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내 전작에서 제목만 바꿈 얀붕이 세계 이야기임.


이얀붕 아이샤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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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저기, 네 남친 온다.”



“뭐래 병신년이. 지랄 작작해라. 남자친구 아니라고 몇 번을 얘기 하냐.”



"그래그래 비.밀 남자친구."


"이래놓고 속으로는 좋아하는 거 아니냐? 저렇게 너만 바라봐주는 남자가 어디 있냐."


"약속 시각보다 30분이나 일찍 왔는데?"



“그럼 너 가지던가.”



“그건 사양할게~. 얼굴이 별로라 안 되겠어.”



“야 듣겠다. 이제 조용히 닥치고 연기나 해.”




얀챈대학교에서 신입생 중 가장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한 미진이와 그에 견줘도 꿀리지 않을 친구가 얀붕이를 기다리며 그의 뒷담화를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얀붕이는 미진이를 보자 웃으면서 달려왔다.




“미진아 안녕~. 많이 기다렸어? 둘이 같이 온 거야?”


“꽤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더 일찍 와있었구나.”



“아니 아니, 우리도 방금 왔어.”



“얀붕이 안녕.”




얀붕이는 자신한테 밝게 인사해주는 미진이와 그녀의 친구한테 해맑게 웃어주었다.




“오늘도 재밌게 놀아보자.”



“그래~”



“오늘도 잘 부탁해. 얀붕아.”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얀붕이는 평범한 연애 한 번을 제대로 못 해봤다.


그런 얀붕이에게 미진이는 그의 일생에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여자친구였다.


얀붕이가 그녀와 처음 만난 건 대학교 MT에서 같은 방에 배정받았을 때였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외모와 육감적인 몸매의 미진이는 MT에서부터 엄청나게 주목을 받았다.


고학번 선배들이나 복학생 선배들이 미진이와의 술게임을 위해 우리 방을 많이 찾았고, 하필 얀붕이는 미진이의 옆자리라 이목이 쏠려 불편했다.


하지만 미진이는 술을 잘 못 마시는지 소주 몇 잔을 마시자 얼굴이 빨개졌고, 얀붕이는 그런 미진이가 힘들어 보여 흑기사를 여러 번 자청했다.




“끄아... 취한다. 선배님들 주량 한 번 더럽게 쌔시네... 꺼허...”



“저기... 고마워 얀붕아.”




미진이가 한 손으로 머리를 넘기면서 수줍게 웃으며 얀붕이한테 감사를 전했다.


술에 취해서 인지 얀붕이는 그녀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보였다. 너무나 밝고 예쁜 미소였다.




“아...아니야.”




얀붕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얼굴이 화끈한 게 취기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잘 분간이 가질 않았다.




어릴 때부터 얀붕이는 특유의 밝고 쾌활한 성격 덕분에 이성, 동성 가릴 것 없이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하지만 외모면 외모, 공부면 공부, 게임이면 게임 모두 중간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 얀붕이는 그 흔한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물론 얀붕이가 여자를 멀리하거나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었다.


중학교 때는 여자애한테 처음으로 고백하려다가 고백하기도 전에 미리 차여버린 일이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좋아하던 여자애가 알고 보니 얀붕이의 절친을 좋아해서 애써 슬픈 마음을 감춘 채 그들을 잘 이어줬던 일도 있었다. 


그 이외에도 평범하게 고백했다가 차인 적도 많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얀붕이는 여자들이 자기를 이성적으로는 싫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래저래 얀붕이는 여자 운만큼은 중간 정도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처음에 얀붕이는 미진이가 아무리 아름답고 몸매가 좋아도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어차피 이어지지 않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진이는 얀붕이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친한 친구가 얀붕이의 절친과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그녀한테서 얀붕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미진이의 머릿속에는 얀붕이를 이용할 만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MT에서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았기에 얀붕이한테는 손쉽게 연락할 수 있었다.




-얀붕아 뭐해?-



-어. 미진아 안녕. 나 지금 수강 신청할 거 시간표 짜는 중이야.-



-진짜? 너 뭐뭐 듣는데?-



-우리 1학년 때 들어야 하는 공통과목 빼고는 심리학개론이랑 글쓰기랑 이것저것?-



-와! 나랑 똑같아! 너 어떤 교수님 수업 신청할 거야?-



-나는 김진얀 교수님이랑 김돌돌 교수님 것 들으려고.-



-나랑 교수님도 똑같네. 수업도 똑같은데 우리 나중에 같이 수강 신청하자!-



-응응. 그래-




미진이의 생각대로 얀붕이는 정말 상냥하고 착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얀붕이였기에 미진이는 악착같이 이용하려고 마음먹었다. 


좋은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자기를 이성으로 봐주지 않으면서도 착해빠진 얀붕이는 그저 좋은 먹잇감이었다.


미진이는 얀붕이의 시간표랑 똑같이 수업을 짜고 수강 신청도 같이 만나서 했다. 


일종의 사전 작업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호감을 쌓아둬야 뭐든 시키기가 편했으니까 말이다. 


어차피 1학년은 공부보단 일단 놀고 싶었기에 듣고 싶지 않은 과목이라도 얀붕이랑 똑같은 수업을 신청했다.



개강 한지 벌써 1개월이 넘어갔고, 미진이와 얀붕이는 꽤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미진이는 벌써 얀붕이를 잘 다루게 되었다.




-얀붕아. 나 오늘 몸이 아파서 그런데 출석 좀 부탁해도 될까?-



-응. 알겠어. 푹 쉬어~-



-고마워 얀붕아. 역시 너밖에 없어.-


-아 그리고 저번에 과제 도와 거 정말 고마워. 진짜 큰일 난 줄 알았는데 다 얀붕이 덕이야.-


-이번 주 주말에 밥이나 한번 먹자.-



-아냐 아냐. 친구끼리 도와줄 수도 있지. 그래 고마워. 그럼 주말에 보자.-



얀붕이는 요즘 들어 처음으로 다시 한 번 설레기 시작했다. 


분명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기회가 눈앞에 온 것만 같았다.




이렇게 예쁜 여자애가 꽤 호의적인 얀톡을 보내주고 밥도 같이 먹자 하니 얀붕이는 내심 아니겠지 하면서도 연애 중인 친구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넌지시 물어보기도 했다.




-야. 나 요즘 연락하는 친구 있는데, 이거 그린라이트야?-



-아니 병신아. 완전 호구 잡혔네. 쯧-


 

-이게 호구 잡힌 거라고? 미진이는 진짜 착한 애라 그런 건 아닐 거 같은데.-



-으휴.., 하긴 모쏠이 뭘 알겠냐. 난 분명 말했다.-



-일단 고마워. 다음에 밥이나 한번 먹자.-



-그래. 호구 그만 잡히고 차라리 이 형님께 밥이나 사라.-




얀붕이는 물어보는 친구마다 미진이를 너무 안 좋게 보기에 결국 물어보는 것을 포기했다. 


미진이가 얼마나 친절하고 착한지는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글로만 내용을 보여주면 사람에 관한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주말이 되었다. 얀붕이는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꾸며 입고 미진이와의 약속장소로 나갔다.


미진이는 약속 시각보다 1시간 늦게 왔다. 하지만 그녀의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넋이 나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온 그녀는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미안 얀붕아. 급한 일이 생겨서. 많이 기다렸어?”



“아니야. 일은 잘 해결된 거야?”



“응. 얼른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얀붕이는 미리 조사해둔 맛집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녀는 음식이 입에 잘 맞았는지 행복한 얼굴로 음식을 먹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며 얀붕이는 그녀가 자신의 여자친구가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식사를 마치고 그들은 여러 가게가 줄지어 있는 거리를 나란히 걸었다.




“얀붕아 저거 봐봐 너무 예쁘다.”



“그러게. 미진이 네가 입으면 정말 잘 어울리겠다.”



“하아... 그러고는 싶은데 너무 비싸서. 누가 선물해주면 좋으련만.”




그 뒤로도 그녀는 마음에 드는 물건들이 있을 때마다 가지고 싶다는 뉘앙스의 말들을 많이 했다.


얀붕이는 몰래몰래 스마트폰 메모장에 미진이가 말한 물건들을 적으며 선물을 해 줄 생각에 기뻐했다. 


호감을 표시하는 데는 선물만큼 좋은 게 없다고 들었고, 그녀가 가지고 싶어 하는 물건들이니 얀붕이는 내심 빨리 돈을 모아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일로 부모님께 돈을 빌리긴 싫어서 얀붕이는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금 얀붕이가 사는 집은 부모님이 마련해주신 집이라 전기세 수도세는 부모님이 내주시기에 전기나 물이 끊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덕분에 얀붕이는 통신 요금을 낼 돈 외에는 먹는 것까지 줄여가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미진이가 원하는 물건들은 꽤나 값비싼 물건들이 많았기에 이렇게라도 돈을 모아야 했다.


그래도 선물을 줄 때마다 좋아하는 그녀의 얼굴에 얀붕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덧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얀붕이는 1학기 내내 분위기가 좋았던 미진이의 마음을 떠보고 싶어서 넌지시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미진아, 그런데 왜 너 남자친구는 안 사귀는 거야?"



"그냥. 남자들이 다 내 몸만 보고 좋다고 하니까. 그런 것도 있고 솔직히 연애하면 감정 소모만 심해서."


"그래도... 얀붕이라면 괜찮을지도...?"




얀붕이는 그 말을 듣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눈물이 살짝 나왔다.


