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제국의 겨울은 아주 추웠다.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북풍이 몰아닥친 어느 날이었다.


"…멈추어라."


  소녀가 말했다.


  마차 안에서 나지막히 말한 소녀는 잦아드는 말발굽 소리가 먹먹해지자 사뿐히 마차 밖으로 내려왔다.


"……."


  하얀 빛 카페트 위로 소녀의 발자국이 아로새겨졌다.


  소녀의 치렁거리는 금발 위로 뿌려진 하얀 빛깔 눈송이들은 소녀의 차가운 분위기와도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자박자박거리는 발걸음이 멈춘 곳은, 빈민가로 이어지는 어둑어둑한 골목길의 입구.


  그곳엔 한 소년이 쓰러져 있었다.


  이미 두껍게 쌓인 눈덩이 밑에서 미동도 않는 소년은, 엎어진 채로 아무 말도 없이, 소녀를 바라보지도 못한 채로, 그저 엎드려만 있을 뿐이었다.


  소녀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황녀님, 이런 곳에 계시면 안 좋은 병이 옮을 수도 있사옵니다."


"놓아라."


  애써 만류하는 시종의 손을 뿌리치며 황녀가 소년의 목에 손가락을 짚었다.


  미미하게 맥동하는 동맥.


"이 추운 겨울에 살아는 있구나. 이런 길거리의 거지 녀석도."


"아이고, 황녀님. 어찌 이런 천한 녀석의 몸을 그 옥체로 만지신단 말입니까."


  시종들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소녀는 개의치 않는 기색이었다.


  소년이 살아있단 걸 확인한 소녀는 픽 김이 빠진 모양새였다.


"흥이 식었다."


  그리 말하곤 소녀는 자신의 말처럼, 그대로 뒤돌아 다시 마차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흥."


  그러다가 잠깐 멈칫하고 가만히 서더니, 무슨 변덕인지 천천히 몸을 돌려 다시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지나가듯 시종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바마마께 이번 생일 선물을 미뤄달라고 했었던가?"


"네, 그러셨었습니다."


  소녀의 망토가 나부꼈다.


  콱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하얀색 머리 위로 소녀의 발자국이 새겨졌다.


"그럼 그 선물을 오늘 받겠노라고 전해드리거라."


"…네?"


  대체 무슨 변덕이 불었던 걸까.


  어리둥절해 하는 시종들을 뒤로 한 채 소녀가 소년의 귀에 속삭였다.


"너는 이제부터 내 것이다. 알겠느냐?"


"……."


  물론 이미 반쯤 죽어가는 소년이 의식이 있을리는 없었다.


  소녀도 그것을 알고 있었던 지 대답을 기대한 눈치는 아니었으나, 대신 시종에게 시켜 땅바닥에 엎어진 그 소년을 질질 끌고 와 마차에 실으라고 명령하면서 마부에게,


"출발하라."


  라고 말하던 것이었다.




  라티느 제국은 대륙의 융성한 국가였다.


  위세는 막강해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댔음에도 제국은 대륙의 패자였고, 그들과 견줄 만한 국가는 대륙 어디에도 없었다.


  온 나라의 국경을 둘러친 두터운 성벽과 그 위에서 보초를 서는 잘 훈련된 군사들은 라티느 제국의 자랑이었으며, 어떤 국가도 함부로 이 성벽을 넘고자 하지 못했다.


  제국은 또한 부유했다.


  대륙의 모든 금화는 라티느 제국을 한 번씩은 꼭 거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라티느 제국은 부유했다.


  또한 라티느 제국이 발행하는 화폐는 대륙에서 공용 화폐에 가까울 정도여서 환전이 필요 없을 정도였으므로, 경제적으로도 그 위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라티느 제국의 모두가 유복한 것은 아니었다.


  돈이 몰린다면 돈이 부족한 곳도 있기 마련이었다.


  대륙에서 가장 찬란한 도시로 불리는 라티느 제국의 황도에도 빈민가는 있었다.


  번듯하고 밝게 빛나는 사암으로 포장된 황도의 거릿길.


  그 길을 시작으로 황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를 통로를 따라 몇백 걸음을 걸어나가면, 음침하고 어두운 황도의 뒷면이 나온다.


