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덕질을 하며 김정호에 대해 파면 팔수록 숭배를 멈출수가 없는 관계로


고산자가 왜 대동여지도 원툴이 아닌 한국 지리학계의 고트인지 숭배해보는 글을 써보려함


이분은 그냥 지리를 사랑하다 못해 미쳐있던 사람임 ㅇㅇ





1. 300년만에 편찬된 전국읍지


조선 중후기는 가히 지덕의 암흑기라고 할수 있을 정도로 관찬 지리지의 편찬이 없었음

1454년의 <세종실록지리지>, 1530년의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된 이후 거의 300년간 관찬 전국지리지의 명맥이 끊겨있는 상황


물론 아예 지리지 편찬 시도를 하지 않은건 아니고 몇번의 시도가 있긴 했음



1차시도 <여지도서>

영조 시기 기존의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완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시도.

실제로 전국 고을들의 정보를 면밀히 조사하였고 이에 대한 자료들도 많이 남아있기는 하나,

누락된 고을도 많고 최종 간행되지는 못함


2차시도 <해동여지통재>

정조 시기 전국에서 작성한 읍지 + 기존에 규장각에서 보유하고 있던 읍지를 총망라하여 편찬한 전국단위 읍지.

아쉽게도 현재는 로스트미디어가 되어버림

<증보문헌비고>의 참고문헌 항목에 기재되어 있는것을 보면 고종 대까지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임


3차시도 읍지상송령

읍지상송령이란 쉽게 말해 "조정에서 지리지 편찬할거니까 각 고을에서는 알아서 너희 동네 정보 추합해서 올리도록" 임.

고종 시기 총 3번의 읍지상송령이 있었으나 모두 간행까지는 이어지지 못함



이외에도 특정 도(道), 고을단위의 관찬 읍지가 편찬되기는 하였으나, 전국단위 지리지는 간행되지 못하였고,

로스트미디어화 되거나 편찬 도중에 찍싸버리게 되어 진짜 암흑기가 도래하나 싶은 이때



김정호라는 인물에 등장해 불후의 명작을 내놓으면서 판을 정리해버리게 됨




2. 이걸 정말 혼자 한거라고? 싶은 작업량


보통 사람들이 고산자 김정호라고 하면 대동여지도밖에 모를거임





이거 하나만 놓고 봐도 작업량이 어마무시할거라는게 예상이 되지 않음???



하지만 고산자의 진가는 대동여지도에서만 드러나는게 아님

대동여지도 뿐 아니라 청구도, 수선전도, 지구전후도 등등 여러 지도를 제작하는 한편,


<동여편고> (c. 1830)

<동여도지1> (1834)

<동여도지2> (1850)

<여도비지> (1853)

<대동지지> (1861)


등과 같은 여러편의 지리지도 저술함


놀라운건 이게 어디 동네하나만 조사한것도 아니고 전국의 모든 부목군현을 총망라한 전국단위 읍지였다는 거임



300년동안 관찬 지리지가 하나 나올까말까 하던 시대에 자력으로 전국단위 읍지를 4세트나 뽑아낸거임

여기에 대동여지도 작업까지 한걸 생각하면 정말 평생을 지리에 바쳤다고 볼수있음


아마 조선 중후기 지리학은 고산자의 지분이 못해도 절반 이상은 될 것





3. 실용성에 기반한 더 발전된 형태의 지리지


지리지는 막 작성하는게 아니라 보통 일정한 양식이 존재함.

연혁, 봉수, 역참, 산하 행정구역, 특산물, 출신인물, 제영, 기타 시설 등등


수백년간 여러 지리지를 편찬하면서 일종의 관례처럼 굳어진 항목들임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여지도서 등 여타 지리지들을 펼쳐보면

효자, 열녀, 출신인물, 제영(그 지역과 관련된 시)과 관련된 내용들이 과도하게 많다는걸 알수있음



특히 "제영" 항목이 많이 심각한데

요즘으로 치면 여수시지를 만드는데 여수밤바다 가사를 전부 적어놓는 느낌임


또 가사에 여수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그 노래가사도 전부 적는거임



이게 적당하면 좋은데 뇌절에 가까울 정도로 인물과 제영 항목으로만 내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버리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점 주객이 전도된 모습을 보이게 됨


분명히 "지리"지인데 말이지...



이를 본 고산자는 인물과 제영 항목을 과감히 삭제하는 강수를 둠.


그리고 지리지라는 주제에 더 부합하는 연혁, 산하 행정구역, 시설 등의 정보를 더 보충하며 실용성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음




4. 위치 고증의 시초


확실히 실학과 고증학을 접한 사람이라 그런지


삼한소국, 신라 9주, 고려 5도 양계의 강역을 재구하고

산하 고을들의 위치를 비정하여 이에 대한 지도를 만들기도 했음




<신라 9주도>




<9주도 中 상주 전도>




<고려 5도양계도>




<5도양계도 中 동계 전도>



지덕으로서 이걸 보고 가버리지 않을수 있는가?





5. 관찬 지리지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구체적인 내용


고산자가 편찬한 지리지들은 조정에서 편찬한 것과 비교해봐도 뒤떨어지는 구석이 없음.

연혁, 방면, 산천 등등의 모든 항목에 대해 오히려 더 구체적인 정보를 담고있기 때문에 정말 개인이 만든 지리지가 맞나 의심될 정도임


인터넷도 없던 그시절에 평생을 바쳐 여러 지도와 지리지를 추합해서 조정에서 편찬한 지리지에 준하는,

어찌보면 더 발전된 형태의 지리지를 만들어낸게 ㄹㅇ 말이 안되는 점임




개인 역량으로 이정도의 결과물을 뽑아냈다는 사실을 놓고 봤을때, 정말 지리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게 느껴지지 않음?







그저 대 산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