미진이는 슬슬 얀붕이가 자신한테 친구로서의 감정이 아니라 이성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을 눈치챘고, 그 감정 또한 이용하려고 했다.


얀붕이는 미진이에게 고백했고, 미진이는 고백을 받아 주었다.




"대신에 얀붕아... 이건 우리 둘 만의 비밀이야 알지?"


"학교에 소문나면 너 평판이 안 좋아질까 봐 걱정이야..."




"응! 그런 거라면 물론이지. 미진이도 학교에서 신경 많이 쓰니까. 비밀은 꼭 지킬게."


"많이 부족하지만 잘 부탁해!"




얀붕이는 미진이가 자신과의 연애를 철저히 비밀에 부쳐달라 했기에 그 약속을 잘 지키기로 했다.


미진이는 앞으로도 얀붕이를 잘 이용하기 위해 고백을 받아준 것 뿐이었지만 말이다.




"야 잘생긴 선배 좀 소개해줘. 얀붕이 빨리 떨쳐내야지."



"그냥 아무나 붙잡고 네가 가서 말만 걸면 바로 넘어올걸?"



"하아... 남자들이란."


 

"그런데 너 얀붕이랑 사귀는 거 아니었어?"



"사귀긴 무슨 그냥 친구 사이지."



"아니 네가 고백 받아줬다며."



"얀붕이한테 더 뜯어야지. 사귀고 나니까 선물도 더 많이 주더라니까?"




얀붕이는 미진이가 평소에 가지고 싶다고 한 물건들을 하나하나씩 선물 겸 주기 시작했다.


그녀의 생일에는 노트북도 선물해주었다.


그런 얀붕이를 보고 미진이는 정말 호구하나 제대로 잡았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그런 호구를 놓치고 싶지 않기에 자기가 차기 전까지 연애라는 쇠사슬로 얀붕이를 잘 묶어 두었다.




"대박. 선물도 잔뜩 사주고 그런다고? 너가 가지고 있는 노트북도 받은 거야?"



"응 맞아. 제 딴에는 관심의 표현이겠지. 그런데 걔 너무 별로라. 이렇게 많이 뜯어먹고 차야지."


"그래도 출석이나 과제 좀 대신해달라 하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니까. 자기 과제처럼 엄청나게 꼼꼼히 해주더라."



"뭐야 완전 호구네 호구. 아 씨 내가 잡았어야 했는데."


"근데 너 은근 겉으로는 순한 척하면서 속은 여우네? 근데 그거 들키면 어쩌려고?"



"세상살이가 그렇지 뭐. 편하게 살려면 머리가 똑똑해야지. 얘는 더군다나 뭐 안 해줘도 좋다고 다 해주는걸."


"밥이나 한번 씩 같이 먹어주면 아주 좋다고 난리야. 내 눈치 보면서 무리한 요구 같은 것도 일절 없다니까?"


"험담하거나 그런 것도 없고 존나 편해."


"뭐 들켜봐야 걔가 어쩌겠어. 우리가 사귀고 있다는 거 아무도 모르잖아."


"지가 아무리 나랑 사귀는 사이라고 해도 아무도 안 믿어 줄꺼고, 걔만 미친놈 취급당할 걸?"



"와 진짜 내 친구지만 대단하다... 남자 하나 병신 만들어 버렸네."


"뭐 그 덕에 나도 너한테 많이 받긴 했지만."


"소개팅은 기다려봐. 내가 좋은 선배 하나 꼬셔올게. 네 얼굴 정도면 금방 구할 수 있을걸?"



"이왕이면 키도 좀 크고, 잘생긴 사람으로 부탁해."



"미친년, 바라는 것도 많아요. 알겠어."



그녀의 친구는 같은 학과 2학년 선배인 금태양 선배를 미진이에게 소개해 주었다.


금태양은 사정이 있어 MT에 못 온 선배 중 한 명이었는데, 학교에서는 이미 잘생겼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역시나 기대했던 것과 같이 금태양 선배는 키도 크고 얼굴도 미남형에 피부까지 트러블 없이 완벽했기 때문에 미진이의 마음에 쏙 들었고, 


금태양 또한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녀를 실제로 보니 가슴도 크고 몸매도 좋은 게 여자 친구로 삼고 싶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들이댔다.



금태양은 학교에서 이름난 부자에다가 성격까지 좋다고 알려져서 그야말로 모든 여학생의 우상이었다. 


이런 금태양을 미진이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분명 자신의 매력이라면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들은 만나지 얼마 안 돼서 얀붕이 모르게 불같이 뜨거운 연애를 시작했다.




불쌍한 얀붕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2학기에도 미진이가 해달라는 것들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야 미진아, 나 재밌는 거 생각났는데 얀붕이한테 해볼래?"



"뭔데 오빠?"



"얀붕이한테 키스해봐 한 번. 슬슬 해줄 때 됐잖아?"


"무슨 반응 할지도 궁금하고."


"혹시 몰라? 키스해주니까 더 좋다고 가져다가 받칠지."




사귀고 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금태양은 생긴 거와는 다르게 엄청난 양아치였다. 


학교나 밖에서는 정말 자상하고 훈훈한 스타일의 학교 선배님이었지만, 그의 친구들이나 미진이와 있을 때는 성격이 180도 바뀐다. 


흔히 말하는 나쁜 남자 스타일이었다. 




"그래도 키스라니. 나 선배가 있는데?"



"어차피 너희 둘 비밀 연애 중인거 아니었어?"


"한 번은 해줘도 무방하잖아. 첫 키스는 나랑 했고."



"알겠어... 부탁 들어주는 대신에 상냥하게 대해줄 거지?"



"아 귀찮게. 좀 하라면 해."



"미안. 알겠어."



"그리고 얀붕이 만나면 알지? 내가 저번에 부탁한 거 좀 사달라고 해~."



"응..."




미진이는 그런 금태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의 외모와 가끔가다 좋게 대해주는 모습에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런 부탁들을 들어주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을 바라봐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미진이는 얀붕이가 100일 선물을 줄 때 따로 불러내어 고맙다고 말한 뒤 살짝 키스를 해주었다.


얀붕이는 자신의 첫 키스가 이렇게 예쁘고 상냥한 여자애라는 것이 너무나 기쁜 나머지 살짝 눈물까지 흘렸고, 미진이에게 더 잘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미진이는 속으로 역겹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가벼운 키스라고 하지만 이런 못생기고 매력 없는 장난감 지갑과 키스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치욕이었다.


얀붕이는 미진이와 만나고 있는 내내 감사와 애정의 표현을 자주 해주었다.


하지만 미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반응해주지 않았다.




"으... 퉤퉤."




미진이는 입술을 닦으며 친구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 진짜 했냐? 대단하다 너."



"그럼 어떡해. 선배가 하라고 시켰는걸."



"그 선배 조금 이상한 거 아냐? 소개팅 주선할 때도 먼저 와서 어필하더니."



"하아. 그래도 잘생겼잖아. 완전 꽃미남이야. 내가 잘하면 나를 봐주지 않을까?"


"못생긴 얀붕이와 20대 초반 꽃 같은 나이에 같이 연애를 할 바엔, 잘생기고 성격 나쁜 금태양 선배랑 하는 게 백배는 낫지."



그때 그 친구는 그런 그녀가 얀붕이와 겹쳐 보였다.


얀붕이의 애절한 구애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그녀는 너무나 잘 알았기에 그만두라고 말하려 했으나 미진이의 눈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진 사람 같았기에 결국 말하지 못했다.




2학기 내내 남들 몰래 금태양이랑 행복하지 못한 연애를 하던 미진이는 그런 마음을 숨기고 종강 파티 때 금태양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금태양은 자신은 혼자 두고 다른 여학생들과 사이좋게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고, 그녀는 무리해서 그의 옆에 붙어 술을 계속 마셨다.


얀붕이는 그런 미진이의 행동이 마음에 썩 들진 않았지만, 자신은 지금 비밀 연애 중이라 대놓고 가서 뭐라 하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미진이는 너무 술을 많이 마셔 조금 쉬려고 밖으로 나갔다. 얀붕이도 술을 꽤 마셨기도 했고, 미진이가 걱정되어 몰래 뒤따라 나갔다.


그리고 얀붕이는 거기서 금태양과 미진이가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츄릅 하아... 오빠 갑자기 웬 키스야."



"사귀는 사이인데 뭐 어때. 분위도 좋잖아."



"저기 안에 얀붕이도 있는데..."



"아 그 장난감 지갑? 이제 슬슬 버릴 때 됐잖아."



"그렇긴 하지이... 요즘 슬슬 질리기도 했고. 많이 받았으니까."


"애초부터 좋아하지도 않았고, 사귀는 건 더더욱 아니야. 그냥 붙잡아 둔 거지."


"오늘부터 연락 끊어야지~."



"그렇게 해. 그나저나 너 술 많이 취했지? 얘들한테 말하고 슬슬 돌아갈래?"


"우리 이제 사귄다고 말하자."



"진짜? 완전 좋아~. 드디어 공식 커플이 되는구나."


"그래 애들한테 말하고 슬슬 돌아가자."



"그래 얼른 들어가자"




그렇게 말하고 들어가는 금태양은 미진이의 뒤에서 씨익 웃고 있었다.


하지만 미진이는 싱글벙글 웃는 채로 그의 표정은 보지 못한 채 다시 주점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얀붕이는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는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몸소 깨닫게 되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너무 순수하게 비밀 연애를 하자는 말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그저 감정 쓰레기통에 과제, 출석 대신해주고 선물도 원하는 대로 사주는 좋은 장난감 지갑이었다.


