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흡혈귀의 권속은 고요가 내리앉은 고풍스러운 사무실에 앉아 서류 업무를 보고 있었다.


연말동안 밀려있던 일들이 갑자기 밀려오기는 했지만, 한동안 집에 갇혀있다시피 하느라 워낙 심심했던 탓에 미리 준비해놓은 것들이 많았기에, 그녀의 업무 수준에서 부담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동안 '일 중독'으로 주인을 걱정시키기 않도록 눈치를 보느라 헤이하게 봤던 업무들을 제대로 마무리 할 수 있어서 조금은 개운하기 까지 했을 것이다.


그녀의 주인이 간만에 볼 일이 있다면서, 그녀를 홀로 집에 두고 외출을 한 덕분이었다.


둘째 흡혈귀의 권속은 딱히 자신의 주인을 성가신 사람이라거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최근의 그녀는 조금 걱정이 과했기에, 둘째 흡혈귀의 권속은 조금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나마 홀로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이 생긴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굳이 자신이 아니라 셋째 흡혈귀의 권속을 데려간 것은 조금 충격이었지만, 그것이 그녀의 결정이라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둘째 흡혈귀의 권속은 자신의 주인이 자신 외에 다른 대상을 사랑하는 것에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도 질투를 느끼지 않느냐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아무리 그녀가 자신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해주고 있다고 한들,


자신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소유물일 뿐, 그녀의 사생활까지 간섭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력적인 사람이니까, 아름답고 상냥한 그녀의 주변에는 어떤 식으로든 다가오는 사람이 많을 수 밖에 없으니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자신의 주인을 사랑해주는 것이 권속의 입장에서는 조금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이 주인의 것일 뿐, 주인이 자신의 것이 아님은 알고 있음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기쁨은 어쩔 수 없었다.


단지 그걸 질투라고 불러도 좋을 지 모르겠지만, 권속 된 입장에선 주인이 자신의 매력을 여기저기 흩뿌리느라 자신에게 소홀해지는 것 만큼은 기분이 상할 뿐이었다.


그래도 애초에 셋째 흡혈귀의 권속은 자신만큼이나 주인 바라기다.


가끔 둘째 주인으로부터 보살핌을 받다가 그녀(둘째 권속)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곤 했지만, 


근본은 자신의 주인만을 올곧게 바라보는 아이니만큼, 자신을 내버려두고 둘 끼리만 놀러갔다고 별다른 파란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둘째 흡혈귀의 권속은 쓸데없는 상념에 저도 모르게 펜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는 것을 깨닫고는, 


금방 잡생각을 털어버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녀 자신도 완전히 혼자는 아닌만큼, 그녀의 주인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그녀에게는 마음이 놓였다.


그와 동시에 집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언제까지 서류만 보고 있을 생각이야?"


"어머, 오늘은 작품 하느라 바쁘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셋째 주인이 집무실 문을 박차다 시피 하면서 들이닥치자, 둘째 권속은 의례적인 대답과 함께 작게 목례하고는 다시 서류더미로 눈길을 돌렸다.


셋째 주인은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듯이 노려보다가, 둘째 권속에게 다가가서 볼을 부풀렸다.



"모처럼 둘만 있게 됐잖아. 일은 적당히 해 두고 같이 놀자. 응?"


"하던 것만 마무리 하고 갈게요."


"그거 오늘 안에 다 안끝나잖아!"



셋째 주인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버럭 소리쳤다.


그럼에도 둘째 권속은 아랑곳하지 않고, 업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야 어쩔 수 없잖아요? 연말동안 밀린 일이 제법 되니까요."


"그거 우리 공급망 관련이지? 그지? 어차피 그거 대부분 언니가 직접 결재를 해야하는거라 지금 열심히 해 봤자 소용 없잖아!"


"아주 소용 없는건 아니라구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다면 제가 대신 결재하고 보고만 올려도 된다고 하셨거든요."


"하? 그게 뭐야? 언니 요즘 얘가 일 잘한다고 너무 헤이하게 사는거 아냐?"


"흠, 흠. 거기다 여기 서류중 반은 셋째 주인님 쪽 일이라구요?"


