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서 진짜 엄마인 척 하는거 보기 역겨워요. 그 사람에게 몸이나 맡겼던 주제.”

 

가시 돋친 말과 혐오와 냉소로 뒤섞인 눈빛을 끝으로 내 딸은 방문을 걸어 잠궜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잠을 자고 일어나도 숙면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눈 밑의 어둠은 짙어질 뿐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농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주제넘게 귀족들만의 전유물인 은발색 머리카락을 가진 것이 잘못이었을까? 

 

그런 모습 때문에 집 밖에서는 저주받은 아이 취급을 당하고, 집안에서는 잘못 낳은 아이 취급에 집에서 나와 숲속의 허름한 폐가에서 목 놓아 울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그런 행동 때문에 엄격한 생활에 싫증이나 가출 중이던 마법사 가문의 아들에게 모습을 들켜 위로받고 멋대로 사랑하고 자신을 받아들여 달라는 이기적인 부탁을 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비록 첩이였지만, 나는 그를 사랑했다. 

 

비록 첩이였지만, 그와 정실 부인에게서 태어난 아이도 내가 낳은 아이처럼 귀여웠다. 

 

정실 부인의 거짓된 사랑에 속아 독살당한 그와 그의 흔적을 모두 지우는 과정이 결국 아기까지 향하게 되자 비록 첩이였지만, 나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아이를 데리고 도망친다.

 

그와 처음으로 만났던 허름한 폐가로 도망친 나는 결국 기사단에게 발각된다. 기사단장의 일말의 양심은 그가 사랑했던 내 은색 머리카락을 잘라낸 것과 아기의 옷에 피칠한것으로 죽음의 증거로 삼는다.

 

기사단장이 동정심으로 던져준 금화 한 주머니는 폐가의 비바람을 막아주었고, 그와 웃는 모습이 똑같은 딸의 성장을 도왔고, 마법의 재능이 있었던 딸에게 책을 읽게 할 수 있었다.

 

은발을 들키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단발을 하여 머리에 두건을 둘렀으며, 마을 사람과의 교류는 오직 약초 판매, 생필품 구매 이외는 일절 하지 않았다.

 

이런 폐쇄적인 생활은 마을에서 “산속 허름한 폐가에는 마녀가 산다.”라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서 “밤 중에 마녀의 집에서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마녀의 의식이며, 이 의식 중에는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풍긴다.” 등으로 그 내용이 자세하게 부풀려 진다.

 

이런 폐쇄적인 환경은 딸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임이 분명했다.

 

어릴 때 그를 닮은 싱그러운 미소는 점차 줄어만 갔고,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아이로 자라났다. 그래도 꼬박꼬박 같이 밥 먹었지만, 한 번씩 눈을 흘겨보고 대화를 시도해도 냉랭하게 쏟아붙일 뿐이었다. 더 이상 머리도 자르지 않아 은색 장발과 성숙해진 외모는 가끔씩 그를 죽인 그 여자를 생각나게 한다. 딸은 하루 시간 대부분을 방안에 틀어박혀서 있을 뿐이다.

 

딸과의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항상 피곤했고, 어딘가에서 찾기는 하지만 옷, 수건, 식기 도구, 속옷을 잃어버리는 건망증이 심해졌다.

 

딸이 성인이 되는 생일날 나는 딸에게 과거에 있었던 일을 밝히며 화를 냈다. 

 

그날따라 감기에 걸린 듯 기운이 빠졌고, 이마에서는 열이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고.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고 나서도 또, 속옷이 없어져 화가 났다. 그래도 저녁 식사 때 딸이 오랜만에 말을 건 것이 기뻤으나, 그 내용은 내 삶의 전부를 짓밟고 으스러뜨리는 내용이였다.

 

“제가 어렸을 때 아빠에 대한 존재를 찾으면, 항상 엄마는 얼버무렸죠. 그렇지만 엄마는 항상 제가 웃을 때마다 그 모습이 아빠가 웃는 모습과 닮았다고 좋아했잖아요? 엄마는 항상 아빠를 그리워하는데 그 사람은 몇 십년간 보이지도 않았지. 점차 나이가 들고 여러 책들을 읽어서 알게 됐어요. 아빠라는 사람은 엄마를 속인거에요. 그저 엄마가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그 더러운 성욕을 풀기 위해 엄마가 가장 힘들 때 마주쳐서 위로라는 명목하에 강간한 거에요. 당시 딱 지금 제 나이때인 엄마는 그걸 사랑으로 받아들인 거에요. 결국 저를 임신하게 되면서 엄마는 버림받은 거에요. 남자라는 족속들은 하나같이 쾌락만 추구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것들이에요. 엄마는 참 불쌍하네요. 그런 배려심 없는 인간에게서 태어난 저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웠으니까 말이에요.”

 

그만 이성을 잃어버렸다. 냉소적으로 궤변을 내뱉는 딸의 모습에 정실 부인이 내 앞에 앉아 나를 모욕하고 희롱하고 비웃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타오르고 빨리 식어버려 모든 것을 불 태워 버리는 분노는 지금까지 지키고 있었던 비밀을 토하게 했다.

 

축복받아야 될 성인이 되는 딸의 생일날, 

 

나는 그 사람이 내게 베푼 것만큼의 사랑을 주기는커녕 눈물 흘리며 딸에게 언성을 높였다. 