그녀와 연애를 하는 중이라고 생각한 얀붕이 혼자만 착각에 빠져 괜한 의미 부여만 한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얀붕이와의 연애는 그저 얀붕이가 다른 여자에게 잘 대해주지 못하게 묶어둔 쇠사슬이었다.


비참하고, 또 비참했다.




금태양은 자신보다 외모나 재력이나 키나 모두 월등했다. 그런 그를 그녀가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미진이 입장에선 얀붕이와 사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자기 혼자 멋대로 좋아하고, 멋대로 실망했을 뿐이다. 왜 이번만은 다르다고 생각한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찢어질 듯 아프던 마음이 무뎌진 듯했다. 아마도 이런 일에는 적응을 한 것 같다.


금태양과 미진이는 누가 보더라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기에 자신은 그냥 사라져주기로 했다.


어차피 비밀 연애라 누구한테 하소연해도 자신만 바보나 스토커가 될 게 뻔했기 때문에 그는 그 길로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본 달은 왠지 처량한 자신과 비슷해 보였다.




"하...씨발... 효율성 좃되는 지갑이었네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가는 얀붕이의 얼굴에 한 방울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중에 친구에게 듣기로 금태양과 미진이는 내가 간 뒤 모여 있던 학과 친구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귀기로 했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정말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칭찬해주기도 하고 다들 부러워한다고 한다.


얀붕이는 그 소식을 듣고 잘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 같기에 바로 입영 신청을 했다.


2년 동안 사라져 있으면 관계된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그녀에 관한 일 또한 잊힐 것으로 생각했다.


군대에 가서 운동이나 하면서 몸이나 가꿀 생각이었다.




얀붕이 혼자만의 쓸쓸한 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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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은 술에 잔뜩 취한 미진이를 모텔로 데려왔다.


미진이는 몸에 힘도 잘 들어가지 않아 그대로 침대 위에 누워만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금태양은 술에 취해 힘들어하는 미진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 거칠게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미진이는 크게 당황해서 저항해보려 했지만, 몸에 힘도 들어가지 않았고, 금태양의 완력 또한 만만치 않았기에 그녀의 저항은 무색했다.




"오...오빠 왜 그래요."



"여기까지 따라온 거면 너도 하고 싶은 거 아냐?"



"아...아니에요 오빠 그만해요. 무서워요. 전 진짜 힘들어서..."



"어차피 사귀는 사이면 다 하는 거야. 이왕 술도 마신 겸 해야지. 너도 나랑 하는 거 좋잖아?"




금태양은 미진이를 나체로 만든 뒤 그녀의 음부를 탐하기 시작했다.


미진이는 자신의 첫 경험이 이런 식으로 행해진다는 게 너무나 두렵고 무서웠다.


분명 자신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분위기에서 상냥하게 대해질 줄 알았다.




"자... 잠깐만 오빠... 나 무서워... 제발...."



"아 시끄럽네. 진짜. 씨발. 닥치고 벌리기나 해."



"아흑...제발... 상냥하게."




금태양은 그런 미진이의 울부짖음에도 불구하고 거칠게 대충 그녀의 음부를 비비다가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자신의 그것을 꺼내 강제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콘돔은? 안돼. 콘돔 껴 제발."



"생으로 하는 게 제일 기분 좋거든? 닥치고 가만히 있어라. 넣는다."



"싫어!! 싫어!! 아파! 아파! 빼줘!"




미진이는 어떻게든 저항해보려 다리를 이리저리 흔들고 손을 움직이려 해보았지만 금태양이 강하게 힘으로 누르고 있어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저항하며 울부짖는 미진이에 더더욱 흥분을 느낀 금태양은 미진이의 소중한 그곳을 강제로 넓혀 뚫어버렸다.




"끄흐흐흐흑!!!"



"와 시발 조임 미쳤네. 역시 처녀 보지가 최고라니까. 존나게 쫙쫙 물어주네."


"기분 완전 개 쩔어~."



"아흑.. 아파! 아프다고! 빼줘! 으흐흑..."



"아. 씨 좀 조용히 해라. 분위기 팍 죽네. 처녀들은 이게 문제야. 금방 기분 좋아지니까 그만 징징대."



금태양은 미진이의 생가슴 또한 거칠게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와 가슴도 개 크고 부드럽네. 시발 이런 년이 아직 처녀라니 전에 만난 남자들은 다 고자 아니야?"



"아흑! 그렇게 거칠게 만지면 아파. 흑..."



"미진아 사실 너도 아프다 하면서도 기분 좋잖아?"



"아흑. 움직이지 말아줘 아파!"


"흐흑 아파! 제발 그만 해..."


"이런 거 하나도 기분 좋지 않아. 아흑...."




그렇게 몇 분 지나지 않아 금태양은 엄청난 사정감이 몰려왔다.




"아 시발 쌀 거 같아. 안에다가 싼다?"



"아..안에? 싫어!! 빨리 빼! 빨리 빼줘! 안에는 절대 안 된다고!!!!"


"오빠. 제발 안에만은 안돼!! 제발 밖에다가!!!"




"으윽! 싼다!"




"싫어!!!!!!"




미진이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금태양은 강제로 그녀의 가장 깊숙한 곳에 그의 백탁액을 모두 뿜어냈다.


그녀는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울고 있었다.




"하...씨발 개 쩔었다. 나 약속 있어서 먼저 가볼 테니까 알아서 집에 돌아가."



"흐윽..."




금태양은 그렇게 울고 있는 미진이를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호텔 방 밖으로 나갔다.


미진이는 한참을 누워 있다가 겨우겨우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나 치욕적이고 고통만 가득한 경험이었다. 그녀의 아랫배에서는 아직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금태양과 관계를 했으니 그가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첫 경험을 이런 식으로 만들었으니 그가 사람이라면 자신을 여자친구라고 생각해준다면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넘게 그한테서 연락은 없었다. 


평소에도 먼저 연락을 보내지 않으면 먼저 연락을 잘 해오지 않았던 그이지만 이번에는 뭔가 불안해진 그녀는 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대학교 과방으로 그를 찾아갔다.




금태양은 역시나 과방에서 자기랑 몰려다니는 무리와 함께 있었다. 


그를 봤다는 기쁜 마음에 문을 열려고 했으나 안에서 들린 대화에 그녀는 차마 문을 열지 못했다.




"아. 그땐 진짜 지렸는데, 조임이 장난 아니더라고."



"형 개 부럽다 진짜. 나도 그런 경험 해보고 싶어."



"얌마. 그런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냐. 어우. 그 더러운 성깔 맞춰주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그 년 한 번 따먹어보겠다고 몇 개월을 공을 들였어. 물론 결과는 짜릿했지만."



"형 근데 일주일 동안 연락 안 하셨다 메요. 정말 괜찮은 거예요?"



"뭐, 지 알아서 하겠지. 연락 오면 좀 더 가지고 놀다가 먹고 버리고, 안 오면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좋지."


"어차피 형 곧 군대 가잖아."




미진이는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도 이제까지의 다른 남자들과 다름없이 그냥 자신의 몸을 보고 접근한 것뿐이었다. 


그저 자신은 20대 초반이니 잘생긴 사람들과 연애를 많이 해보고 싶었을 뿐인데, 애초에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외롭고 또 외로웠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지금 연락할 사람조차 몇 명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학기 때는 과 모임도 많이 다니며 다들 친하게 지냈지만 2학기 들어와서는 금태양의 무리한 데이트 요구에 맞춰주느라 과모임에 거의 참석을 못 했다. 


그때 당시에는 금태양과의 데이트가 중요했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이제는 주위에 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미진이는 위로가 받고 싶었다. 자신의 일생에 있어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기에 그녀의 정신은 점점 무너져 내려갔다. 


그나마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는 자신을 위로해주러 나와 주었다.




"개 씨발놈. 흑... 어떻게 지가 나한테 이럴 수 있지? 내가 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



"미안하다. 내가 왜 그딴 놈을 소개해줘서. 완전 개 쓰레기 양아치 맞았네."



"하... 인생 좃 같네~ 시이바알~"



"오늘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시자. 어차피 세상의 반은 남자야. 그딴 놈은 잊고 더 좋은 남자 찾아가자."



"그래그래~ 딸꾹."




미진이는 그 이후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2학년 때부터는 적극적으로 남자들을 찾아다녔다. 


몸이 아니라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었다. 


예전의, 남자들이 들이대도 모르는 척하던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사랑에 대한 집착만 남은 그녀였다.




다가오는 남자 중 몇 명은 처음에는 다 줄 것처럼 하더니 사귀고 나서는 노골적으로 얼마 안 가 관계를 요구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나머지 남자들도 1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관계를 요구하거나 집착하는 자신에게 질려 떠나고 말았다. 


그 누구도 자신의 외로움과 슬픔에는 공감해주지 않았다. 그저 조금의 공감이면 되는데 아무도 그녀의 말은 들어주지 않았다.




"어후...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20대 초반에는 다 그런 건가. 하긴 너나 나나 외모보고 남자 사귀니까 똑같은 걸까나..."




그녀의 친구도 여러 남자에게 대이고 나서는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그나저나 너 얀붕이랑은 연락 안 해? 생각해보니 걔는 너 좋다고 따라다니면서 다 해주고 뭐 바라는 것도 없었잖아." 


