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의 소동 이후로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갔다.


내 권속은 여전히 개인 용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나가고 있지만, 내 기분을 신경써준건지 일을 나가는 날을 줄였다.


심야 시간대의 시프트임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언급했던 출신이 수상한 지원자가 많은 탓에, 그 아이의 빈자리는 금방 채워졌다고 한다.


덕분에 최근의 권속은 일을 근면하게 하던 반동 탓인지 조금 무료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다고 해서 딱히 남는 시간동안 그 아이에게 달라붙지는 않았다.


나는 내 나름대로 유물이나 다른 밤의 귀족들에 대한 동향을 주시하느라 바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대로라면 그 아이가 집 밖을 나다니는 것에 대해 굳이 외롭다면서 하소연할 이유는 없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기에, 


모처럼 그 아이가 집에 있는 동안 만이라도 얼굴을 보기 위해, 해골 하인의 몸을 빌려서 그 아이를 훔쳐보기로 했다.


굳이 직접 만나지 않고 해골 하인의 몸을 빌리는 것은, 이제부터는 그 아이 개인의 시간을 존중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이가 자기만의 소일거리를 시작한 이유가, 아무리 내가 그 아이의 주인이고,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나와 매일같이 부대끼는데서 오는 피로감이 상당했을 거라고, 그래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게 아닐까 그렇게 판단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부끄럽지만, 그 아이가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틈만 나면 내가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으니 답답함게 느꼈더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이건 그 아이의 개인 시간을 존중하면서도, 나의 외로움을 풀기 위한 좋은 절충안인 것이다.


절대로 스토킹 같은게 아닌 것이다.



해골 하인의 몸을 점거한 나는 최대한 그들의 달그락 달그락 흐느적 거리는 움직임을 따라하면서 그 아이의 방까지 기나긴 복도를 쓸어내려갔다.


내가 곁에 없는 동안 그 아이는 집에서 무엇을 하고 지낼까?


잔뜩 부푼 기대감과, 기묘한 흥분을 품고 내 권속의 방 문을 천천히 열어제꼈다.






……저 아이는 지금 내 동생이랑 뭘 하고 있는걸까?


그렇게 사이좋게 찰싹 달라붙어서, 둘이 손깍지까지가 해가지고, 그 수상한 표정은 또 뭔데?


아주 잘들 놀고 있다.


거기다 쟤는 또 왜 안겨있는 채로 울어?


무슨 일이 있었던건데?


설마 저 아이들…….



"그치만 넌 나 따위 겁쟁이 반푼이 흡혈귀한테는 아무 관심도 없잖아……."


"아이 참, 무슨 말씀을 또 그렇게 하세요? 섭섭하잖아요~"


"넌 그저 언니 체면을 생각해서, 내가 언니의 동생이니까 잘해주는 것 뿐이잖아. ……흑"


"아니, 딱히 그런건……."


"변명하지 않아도 돼. 너는 네 주인님 일편 단심일 뿐……."


"그건 그렇긴 한데요……. 그렇다고 해도 말이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아무래도 동생은 내 권속에게 당당히 삐진듯이 보였다.


그리고 내 권속은 그런 그 아이를 위로하려고, 어르고 달래는 중이었던 것 같다.


이제보니 섭섭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는 달라붙어 있는 주제에, 포옹까지는 해주지 않는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는게 아주 선수가 따로 없었다.



"……그럼 여기 츄~ 해줄꺼야?"


"……아무리 그래도 츄 까지는……."


"흑, 흐흑……."


"아, 아아, 그렇다고 이렇게 떼 쓰시는건 곤란하다구요?"


"언니한테는 해주면서……."


"주인님께는……작은 주인님 께서도 잘 아시잖아요?"


"흐윽!"



……원래 밤에 일어날때는 그 아이의 굿나잇 키스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는데, 그 아이는 그것을 한동안 자기 일이 바쁘다고 자주 걸렀었다.


그 반동으로 최근에는 조금 더 진하게 해달라고 주문했었는데, 아무래도 동생은 기어코 그걸 보고 만 모양이다.


