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나의 첫 만남부터 얘기해볼까?

 

그날은 비가오는 날이었어.

 

부모에게 버려지고 길거리 생활을 이어가던 나는 며칠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채 굶주림에 쓰러져 있었지.

 

눈이 감기기 직전에 내 옆을 지나가던 마차가 멈추는 것을 보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 저택에 있었어.

 

“정신이 들어?”

 

내가 누워있던 침대옆 의자에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가 앉아있었다.

 

백합과도 같이 하얀 머리카락, 붉은 보석같은 눈동자, 마치 인형같이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아이였다.

 

“저... 여기는..?”

 

“내 저택이야 안심해.”

 

그 소녀는 나에게 샌드위치가 담긴 접시를 건내며 말했다.

 

“보니까 며칠동안 못먹은거 같은데 이거라도 먹어.”

 

“가..감사합니다...”

 

나는 접시를 받아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빵에 양상추와 햄만 넣은 간소한 샌드위치였지만 지금껏 먹어본 음식중 가장 호화롭고 맛있게 느껴졌다.

 

“너, 다른 가족들은?”

 

“... 몰라요..”

 

“갈곳은 있어?”

 

“아니요...”

 

“흐음~ 그렇구나~”

 

소녀는 웃으며 내가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면 내 메이드가 될레?”

 

“네..?”

 

“아, 내 소개가 늦었나? 나는 릴리 에버가든! 에버가든 가문의 차녀야!”

 

‘에버가든... 분명 이 근처를 관리하는 백작가였지..?’

 

“저... 한가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응! 뭔데?”

 

“어째서 저를...?”

 

“응?”

 

“쓰러져 있던 저를 이곳까지 대려와 주시고... 이곳에서 일하라고 제안하시는 이유가 뭐죠?”

 

“음.. 처음에는 너가 쓰러진걸 보고 가여워서 대려왔지.”

 

“그렇다면 일하라고 하신 이유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전부 어른이라 같이 놀아도 재미없어.. 외출도 자주 못하고.. 그러니까 이곳에서 일하면서 나랑 놀아줘!”

 

“정말로.. 그게 전부입니까..?”

 

“음... 그것말고 다른 이유가 있긴한데..”

 

“다른 이유..?”

 

“응! 그건바로...”

 

릴리가 나의 귀와 꼬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가 마음에 들었거든~”

 

 

“.. 알겠습니다, 여기서 일하게 해주세요.”

 

“좋아~ 아 그런데 너, 이름은 뭐야?”

 

“파르.. 파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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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그런이유로 저를 부른겁니까?”

 

“릴리, 너도 슬슬 결혼준비를 해야하지 않겠니? 이 아비가 맞선을 주선해준다고 해도 항상 거절만..”

 

“전 아직 결혼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실 말씀이 그것뿐이라면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가씨께서는 쇼파에서 일어나 말없이 방을 나가셨다.

 

나는 바로 아가씨를 따라갔다.

 

아가씨께서 방문을 절반만 닫고 들어가셨다, 이것은 나에게 들어오라고 하시는 신호.

 

끼익-

 

방에 들어가 문을 닫자 아가씨께서 말씀하셨다.

 

“아버님은 정말... 결혼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는데..”

 

“어르신께서는 아가씨를 위해 하시는 일인걸요.”

 

“파르.. 너마저 나한테 이러기야?”

 

“전 항상 아가씨를 위해서 생각합니다.”

 

“그러면 너가 나랑 결혼해줘!”

 

“또 무리한 부탁을..”

 

“왜 항상 거절하는거야~ 난 파르가 좋은걸~”

 

“저는 한낱 수인 메이드일 뿐입니다.”

 

“흥... 이리와 파르.”

 

“네.”

 

아가씨께서는 침대에 걸터앉아 계셨다.

 

“여기 내 무릎에 누워.”

 

“제가 어찌 아가씨에게..”

 

“누워!”

 

“아무리그래도...”

 

“그러면 벌이야, 누워.”

 

‘아가씨도 참 고집쟁이시라니깐...’

 

내가 아가씨의 무릎에 옆으로 눕자마자 아가씨께서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데 왜 매일 무릎에 눕는걸 거부하는거야?”

 

“저는 그저 메이드일 뿐인걸요..”

 

“그러면 메이드가 아니라 애완동물로 취급해주면 무릎에 누워줄거야?”

 

“10년전에 먼저 메이드가 되어달라고 하신건 아가씨였습니다.”

 

“치잇.. 내 애완동물이 되는건 싫어?”

 

“아무리 제가 수인종 이라고 해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파르가 수인이라 그런게 아니라 귀여워서 이러는거인걸?”

 

“아무리 제가 아가씨를 위해 행동한다고 해도 애완동물은... 흐읏!!”

 

아가씨께서 꼬리의 뿌리부분을 쓰다듬으며 말하셨다.

 

“이렇게 쓰다듬어주면 좋아하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고양이인걸~”

 

“제..제가 언제 좋아한다고...하으으..”

 

“그러지말고~ 귀쪽도 긁어줄테니까~”

 

“그..그만해주세..히으읏...!”

 

“싫어~ 말했잖아? 벌이라고.”

 

“흐으읏.. 아가씨.. 짓궂으셔.. 하으아앙..”