 

절대 내 부모라는 사람들이 한 것처럼 나는 딸에게 상처입히지 않을 것이라 맹세했지만, 결국 딸은 방문을 잠가버렸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첩에 지나지 않았을 내가 그의 딸과 행복을 바란 것이 잘못이였겠지.

 

갑자기 급속도로 피로가 몰려왔다. 차라리 이 졸음으로 더 이상 눈을 뜨지 못하길 바라고 내가 그 헛소문에 등장하는 마녀의 의식 재료가 되길 바라면서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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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게도 눈은 떠졌다.

 

이 또한, 나의 속죄겠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겪은 피로가 느껴지지 않았고, 감기로 인한 몽롱한 기분은 없어졌다. 오히려 새로 태어난 기분이였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생각보다 빨리 일어나셨네요?”

 

천장에 시선을 뗄 수 없는 상태에서 불현 듯, 깜짝 놀란 표정을 하는 딸의 얼굴이 보였다.

 

“솔직히, 그렇게 화를 내실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다른 모습을 봐서 기분 좋긴 하지만요.”

 

“어떻게 된거냐구요? 음... 엄마는 지금 마녀에게 잡힌거에요.”

 

“마을에 퍼져있는 마녀의 소문에 대해 아시죠? 그 마녀가 바로 저에요. 밤마다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산속 허름한 폐가에서 살며 형용할 수 없는 냄새를 풍기는 의식을 하는 마녀.”

 

“아 그리고 소문의 여자는 바로 엄마에요. 너무 좋지 않나요? 모녀의 얘기가 마을 전체에 퍼지다니 제가 했지만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아요. 처음 소문에 대한 내용을 지어내고 나서 엄마의 얼굴 앞에서 몇 번이나 자위했는지 그만 동틀 무렵까지 했다니까요?”

 

“요새 엄청 피곤하셨죠? 그건 제가 엄마한테 수면 마법을 걸어서 그랬던 거에요. 마법으로 강제로 재운 건 오히려 피로가 쌓여요. 아, 엄마가 물건을 자주 없어졌던건 그냥 제가 가져갔던 거에요. 풍만한 몸매로 저를 항상 유혹한게 스스로가 괘씸하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오늘을 위해 정말 몸에 있는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한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그래도 엄마가 제가 사용한 식기도구로 식사하는 모습은 짜릿했어요.”

 

“특히 이 옷과 속옷은 제가 애용하는 물품들이에요. 엄마는 자신이 어떤 페로몬을 풍기는 줄 모르죠? 저를 미치게 만든다구요 시큼하면서 달콤한 냄새는 언제나 맡아도 새로워요.”

 

“지금까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웬 여자 케온 잡초인지도 모를 풀데기들을 약초라 믿으면서 사람들이 샀다는게? 아빠라는 사람을 죽였던 야망있는 그 여자가 정말 순순히 그 조잡하기도 짝이 없던 증거로 의심을 풀었던 게?”

 

“저는 마법에 재능이 있었어요. 그중에서 특히 정신 조작 마법을 가장 잘했어요. 마을로 내려가서 엄마가 캐온 잡초들을 약초로 믿게 하고 소문을 퍼트리게 하는 건 쉬운 일이였죠. 당연히 다시 엄마를 죽일려고 했던 기사단도 다시 집에 찾아왔어요. 그렇지만 역으로 그 기사단에게 제가 태어났던 가문에 소속된 전부를 죽여버리고 그 여자를 잡아오라고 시켰어요. 머리채 잡혀 끌려오는 모습이 얼마나 추하던지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던 차에 그 역겨운 여자가 내가 너무 보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하더라구요? 기분이 잡쳐서 바로 죽였어요. 물론 기사단들도 멀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살하도록 시켰구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내가 무슨 얘기를 듣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몸은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계속 이상한 얘기를 하며 정신을 팔려있는 딸로부터 일단 도망쳐야 한다. 본능이 그렇게 경고하고 있다. 잠시 보여줄 것이 있다면서 돌아서서 벽 쪽으로 가는 딸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대로 문 쪽으로 도망친다.

 

“앉아요”

 

그대로 나는 무릎을 꿇은 상태가 된다.

 

“됐어요. 제일 공들인 기억삭제 마법의 이론에 대해서 설명할려고 했는데 엄마가 그렇게 못 참겠다면 어쩔 수 없죠.”

 

딸이 내 앞에 다가와서 무릎을 굽혀 눈높이 맞추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밤마다 기억삭제 의식을 집행하는데 뭐가 그렇게 소중한 기억들이라고 비명을 지르더라구. 이제 괜찮아, 오늘 밤만 지나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은 전부 잊고 내가 새롭게 채워나가 줄게.”

 

내 삶을 구원해준 그 사람의 싱그러운 미소를 지은 은발 마녀는 영원을 약속하며 나를 안는다.













후기)19버전을 작성한 것도 있는데 너무 늘어져서 전체연령으로 따로 출품함. 백합의 묘미인 그 꽁냥꽁냥함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냥 싸이코 먼치킨 캐릭터가 되버린게 아쉬움. 이런 소설 장르는 이게 처녀작이라서 적는 내내 두근거렸음 항상 독자의 입장인 백붕이가 글을 써본다는 그 과정이 재밌었음. 다른 백붕이들은 이것보다 더 재밌는 글을 쓸수 있을 듯 그러니까 대회 참여 많이 많이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