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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의 일요일.

보름 전 ‘가장 강한 자’를 공격하겠다며 전파를 보내 온 수수께끼의 침략자들이 상식을 깨부수는 방법으로 공격을 감행한 지도 벌써 1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그 침략자들이 공격을 전후하여 몇 번이나 ‘오직 한 곳만 공격할 테니 나머지는 잠자코 있으라’며 다른 나라들을 억제했기에, 그들이 직접 공격한 지방 이외에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침 그들이 침략하겠다고 공언한 지역이 다른 나라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나라이기도 했다는 것도 주효했다.

하지만 그 침략자들 본인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이웃나라까지 별다른 변화 없이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는 데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적절한 휴가 장소를 가까이에 얻은 이들에게는 좋은 소식이지만 말이다.


“이야… 오늘은 정말 재밌었어. 안 그래?”


물론 그 수상쩍은 평화를 십분 활용하기로 마음먹은 이들도 적지 않았고, 리트빙도 그 점을 태평하게 즐기자는 부류에 속해 있었다.


“어, 그런 거 같아. 뭐랄까… 가슴이 조금 두근거리기도 했고.”


그런 리트빙을 따라온 지민도 나란히 걸으면서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며칠 동안 리트빙 모녀와 동거하다 보니 어느 샌가 마음이 그럭저럭 풀어져서, 이제는 가슴이 따스해질 정도의 기쁨이나 즐거움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은 밝아진 모습이 리트빙의 마음에 들어서, 휴가를 빙자한 데이트를 나온 것이었다.

그렇다고 없던 의욕이 갑자기 지민에게 생기는 것은 아니었기에, 오늘 일정은 전부 리트빙이 움직이는 그대로 되었다.


“...어디까지나 조금이지만 말이지. 이렇게 끌려다니는 건 역시 별로인가 봐.”

“그래…”


미안한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리트빙을 만난 첫날 침대에서 느꼈을 때부터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목소리가 기껏 지었던 지민의 미소를 지워버렸다. 제 딴에는 더 재미있는 것으로 기분을 풀어주고 싶겠지만, 당장은 그렇게 제멋대로 나서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도 며칠 동안 한 방에서 살며 어느 정도는 속마음까지 알아챌 수 있게 됐는지, 리트빙도 의욕 가득했던 웃음을 지우며 지민을 돌아보았다.


“그럼 뭐 할래?”

“글쎄…”


그러고 보니 이 낯선 거리에서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긴 했다.


“일단 돌아가서 생각할까?”


지민은 리트빙의 치마 허리 안쪽에 손가락을 걸면서 살며시 말을 건넸다. 이렇게 이쪽에서 유혹하는 듯한 행동과 함께 말을 걸면 확실하게 리트빙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벌써?”

“응. 지금까지 여기저기 다녔잖아. 이제 내가 알 만한 데는 다 간 셈이기도 하고.”

“아, 그렇게 됐구나…”


리트빙이 지민이 하는 말이라면 일단 고개를 끄덕여줄 정도로 홀딱 반해 있는 덕분에, 지민은 어수선하다고 느끼던 관광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더 귀찮은 일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도 알겠지만, 밖에서 즐길 만한 것은 충분히 즐긴 뒤였기에 딱히 신경 쓸 만한 점은 못 되었다.

어차피 이제는 그 ‘귀찮은 일’도 하루하루 똑같은 삶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중요한 일과’가 된 지 오래였다.


“하, 시원하다…”


욕실에서 나온 두 사람은 잠옷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면서 곧바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러고는 먼저 베게에 머리를 묻은 지민이 리트빙의 어깨 아래를 향해 손을 뻗으며 가볍게 말을 걸었다. 함께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몸을 섞는 일에 대한 거부감도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지민이 먼저 리트빙에게 스킨십을 걸어볼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오늘 봤던 게 나보다 좋을 정도는 아니지?”

“글쎄? 그걸 당신이 할 말이 맞는가 생각해보니까, 괜히 느낌이 안 좋아져서 말이야.”

“뭐? 아무리 첫인상을 망쳤어도 그렇지, 지금까지 그걸 담아두는 건 좀 심하지 않아?”


이렇게 거꾸로 곯려주는 데에 슬슬 재미를 붙인 참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자꾸 그런 거 강조하면 더 떨어진다구?”


지민은 리트빙의 조막만한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반대편 손으로 리트빙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입술로 입을 막으니, 좋지 않은 감정이 더 고개를 드는 것도 같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