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새벽. 케스티는 예의 그 여관에서 또 하룻밤을 보내고 눈을 떴다. 오늘도 이올레는 허리를 부드럽게 안은 채 잠들어 있고, 맞은편 침대에서는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처럼 돌아누워 있었다.


‘오늘도 내가 먼저 일어났나…’


케스티는 기왕 눈이 뜨인 김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이올레의 팔이 허리를 짓누르고 있었던 탓에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정도로 급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라, 케스티는 느긋하게 다른 세 사람도 눈을 뜨기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일어난 건 아니었는지, 방 안은 케스티가 처음 생각한 것보다 조금 빠르게 밝아져 왔다. 지난 이틀 동안에는 다른 세 사람도 해가 떠오를 때가 되면 알아서 일어났기에, 그 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으응… 잘 잤어?”

“네. 이올레도요?”

“응, 나도. 왠지 오늘은 어제까지보다 더 편하게 잠든 느낌이야.”

“다행이네요.”

맞은편 침대에 누워 있는 라네비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라, 케스티는 빙긋 웃으면서 속삭이듯이 답했다. 라네비아도 그 말을 들었는지,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여는 것이었다.


“그런 것 같아. 벌써 사흘째라 그런가?”


그 말대로, 네 사람 중 가장 늦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크시아의 얼굴은 별로 탁해지지 않은 것 같았다.

잠시 후, 네 사람은 채비를 마치고 여관에서 나와 부두가 보이는 광장 한 구석에 섰다. 영원교단이 보낸 안내원을 만나 함께 교단 본부로 가기로 한 약속 때문이었다. 네 사람과 가장 자주 만난 아시카를 붙여서 보내겠다고 했기에, 이올레 일행은 교단에서 누굴 보낼지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여기인가요?”

“네. 여관이랑 가깝고 시야도 탁 트여 있어서, 서로 알아보기 편할 것 같거든요.”


동쪽 길목에서 아시카와 다른 한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소카와는 다른, 나지막하고 선선한 여성의 목소리가 명랑한 아시카의 목소리와 좋은 대비를 이루어서, 멀리서 그 둘을 돌아본 이올레의 얼굴이 절로 밝아졌다.


‘알고 고른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교단 쪽에서 제법 좋은 인선을 해준 것 자체는 기분이 좋은지라, 이올레는 사뭇 가벼운 기분으로 발걸음을 뻗었다.


“안녕하세요. 그쪽이 알키데스 성주 이올레 님이신가요?”

“네, 반갑습니다. 이올레 싱이에요.”

“반가워요. 루아라고 합니다.”


루아와 이올레는 서로 손을 맞잡으며 짧은 인사를 다시 주고받았다. 어디까지나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 가벼운 인사였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머릿속에 그려 놓는 데에는 충분했다. 특히 루아는 아시카에게서 이올레 일행에 관한 정보를 더 들어 놓은 상태였기에, 그만큼 더 또렷하게 이올레의 인상을 확립할 수 있었다.

그걸 처음 동행하는 길에 지적하는 일이 이올레에게 나쁜 감정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 서로에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 멀리서 얼굴만 보이던 때에도 저를 반기던 것 같더군요. 혹시…”


하지만 둘 이외의 사람이 보기에는 그리 좋지 않은 분위기가 흐르는 것 같았기에, 케스티가 슬쩍 끼어들 필요는 있었다.


“루아 님의 인상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아무래도 저희는 영원교단의 외부인이라 다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거든요.”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아서요. 목소리만 듣고도 바로 얼굴 색이 밝아지던걸요?”


라네비아가 상황을 알 것 같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이 어찌나 따스해 보이는지, 아시카가 보기에도 같은 부류의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다만 그걸 루아가 듣는 곳에서 입 밖에 내도 될지 모르겠기에, 괜한 헛기침으로 루아나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끄는 게 전부였다.

하필 가장 먼저 반응한 게 라네비아 본인이어서, 아시카의 마음이 다소 싱숭생숭해졌다. 자신이 의식한 바로 그 사람에게 한 소리 듣는 것은 아시카에게나 라네비아에게나 별로 내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라네비아가 먼저 케스티에게 신호를 보내서, 아시카는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이올레가 뭔가 의심을 사는 것 같아서.”

“의심이요?”


만난 지 며칠 안 되었던 크시아와는 달리, 케스티는 라네비아가 말한 ‘의심’을 금방 알아챘다.


“라네비아 님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것보다 조금 더 깊은 것 때문이라는 거죠?”

“나한테?”


라네비아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케스티가 꺼낸 말의 뜻을 빠르게 알아챘다. 라네비아 자신은 단순히 남자에게 흥미가 없을 뿐이지만, 이올레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구역에 남자가 들어서는 상황’을 피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여관주인과 종업원 아가씨에게 보였던 분위기 차이도 그렇고, 라네비아가 보기에도 확실히 이상하게 여겨질 만했다.


“그래도 그 정도는 별로 흉 볼 필요는 없지 않아? 뭔가 사정이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고.”

“그러고는 있죠. 그런데 그걸 매번 하는 건 제 입장에서도 별로 내키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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