  그곳에서 셰인은 태어났다.


  몰락 귀족의 아들이었던 셰인은 경쟁 귀족에게 영지를 뺏겨 몰락한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났다.


  아버지는 어리석은 욕심을 부리다 자신의 영지마저 뺏기고 처절하게 무너진 패배자였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질려하면서도 못내 셰인을 불쌍히 여기던 것이 그나마 헤어지기 전 시절의 부모에게 가진 유일한 기억.


  어느 정도 셰인이 자기 앞가림을 할 줄 알 정도로 자라난 뒤엔 셰인의 어머니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였고, 그 때부터 셰인은 어릴 때부터 귀족의 예법 대신 뒷골목 왈패들의 욕지거리를 배우며 자라났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할 줄 아는 언어는 자신을 때리는 깡패들의 분노 섞인 욕설뿐. 어미 없이 생긴 이상한 놈이라며 손가락질 받는 셰인은 모두에게 버려진 뒷골목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이물異物이었다.


  뒷골목에선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을 처리하는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었다.


  셰인은 그것을 나이 여섯 살 때부터 알 수 있었다.


  어린 아이임에도 그들의 손속에는 여유 따윈 없었다.


  그렇게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간 밖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 절뚝절뚝 집으로 돌아오면, 만신창이가 된 셰인을 반겨주는 것은 술 취한 아버지의 무자비한 술병이었다.


  그게 일상이자 유년기부터 겪어온 기억 중 하나임을 아는 셰인은, 한 해가 지나가는 일곱 살이 되어서는 대항하길 포기한지 오래였다.


  셰인은 두들겨 맞는 샌드백이었다.


  가끔 때리는 사람이 아버지일 때도 있었고, 길을 가다 보이던 익숙한 얼굴의 깡패들일 때도 있었으나, 셰인이 구타당한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용케 맞는 부위가 머리가 아니었어서 셰인은 흔히 말하던 백치로 자라지는 않았다. 혹은 셰인이 본능적으로 급소는 맞으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맞는 부위를 교묘히 바꿔 급소만은 지켜내 그나마 성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정도는 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셰인의 몸이 우량한 것은 아니었다.


  먹는 것도 없으니 근육도 붙을 턱이 없고 매일 맞고 다니니 제정신을 붙드는 것도 셰인에겐 하나의 노동이었다.


  그렇게 셰인은 무뎌져 갔다.


  어릴 적부터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막연히 세상에 품어온 불만과 분노는 매일매일 이어지는 폭력과 모멸 속에서 천천히 마모되어가기만 했다.


  날카로운 칼날처럼 바짝 세워진 셰인의 독기는 사그라든 것이다. 하나의 치명적 균열이 간 상태로.


  하지만 이미 무뎌질대로 무뎌져 둥글게 마모된 셰인의 마음도 어딘가 뾰족한 곳은 있었던 것 같았다.


  어느 날, 셰인은 자신을 때리는 아버지의 목에 무심코 깨진 술병 파편을 꽂아버리고 말았다.


  친자식에게 하는 짓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게 폭력을 집행하던 그 사나이는 길거리의 비루한 강아지만도 못하게 맥없이 쓰러졌다.


  그렇게 허물어진 친아버지의 목에 셰인은 멈추지 않고 술병 파편을 쑤셔댔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셰인의 손에도 가차는 없었다. 다만 셰인의 아버지가 행한 폭력엔 온갖 감정이 버무려져 있었다면 아버지에게 행해진 셰인의 살인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는 게 차이점이었다.


  분수같이 쏟아지는 피를 보며, 셰인은 그 피가 평소 아버지가 드시던 와인 빛깔 같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사고 방식이 아니었다. 물론 셰인도 사람처럼 살지 못했다.


  바닥에 쓰러진 시체는 한때는 귀족이었고, 한때는 거지였으며, 한때는 패륜적인 아버지였던 중년 남성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그 흔적은 셰인이 살아오면서 본 몇 없는 것들 중에서 가장 초라했다.


  그리고 이제 패륜적인 아들이 된 셰인은 더 이상 자신의 삶에 아무런 보람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셰인은 뒷골목으로 나아가 자신을 때려대던 왈패들을 모조리 죽였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셰인이 그랬던 것처럼 목에 술병 파편을 깊숙히 꽂아서.