"지금 너가 가지고 다니는 노트북도 걔가 생일 선물로 준 거 아냐?"




미진이는 그제야 얀붕이에 대한 생각이 났다. 


1학년 내내 자신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면서 화 한 번 내지 않았던 얀붕이. 


항상 만날 때마다 미리 경로나 맛집 정보 등을 준비해둬서 편했던 얀붕이. 


힘들 때마다 찡찡거려도 군말 없이 들어주었던 얀붕이. 


그녀는 스마트폰을 열어 얀붕이한테 연락하기 위해 톡을 열었다. 


거의 매일 톡이 오던 그였는데 종강파티 이후로는 연락이 아예 없었다.


얀붕이한테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자신과 금태양이 사귄다는 소식을 들어 그런 걸까.


그녀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얀붕이한테 선톡을 날렸다.




-잘 지내?-




하지만 그런 그녀의 연락에도 얀붕이 한테서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항상 몇 분 내로 읽고 답을 보내주던 그였는데,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숫자 1은 사라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도 해보았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미진이는 쓸쓸한 마음에 그와 평소에 나눴던 대화들을 다시 보았다. 


다시 보니 그제야 얀붕이가 자신한테 얼마나 헌신적으로 잘해줬는지 느끼게 되었다. 


1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그는 화 한 번 내지 않았고, 언제나 자신을 먼저 배려해주었으며, 힘든 일이나 기쁜 일에는 항상 그가 옆에서 있어주었다.




하지만 미진이는 그런 그에게 뭐하나 선물해준 것도 없었고, 그가 힘들거나 기쁜 일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다.


혹여나 자신한테 고민이라도 털어놓을라 하면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듣기를 거부했었다.


얀붕이는 이렇게나 자신한테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는데, 정작 그녀는 그의 생일조차 제대로 몰랐었다.




그렇게 그날까지의 대화를 보며 뒤늦은 후회를 한 미진이지만, 그녀에게는 사과 활 기회조차 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남자와의 만남에서 상처만 받은 미진이에겐 얀붕이에 대한 연정이 더더욱 커지고 있었다. 


그가 군대에 갔다는 소식을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전역하면 아마도 바로 2학년으로 복학할 것이다.


미진이는 그를 만나면 위로받을 수 있다는 그 생각 하나로만 남은 학교생활을 버텼다.




"얀붕아... 이제는 정말로 너만 볼 테니까 돌아와 줘..."


"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


"흐윽... 어째서 나는 이런 착한 얀붕이를 가지고 놀다 버린 걸까. 얀붕아..."




비록 얀톡은 읽지 않는 얀붕이이지만 이건 다 오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가서 사과하면 얀붕이는 자신을 쓰다듬어줄 것이 분명했다. 


이제 자신은 외모 따위 보지 않는다. 그저 얀붕이만 있으면 좋겠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지만, 미진이의 시간은 얀붕이와 다니던 그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3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얀붕이가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진이는 여러 감정이 뒤섞인 채 얼굴만이라도 한번 보고 싶어서 그를 찾아다녔다. 


분명 얀붕이는 자신을 엄청나게 미워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상냥한 그라면 혹시 자기를 받아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며 지난 세월을 보냈던 그녀이기에 그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본 그는 이미 여자 친구가 있었다. 미진이는 차오르는 배신감을 억제할 수 없었다. 


어째서 자신은 이렇게 그만을 기다려왔는데 얀붕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저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저 옆에 있는 여자 친구라는 사람, 분명 그녀가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다. 


보라색 머리카락에 저런 눈동자면 잊을 수 없을 텐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그의 여자 친구는 금방 제칠 수 있는 상대였다. 


그야 그럴 것이 가슴도 별로 크지도 않고, 얀붕이 옆에 다가오는 여자애들한테 으르렁거리는 걸 보니 성격도 이상할 게 뻔했다. 


지금의 미진이는 오직 얀붕이만 보고 살 수 있었기에 몸매나 성격이나 자신이 그녀보다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안녕 얀붕아. 오랜만이네?"




미진이는 최대한 밝게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 미진아. 그동안 잘 지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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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진이?"




미진이라는 말에 내 오른손을 붙잡고 있던 아이샤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옆에 있는 애는 누구야?"




"아. 소개할게. 내 여자친구인 아이샤야. 얀챈시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소개해주고 있었어. 나랑 동갑이야."


"아이샤. 얘는 미진이라고 학교 동기야."



"응... 알고 있어."




아이샤의 눈은 다른 여자애들을 소개해줄 때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 그녀의 초점은 미진이에게 고정돼 있었다.




'그때 그년이잖아. 왜 거기 있었던 거지. 그 때 느낀 기분 나쁨이 너여서 그런 거였구나.'


'그런데 네가 왜 얀붕이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거야. 보고 싶었다는 눈으로 얀붕이를 쳐다보지 말란 말이야. 얀붕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이 쌍년... 눈깔을 뽑아 버리고 싶다.'



'이 얘. 나만 쳐다보고 있네. 벌써 견제하는 건가. 뭐 그런다 해도 너는 나를 넘지 못하니까.'




나는 둘의 분위기가 묘하게 심상치 않은 것 같아 일단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동아리방으로 가기로 했다.




"아이샤, 얼른 가자. 얘들 기다리겠어. 다들 너 보고 싶다고 난리야."



"응! 그래~."



"미진아 반가웠어. 그럼 안녕."




아이샤는 갑자기 나한테 팔짱까지 끼며 콧소리를 냈다.


귀엽기는 했는데 남들 앞에서 부끄럽다고 손만 꼭 잡고 다니던 얘가 갑자기 팔짱까지 끼니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뭐 어떤가.




'잘 봐. 너와 나의 차이를. 너는 이제 얀붕이를 넘볼 수 없다고. 그니까 곱게 꺼져.'


'하아... 저 얘 일부로 저러는 것 같은데, 조금 일을 서둘러야겠다. 이 방법까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저 얘가 붙어 있으면 얀붕이는 내 말을 안 들어 줄 거야.'



미진이는 씁쓸하게 웃으며 점점 멀어져 가는 그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샤를 우리 동아리 부원들에게 소개해주었다.


다들 놀란 눈으로 아이샤와 나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형. 거짓말 치는 건 아니죠? 이 예쁘신 누님이 형이 맨날 입만 열면 걔가 얼마나 좋았니 하면서 그리워한 그 분이라고요?"


"형한텐 너무 과분한 거 아닌가?"



"야야. 그 이야긴..."


"그리고 나중에 잠깐 따로 볼까?"



"아 그거 비밀이었어요? 헷."


"여자친구분이랑 같이 계셔야죠. 저랑 따로 보시면 시간 아까워요. 훠이~."




우리 깝죽이가 또 한 건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옆에 있는 아이샤의 얼굴에 홍조가 생겼다는 것이다.




"히히... 기뻐."




나한테만 들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이걸로 점수를 좀 딴건가 싶었다.




"반가워요. 언니. 얀붕 선배님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안녕하세요 누나. 우리 얀붕 형좀 잘 부탁해요. 이상할지 몰라도 착하고 불쌍한 형이에요."





남자 새끼들은 이래서 도움이 하나도 안된다.


아이샤가 여자 후배들을 어찌 볼지 걱정했었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금방 그녀들과 친해졌다.


여자들끼리는 뭔가 통하는 게 있나 보다.


우리는 오랜만에 모두 수업이 끝난 뒤 같이 술이나 마시러 가기로 했다.




"아 그래서 니네끼리 끝나고 2차를 갔다?"



"우리끼리 잘 놀러 다니는 거 아시잖아요. 형이 그때 우리 버렸으면서."



"꺼흐... 그러네. 잘들 놀았어?"



"개꿀잼이였는데, 형도 있었으면 좋았을 듯요."


"형 담배 피우러 갈 건데 같이 가실?."



"그래."



남자애들은 모두 모여 담배를 피러 나갔고, 남아 있는 여자애들과 아이샤는 자기들끼리 무슨 얘기 중인지 즐겁게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초코에몽을 인원수에 맞게 사서 담배를 피우던 아이들과 다시 합류해 주점으로 들어갔다.



여자애들이 아이샤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이것저것 하는 것을 보았고, 설마 괴롭힘을 당하는 건가 생각하고 다가갔다.




"얘들아 초코에몽 사 왔어. 그런데 아이샤 스마트폰 가지고 뭐해?"



"선배 너무하네요. 여자친구면 커플 앱은 기본적으로 깔아줘야죠."



"커플 앱? 그게 뭐냐?"




나의 그 한마디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모두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괜히 민망해져서 초코에몽을 마저 나눠준 다음 자리로 돌아와 핸드폰으로 커플 앱을 검색해봤다.


엄청나게 많은 앱이 나왔는데, 몇몇 어플은 위치추적부터 시작하여 서로만의 대화라든지, 사진 수집 등등 여러 기능이 있었다.


디데이를 계산해주는 것도 있었고, 알림 설정까지 여러모로 쓸모 있어 보였다.


연애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앱이 있는지조차 몰랐었다.


괜히 머쓱해졌다.


아이샤는 내 앞에서 내가 사준 초코에몽을 빨대까지 먹을 기세로 마시고 있었다.




"나... 얀붕이랑 커플 앱 같이 깔고 싶어. 안될까?"




분명 잠깐 다른 곳을 쳐다봤는데, 언제 왔는지 아이샤가 내 옆에 와서 슬쩍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어흐 깜짝아. 언제 온거야 아이샤. 당연히 가능하지. 내가 모르고 있어서 미안해. 제대로 연애해 본 적이 있어야지."