나름 몰래 했다고 생각했건만…….



"자~ 착하지 착해. 우리 작은 주인님은 의젓하신 분이시잖아요?"


"……그렇게 어르고 달래봤자 안 통해."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나름 삐졌다고 고개를 돌린 와중에도, 권속의 손길이 어깨를 쓸어내릴때마다 몸을 배배 꼬면서 내심 좋아하는게 눈에 보인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평소 태도는 무뚝뚝한 주제에 가족들 앞에서는 저렇게 알기 쉽게 감정을 내비치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노라면, 


저 아이가 정말 천년 넘게 우리 가문의 사교를 담당해온 냉철하고 철두철미한 인물이라는게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저기……, 계속 이대로 있으면 후배님이 저희가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화 낼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 내, 내가 내 권속의 눈치를 왜 봐야해?"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 조금 동요해 있는게 아니신지?"


"무, 무, 무, 무슨 소리야!? 그보다 생각해보니 걔는 지금 학교에 가 있거든!?"


"그래요? 그건 처음 듣는데요!?"



그건 나도 의외였던지라 하마터면 멍때리다 해골이 들고있던 빗자루를 떨어트릴 뻔 했다.


다만, 아주 불가능한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얘 학교는 사립이잖아? 오전 자습 한다는 명목으로 해 뜨기 전에 등교해서, 해 질때까지 건물 안에서 버티면 돼."


"체육 수업같은건요?"


"자습한다고 빠지면 된다고 들었어."


"그건 그렇다 쳐도, 그럼 잠은 언제 자요? 해가 완전히 져야지 하교할 수 있을텐데……. 조금 가혹한 스케줄 아닌가요?"


"어쩔 수 없잖아. 학교측에 걔 알리바이를 마련해달라고 일러두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안보내면 그 얘 부모들한테 의심 받을 일이 생길거고, 또 이사장 녀석 체면도 있고……. 그러는 김에 정보도 수집할 겸……."


"그렇다고 하셔도 말이죠……."


"나, 나라고 좋아서 시키는게 아니야. 더군더나 매일 보내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럼 이제 슬슬 돌아올때 아닌가요?"


"그치만……. 그, 그렇지! 너, 너야말로 말 돌리지 말라고."


"……오늘따라 조금 고집이 세신것 같네요.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



표정을 보아하니 동생녀석은 분명 아까 해질녘쯤에 나와 권속의 '하루를 시작하는 굿나잇 츄~'를 훔쳐본게 확실했다.


이건 무조건이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입을 다물고 있던 동생은, 한참 뒤에야 툭 던지듯 말을 내뱉았다.



"……난 네게 있어서 뭐야?"


"뭐냐고 물으셔도……. 가족이라고 밖에……."


"그러네. 역시 나는 언니의 들러리 같은거라 이거지?"


"정말~ 그런거 아니에요~ 작은 주인님도 주인님 만큼 사랑하고 있다구요~"


"……그것도 언니가 그런 식으로 말하라고 시킨거지?"


"그런거 아니에요~"



그 말대로 절대로 그런 건 아니다.


아무리 내가 사전에 동생에겐 어느정도 어르고 달래는 말을 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 정도 대출혈 서비스를 해 줄 필요는 없잖아!?


정말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는 해도, 너무하잖아!


아끼는 혈육이라 해도 봐주는데 정도가 있지!


'좋아' 까지는 허락해도, '사랑'은 NG야! NG!


아니, 잘 생각해보니 '좋아'도 안돼!



"정말로, 저는 진심으로, 주인님, 작은 주인님과 큰 주인님, 귀여운 후배님과, 선배님. 그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구요?"


"가족으로서 하는 말이잖아."


"아뇨. 가족 그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답니다."



단호하게 대답하는 그 아이의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이 차분하고 부드러웠지만, 어쩐지 광인 특유의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동생 또한 내 권속의 묘한 기세를 감지했는지, 조금 기가 죽은 채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네가 사랑하는 주인님의 가족이니까?"


