숙한 듯 한숨이나 쉬고 있는 거 있죠?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셋이서 그쪽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라네비아의 눈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금세 더 놀라운 말이 이사크의 입에서 들려와, 우리 넷은 물론 우리가 모셔온 상인들의 정신을 단번에 날려버렸답니다.


"네, 할머니."


저렇게 어린 소녀를 보고 할머니라고요?


드디어 주인공 4인방 전부 등장!


댓글도 너른 마음으로 받고 있으니까 편하게 이야기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