"진작 알았으면 스마트폰 사줄 때 바로 깔아줬을 텐데."




"아냐 아냐. 같이 깔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얀붕아. 헤헤."




아이샤의 얼굴이 술기운이 조금 올랐는지 볼 주변이 빨개졌다.


그래서 그런지 말하는 것도 더 귀여웠다.


나는 그녀와 커플 앱 설정들을 이것저것 맞추고 다 같이 다시 술을 마시면서 즐겁게 얘기했다.




"얀붕이 너무 좋아아~~ 나 없을 때도 다른 년들 안 만나고 내 칭찬도 마니 해주고오~."


"헤에~ 얀붕이다~ 얀붕이는 왜 이렇게 상냥할까. 너무 사랑스러워. 사랑해 얀붕아아."


"얀붕아아~ 같이 사진 찍자~ 사진~ 사진~ 얀붕이랑 같이 찍는 사진~."




내가 잠깐 나갔다 온 사이 후배 여자애들이 내 칭찬을 꽤 해준 모양이다.


다음에 그녀들에게 밥이나 거하게 한 번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샤는 이제 술을 꽤 마신 상태라 잔뜩 취한 채로 내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헤실헤실 웃었다.


그 뒤 사진을 몇 장이나 찍고 갤러리에서 사진들을 고르며 자기 혼자 부끄러워했다.


슬슬 모두 돌아갈 시간이 되어 나도 아이샤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으하아암. 얀붕아 따랑해에..."


"얀붕이 최고오. 나만의 왕자니임~."


"얀붕이 곁에 다가오는 벌레드른 내가 다 주길 꺼야~ 흐에엠."




나는 술에 잔뜩 취해있는 아이샤를 잠옷으로 갈아 입혀준 뒤 침대에 잘 눕혀주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꼬물꼬물하다가 잠에 들었다.


나는 그녀가 잠에든 걸 확인하고 잠시 살 것이 있어서 근처 마트로 향했다.




"콩나물이랑 숙취해소제랑..."




나는 아침에 아이샤에게 해장국을 끓여주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사고 간단히 집에서 먹을 것도 잔뜩 샀다.


아이샤한테 해주고 싶은 요리가 너무 많아 걱정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누가 뒤에서 계속 뒤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장 봐온 것들을 정리하고 마루에 던져뒀던 아이샤의 짐들을 정리하는데, 내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야."




하지만 발신자는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공중전화인 듯했다.


나는 장난전화인 줄 알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작작하라고 말하기 위해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받았네?"




"미...진이?"




"그래 나야 얀붕아. 우리 잠깐 따로 만나서 얘기할 수 있을까?"




"나는 별로 만나고 싶지도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




"진짜 잠깐이면 돼. 뭐 시키지도 않을게. 그냥 이야기만 들어줘. 부탁이야."


"이번만 들어주면 앞으로 절대 너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게."




"하... 이번만이다. 진짜."




"응. 고마워. 집 밖에 있을게."




집 밖에 있는다니. 설마?


하지만 전화는 이미 끊겨있었고 나는 하는 수 없이 쪽지에다가 미진이를 만나러 간다고 적어놓고 집을 나왔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인데, 별일 아니면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




미진이는 우리 집 아파트 바로 앞에 있었다.




"왜 이렇게 차가워졌어.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



"용건만 말하라고. 미진아. 얼른 집에 들어가 봐야 해."



"그 년 때문이야? 그 년 때문에 얀붕이가 이렇게 된거야?"



"하... 미진아 너 때문이야 제발. 정신 좀 차려. 갑자기 나타나서는 하는 말이 이거야?"



"얀붕아 나 많이 반성했어. 너 없는 동안 정말 외롭고 힘들었어. 나 이제 정말 너만 바라볼 테니까 돌아와 줘."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가지고 놀다가 버려놓고선 이제 와서 돌아와 달라니.


하지만 그녀의 눈빛이 이상했기 때문에 최대한 자극하려고 하진 않았다.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이미 여자친구가 있어."


"자꾸 이렇게 나를 곤란하게 만들면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들어."


"나보다 더 좋은 사람들도 많으니 제발 이제 그만 나를 놔줘."



"안돼 싫어! 얀붕이가 아니면 안 돼..."



"하.. .너가 먼저 나 가지고 놀아놓고선 뭐가 안돼!"




나는 참다 참다 화가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소리 지르지마 무서워..."



"그만 이야기하자. 앞으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라. 시간 낭비였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미진이가 내 손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아직 초봄이라 그런가, 미진이는 이상하리만큼 두꺼운 장갑을 끼고 있었다.




"야. 이거 안 놔?"



"절대 못 놔."




나는 힘을 줘서 미진이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미진이의 다른 손에서 뭐가 파지 직하며 순식간에 내 팔에 꽂혔다.




"어으으윽..."



"조금만 자고 있어..."




나는 엄청난 전기 충격과 함께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눈앞에 미진이가 침대에 걸쳐 앉아있었다.




"일어났네?"




몸을 움직여보려 했으나 의자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지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옆에 창문이 보이길래 밖을 내다봤더니 꽤나 높은 건물의 아파트인 듯 했다.



"시발 년아... 이거 안 풀어? 너 지금 네가 뭔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



"아주 잘 알지. 얀붕이와의 사랑을 위한 일인걸."



"여기는 또 어디야 도대체."



"여기가 어디긴 어디야~ 사랑스러운 얀붕이와 나의 신혼집이지. 참고로 여기 10층이다? 아무리 소리쳐도 밖에는 잘 들리지 않을걸?"



창문 밖 풍경을 유심히 보니 저 멀리 내가 사는 아파트가 보였다.


얘는 언제부터 여기 살았던 거지?



"너 원래 여기 살았었냐?"



"아니~ 우리 얀붕이 보려고 이사 왔지~."



"미친년이 지랄도 정도껏 해야지."


"그 정도로 날 가지고 놀았으면 내 인생에서 이제 꺼지란 말이야."


"왜 다시 와서 괴롭히는데,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미안해 얀붕아... 미안해... 네가 군대로 떠나고 나서야 네가 나한테 해주었던 그 모든 일들이 정말 순수한 사랑이란 걸 느꼈어." 


"남자들이 내 몸만 보고 나한테 접근해서 나 너무 외로웠어."


"나만 바라봐주고, 언제나 배려해주던 네가 생각하더라."




대학교 1학년, 내가 그녀와 만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아직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분노에 치가 떨린다.




"그래 순수했었지. 정말 나는 네가 날 좋아하는 줄 알았어."


"그래. 나 그때까지 연애 한 번 못해 본 모쏠 아다 새끼라 그게 호구 잡힌 건지도 모르고 있었지."


"나는 너에게 어떻게든 더 잘해주고 싶어서 야간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네가 가지고 싶어 한 물건들을 선물해 주기 위해 노력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럴 이유가 없었네."


"내가 사준 선물들을 들고, 내가 사준 티켓들로 그놈이랑 데이트를 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상상하니까 배신감에 속이 뒤틀리고 구역질이 나오더라."


"하긴 나 혼자 좋아하고, 나 혼자 착각한 거지. 그렇지?"



"그만해...그만하라고! 내가 잘못했어..."



"시발 년아 말 끊지 말고 들어. 예나 지금이나 존나 이기적인 건 똑같네."


"왜 지금 와서 지랄이냐고. 그 선배 놈이랑 키스를 하든 떡을 치든 나한테서 꺼지라고."


"네가 그 새끼한테 그랬잖아. 나는 그저 가지고 놀다 버릴 장난감이라고."




-짝-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녀의 손바닥이 내 오른쪽 뺨을 세게 후려쳤고, 나는 고개가 돌아간 채로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실실 웃었다.



"야...얀붕이가 나쁜 말 해서 무심코 때려버렸잖아."


"나도 얀붕이 때리는 거 싫어. 나도 이제 너만 바라볼 게. 그러니까 제발 다시 돌아와 줘."


"우리 그때 행복했잖아."



"행복? 미친년이 정신이 나가서 기억도 같이 훼까닥 했냐? 지랄도 풍년이다."


"나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도 있고 지금이 정말 행.복. 하거든?" 


"너와 있을 때와는 달리 아이샤는 마음까지 다독여준다고.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를 장난감 지갑 취급한 너 같은 쓰레기 년이랑은 차원이 달라."


"야. 내 말 듣고 있냐?"



"하아... 안 되겠다."




-짝-




"너는 뺨 때리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나 봐?"


"아까는 무슨 때리는 거 싫다더니 온 힘을 다해 때리는데?"




-짝-




입안 어딘가가 터졌는지 입에서 피 맛이 나기 시작했다.




"얀붕아. 나 사랑한다고 말해줘. 얼른. 그러면 때리지 않을 게."



"좃.까."




-짝-




"얀붕아 자꾸 이러면 더 맞는 거야. 너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얼마나 아픈지 알아?"



"장난감이 주인의 맘을 어떻게 알겠니? 안 그래?"




-짝-




오른쪽 볼이 부풀어 오른 것 같다.


귀도 먹먹한 게 느낌이 이상했다.



"사랑한다는 한 마디면 돼. 그러면 나는 너한테 내 모든 걸 줄 거야. 그년이 아니라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이 남자 저 남자 다 만나고 놀다가 이제 와서 내가 좋다?"


"다시 한 번 말해줄 게. 좃.까 걸레년아."




-퍽-




미진이는 주먹을 꽉 쥐고 내 명치에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내질렀다.