"물론 그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모두가 흡혈……아니, 아름답고 고귀하신 밤의 귀족이니까요!"



의외의 대답에 나와 동생은 말문을 잃었다.


어쩐지 동생의 질문이 그 아이의 묘한 부분을 건드리게 된 것인지, 그 아이는 당황해하는 우리, 아니 동생의 모습에도 개의치 않고 격양된 목소리로 제멋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밤의 귀족분들은 정말 고귀하세요. 자신이 바라기만 한다면 욕망에 초연하게, 삶에 연연해하지 않고 언제까지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달라요. 그들은 한정된 시간만을 살아가기 때문에 언제나 욕망에 전전긍긍 하면서 살아가야 하죠.


지금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서,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을 조금이라도 낭비하면 손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매일을 원하든 원하지 않은 고통 속에서 타인과 경쟁하면서 살아가야 해요.


그런 주제에 나약하기까지 해서, 병에 걸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둠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죠.


그래서야 도저히 남을 도울 여유따윈 생길리가 없지요.


그런 작은 그릇으로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상처입히지 않으면 안되는 거에요.


그렇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거에요.


정말 가엾게도……."



내 권속은 얼마 전까지는 인간이었다는게 믿어지지 않을정도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불신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열기를 띈채 그런 이야기를 하는 그 아이의 눈빛에는 그 동안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던 광기가 서려 있었다.



"물론 밤의 귀족분들도 살아가기 위해 인간의 피를 필요로 하지요? 그 과정에서 물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그건 인간, 아니 이 세상 모든 생명이 그렇지 않나요?


어떤 생명을 가진 존재도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몫을 뺏을 수 밖에 없어요. 그것만큼은 이 세상의 순리니까요.


제가 말하려는건 그 이상의 욕망이에요.


그 가엾은 이들은 자신의 존엄성을 증명하길 바라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 그 이상의 욕망을 자신의 삶 안에서 실현하길 바라고 늘 고통에 빠지죠.


그리고 타인을 짓밟아가면서 까지 그 욕망을 이루려고 들어요.


그저 자신이 존엄한 존재여야만 한다는 이유 만으로……."


"딱히 그렇지는……."



내 권속은 기묘한 열정을 내보이며 저도 모르게 자신의 기세에 눌린 동생의 손을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접근에 당황해하면서도 동생은 그 손을 빼내지는 않았다.



"아니요. 절대로 그래요.


제가 봐온 인간들은 하나같이 그랬어요. 예외는 없었어요.


작은 주인님도, 주인님도, 곁에서 같이 살아보니까 확신할 수 있게 됐어요.


제가 봐온 주인님들은 확실히 인간들이랑은 다르세요.


영원에 가까운 삶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욕망에 소탈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거겠죠?


욕망이란 언제든 이룰 수 있는 것이기에, 지금 당장 이룰 필요는 없기 때문에.


물론 모든 밤의 귀족분들이 그런 것은 아닐테지만요."


"……그건 단지 현재의 일을 한도 끝도 없이 미루는 엄청난 게으름뱅이라는 말 아닐지……?"


"그럴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언제든 욕망을 양보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고귀하지 않나요?


그런 게으름은, 한정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가엾은 찰나의 존재들에겐 사치에 불과할테니까요.


그래서 전 주인님께 늘 감사하고 있어요.


제게 이런 고귀한 삶을 허락해 주신 것에 대해.


타인을 짓밟지 않더라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주신것에 대해.


이렇게 고귀한 사람들에게 둘러쌓여서, 영원이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것에 대해.


그리고 이렇게나 고귀한 모두를 곁에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것에 대해.


그렇기 때문에 제 주인님은, 제 가족이고, 사랑이며, 은인이시기 까지 하시죠.


그 가족인 큰 주인님과 작은 주인님 또한 그렇고요.


그러니 타인을 짓밟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존엄함을 유지할 수 있는 고통에 굴레에서 벗어난 고귀한 존재들이, 그런 삶을 베풀어주기까지 하셨으니 제겐 그 분들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네 가치관 이상해. 완전 모순투성이."