"하아? 말도 안……――"



셋째 흡혈귀는 가로채다시피 둘째 권속의 옆에 놓여있던 서류더미 중 일부를 낚아채서 훑어보기 시작했다.


불만 가득, 짜증 가득하던 그녀의 눈동자가 서류를 읽어내려가면서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허어어억!? 지, 진짜잖아……."


"그쵸?"



셋째 흡혈귀는 온 힘이 빠져나간듯이 천천히 옆으로 쓰러졌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게 있었는지 갑자기 몸을 다시 세우면서 둘째 권속에게 밀착했다.



"……이번엔 뭔가요?"


"근데, 그래서 왜 네가 그걸 하는데? 우리 얘가 해야 할 일이잖아?"



이번엔 그 말을 들은 둘째 권속쪽의 눈매가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그 반응에 셋째 흡혈귀는 자기가 무슨 잘못이나 실수를 저질렀나 싶었는지 눈에 띄게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왜, 왜애? 갑자기 왜 그러는데?"


"정확하게는 셋째 주인님 일이죠."


"……윽."


"거기다 저 나이에 그 만큼 일처리가 되는 건 대단한 거라구요? 조금 정도는 인정해 주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원래 권속이란건 계약된 기간동안 주인의 소유물로서……――"


"셋째 주인님은 저희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계셨군요? 흐응~ 그렇구나아……."


"아, 아아……."



둘째 권속이 차가운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셋째 흡혈귀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한 걸음 물러났다.


물론 권위로 찍어 누르려면 누를 수도 있었다.


처세에 뛰어난 둘째 권속이라면, 굳이 힘으로 찍어누르지 않더라도, 내세운 권위만으로 별 다른 말 없이 고개를 숙일 것이다.


그렇지만 셋째 흡혈귀, 그녀가 정말 가지고 싶은것은 둘째 권속의 마음이었다.


강제로 고개를 숙이고 자신에게 봉사하도록 강요해봐야 진정한 마음은 얻어낼 수 없을 것임을, 그녀는 천년의 경험을 통해 이 자리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 아니……. 그런 거 아냐. 내가 걔 얼마나 귀여워 하는지 알잖아? 응? 그, 그렇지. ……그, 그게, 단지, 어, 음……. 아무리 그래도 그 아이, 아니, 내 일을……, 그, 그래! 굳이 네가 이걸 할 필요는 없잖아?"


"근데 누군가는 해야 하잖아요?"


"……그……렇지."


"그리고 그 귀여운 후배는 제 주인님께서 데려가셨구요."


"……."


"그럼 결국 제가 해야하잖아요?"


"그, 그치만 권한이……."


"권한이?"


"그게, 그러니까, 내 일이잖아? 그걸 내 인가 없이 네가 마음대로 해버리면……."


"어차피 셋째 주인님은 본인 작품 관련 외의 일은 전부 걔한테 맡기시잖아요?"


"무, 뭐!? 무, 무, 무, 무슨 근거로 그런――"


"시치미 떼셔도 소용 없어요. 저나 주인님께서 옆에서 몇번 도와준적이 있거든요."


"뭐? 하, 누구 맘대로 우리 일을 막 건드려?"



셋째 흡혈귀는 하도 할 말이 없었는지, 이젠 되려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둘째 권속이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금방 시무룩해졌다.



"그렇게 됐으니 방해만 하실거면 저리 가주세요. 셋째 주인님 말씀대로 오늘 안에 끝내기 힘든 양이라구요?"


"그건 말이 좀 심하잖아……."


"정 서운하시면 조금이라도 일찍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나요?"


"그, 그건……."



셋째 흡혈귀는 잠시 턱을 만지작 거리다가 되물었다.



"그, 그럼 시간 남으면 이따 나랑 놀아줄거야?"


"물론이죠."



셋째 흡혈귀의 표정이 환해지더니, 두 눈에는 불이 붙은 것처럼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물론이죠."


"좋아. 모처럼이니까 내가 발벗고 나서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줄게."


"후훗, 기대할게요?"



