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해고야.”

빨간 머리가 그녀의 기분을 대변하듯 밝게 타오른다.

“힘을 잃었다고 해도 너무한 처사인 것 같습니다.”

“간부진 9명 중 7명의 찬성이야. 우리 길드에 너는 필요없어.”

“후회할겁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네.”

싱긋 웃는 그녀의 모습이 역겨워 책상에 화풀이한다.


쾅-


성질을 부리며 길드장실을 나선다.

창설부터 함께해왔다. 

이 빌어먹을 세상이 어느 날 괴물들로 득실거리게 됐을 때부터, 초창기부터 같이 만든 길드다.


나는 최초 각성자 중 한 명이었고, 최초 각성자들은 그 이름과 걸맞게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 힘을 바탕으로 세력을 불리거나 뭉쳤고, 그중 한국 각성자 9명은 함께 길드 구천을 만들었다.

처음 기초부터 튼실히 쌓아 올려, 한국 최대, 아니. 세계에서도 최상위권으로 만든 동료인데, 이런 나를 버려?


힘만 쎈 그녀를 데려다가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준 나를, 지금 내 몸이 망가진 것도 그녀 때문인데.

애초에 그 괴물을 나 혼자서 잡으라는게 말이 안됐다. 

처음부터 함정이었나?

유일한 길드 내 아군이었던 그녀가 잠시 외국을 간 틈을 타 강행한 계획. 반대하는 나를 몬 것도 길드원 7명이였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몸에서 분노가 끓어오르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게 없기에 급격히 냉정해진다.

“하아... 결국, 이렇게 돼버린 건가?”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날 죽기 전까지 몰아낸 인간의 영웅치고는 허무한 결말이네~?”

한숨을 쉬는 내 옆으로 끈적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스트, 조용히해.”


갑자기 연기처럼 나타난 그녀는 내 뒤를 감싸안는다.

“어머, 내게는 너가 지어준 얀진이란 이름이 있는걸?”

“이름을 안지어주면 나머지 대죄도 깨울거라면서”

“흐흥~♡ 지금은 멸망해도 괜찮나보지?”

“알까보냐. 이런 세상.”


“말은 그렇게 해도 식은땀이 흐르는걸?”

꺄르르 웃으며 눈앞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에 기분이 나쁘다.

“야, 나 뭐해야하냐? 너랑 싸우다 능력도 잃었어, 나이는 먹을데로 먹어서 벌써 30대 중반 아저씨다.”

“난 저 여자 마음에 안들어”

“나도 안 든다.”


“그건 좋은 말이네. 합격이야. 애정점수 100점 추가”

“몇 점 만점인데?”

“100점. 참고로 얀붕이는 지금 1억 2천만 390점이야.”

맨날 이런 식이다. 진지한 이야기는 없이, 의미도 없는 말만하는 그녀.


“하아.. 시시껄렁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진짜 뭐해야 하지? 이쪽 업계에서 일해야할거아냐”

“전혀 시시한 이야기 아닌데. 나중에라도 깨달으면 되니깐. 복수하고 싶다며, 그럼 얀붕이도 길드를 만드는게 어때?”


“길드? 아서라, 한국에서 구천을 어떻게 이기냐?”

복수는 그렇게 쉽지 않다. 어떻게 신생 길드가 세계급 길드를 이길 수 있겠는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까? 네 동생이라면 바로 길드 탈퇴해서 가입할거 같고, 미국에서 주웠던 그 꼬마애 있잖아? 걔도 괜찮던데”

“웬일로 여자만 보면 피겨숏 일으키는 네가 이렇게 추천하는거야?”

“내가 엔비도 아니고, 모든 여자를 질투하진 않아. 내가 질투하는건 미래의 경쟁자뿐.”


“인류의 적이라는 놈이 말은 참 번지르르하게 해?”

“너 프라이드 말 들어보면 그 소리 못할걸?”

“들을 일이 어딨냐? 너한테 힘 다 뺏겼는데.”

“너무 황홀했어, 빨리 회복해서 다시 한번 내게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줘.”


잠깐, 들리면 안되는 말을 들은 것 같다.

“회복할 수 있어?”

“응, 내가 네게서 섭취한건 기력이라 의외로 금방 돌아올걸? 몰랐어? 지금도 차오르고 있을텐데”


힘을 운용해본다.

우웅- 우웅-

손이 미약하게 진동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 나! 다시 한번만 느끼게 해줘!"

