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따스하다 못해 뜨거운 기류가 흐르기 시작하자, 지켜보고 있던 주민의 입꼬리가 조금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니 무언가 안 좋은 생각이라도 드는 것 같아, 케스티가 이올레를 제지하듯이 살짝 거리를 벌리며 입을 열었다.


“혹시 보기에 좀 그런가요?”

“에, 뭐가요?”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주민은 이올레와 케스티의 감정에는 별다른 느낌을 품지 않는 모양이었다.


“혹시 저희가 잘못 짚은 거라도…”

“그런 것 같았어요.”


세 사람 사이에 짧게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서로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에 조금, 그 어색함을 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데에 또 조금, 아무 말도 오가지 않고 시간만 가볍게 흘렀다.

그 차가운 어색함이 이올레와 케스티의 입을 얼려 놓은 사이, 주민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당신들, 슬슬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교단에서 당신들을 찾으러 온다는 얘기가 벌써 다 퍼졌는데?”

“아직 시간이 좀 남아서 나온 거예요. 좀 이따가 돌아가도 그럭저럭 맞을 거고.”

“그런가…”


맑은 하늘 위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케스티의 말에 설득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이렇게 볕이 잘 들어 공기가 따스한 날에 딱히 할 일이 없으면 나들이를 떠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니 말이었다.


“아무튼 전 괜찮으니까, 저쪽 분들한테 밉보이지만 마세요.”

“그러죠.”

“네, 네. 그럼 잘 가요.”


그 주민과 작별하고 서로가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진 뒤,  케스티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척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오후의 태양이 여전히 열기 담긴 햇살을 내리쬐고 있었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도 서늘한 가을 공기는 그 따가운 햇살마저 기분 좋게 느끼게 만들었다.

그게 기분을 한참이나 들뜨게 만든 건지, 케스티가 느끼기에는 왠지 자신의 손 힘이 이올레보다 더 세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올레도 케스티의 마음이 조금 변한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저기…”

“네?”


그 동안 이올레는 케스티보다 조금 더 넓은 풍경을 보고 있어서, 케스티가 놓치고 있던 것을 입에 올렸다.


“보는 사람이 없다고 방심하는 것 같은데.”

“에? 그래 보이나요?”

“그래. 원래는 당신이 이렇게 힘을 주는 편이 아니었잖아?”


이올레는 그렇게 말하면서, 늘 그러는 것처럼 자신의 손에 힘을 주었다. 케스티가 괜히 신을 내는 것 자체는 그다지 신경 쓸 일이 못 되었고, 그저 방금 지적한 것처럼 둘 사이의 관계는 원래 이올레 자신이 이끄는 거라고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 점은 케스티도 알고 있을 테지만 오늘은 그걸 잊은 것처럼 보이기에, 이올레는 한 마디 덧붙이기로 마음먹고 말을 이었다.


“뭐, 하루 정도는 이렇게 자극이 있어도 좋긴 하지만… 역시 하루 이틀 정도가 좋단 말이지?”

“그, 그렇죠?”


다시 소심한 모습으로 돌아온 케스티를 보니, 이올레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그 분위기를 타서 손가락이 조금씩 손목을 타고 올라가자, 케스티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폭이 점점 커져 갔다.


“괜찮아. 어차피 지금은 딱히 보는 사람도 없잖아.”

“누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데요?”

“언제는 그런 거 신경 썼다고…”


그건 어디까지나 알키데스 안에서만 그러지 않았느냐는 말이 케스티의 목 안에서 녹아 사라지고, 대신 가벼운 투정이 슬쩍 튀어나왔다. 이러는 모습이야말로 케스티가 처음부터 지켜봐 온 이올레다운 행동이라, 저항할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하긴, 이번 일만 잘 되면 예전처럼 거리낄 것 없이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거기도 하고요.”

“그런 거야.”


이올레는 나란히 걸으며 잡고 있던 손을 슬쩍 돌려, 케스티의 바지 끝에 엄지를 살며시 걸쳤다. 이것도 평소에 가끔 하던 짓 중 하나라, 케스티는 흠칫 놀라기만 할 뿐 이올레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 모두 확인한 대로 이 거리에는 보는 사람이 없어서, 이올레가 뭘 하든 흉을 보거나 할 사람도 없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라네비아가 크시아랑 함께 기다리고 있을 숙소에 점점 가까워지자, 둘의 귀에 불쾌한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알아듣기에는 거리가 제법 멀었지만, 어렴풋이 들리기로는 크시아를 흉보는 것 같았다.


“어이, 거기.”


그래서 이올레가 케스티를 자리에 세워 두고 앞으로 나섰다. 중요한 일을 치르기 직전이라 무기를 들 수는 없겠지만, 맨손 싸움이라면 큰 소동을 일으키지 않고 저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이 이올레의 접근을 보고 던진 이 두 사람을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아, 당신이 저 마귀를 제압해 여기까지 끌고 온 이올레 성주라는 분인가 보죠?”


뻔뻔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할 정도로 환한 미소와 물음이 참으로 황당하게 느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