셋째 흡혈귀는 의욕 만만한 모습으로 서류 더미를 집어서 둘째 흡혈귀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둘째 권속은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머금고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자신의 업무로 시선을 옮겼다.


.

.

.


"이거랑, 이거랑, 그리고 이것까지……. 네, 다 끝났네요. 셋째 주인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와앙~ 속았잖아! 너무해!"


"호호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원래 오늘 안에 끝날지 장담조차 못할 양이라고 했잖아요?"



업무를 끝나자마자 시간을 확인한 셋째 흡혈귀가 절규했다.


둘째 권속은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달래듯이 어깨를 주물러주며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억울함에 사무친 셋째 흡혈귀의 눈에서는 눈물이 조금씩 비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흥. 이제와서 뭘 하고 놀겠다는건데? 이제 곧 있으면 해 뜰건데. ……흑."


"오히려 해 뜨기 전에 끝낸게 대단한거라구요? 셋째 주인님 다시 봤어요."


"아, 헤헤. 뭐 그 정도야……아니, 그게 아니라! 이제와서 뭐 하고 놀건데! 놀 시간이 없잖아!"


"으음……. 그럼 여기서 잘때까지 데이트라도 하는건 어때요? 말하자면 '집무실 데이트'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에에에……. 그게 뭐야……."



둘째 권속이 의자를 가져와서 셋째 흡혈귀의 바로 옆에 갖다놓고 앉았다.


잔뜩 실망해서 삐진 셋째 흡혈귀는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바로 옆에 바짝 붙어앉은 둘째 권속의 숨결과 온기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혹시 싫으신가요?"


"…………그건 아니지만……."



둘째 권속은 싱긋 웃으면서 셋째 흡혈귀의 손을 자신의 가슴께로 가져가 맞잡았다.


그것만으로 셋째 흡혈귀는 자신이 삐졌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볼을 붉혔다.


그래도 뒤늦은 수습이긴 했기에 그녀 입장에서는, 둘째 권속이 권속 주제에 자신을 속였다는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래서 애써 볼멘소리로 불만을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흥. 너 그렇게 안봤는데 진짜 바보 멍충이야.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호호호, 죄송해요."


"거기다 쓸데없이 고지식해. 나는 목숨걸고 너 구해준 적도 있었는데, 오늘 하루 정도는 일 미루고 놀아줄 수 있잖아."


"그러고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요? 그 때 일은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요."


"……거짓말."


"진짜라구요?"


"말로만이지? 어차피 넌 둘째 언니바라기니까."


"후후……. 부정은 안할께요."


"넌 왜 그렇게 언니를 좋아해?"


"물론 제 주인님이 제일이긴 하지만, 다른 자매분들도 똑같이 사랑하고 있다구요?"


"바보야? 그 말 완전 모순이잖아."


"정말이라구요?"



말을 주고받던 사이, 어느 새 화가 풀려버린 셋째 흡혈귀는, 이제는 볼을 잔뜩 부풀린채 짐짓 화난 체 하면서 저도 모르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셋째 흡혈귀의 손을 쥐고있던 둘째 권속은 승리를 직감하고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을 쓸어내리면서 미소지었다.


대놓고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태도, 셋째 흡혈귀는 이것이 계산된 행동임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녹아버린 마음으로는, 머리로는 알고 있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대로 있으면, 설령 속고 있다고 해도 기분이 좋은건 어쩔 수 없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저는 정말로 제 주인님 뿐만 아니라 셋째 주인님, 첫째 주인님, 그리고 권속 선·후배 전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구요?"


"……뭐 그렇다고 쳐. 근데 난 너가 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고 따르려는지 잘 모르겠어."


"사랑에 이유가 필요한가요?"


"그야 꼭 그런건 아니지만……."



셋째 흡혈귀는 쑥스러운듯이 꼼지락거리면서 웅얼거렸다.



"……그래도 믿을만한 이유가 있으면 마음이 놓이잖아."


"후훗, 그것도 그렇네요. ……근데 정말 그런 것까지 시시콜콜하게 알고싶으세요? 정말?"