"꺼흐억..."



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여자애가 때려봐야 얼마나 아프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미칠 듯이 아팠다.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이제 말할 마음이 조금 생겼어?"




"허억... 허억..."


"응... 좃까세요~."




-퍽-




"쿠억,,,"



미진이의 얼굴이 이제는 일그러진 채 오만가지 인상을 써 마치 도깨비를 보는 것 같았다.



"말해! 말하라고! 그 한마디가 어려워?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가 어렵냐고!!!!!!"



"푸흣... 못생긴 도깨비가 말도 하네."



"제발... 부탁이야. 얀붕아. 내가 미안했어. 제발... 딱 한마디만 해줘."



'사랑해'란 한마디만 하면 편해질 거라는 걸 나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저기 한구석에 놓인 그녀의 스마트폰에 녹음 기능이 돌아가는 걸 처음부터 봐버린 이상 죽어도 말 못한다.


차라리 지금 죽고 후회 없는 게 백배는 나을 것 같았다. 녹음되는 순간 이 년은 분명 아이샤한테 저걸 들려줄 게 뻔했다. 순순히 그녀의 바람대로 움직이긴 싫었다.


그래서 더 처절하게 그녀의 정신을 건드리기로 했다.




"사..."




미진이의 눈이 커졌다.




"사...랑..."


"사랑해 아이샤."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에게 잘 움직이지 않는 입으로 씨익 웃어주었다.


기대감으로 가득 찼던 그녀의 눈이 경멸과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각오는 하고 있었다.


그 뒤 미진이는 나를 미친 듯이 잡아 패기 시작했다.


마치 분풀이를 하는 것처럼 주먹과 손바닥 하나하나에 감정이 실려 있었다.


너무 아프고 죽을 것 같았지만, 나도 어금니를 꽉 깨물고 버텼다.


그렇게 얼마나 맞았을까 미진이는 지쳤는지 더 이상 때리지도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 때렸냐? 퉤... 무슨 물 주먹 마냥 푹신푹신하네."




내 코와 입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고, 두 눈은 밤탱이가 되어 있었지만, 그딴 건 상관없었다.


미진이는 이상한 향을 가져와 불을 켜고 향을 피웠다.




"이거까진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우리 얀붕이가 그렇게 맞고도 정신을 못 차리니 안 되겠어."



"시발... 그건 또 뭔데."



"이거? 아주 죽여주는 향이야. 오래 맡고 있으면 제정신이 아니게 되지."


"나쁘고 쾌락적인 감정들만 아마도 잔뜩 올라올걸? 신기한 경험일거야."


"아마 나한테 사랑한다고 해줄지도? 아아~ 생각만 해도 황홀해."



"이런 미친..."




그녀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몰라도 지금 그녀는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아니 애초에 나를 납치한 것부터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던 찰나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띵동-




이렇게 초인종 소리가 반가울 때가 없었다.


만약 나를 도우러 온 사람이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 기회를 틈타 도움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어디서 구했는지 내 입에 재갈을 물리고 씨익 웃으며 전기 충격기를 허리 뒤에 숨기고 유유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




"누구세요?~"




미진이는 평소의 친절한 목소리로 누구인지 물어봤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고 초인종만 일정 간격으로 계속 눌리고 있었다.


그녀는 현관문에 달린 렌즈 구멍에 눈을 대고 밖을 보려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씨 누가 전단지를 붙여놨나. 왜 안 보여 이건."




그러거나 말거나 초인종은 일정 간격으로 계속 눌리고 있었다.


밖에 있는 사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을 열기 전까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적당히 해야지. 누구신데 자꾸 초인종으로 장난치시는 거에요!"




미진이는 거칠게 문을 열었다.


물론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고정쇠를 해둔 상태였다.


문밖에는 동공이 축소된 채로 표정을 잔뜩 찡그리고 있는 아이샤가 있었다.


그녀는 미진이가 문을 열자마자 발을 문틈에 집어넣고 들고 있던 볼트 커터로 고정쇠를 잘라버렸다.




"나다. 씨발 년아..."


"얀붕이... 여기 있지? 너한테서 얀붕이의 향수 냄새가 나네? 제대로 찾아와서 다행이다."


"넌 얀붕이를 건들면 안 됐어."




미진이는 전기 충격기까지 챙겨왔지만, 문이 열리자마자 고정쇠를 잘라버리는 아이샤의 기행에 당황을 금치 못하고 그저 보고만 있었다.



그녀가 현관까지 들어와서야 미진이는 정신을 차리고 전기 충격기를 꺼내 들며 그녀를 위협했다.




"씨...씨발. 너 여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당장 나가! 안 나가면, 좋은 꼴 못 볼 거야."




하지만 아이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멍하니 미진이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미진이의 양쪽 손목을 꺾어 전기 충격기를 땅에 떨구어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내 손목!!!!! 아파!!"



"조용히 해라. 쌍년아."




아이샤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손목이 꺾여 울부짖는 미진이의 배에 주먹을 쌔게 날렸다.




"커헉!"




미진이는 그녀의 일격에 침까지 튀어나오며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 전기 충격기는 왜 들고 다니는 거야? 실제로 사람을 지져는 봤을까나... 히힛."


"그나저나 약간 시끄럽네. 일단 들어가서 문부터 닫고 천천히 얘기할까?"




아이샤는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다시 잠그고 초점이 없는 눈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미진이를 내려다보았다.


혹시나 모르니 그녀가 들고 왔던 식칼은 멀리 차버렸다.



아이샤는 헐레벌떡 얀붕이부터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방에 묶여있던 얀붕이를 발견했다.


그녀가 보기에 꽤나 얀붕이의 몰골은 꽤나 처참했다.



"야...얀붕아... 으아아앙... 얀붕아 미안해..."


"얼마나 아팠을까..."



"아이샤? 어떻게 온거야...흑..."




그녀가 나의 구속들을 풀어주었고, 나는 그녀의 품에 안겨 잠시 울었다.




"울지마아... 얀붕아. 내가 왔잖아."



"응... 정말로 고마워. 진짜 죽는 줄 알았어."



"후... 얀붕아 잠시 침대에 앉아서 기다려줄래?"



"뭐할려고?"



"그 쌍년 데리고 와야지. 얀붕이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용서 못 해."




그렇게 아이샤는 밖으로 나가더니 미진이의 머리채를 잡고 방으로 끌고 왔다.




"아파!!!꺄약!!! 머리 놓으라고!!"



"닥쳐. 너 때문에 우리 얀붕이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아이샤는 미진이를 내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히고 철저히 몸을 구속했다.




"얀붕이의 소중한 침이 니년 입구멍에 들어가면 안되니까 잘 닦아서 물려줄게~."



"싫어!!!"




아이샤는 미진이의 입에 아까까지 내가 물고 있던 재갈을 깨끗이 닦아서 물렸다.




"읍읍!!!"



"가만히 있어 이 개같은 년아. 너도 똑같이 당해봐야 해. 감히 얀붕이를 건드려?"



"저기. 아이샤 설마 때릴 건 아니지?"


"때리면 우리도 똑같은 놈이 되는 거야."



'칫... 얀붕이가 이러면 어쩔 수 없잖아... 대충 손보다가 얀붕이먼저 집에 보내고 마지막에 눈깔까지 파버리려고 했는데...'


"얀붕아. 그러면 다른 방법으로는 복수해도 되지?"



"어... 때리는 거나 그런 것만 아니면 돼."



"그럼. 야...얀붕아 나 이쪽으로 넘어와서는 아직 한 번도 안 한 거 알지..."



"야... 설마... 그래도 그건 집에서 둘이 분위기 좋게 하고 싶은데..."



"이 년 앞에서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내 첫 경험으로."


"얘 첫 경험 기억이 그렇게 끔찍하게 트라우마로 남았데..."


"하지만 나는 얀붕이덕에 너무 행복했었어. 그러니까 여기서 하면 최고의 복수가 될 것 같은데."


"해줄거지...? 나 정말 부끄러워. 하지만 얀붕이가 거절하면 그건 더 내 마음이 아플 것 같아."




아이샤는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정보들로 그녀의 아픈 곳들만 찔러 말했다.


나름 괜찮은 복수이기도 했고, 차마 아이샤가 마음이 아플 것 같다고 해버리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도 부끄럽지만... 너가 마음이 아픈것 보단 낫지. 기다려."




나는 대충 수건 몇 장이랑 미진이 방의 서랍을 뒤져서 콘돔을 찾아냈다.


나를 분명 어떻게 해보려고 작정했기 때문에 어딘가에 콘돔이 있을 것 같긴 했다.


미진이는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그저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샤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히고 편안한 자세로 있게끔 해주었다.




"얀붕아. 저년 의자 가까이 땅겨와 주면 좋겠어..."



"알겠어."




미진이가 구속돼 있는 의자를 우리 침대 옆으로 조금 바싹 땅겨왔다.




"너가 자초한 일이야 미진아."




그녀는 계속 읍 읍 거리며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야... 얀붕아 상냥하게 부탁해에..."




"늘 하던 대로 할 테니까... 아프면 말해 알겠지?"




"얀붕이랑하면 거의 안아파... 왠지 모르게 너무 기뻐서."



"그 예상치 못한 관객이 생기긴 했는데 어쨌든."


"부끄럽지만 옷 벗길게."




나는 천천히 아이샤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뽀얀 속살이 드러났고 나는 손으로는 가슴을 애무하며 키스를 시작했다.




