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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재벌집 손녀딸

굴지의 대기업 J 그룹 회장의 손녀딸인 주다인은 어린 시절부터 여러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그룹을 이을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 중 가장 총명하고 지혜로운 아이였고, 회장은 그런 주다인을 이뻐했거든요.
그렇지만 세상 모든 자리가 그렇듯 내정자가 정해져있다고 기어오르지 않는 이들은 없었죠. 그녀의 형제자매들은 시도때도 없이 그녀가 휘청한다면 자리를 빼았기 위해 기어올라왔고,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정치질과 암투, 여러 더러운 짓거리들을 누군가를 통해 저지르거나 때론 자신의 손으로 저지르기도 하며 자라왔습니다. 독한 성격과 냉혹한 실력행사, 자신의 것에 대한 강한 집착은 그것들에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겠죠.

그래서일까요? 그녀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던, 매우 순수해보이는 인상의 당신에게 말을 건냅니다. 당신은 상대에게 그리 재미를 주는 사람은 아니였지만, 그녀는 무언가 관심이라도 생긴 것인지 당신의 번호를 따갔습니다. 당신은 그저 모르는 예쁜 여자에게 번호 따였다는 것에 헬렐레 하고 있었겠지만요.

그녀와의 대화는 무척 재밌었기에, 당신과 그녀의 대화 시간은 점점 길어졌습니다. 카톡으로, 전화로, 가끔은 직접 만나서 데이트하듯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말을 나누기도 했죠.

당신은 매우 순수했기에 이것이 어떤 것을 뜻하는 것인지는 잘 몰랐지만, 그녀가 당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라는건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난한 자신과는 다르게 항상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들과 브랜드 이름만으로도 손이 벌벌 떨리는 시계를 차고 나오는 그녀가 자신과 대화를 나눠준다는 것은 그녀의 호의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니까요.

처음은 그저 신기함, 익숙해지니 즐거움, 그리고 즐거움은 차차 궁금함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쁘고 완벽해보이는 여자가 왜 자신한테 관심을 가지는 것인지 말이죠.

그리고 그때 즈음부터, 아니 사실은 조금 이전에, 얀붕이가 몸에 명품을 두르고 다니는 여자를 만나고 다닌다는 것이 대학교에 퍼집니다. 그의 친구들은 신경쓰지 말라 하지만, 가끔가다 들리는 이상한 질투나 험담에 대해 당신은 신경을 끌 수 없었습니다.

제비라느니, 아니다 몸파는거다, 얀붕이 생긴건 반반하길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가난한 놈이 빌붙어서 뭐라도 빼먹어 보려고 그 여자 만나는거 아니냐 등 말이죠.

최근에 생긴 얀붕이가 주다인에 대해 생긴 궁금증은 의문을 향했고, 이제는 다른 이들이 맘대로 안줏거리로 씹기 위해 만들어진 프레임이 얀붕이의 머리를 덮쳤으며, '혹시나 내가 주다인씨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닿아버립니다.

얀붕이는 가난했지만 편의점 알바를 계속해 돈을 벌어서 학비를 벌고 자취를 하며 공부했고, 올바른 성정을 지니고 있었기에 좋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의 흥밋거리에 올라버린 탓에 결국은 망가져버리고 만 겁니다.

결국 당신은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버리고 맙니다.  내가 너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는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라고 보내면 좀 그러니까, 여자친구가 생겼는데 다른 여자하고 연락하는걸 맘에 안들어한다. 이제 연락 자주 못할것 같다. 미안하다. 로 바꿔서요.

당연하지만 당신에게 여자친구는 없었습니다. 그저 변명에 불과했을 뿐이였죠.

주다인은 당신에게 메시지를 받고, 화를 내지도, 당황하지도,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어떤 것들이 자신의 것을 건드렸는지, 그것만이 중요할 뿐이였죠.

그저 순수한 아이같은 사람이기에 흥미가 간 것이였는데, 어느새 당신은 그녀의 마음 속에 들어가있던 모양이였나 봅니다.

당신을 씹었던 이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휴학을 했다고도 하죠. 소문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상태로요.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죠.

어느 때와 같이 편의점으로 출근해서 조끼를 입고 카운터에 선 당신에게, 누군가 다가와서 말을 겁니다.

"번호좀 주실 수 있나요?"
하고요.






2.소꿉친구
이수현은 당신의 찐친, 찐절친, 절친,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베스트 프렌즈이자 영혼의 동반자입니다. 비록 성별은 다르지만, 당신은 이수현을 위해서라면 불알 하나정도는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유치원때는 함께 모래성을 쌓았고, 초등학교때는 함께 축구를 했으며, 이수현이 여중여고로 진학한 뒤에도 둘은 방과후에 함께 놀았습니다. 이수현은 조금 성깔있는 사람이라 당신이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요.

그러다 어느날 당신은 고백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이수현에게 들키고, 상담하죠.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받아줘야하냐 말아야하냐.

그런데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조금 달랐습니다. 시원시원하고, 나쁘게 말하면 남자같고 좋게 말하면 여장부같은 모습이 아니라, 마치 자신이 오랫동안 먹기위해 숨겨놓은 맛있는 음식을 들킨 어린아이같았죠.

사실 그녀는 오랜 시간 당신을 좋아했습니다. 그저 어린 아이인 유치원 때부터, 사랑이라는 감정을 궁금해하고 알기 시작한 중학생을 지나,  이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두 자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만들고 정리하는 지금도 말이죠.

그러나 혹시라도 내가 고백해서 둘의 관계가 어그러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결국 고백은 하지 못했지만, 그녀가 당신에게 품어온 연정의 기간만 합치더라도 강산이 두번 변하는 시간을 뛰어넘을 것입니다. 강산을 두번 바뀌게하는 사랑이라니, 로맨틱하지 않나요?

결국 그녀의 탓에 둘은 조금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고, 며칠 뒤 당신은 자던 중 난데없이 가위가 눌리는 듯 숨을 쉬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뜨니, 당신은 자신의 침대에 사지가 묶여서는 숨쉬기 힘들정도로 목줄까지 묶여있는 상태라는걸 깨달아버립니다. 가위가 눌렸다고 생각한건 이것때문이였나? 뭐 그런 생각을 할 시간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패닉에 빠져서 고개와 사지를 이리저리 흔들며 소리를 질러댔죠. 구해주세요,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등등.

그리고 그런 짓거리도 힘이 빠져 멈춰갈 때 쯤, 어두운 방 안에도 빛이 들어옵니다. 방문이 열린 것이였죠.

여기까지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범인은 이수현이였습니다.

그녀는 정말로 행복해보이는 표정으로, 빛이 가득차 생기가 넘치는 눈으로 당신의 위에 올라타 셔츠 단추를 풀며 말합니다.

"이제 쭉 여기서 살자."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