 

“흐응~♪ 파르? 밤도 늦었는데.. 오늘밤 내방에서 자고가지 않을레?”

 

“아..안됩니다.. 으읏... 이렇게.. 제가 아가씨방에 자주.. 들어가는 것 만으로.. 흐읏!..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아침에 아가씨 방에서 제가 나오는 모습을 들키기라도 하면...”

 

“어차피 여기는 별채고 이시간에는 너말고 다른 시종은 별채에는 없는걸~”

 

“그.. 그렇게 말씀 하셔도.. 히익! 집요하게 꼬리만 괴롭히지 말아주세요오오..”

 

“응? 파르도 좋잖아? 오늘 내 제안을 거절한 벌이라 생각하고~ 오늘밤만 나랑 보내자?”

 

“으읏... 그러면... 오늘만.. 딱 오늘만입니다..”

 

“좋아! 그러면 파르는 이제 가서 잠옷으로 갈아입고와~”

 

“ㄴ..네에...”

 

내가 대답하자마자 아가씨께서 쓰다듬는 것을 그만두었다.

 

아가씨의 방을 나와 내 방에서 옷을 갈아 입으며 생각했다.

 

‘하아... 아가씨도 참 얄궂단 말이야... 민감한 부분만 쓰다듬는다니..’

 

아가씨께서는 평소에 남들 앞에서는 근엄한 모습을 하시고 계시지만 나와 함께있을때는 처음만난 그때의 성격으로 돌아오신다.

 

‘그나저나.. 아가씨도 참... 나하고 하룻밤을 보내달라니.. 갑자기 이런 말을 하시다니... 설마 내가 발정기가 온 것을 들킨건가..? 밤에 아가씨의 존함을 부르며 이렇고 저런짓을 했던걸 들킨걸까?’

 

아가씨와 잠시후 있을 일을 상상하다보니 몸이 다시 조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쓰다듬어주면 좋아한다니... 좋.. 좋긴해도 날 애완동물 취급하시고!.. 그래도.. 아가씨의 애완동물이 된다면 지금보다 더 가까이 붙어있을수 있는걸까..? 그러면.. 괜찮을지도..?’

 

지금껏 아가씨께서 밤에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부르신적은 한번도 없으셨다.

 

그렇기에 나는 그 어느때보다 기대하고 흥분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으으.. 몸에 이상한 냄새가 나거나 하지는 않겠지? 혹시모르니 양치질도 제대로 하고... 속옷은.. 아껴뒀던걸 입을까..?’

 

그렇게 20분정도 준비를 하고 아가씨의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양초 하나로 밝혀진 방의 넓은 침대에 아가씨께서 앉아 기다리고 계셨다.

 

“이제왔어? 좀 오래걸렸네~”

 

“네 아가씨.. 준비는 됐습니다.”

 

“그러면 파르~ 이리로 들어와~”

 

아가씨께서는 이불에 들어가셔서 나에게 말했다.

 

“어서~”

 

“ㄴ..네에..”

 

‘아가씨와의 첫 밤.. 하으으.. 떨려..’

 

내가 아가씨의 곁에 눕자마자 아가씨께서는 나를 끌어안았다.

 

“흐으응.. 하아~ 파르는 항상 좋은 향기가 나... 고양이같은 귀도 귀엽고...”

 

“가..감사합니다아...”

 

“뭐이리 긴장했어~”

 

‘그야.. 아가씨와의 첫 밤인데 긴장이 안될리가 있습니까아...’

 

하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이 생각이 입밖으로 나올일은 없었다.

 

“하암~.. 그러면 파르 잘자~”

 

“네..네..? 네??”

 

“으응? 파르 무슨 문제있어?”

 

“저.. 진짜로 그저 같이 자기위해 저를 부르신건가요..?”

 

“응~ 말했잖아? 같이 자자고.”

 

‘아... 그런의미였나...’

 

“아니면 혹시 파르 너.. 다른걸 기대했던거야? 변태~♡”

 

“그.. 그런게 아닙니다...”

 

‘아으으.. 완전히 당했어...’

 

“그러면 잘자 파르~ 나의 변태고양이~”

 

“흐윽...네..”

 

이후 아가씨께서는 촛불을 끄시고 다시 나를 끌어안았다.

 

눈을감고 다른 감각에 집중하였다.

 

귀로는 아가씨의 숨소리를, 코로는 아가씨의 향기를, 몸으로는 아가씨의 체온을 느꼈다.

 

아가씨와 이렇게 붙어있으니 나의 심장이빠르게 뛰는것또한 느껴졌다.

 

나의 심장소리에 아가씨께서 깨어나지는 않을까 걱정까지 했다.

 

‘이렇게 붙어있는건.. 오랜만이야... 따뜻해..’

 

아가씨의 체온을, 숨결을, 심장박동을 느끼면 느낄수록 마음속에서 아가씨에대한 평소와 다른 감정이 피어올랐다.

 

존경 이라던가 동경같은 감정이 아닌 따뜻하면서도 쓰라린 감정이었다.

 

이루어 지고 싶지만 이룰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가지면 가질수록 가슴속 깊은곳이 아파지는 감정이었다.

 

“아가씨.. 사랑해요..”

 

츕-

 

그렇게 나를 안고계시는 아가씨의 볼에 작은 입맞춤을 하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