"그런가요?"


"애초에 그 말에는 결국 욕망을 이루려면 누군가를 짓밟아야 한다는게 전제가 있는 것 같은데……."


"눈치 채셨나요?"


"네 전제대로라면 우리는 그것을 한없이 미룰 뿐이지, 언젠가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누군가를 짓밟게 될 거라는 말처럼 들리는걸?"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그럼 네가 말하는 그 고귀함이란것도 사실 허상……―――"



내 권속은 동생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


"――적어도 당신들은 제 몫을 짓밟지는 않았는걸요."


"……그건 무슨 말……?"


"……."



내 권속은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대신 갑작스럽게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그 아이의 하얗고 매끄럽고 차가운 볼에 입을 맞추었다.



""!??!?""


"후훗, 이번 뿐이에요?"



나와 동생은 권속의 동생의 볼에 가해진 갑작스러운 입술 공격에, 순간 지면에서 떠오를 만큼 깜짝 놀랐다.


어, 어째서 그런짓을?


왜, 왜 갑자기 이쪽을 보는거야?


어째서 고개를 숙이는건데?


사과라도 하는거야?


그보다 또 들켰다고……!?



"……고, 고마워."


"대신, 저한테 신경 쓰신만큼 후배님한테도 꼭 신경 써주셔야해요?"


"그, 그 얘는 상관 없잖아……."


"아니요. 상관 있어요."


"……그 얘는 단지 내……, 딸, 같은 것 뿐이고……."


"정말요?"


"……."



이번에는 되려 자신이 말문이 막혔는지, 동생은 붉어진 얼굴로 내 권속과, 왜 자꾸 이쪽을 보냐고! 이쪽의 눈치를 살피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나갔고, 조금 뒤에 동생은 어떤 결연한 결심이라도 한 듯이 내 권속의 손을 붙잡았다.



"어머나?"


"네 입장은 잘 알겠어. 아무튼 네 첫번째는 주인이면서 은인이기도 한 언니가 있기 때문에, 그것만큼은 어쩔 수 없는거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렇지만 네 말대로라면, 나 또한 언니만큼 고귀하고 사랑스럽고, 네게 절대로 피해를 주지 않을, 믿을만한 존재라는거지?"


"분명 그런 의미도 되겠네요."


"그럼 내게도 가능성이 있다는거네?"


"……그게 그렇게 되는건가요?"


"……으음. 적어도 난 그렇게 믿을게."


"후훗, 귀여우신 분이시네요."


"으, 으윽! 그렇게 웃지 마. 부끄러워. 아니, 이게 아니라……"



둘이 나를 앞에 두고 꽁냥거리면서 아주 잘들 논다.


이미 내가 있는건 애저녁부터 눈치챈 주제에…….



"그러면요?"


"그 대신, 나도 네게 뭔가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언니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만이 가능한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


"호오? 그 말씀은?"



동생은 큰 결심이라도 했는지 심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나는, 타나토스님의 이름으로 허락받은 부정한 생명에 걸고, 언젠가 네가 위험한 일에 처했을때, 내 목숨을 걸고 기필코 너를 구해줄게. 약속할게."



그 말을 마친 동생은 그것만으로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지 한동안 계속해서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그건 내게도 조금 놀랄만한 일이었다.


정식 입회인은 아니라곤 해도 옆에서 이야기를 엿듣던 내가 있는 앞에서, 죽음의 신 타나토스 앞에 목숨을 건 맹세를 했을 뿐 아니라, 밤의 귀족이면서 자신의 목숨을 걸겠다는 언급까지 하고 말았다.


밤의 귀족이란, 다들 쉬쉬하는 것일 뿐, 말이 밤의 귀족이지 죽는것이 무섭고 두려워 견딜수가 없어서, 죽음을 속여 일평생에 걸친 저주를 짊어지고, 


괴물이 된 채 가까스로 그 삶을 이어갈 것을 허락받을 뿐인 겁쟁이에 불과하다.