셋째 흡혈귀는 둘째 권속의 변화를 민감하게 캐치했다.


딱히 겁주려는듯한 그런 태도는 아니었지만, 둘째 권속의 마음에는 명백히 이전에 얼핏 들여다 봤던 광기와 같은 불타는 열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조차도 늘 애정을 갈구하던 셋째 흡혈귀에게는 바라마지 않던 것이기에, 그녀는 그것이 그렇게까지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완전히 불살라진다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던 사랑에 닿을 수만 있다면 그 불길에 더욱 다가가고 싶었다.



"……알고싶어. 너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싶어."


"제 비밀인데도요?"


"오늘 나 많이 노력했잖아. 전에도 그랬고."


"그러네요. 그럼 한 가지만 약속해주세요? 제 주인님께는 절대 비밀로 해주셔야 해요?"



늘 이 아이의 사랑을 독차지 해서 질투하던 둘째 언니, 그렇지만 지금 자신에게 그녀조차 모르는 둘째 권속의 비밀이 곧 손에 들어온다.


그녀에겐 조금도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런 와중에도, 조그만 친절만으로 완전히 질척질척하게 녹아버린 셋째 흡혈귀의 머리로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비밀로 해야하는 일에 대한 위화감은 느낄 수 있었다.



"왜?"


"그야……."



조용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일렁이기 시작한 광기에 가까운 애정이, 둘째 권속의 두 눈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조금 뜸을 들이다, 볼을 붉히면서 셋째 흡혈귀의 귓 속에 뜨거운 숨결과 함께 속삭였다.



"……그건 조금 부끄러우니까요."



듣는 사람도 없건만 혹시라도 누가 듣기라도 할 것 마냥, 둘째 권속은 셋째 흡혈귀의 귓 속에 무언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셋째 흡혈귀는 정작 둘째 권속이 적극적으로 다가오자 완전히 뻣뻣하게 굳어버려서, 추임새조차 넣지 못하고 석상마냥 그녀의 말을 강제로 경쳥하게 되었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둘에게는 아니었을 것이다.


둘째 권속은 말을 마치고는 다시 자기 자리로 몸을 돌리고는, 상기된 얼굴로 가슴에 손을 얹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셋째 흡혈귀 또한 상기된 얼굴로 야스라도 했냐? 야ㅋㅋㅋ 북극곰거처를비벼없애기라도 한거마냥 참았던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잠시 그 둘은 그렇게 붙어 앉아서 숨을 고르며 시간을 보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둘째 권속이었다.



"어때요? 제 비밀? 생각보다 별 것 아니었죠?"


"그게, 그런 일이 관련있을거라곤 조금도 생각 못했어. 네가 그 때의……."


"시간 참 빠르죠?"


"그러네. 그 꼬맹이가 이렇게 다 큰 어른이 됐구나."


"고작 그런 일이 계기라니. ……한심하죠?"


"딱히 그렇지는? 그보다 그때 그 흡혈귀 말인데――"


"쉿."



둘째 권속은 셋째 흡혈귀의 입가에 손가락을 대서 가로막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다시 얼굴이 상기된 셋째 흡혈귀가 혼란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알고 계신가보죠? 그때의 그 흡혈귀님을? 


그렇지만 그건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급적이면 본인 입으로 듣고 싶어요.


그때까지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고 싶어요. 


저희의 시간은 그렇게까지 다급하게 답을 찾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길잖아요?"



라며 둘째 권속의 그녀의 말을 제지했다.



셋째 흡혈귀는 손가락으로 가로막힌 입을 뭐라고 우물거리려다 말고는, 대신 둘째 권속의 손가락의 감촉을 즐기기로 했는지 두 눈을 감고 자신의 입술을 그녀의 손가락에 들이밀었다.



"어머나?"


"으우으으으으우우."


"호호호, 뭐라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후흐흐흐……."



헤벌쭉한 셋째 흡혈귀가 조금씩 몸을 둘째 권속에게 들이밀더니 이제는 거의 품에 안기다시피 해서 몸을 기대기 시작했다.



"어머나?"


"히히, 데이트잖아? 이 정도는 괜찮지?"


