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챈 발견 기념으로 올려볼게.



우리 가족은 내가 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

버지니아 주로.


난 거기서 지금까지 20년째 살고 있는데,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여자애가 있었음.


같은 한국인이라 동질감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유치원 때부터 친해져서 초, 중,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니면서 컸음.


근데 중학교 졸업할 때 쯤 되니까 얘가 엄청 예뻐지더라고. 솔직히 그때부터 걔를 짝사랑하는 마음을 품었었음.


그런데 내가 그때쯤에 한창 오타쿠 짓을 하면서 살 때라서, 살이 엄청...은 아니고 조금 쪄 있었음.(160cm에 62kg 정도로.)


그래서 괜히 외모에 자신감도 없고, 괜히 고백했다가 친구 관계도 잃을까 봐 고백을 못 했음.


그때부터 괜히 외모에 신경 쓰기 시작했던 것 같음, 운동도 하고, 얼굴 관리도 하면서, 내가 좀 나아지면 걔도 나를 친구 이상으로 봐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말이지.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끝나갈 때 쯤에는 살 완전히 빠지고 키도 좀 커서 자신감이 좀 붙었다 싶었는데, 그때쯤에 걔가 운동하는 애랑 사귄다는 소문이 들리더라고. 


미국 학교는 약간 운동 잘하는 애들이 인싸인 분위기가 있는데(미국 하이틴 드라마 같은 거 보면 나오는데, 과장 섞이긴 했어도 비슷함.), 난 그때 학교에서 위치가 그냥 평범한 편이었음. 운동을 그리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그다지 잘하는 것도 아니고...그래서 아, 끝났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좀 속을 많이 썩혔음. 괜히 걔랑도 거리 두고...그런데, 며칠도 안 돼서 걔가 나한테 직접 말하더라고. 둘이 안 사귄다고, 그냥 소문이라고.


나는 그냥 안심하고 걔랑 다시 친하게 지냈는데, 한 몇 달쯤 지나서 안 건데 걔 소문이 좀 안 좋게 났던 거였더라고. 


걔도 막 학교에서 인싸 정도는 아니고 걍 친하게 지내는 애들 몇 있는 평범한 애였는데, 소문이 그렇게 나서 친구들 다 떨어져 나갔더라고. 난 걔랑 다른 반이기도 하고 같은 과목을 많이 안 들어서 그걸 몰랐던 거야.(한국으로 치면 걔는 이과생이었고, 나는 문과생이었음.)


그런 소문 도는데 내가 걔랑 말도 잘 안 섞어서 나도 그 소문을 믿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서 나한테 말을 먼저 걸었던 거야. 워낙 내성적인 애라 참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그거 알고 나서 괜히 미안해져서 뭘 많이 챙겨주고 함. 그래도 다행히 3학년 때는 같은 반이더라고. 그래서 걔랑 많이 붙어 다녔음.


4학년 때는 걔나 나나 대학교 가는 게 목표라 열심히 공부만 했긴 했지만, 그래도 친하게 지내기는 했음. 그렇게 2년 내내 미안해서 고백 각도 안 보고 있었는데, 6월인가 5월 쯤에 대학교도 붙고 졸업도 해서 여유로운 참에 나랑 걔 가족끼리 뉴욕으로 여행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음. 나랑 걔는 당연히 좋다고 하고 같이 갔어.


근데 그때 생각난 게, 지금 아니면 고백할 기회가 없겠구나, 이거였어. 걔는 UC 버클리에 붙었고, 나는 그냥 가까운 버지니아 대학교를 붙었거든. 둘이 미국 서부/동부 양 끝에 위치해 있어서, 이젠 정말 만날 기회가 없겠구나 싶었던 거야.


그래서 가족 여행 간 둘째 날에 센트럴 파크에서 걔랑 밤 산책 나갔을 때 벤치에 앉아서 고백해버렸음. 계획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빈손으로 뭔 무드도 없이 걍 니가 좋다, 이런 식으로 말해버려서 ㅈ됐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음.


근데 얘 반응이 나쁘지 않은 거야. 막 얼굴 빨개지고,  입은 웃고 있고.


어? 혹시 성공했나? 이런 생각 하고 있는데 걔가 내 손을 딱 잡더라.


평소엔 걍 아무런 생각 없이 잡았는데(좋아하긴 했어도 걍 어릴 때부터 친했으니까.), 그날은 왠지 느낌이 다르더라고.


걔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로 깍지를 끼는데, 심장이 엄청 두근거렸어.


"좀 일찍 말하지."


걔가 그렇게 말했을 때는 잠시 심장이 철렁했는데, 걔가 내 어깨에 머리를 딱 기대면서 "나도." 이렇게 말한 순간 안심이 되면서 심장이 엄청 뛰더라고.


그렇게 우린 커플이 됐어. 견우와 직녀마냥 평소에는 미국 동/서부 양 끝에 있지만,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만나러 가곤 했지.


근데...2020년...코로나...씨발것때문에 작년에는 2월 이후로는 얼굴을 직접 보질 못했어. 올해는 걔가 다시 버지니아 쪽으로 와서 다시 직접 마주볼 수 있어서 너무 좋더라.


작년 7월 쯤에 얘가 나한테 울면서 전화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미국 내 인종차별 심해졌던 거 알지? 그거 당해서 울면서 전화한 거였더라고. 마음이 찢어지더라.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함부로 갔다가는 진짜 위험하니까...그날 밤새도록 통화하면서 달래줬어.


그래도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지난 1년을 잘 버텨냈고, 걔나 나나 1년 정도 뒤에는 졸업이니까 졸업하자마자 동거할 생각이야. 결혼은 모아둔 돈도 없어서 아직 모르겠지만, 아마 서로 잘 맞는다면 결국엔 하게 되겠지?


쭉 같이 있게 될 그날이 참 기다려진다.



비추 달게 받을게, 노잼 썰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