겉으로는 자신이 대단히 높으신 존재인 양 거들먹거리고,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고귀한 귀족인 체 하지만, 


실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각오조차 없는, 도무지 답이 없는 겁쟁이인 이들은 죽음의 '죽' 자, 목숨의 '목' 자만 나와도 가슴이 벌렁벌렁 거려 견디기 힘들어한다.


거의 모든 밤의 귀족, 아니 흡혈귀가 다 그렇다. 그건 나 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처럼 자신의 목숨을 걸겠다는 언급을 한다면, 더군더나 그것이 맹세라면 인간들이 하는 맹세 이상의 엄청난 결심이 된다.


그래서 과연 저 아이, 과연 대단한 결심을 하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 권속이자 애인을 뺏아가기 위한 수작이란게 조금 괘씸하긴 하지만, 겁쟁이인 그 아이 치고는 제법 분발했다는 생각에 조금 정도는 용서해 줄 마음이 조금은 생기지 않는것도 아니었다.


아마 저 어리광쟁이는 그러한 내 태도조차 이용해먹을 심산이겠지만 말이다.



"후훗, 만약 그 때가 오면 잘 부탁드릴게요."


"노, 농담한거 아니야!"



그렇지만 그 말에 담긴 깊은 의미까지는 모르는 내 권속은, 그 아이의 일생을 건 맹세를 가볍게 흘려들은 것 같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조금 안도해버렸다.



"그래서……―" "그런데……―"



그 둘은 갑자기 합이라도 맞춘 듯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거기서 그러고――"


"――있을 거야?" "――있으실 건가요?"



갑작스레 화살이 돌아왔기에 당황스러워진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이 녀석들에겐 내 반응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같다.



"하아~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였나요?"


"……나는 거의 확신했어. 언니는 숨어드는거 진짜 못하니까."


"이 괘씸한것들! 너희는 그럼 알면서도 내 앞에서 그런 짓들을 했단 말이냐?"


"흥, 음흉하게 몰래 엿들으려고 한 쪽이 잘못."


"……정말 어쩔 수 없는 분이시네요. 자, 이리 오세요."



내 권속은 그 말과 함께,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가와서, 내가 빙의하고 있던 해골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어, 어어?"


"아, 치사해! 나도!"


"……작은 주인님은 방금 해드렸잖아요."


"몰라."


"아까 이번 뿐이라고 했잖아요?"


"그럼 찐막으로."



동생이 내 권속에게 보채듯이 매달렸다.



"……이거 정말 안되겠구나. 내 그쪽으로 친히 갈테니 어디 내 앞에서 해보려무나."


"아, 언니 화났다! 언니 오기전에 빨리, 여기 볼에다 쪽 해줘!"


"잠깐만요! 떼 쓰지 말아주세요. 그보다 이제 진짜 시간이……――"



"다녀왔슴다~ 아, 정말이지 저 오늘 하루 정말 노력했슴……."



""…….""



해골 하인으로부터 빙의를 막 끊으려던 차, 동생의 권속이 가방을 맨 채 복도로 걸어왔다.



"선배님……. 드츠 그그스……므흐그 그슨급느끄?(대체 거기서……뭐하고 계신겁니까?)"


"아하하하, 그러니까 말이지? 조금 오해가 있는가본데……."


"갈!!!!!!!!!!!!!!!!!!!!!!!!!!!!!!!!!!!!!!!!!!!"



동생의 권속은 괴성을 지르면서, 내 권속에게 악귀나찰 같은 표정으로 달려들었다.


도망치는 내 권속을 쫒아 다가오는 동생의 권속을 동생이 막아내며 말했다.



"저기, 무슨 오해가 있었나본데……."


"주인님도 제발 별것도 아닌 일로 매번 선배님한테 헤벌쭉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죄, 죄송……."


"그리고 둘째 주인님! 둘째 주인님도 이 성역의 주인된 분이시면서 이런 하잘것 없는 소란은 관리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 미안.


근데 그보다, 나 또 들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