"하앙...츄릅... 너무 오랜만이야 얀붕이의 손길... 하앙..."



"아이샤의 몸 항상 느끼지만 정말 매력적이야."



"흣... 그런 말 하면... 하읏..."




아이샤의 몸이 점점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가슴을 애무하던 손을 그녀의 아랫배 쪽으로 살며시 내렸다.


그리고 그녀의 제일 민감한 부분을 만지기 시작했다.




"아흐흐흣❤!! 하아..."



"아이샤 오늘따라 더 민감한데?"



"흐으으응... 몰라아아... 정시니 이사해..."


"야...얀붕아아... 이..이제 너어져... 아랫배가 큥큥거려...❤ 못참게써..."




나는 콘돔을 끼우기 위해 서랍으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아이샤가 냅다 콘돔을 방 밖으로 던져버렸다.




"오느른 괜찮으니까아... 처음은 생으로... 부탁해에... 얀붕이라면 나 괜차나..."




나는 조금 걱정됐지만 저런 말을 하면 아무리 이성을 붙잡아도 참을 수 없었다.


아이샤는 충분히 전희를 즐겼는지 노골적으로 내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도 왠지 모르게 어떤 위화감과 흥분감이 같이 들면서 내 것을 그녀의 질에 천천히 삽입했다.




"끄흐흑... 아파아..."



"괜찮아? 많이 아파?"



"사실 괜차나... 얀붕아 안아져..."




나는 그녀의 질에 삽입한 채로 움직이지 않고 그녀가 통증에 익숙해질 때까지 안아주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미진이를 살짝 쳐다봤는데, 그녀는 울고 있었다.


미진이의 우는 모습을 본 바람에 살짝 불끈함이 사그라질 뻔했지만, 아이샤의 질이 나를 강하게 조이면서 풀어주지 않았다.

 



"이얀붕... 어디 보는 거야?"



"미안... 무심코 고개가 돌아갔어."



"나한테 집중해줘... 알겠지?"


"너는 오직 나만 바라봐야 해..."




아이샤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자기쪽으로 돌렸다.


그녀의 눈빛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른 눈빛이였다.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고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 공허해 보였다. 무언가 약에 취한 눈빛이었다.


그래도 일단 나는 슬슬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으응❤ 하읏❤ 히끅❤"


"하응❤ 너무 기분 조아아아... 얀붕이꺼... 내 가장 깊수칸 곳에... 큥큥하고 다아... 하읏!❤."



"아...아이샤 그렇게 조이면 나 한계야 윽..."



"하응❤ 갈 것 가타... 가치.. 얀붕아 가치 가자아... 내 아네 가득 싸줘. 하으으응❤"



"안에다... 쌀게."




나는 마지막으로 허리를 길게 뺏다가 한 번에 다시 앞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잔뜩 쌓여있던 정액을 그녀의 가장 깊숙한 곳에 모두 사정해버렸다.




"하으으으응❤!!!!!!!! 이끅❤!!!!!!! 하앙❤!!!!!!!"




아이샤는 절정에 다다랐는지 허리를 엄청나게 튕기며 자지러졌다.



"하아...❤ 하아...❤ 얀붕아아... ❤하아...❤ 사랑해에...❤"



"나도 아이샤 사랑해."



나는 그녀를 꼭 안은 채로 몇 분간 엎어져 있었다.



"얀붕아... 한 번 더 하자아."



"안 힘들어 아이샤?"



나는 아이샤의 질 입구를 휴지로 깨끗이 닦아주고 있었다.



"이제 괜찮아졌어. 한 번 더해."


"대신 이번에는 내가 원하는 자세로 해."



"그래 알겠어."



아이샤가 꽤 당돌해졌다. 나한테 자세까지 요구하다니.


그런데 꽤 부끄러운 자세를 요구했다. 미진이의 앞에서 아이샤의 모든 곳이 훤히 보이는 자세를 원했다.


내가 아이샤의 두 허벅지를 잡은 채로 아이샤는 미진이를 보고 하는 그런 체위였다.



"저년한테도 보여줘야지."



"굳이 그러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닥치고 박기나 해."



"네..."




미진이는 우리가 관계를 맺는 동안 두 눈 뜨고 그것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첫 경험이 저렇게 아프지 않고 기분 좋을 수 있다니.'


'나는 저렇게 절정까지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았는데...'


'아무도 괜찮냐고 물어봐주지도 않고, 안아주지도 않았는데...'


'아... 아...이게 다 얀붕이를 버려서야... 내가 그때 얀붕이를 버리지 않았다면...'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흑... 흑...'




미진이는 그들이 관계가 너무나 행복해 보이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중간중간 아이샤가 그녀를 쳐다보면서 섬뜩한 미소를 지을 때마다 그녀에게서 무언가 공포심이 느껴졌다.




"하으으응❤!!!!!"




아이샤와 나는 또 한 번 절정을 맞이했다.


아이샤의 음부에서는 엄청난 양의 조수가 쏟아져 나왔고, 미진이의 얼굴을 흠뻑 적셨다.


미진이는 이제 정신이 나간 것 같이 멍하니 앞만 보고 있었다.




나는 뿌리까지 뽑힐 것 같았기에 이제는 더 이상 무리라고 생각했다.


너무 오래간만이기도 했고, 이상하게 감정이 조금 고양돼 있었다.


아이샤는 내 앞으로 자지러져 의자에 묶여 있는 미진이한테 기대어 있었다.




"우리 섹스하는 거 어땠어? 기분 좋아 보이지? 네가 이때까지 해 온 더러운 섹스와는 차원이 다른 행복해 보이는 섹스지?"


"나 말이야 솔직히 너한테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




아이샤는 해맑게 웃으면서 미진이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네가 얀붕이한테 상처를 주지 않았다면, 네가 그를 가지고 놀지 않았다면 나는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까."


"영원히 혼자 외로움에 찌들어 살다가 쓸쓸히 혼자 죽었겠지."


"그런데 네년은 얀붕이의 진짜 매력을 모르고, 그저 외모만 추구하다가 이 꼴이 났잖아? 히힛"


"콧대 높은 우리 미진씨한테 정말 걸맞은 엔딩인걸."


"원래는 얀붕이한테 한 짓의 몇 배는 되갚아 주려고 했는데, 얀붕이가 그것만큼은 하지 말라고 해서."


"그런데... 이런 것도 재밌네? 우리 미진씨 어제 학교에서 보여주었던 기고만장한 표정은 어디가고 넋이 나갔네~"


"아 참 이걸 물고 있으면 말을 못하는구나?"




아이샤는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는 미진이한테서 재갈을 풀어주었다.




"아으아아아악!!!!!!"



"깜작아! 이런... 실성해버렸네?"




미진이는 계속해서 몰려오는 아이샤의 정신 공격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정신을 놓아버렸다.


그저 그때 얀붕이를 가지고 놀고 금태양 선배한테 가버린 자신을 계속 원망만 했다.




"지금 분명 후회하면서 '원래 내 자리가 네 자리였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뻔해, 뻔해. 그런데 어쩌나.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럴 일은 없.을.걸~."




나는 이미 실성해버린 미진이가 조금 안타까워졌다.


분명 아까까지 나를 때린 분노에 그녀를 용서할 수 없었는데, 왠지 모르게 너무 불쌍해 보였다.


아마도 지금은 안전하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저기 아이샤 이제 그만해... 미진이도 불쌍한 친구야."



"얀붕아... 좀 닥치고 있어. 네가 그래서 문제야. 네가 그렇게 모두한테 잘해주니까 이런 년들이 기어오르는 거 아냐."


"누구 때문에 내가 지금 이러는지 몰라?"



"아... 응... 미안..."



나는 순간적으로 돌변한 아이샤에게 주눅이 들었다.


평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방을 둘러보다 아직까지 타고 있는 향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저 향 때문에 내 기분이 고양돼있고, 그녀가 극도로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왜 비교적 괜찮은 거지. 어쨌든 일단 창문부터 열어야겠다.'




나는 황급히 창문을 열고 방을 환기했다. 


그래도 아이샤는 아직 흥분해 있었는지 결국 미진이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가 무슨 짓을 더 벌일지 몰랐기에 일단 진정시키려고 했다.


더 이상 폭주하는 것은 그녀에게도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나는 그녀의 등 뒤에서 살포시 그녀를 안아주었다.




"아이샤 이제 괜찮아. 이제 이 년도 우리 절대 건드릴 생각 못 할 걸? 이제 그만해도 괜찮아. 더 이상 힘들게 그러지 마."




그러자 아이샤가 천천히 뒤로 돌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뒤를 도는 순간 날아오는 그녀의 손에 오른쪽 뺨을 또 내주고 말았다.



미진이에게 꽤나 맞았기 때문에 뺨이 얼얼함을 넘어 쓰라렸다. 


여자애들은 뺨 때리는 것을 진짜 좋아하나 보다.




"이얀붕. 내가 닥치라고 했지. 너도 내 말이 우스워? 오냐오냐 좋다고 해주니까 내가 우스우냐고!"


"진짜 진절머리난다 너도... 나 갈래. 오든 말든 알아서 해!"



"아이샤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는 아이샤는 쾅하는 소리와 함께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뭔가 죄지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에휴, 미진아 왜 이런 향까지 가져와서.'




나는 미진이를 구속하던 것들을 모두 풀어주고 침대에 눕혀준 뒤 피 묻은 수건이랑 여러 가지 흔적들을 지우고 문을 잘 닫아주고 나왔다. 