"뭐, 그렇네요. ……그러고보니 저도 궁금한게 있는데요. 괜찮을까요?"


"뭔데?"


"저도 셋째 주인님께 같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흐헤?"



둘째 권속의 품에 안겨서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던 셋째 흡혈귀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첫째 주인님을 제외한 두 주인님께선 어째서 저를 그렇게 사랑하시나요?"


"음……. 그 말 나도 그대로 돌려줘도 돼? 사랑에 이유가 필요하냐고?"


"호호호, 비밀인가 보죠?"


"딱히 그런건 아닌데……."


"말씀하시기 불편하신 주제면 그만 둘게요."


"아, 앗! 아니, 그런거 아니고……."



둘째 권속이 입은 스웨터가 늘어질정도로 매달린 셋째 흡혈귀는 몇번이고 입을 뻐끔거리다가, 이제는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로 간신히 목소리를 내서 말했다.



"그게……있지? 이런 거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지 마? 특히 첫째 언니. 둘째 언니한테도 안돼?"


"물론 약속할게요. 자아, 새끼 손가락."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어기면 나 정말 화낼꺼야?"


"네, 약속은 분명 지킬게요."


"……너는 우리 엄마를 닮았어. 


인간들 사이에서 위장하기 위한 의모나 그런거 말고, 정말 우리를 낳아주신, 인간이었을때의 엄마를 말하는거야.


신기하지? 몇 천년 전의 일인데, 이제는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데, 어째선지 네가 엄마를 닮았다고 생각해버리고 말아.


그리고 이렇게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져.


자각했을진 모르지만 아마 둘째 언니가 너를 좋아하는것도, 첫째 언니가 너를 싫어하는것도 그거 때문일거야."


"딱히 첫째 주인님께서 저를 미워한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데요?"


"……어쨌든간에. 


엄마는 너처럼 따뜻하고 친절하고 사려깊으면서도, 심지가 굳센 강한 사람이었어. 완벽하게 멋진 사람이었지.


근데 그 완벽함이 오히려 문제였어.


너무나도 굳센 사람인 나머지 엄마는 우리 가족들히 흡혈귀가 되는 것을 이해는 해 줄 지언정, 함께하지는 않으려 했거든.


그 사람은 인간으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어.


인간은 순리에 따라 인간으로서 죽어야 한다면서.


아무리 그래도 죽음 정도는 두려웠을텐데 죽는 순간까지 한 번도 우리한테 죽음으로부터 구해달라고, 같은 동족으로 만들어달라고 하지 않았어.


정말 대단하지?


그 사람이 우리의 엄마로 지낸 시간은, 이제와서 우리 자매의 삶에 있어서 정말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나도 언니들도 아직도 그 사람을 떠올리고는 해."


"……그랬군요."


"그리고 지금도 엄마가 떠오를 때마다 가끔 사무치게 외로워지고는 해.


지금처럼."



갑자기 셋째 흡혈귀는 둘째 권속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둘째 권속은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가슴께로 스며드는 습기를 통해, 그녀가 울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너를 언니 혼자만 독점한다니……. 그런 건 너무 하잖아.


언니가 돌아올 때 까지 만이라도 좋아. 오늘 새벽은 나랑 같이 누워있지 않을래?"


"……."



둘째 권속은 대답 대신 셋째 흡혈귀의 어깨를 끌어안아 주었다.


굳에 쳐진 암막 커튼 너머로, 두꺼운 커튼으로도 막을 수 없는 붉은 석양이 조금씩 방 안으로 들어와, 두 저주받은 영혼의 피부와 눈을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문을 열고 집무실을 나서는 순간, 



"정말 어디 계신검까? 오늘도 슬슬 자야하는……――"





셋째 권속과 마주쳤다.



""아.""


"야!!!!!!!!!!!!!!!!!!!!!!!!!!!!!!!!!!!!!!!!!!!!!!!!!!!!!!!!!!!!!!!!!!!!!!!!!!!!!!!!!!!!!!!"



셋째 권속의 증오에 찬 반말 급발진 호통이 온 집 안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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