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자중하라는 거죠?"


차갑게 식은 목소리를 내뱉으면서 등 뒤를 돌아보니,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는 갑옷을 입은 기사 한 명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어요. 손에 걸친 갑옷과 다른 색으로 반짝거리는 걸 보면 어떤 장신구인 것 같았죠.


"뭐겠어?"


그 기사는 마치 저를 조금은 아는 것처럼 부드럽게 말하고는 그대로 제 옆을 지나쳐갔어요. 붉으락푸르락해진 제 얼굴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 그 무정한 태도 때문에, 조금 전만 해도 그 사람에게 불만을 한가득 쏟아내려 했던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버렸죠. 그리고 금속 조각이 몇 번 부딪히는 소리가 난 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있던 열기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사라져 갔어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하고 다시 등 뒤, 그러니까 아까 그 기사가 저를 지나쳐 간 방향을 돌아보니, 라네비아가 긴 숨을 내쉬면서 일어나 저를 돌아보더라고요.


"후, 이제 좀 정신을 차릴 것 같아?"

"에?"

"뭐야, 설마 우리를 몰라보는 건가?"

"아, 아뇨!"


정확히는 '조금 전 저를 제지했던 그 기사가 라네비아라는 것' 하나만 잊어버렸을 뿐이었어요. 그렇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다 보니, 겨우 되찾은 목걸이를 손에 꼭 쥔 크시아의 얼굴이 다시 새파래졌죠. 그 눈빛이 저에게 고정되어 있기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가 저지른 일을 두고 설마 잊은 거냐며 따지는 것도 각오했고, 그 뒤에 라네비아나 크시아 쪽에서 어떤 행동을 보이더라도 결국 제 잘못 때문이라고 마음을 굳히기까지 했죠.

하지만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크시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제 예상을 조금 벗어나 있었어요. 저를 향해 한 발짝 나서던 라네비아를 팔꿈치로 제지하면서 꺼낸 말이라, 행동과도 어긋나 있는 그 말이 조금 더 따갑게 들렸죠.


"저, 너무 자책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제 힘으로는 손을 쓰기 힘들어서..."

"응?"


라네비아도 그 말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그러고 보니 오늘이 라네비아랑 크시아와 함께 다니게 된 지 겨우 이틀째밖에 안 되었던가요? 그렇다면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잘 이해가 안 가는 것도 당연하긴 하겠죠. 그래서 저는 라네비아의 오해가 더 깊어지기 전에 이쪽에서 그걸 풀기로 마음먹었어요.


"너무 몰아붙이지 말아요. 저도 영문을 모르겠거든요."

"아, 나도 마찬가지야. 지금도 케스티 당신이 대체 무엇에 홀렸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라네비아가 말하길, 자기는 그저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말을 듣고 소매치기 한 명을 붙잡았을 뿐이래요. 그런데 그 때 붙잡은 소매치기가 훔쳤던 물건이 하필이면 크시아가 애지중지하는 그 수정 목걸이였더란 말이죠. 그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고 난 뒤, 라네비아의 시선이 이번에는 크시아 쪽으로 돌아갔어요. 눈썹이 움직이는 걸 보면, 아까 자신을 막아 세운 것을 가지고 한 소리 하려는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거기서 굳이 말리지 않아도 됐을 거라고 생각해. 나도 생각을 정리하느라 머리가 복잡했을 뿐이지, 화가 난 건 아니었어."

"그런가요?"

"응. 아무튼, 이올레한테는 뭐라고 한다..."


라네비아의 입에서 나온 이올레의 이름이 제 뒷머리를 다시 한 번 후려쳤어요.


-


천만다행으로, 라네비아에게서 조금 전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도 이올레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어요. 마치 예전에 비슷한 것을 들었던 적이 있었던 듯한 표정이었는데, 실제로 알키데스를 탐사하기 전 학생 시절에 한 번 지나가듯 배웠다고 했어요.


"그래도 그 실례가 하필 우리 눈앞에 있었다니, 좀 놀라운데."

"그런가... 케스티는 처음 들어본 것 같은데?"

"그럴 수밖에. 내가 기억하기로는 꽤 최근에야 이쪽에 흘러 들어온 소문이었다고 했거든."

"그렇군요."


사실, 저와 라네비아, 이올레 셋이서 응접실에 모여 나눈 그 이야기는 그렇게 놀랍지 않았어요. 알키데스로 돌아오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니 어느 정도는 '있을 법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으니까요.


"그래도 그렇게까지 극단적일 줄이야......"


저도 제가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어서, 절로 고개가 이리저리 흔들렸어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이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겠는데,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에 생각이 미치면 거기서 의식의 흐름이 그대로 멈춰버리는 기분이에요.

이럴 때 '생각하지 말고 느껴라'는 말을 떠올리면 되는 건지 잠시 고민하고 있던 중 라네비아가 다시 입을 열었어요. 표정이 한결 가벼워진 걸 보니, 슬슬 다른 화제를 입에 올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아무튼, 이 이야기는 됐어. 아직 이틀밖에 안 됐는데, 벌써 얼굴을 붉히고 싶지는 않거든."

"잘 생각했어. 그러면 내일은 뭘 할지 이야기해보는 게 좋으려나?"


이올레의 답을 들은 라네비아가 눈을 반짝였어요.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맞춘 게 즐겁게 느껴진 거겠죠.


"내가 괜찮은 곳을 알아 뒀지. 거기에 한 번 가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