“내 능력을 변태같이 말하지 마!”

이거다. 아직 희망이 있다. 그래, 길드를 만들어 그녀에게 복수하는거야.

나에겐 그녀가 모르는 비장의 카드가 몇 장있다. 


“얀진아, 고마워!”

“별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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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붕이, 지금쯤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헤매고 있겠지? 아아- 너무 짜릿해♡ 얀붕이가 빨리 빨리 망가져서, 내게 다시 와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남편으로 만들어 집에 가둬놔야지!”

방금, 내게 분노를 쏟는 얀붕이도 괜찮지만, 역시 얀붕이는 나랑 함께 다니며 웃던 때가 가장 괜찮다.


몰래 공작을 좀 했다,

가증스러운 얀붕이의 '자칭' 동생이 눈치채기 전에, 얀붕이를 최강의 악마가 나타난 곳에 보내버렸다.

죽지 않도록, 많은 수를 써두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위험한 곳.

다치기만 해도 능력 부족으로 탄핵을 시키려 했지만, 힘을 잃어서 올 줄이야.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얀붕이가 망가져서, 사회적으로도 갈 곳이 없어지면, 내가 다가가야지.

내 손을 잡고, 얀붕이는 내게 모든 걸 맡기는거야.


전부 얀붕이 잘못이야,

얀붕이가 너무 잘났으니깐, 가는 곳마다 여자가 붙는거야.

아, 그날이 너무 기다려져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얀붕아, 빨리 무너져야해? 기다리는 것도 너무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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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진아, 어때? 새 출발 장소로는 제격이지?”

참 마음에 드는 장소다. 꿈을 시작하기엔 최고의 장소.

“다 무너진 여관을 길드하우스로 개조한 사람은 너가 처음일거야.”

“아늑하고 좋구만, 불만은 뭐야.”

“우리 둘이 평생 지낸다면 찬성이지만, 길드로서 클 수 있을까?”


“나는 소수정예를 지향할거야!”

우리가 없으면 못사는 길드를 와장창 만들어주지.

“소수정예라니?”

“용병처럼 이리저리 끼어다니는 거지. 인도에 그런 애들 많잖아.”

“난 반대야.”

항상 내 말에 찬성해주는 그녀가 왜 이러지?


“왜? 내 말이면 다 좋다며?”

"용병이면 얀붕이랑 떨어져서 생활해야하잖아?”

“팀으로 다 같이 움직이면 되지”

“그러면 찬성”


“난 아직도 널 잘 모르겠다..”

“그냥 다 포기하고 나랑 지내도 괜찮은데♡”

모른척. 모른척이 답이다.


“두 번째 길드 맴버는 누구로 할까?”

“그래, 계속 그렇게 말 돌려봐. 과연 언제까지 도망칠까 보자. 그런데 웬 두 번째?”


“첫 번째는 얀서희. 구천에서 데려오려고.”

“그녀라면 길드에서 나오겠네. 걘 좀 음침하지만, 별로 안 위험해서 찬성”

“위험하다니, 너를 위험하게할 존재가 있어? 나도 널 못 이겼는데”

“내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존재는 얀붕이를 체갈 존재뿐.”


“말을 꺼낸 내가 잘못이다. 근데 서희는 이쁜데?”

“이뻐도 결국 스토킹에서 발전을 못 할 성격이지. 얀붕이 팬티하나만 건내줘도 일주일은 못 볼걸?”

예전에 내 방에 도둑이 들었을때, 팬티 하나만 없어졌는데, 서희가 도둑 찾겠다고 일주일 동안 사라졌는데. 설마...


“후훗♡,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인다. 걱정마. 이제는 내가 곁에 있으니깐 하나씩 관리해줄게.”

“그것 참 고맙네요..”

“그럼 맴버 구하는 것보다 실적부터 쌓아야 하나?”

“얀붕이 의견이라면 다 좋아~”


“좋았스, 먼저 구천의 일거리부터 빼앗는다. 우리가 향할 곳은 ‘인위디아’다!”

힘이 돌아오면, 얀진이급이 아닌 이상 혼자서도 가뿐하다.

좋아, 얀순이. 내가 돌아올 날만 기다려라. 그날이 구천의 마지막일 것이니.


“후훗, 엔비를 오랜만에 보겠네”

그녀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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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종합 : https://arca.live/b/yandere/20758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