  잠깐 보람은 느껴졌다. 만취한 왈패들이 마시던 와인 병이 깨져서 내용물이 질질 흐를 때쯤엔, 그러니까 찰나의 순간만에 바로 사라지긴 했지만.


  태어나서 셰인이 본 액체는 세 가지였다. 피와 구정물, 그리고 아버지가 드시던 와인.


  이제 그 세 가지가 한데 섞여 뒷골목을 적셨다.


  셰인은 살인자였다. 하지만 본인도 사람이 아니었고 셰인이 죽인 것도 사람이 아니었다.


  셰인은 왈패들의 목에 더욱 깊숙히 술병 파편을 꽂았다.


  피부, 지방, 근육, 그리고 뼈와 신경이 끊어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하나하나 확실히 숨을 끊고, 뻐끔대던 왈패의 입가 밑으로 뚫린 구멍이 휘파람 소리를 내다가 멎을 때쯤엔 셰인도 고개를 돌렸다.


  사람 이하의 존재였던 비참한 소년은 이제 스스로 죽기로 했다.


  마침 날씨는 추웠다.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움직일 힘도 없었다.


  목에 술병 파편을 찌를 힘도 없던 셰인은 비척비척 걸어가던 그대로 뒷골목에 엎어졌다.


  그대로 안면이 땅에 부딪혔다. 셰인에게 고통은 익숙한 것이었으나 코가 부러지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죽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상관이었겠나만은.


  엎어진 셰인의 위로 눈송이가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다섯, 열….


  그것은 라티느 제국의 올해 첫눈이었다.


  시나브로 쌓이던 눈송이들은 곰팡이가 돋듯 셰인을 덮어가더니, 귀족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뒷골목 왈패들도 판잣집 안에서 칼바람을 피할 때가 되어서는 엎드린 사람의 형체만을 남겨둔 눈사람이 되어 셰인을 감쌌다.


  황도의 뒷면이 어둡게 물들인 소년의 위로 쏟아지며 소년을 배웅해주는 것은 야속하게도 새하얀 눈이었다.


  그게 너무도 웃겼다. 왜 웃겼는지는 셰인 본인도 몰랐다.


  온기는 싸늘히 식어갔다.


  이미 셰인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차갑다 못해 뜨겁게까지 느껴지는 몸에는 이제 아무 감각도 없었다.


  바람은 너무너무 차가웠다. 뒷골목의 술주정뱅이들이 이번엔 북쪽 대륙에서 폭풍이 몰아쳐온다며 꽥꽥 질러대던 소리가 잠깐 셰인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이미 몇 번 겪어본, 하지만 이제 다시는 맞이할 수 없을 터인 제국의 겨울.


  셰인은 온몸으로 그 겨울을 받아내며 온몸으로 죽어갔다.


  점점 감각들이 몸을 이탈해 간다. 눈을 만져볼 촉각도, 희끄무레 때가 껴 가는 시각도, 입 안을 아릿하게 만드는 미각도.


  셰인을 괴롭히던 고통마저도 북풍이 몰고 온 눈보라의 광연 속에서 희석되어 간다….


  그때 움직일 수조차 없던 셰인의 귓가로 무언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셰인은 소리를 쫓아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청각도 곧 사라질 터였으니 그것이 진정 소리였을지도 셰인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펄럭이는 것이 셰인의 위를 덮었다.


  그리곤 앙증맞은 발이 머리에 콱 박히는가 싶더니, 앙칼지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색으로, 누군가가 셰인에게 말했다.


"…, 부터 내 것이다. 알…느냐?"


  일종의 선언이었다.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셰인은 확신했다.


  그 말과 함께 누군가는 셰인에게서 멀어졌다.


  앞으로 자신을 옭아맬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족쇄가 지금 자신의 발에 채여졌단 것도 알지 못한 채로 셰인은 조금씩 꿈틀거렸다.


  누군가가 멀어지자 다른 사람들이 다가왔다.


  갑자기 여러 사람들에게 몸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이며, 셰인은 그 길로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황도의 어느 첫눈 내리던 날 밤, 소년은 평생을 바치게 될 소녀에게 거두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