미진이의 눈은 초점이 나갔고, 입으로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이상한 소리만 내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었으니 그녀는 이제 우리를 찾지 않을 것이다. 


아마 정신이 망가졌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은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날씨도 초봄이라 쌀쌀한 게 마음까지 시려왔다.


뺨도 1년 치는 몰아서 맞은 것 같다. 


해가 점점 지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코가 맹맹하니 감기 기운이 스멀스멀 오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샤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자고 있었다. 


아마 온종일 나를 찾으러 돌아다녔을 테니 많이 피곤했을 것이다. 


나는 이불을 다시 잘 덮어주고 침대 가장자리에 걸쳐 앉았다.




"미안. 아이샤. 오늘 고생 많았어. 내가 많이 부족해서 항상 미안해."




나는 곤히 잠든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고 쓸쓸한 마음에 술이나 마실 겸 혼자 자주 가는 주점에 가기 위해 집에서 나왔다.


피곤하긴 했지만, 정신은 너무 멀쩡해서 술을 좀 마시고 잠들면 푹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절친인 얀돌이가 생각나서 그에게 전화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이샤한테서 왔었던 톡은 이미 999+가 되었었고, 전화도 수백 통 가까이 쌓여있었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시간을 확인해보니 얼추 그녀가 나를 찾았을 때였다. 그녀는 그때까지 나한테 전화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


스마트폰의 전원이 얼마 없었지만, 딱히 연락 올 사람도 없고, 아이샤도 자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그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얀돌이는 술 한잔 하자는 말에 흔쾌히 내가 있는 곳까지 와주었다.




"와. 너 얼굴이 왜 그러냐? 여친이랑 싸움? 너 성격상 그냥 얻어 맞았나 보네."



"아이샤는 나를 때리지 않아. 얼마나 착한데. 그리고 걔랑 싸운 것도 아니고. 다른 이유야."



"고딩 때 쌈박질도 안 하고 화 한번 안 냈던 네가 이런 얼굴 된 거 보니까 좀 그러네. 술 말고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



"소름 돋게 걱정하지 마라. 나는 괜찮아."


"빨리 니 술안주나 시켜. 오글거리니까."



"에휴 병신 새끼. 예나 지금이나 순해 빠져가지고, 어쨌든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 오늘은 네가 쏘는 거다?"



"그래 그래~. 네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드세요~."



얀돌이와 오랜만에 만나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재밌게 나눴다.


슬슬 둘 다 취기가 올라와 돌아가려고 밖으로 나오니 벌써 주위가 깜깜해져 있었다.


나는 얀돌이를 지하철역까지 배웅해준 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방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샤가 울면서 뛰쳐나왔다.


언제부터 울었는지는 몰라도 이미 눈은 팅팅 부어있었고, 얼굴은 눈 주위는 벌게져 있었다.



"으아아앙! 얀붕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흐흑. 진짜 진심으로 그런 거 아니야. 흐아아앙!!!"


"나를 버리지 말아줘 미안해... 흑... 얼마나 아팠을까.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내가 죽을 짓 했어. 제발 떠나지 말아줘."


"얀붕이는 절대 부족하지 않아. 오히려 나한테 과분해. 제발... 나 진짜 얀붕이 없으면 못살아. 으아아앙."




아이샤는 온 힘을 담아 내 다리에 매달려 있었다.




"아이샤... 괜찮아. 갑자기 무슨 일이야. 언제나 말하지만 너 두고 가지 않는다니까."



"훌쩍... 전화도 안 받고, 너무 불안했어. 충분히 얀붕이가 마음이 식을 만한 짓을 저질렀으니까... 꺼흑..." 


"한참을 나가서 찾았는데도 안보여서. 훌쩍..."


"얀붕이가 짐 챙기러 올 때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 흡... 정말 미안해..."




나는 아이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이내 주저앉아 있던 그녀를 번쩍 들어 안아주었다.




"미안해. 잠시 친구 만나서 술 마시고 왔어. 하루 종일 충전을 못 해서 그런가, 배터리가 나갔더라고."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분명 자는 거 보고 나갔는데."



"자다가 깼는데, 얀붕이는 집에 없고, 머리가 너무 아파서 물 마시는데, 그때 다 기억나버렸어. 내가 한 짓들." 


"아픈 얀붕이한테 몹쓸 말 하고, 욕하고, 뺨까지 때렸으니... 얀붕이는 그저 내가 폭주할까 봐 걱정해서 해준 말이었는데, 마음속에 있지도 않은 말을 해버리고..."


"어떻게든 오해를 풀어보려고 전화를 해봐도 전화기는 꺼져있고, 전화기가 꺼져있으니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어. 흑... 나 버리는 거 아니지...?"



"으이구. 나도 미안해. 어제처럼 쪽지라도 남기고 갈 것 그랬네."


"절대 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고. 얼른 들어가서 다시 자. 피곤하잖아."



"싫어! 얀붕이랑 같이 잘 거야."



"나 씻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그럼 침대에서라도 편히 누워있어."



아이샤는 그런데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또 나 혼자 두고 어디 안 갈 거지...? 오늘은 정말 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



"어으. 그만해. 괜찮다니까 자꾸 그래. 나도 이제 피곤해서 씻고 바로 자러 갈 거야. 얼른 가서 쉬고 있어."



"웅... 알겠어."




나는 겨우겨우 아이샤를 진정시키고 옷부터 갈아입었다.




아이샤는 그래도 불안했는지 초롱초롱한 눈을 계속 뜬 채로 불안한 눈빛을 보내며 침대에 누워 얀붕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샤워를 하고 있을 동안에도 그녀는 그 자세 그대로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얀붕이가 오랫동안 보이질 않자,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고 점점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일어나보려 했으나 왜인지 힘이 쭉 빠져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까 전까지 계속 울었던 것 때문에 탈진이 온 듯했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기에 전혀 그 사실을 몰랐다.




"얀붕아... 어딨어... 왜 이렇게 안 와... 흑..."




아이샤의 울먹이는 소리에 그제야 머리를 말리는 것을 그만두고 옷을 입은 뒤 안방으로 바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아이샤."



"야...얀붕이다. 헤헤..."




아이샤는 힘없이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왜 울고 있는 거야. 바보야."




나는 아이샤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얀붕이랑 같이 자야하는데... 얀붕이가 너무 안 와서... 찾으러 가려 했는데 힘이 안 들어가서 못 일어나겠어."


"이대로 얀붕이를 또 놓칠까 봐... 흐흑..."



"후... 괜찮다니까. 이렇게 옆에 왔잖아."



"미안해... 걱정... 끼쳤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우는데 걱정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무리해서 움직이지 마. 어디 안 도망가니까."



"히히... 얀붕이 상냥해... 자꾸 이래서 미안해..."




아이샤는 뭐가 이렇게 미안한 게 많은지. 이젠 조금 걱정된다.


나랑 관련만 되면 득달같이 달려들거나, 나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틀어졌다 싶으면 매달려온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지만, 그만큼 나를 사랑한다는 걸 잘 알기에 더더욱 그녀를 신경 쓰게 된다.




"이런 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어휴 바보야."




나는 답답한 마음에 침대에 들어가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치만... 그치만..."



"괜찮아. 만약 진짜 내가 화가 나면 그 전에 너한테 얘기하지 않을까? 아니, 꼭 얘기할 테니까 아이샤도 불안하거나 그러면 나한테 얘기해."


"내가 고칠 수 있는 부분은 고치도록 노력할게. 나는 아이샤가 불안해하지 않고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어."



"흐... 흐흑... 고마워 얀붕아. 꼭 얘기할게. 고마워. 정말로 사랑해 얀붕아."



"나도 아이샤. 우리 이렇게 잘까?"



"응! 너무 좋아. 얀붕이 품 너무 따뜻해."


"아! 그... 그 전에."




아이샤는 언제 준비했는지 연고를 서랍장 속에서 꺼냈다.




"많이 아팠지? 미안해..."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내 얼굴에 난 상처들에 연고를 발라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맞으면서도 나를 사랑한다고 해줘서 고마워 얀붕아..."



"뭘 그런 거 가지고.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그리고 어떻게 미진이 집을 찾아온거야??"




순간적으로 아이샤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어... 아~ 왠지 얀붕이는 그럴 것 같아서 말이야."


"분명 그 지독한 년이 자기를 사랑한다 말하라고 협박하지 않았을까 해서."


"얀붕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으니까..."


"미진이 집은 그... 스마트폰 커플 앱 위치 추적으로 대략적인 위치를 찾고, 아파트 주민이 문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가서 우편함 뒤졌어."


"미안해... 하지만 그렇게 안하면 얀붕이를 영영 잃어버릴 것 같았어."


"얀붕아... 정말 사랑하는 거 알지? 나는 너만 있으면 항상 행복해. 그러니 언제나 옆에 있을 테니 얀붕이도 내 옆에 있어 줘. 집착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언제나 너만을 사랑해 얀붕아."




아이샤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품에 안겨버렸다.




"그래~. 나도 아이샤만을 사랑해. 하암... 이제 슬슬 자자."




아이샤가 말을 돌린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그만큼 나를 믿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같은 말을 다른 식으로 반복해서 하는 그녀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런 그녀가 싫지 않다. 


아마도 그녀가 나를 싫어하기 전까진 헤어질 일은 없지 않을 것 같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었지만 이렇게 껴안고 있으니 통증마저 모를 정도로 행복했다.


이렇게 그녀와 나의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하루가 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