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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는 뒤, 나는 한동안 농사에만 몰두했다. 어떻게 하면 작물을 자라게 할 수 있는지, 날씨가 안 좋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농작물은 어떻게 제값을 받고 파는지 등등....그러다 보니 또 한세월이 지나갔다. 이미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16세의 나이가 되서 아버지가 혼인을 하라고 종용했지만 나는 아직도 마음 한 켠에 그녀를 떠나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세월을 보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내 형제들 중 첫째 형은 집을 뛰쳐나갔고, 둘째 형은 딸만 있는 집에 혼인을 해서 그 집의 농지를 물려받았고 막내 동생은 열병으로 죽었다. 가난했던 우리는 가족의 묘지라고 할 것도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동생은 둘째 형과 함께 숲으로 가서 묻고 돌아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이미 충분히 생을 사셨다고 생각해서 슬프지 않았지만 우리 막내가 죽었을 때에는 너무나도 슬펐다. 동생과 함께 놀던 여자아이는 내 동생이 죽었던 그 날 엉엉 울면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고 한다.


슬픔을 뒤로 하고 다시 생업을 이어가던 어느날,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귀족 나부랭이가 보였다. 그는 내가 도시에 처음 간 날에 보았던 그 사내였다. 좀 더 시간이 지나서 남성미가 생긴 그는 갑옷을 두르고  말을 탄 채로 와서는 화려하게 치장이 된 두루마리를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내용은 이웃하고 있던 적대적인 국가와의 전쟁에서 전세가 불리해 졌기 때문에 45세 이하의 남성들은 전부 소집에 응하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거부할 권리는 없었기 때문에 마을의 많은 남성들이 끌려갔다. 둘째 형을 보내는 형수님이 우는 모습이 너무나 아련해 보였다.


우리가 끌려간 곳은 어느 한적한 공터에 있는 훈련장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강제로 훈련을 받고 인간적인 대우를 못 받으며 고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시골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우리들에겐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아니, 상황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비인간적인 훈련에 반발을 가진 자들은 고문을 받거나 때에 따라서는 지휘관에게 처형되기도 하였다. 우리는 공포에 떨며 앞으로 다가올 전쟁이라는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기도 전에 이 지옥같은 곳에서 살아남고 싶어서 그저 그들의 말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이었다고 생각이 될 만큼 짧은 기간 끝에 우리는 군복을 수여받았다. 군복에는 그때 마을에서 징집령을 내린 귀족의 깃발에 달린 휘장과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은 우리는 왕명에따라서 왕국의 군인이 된 것이 아니라 그 귀족 나부랭이의 수하에 있는 사병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마 동네 사람들 중 그것을 알고 있던 사람들도 그들을 거스르면 어떻게 될 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항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우리는 전장에 투입되고, 다시 도시로 돌아와서 그 귀족의 재산과 목숨을 지키는 일을 하기도 했다. 급료는 정말로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을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았고 그마저도 죽은 자의 급료는 전부 몰수해 갔다. 유가족들에게 돌아가는 돈도 한푼 없었고 그들의 죽음을 유가족들에게 알리러 가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운명을 받아들인 우리들은 개새끼가 주인을 무는 짓 같은것은 감히 꿈도 꾸지 않았다. 그것은 나도, 둘째 형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와 둘째형은 각기 다른곳에 배치가 되어서 자주 만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따금씩 운이 좋을때에 마주치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둘째 형이 보이지가 않았다. 지휘관에게 형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지만 그는 일개 병사 따위는 알 게 뭐라며 꺼지라고 일갈했다. 난 고향에 있는 형수님과 아이들에게 언젠가 돌아가게 되면 대체 어떻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할 지 난감했다. 우리는 그 시점에선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적국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속한 귀족과와 사이가 좋지 않은 다른 세력이라는 것을.


그러던 어느날 전투에서 한쪽 팔에 심한 부상을 입고 간신히 입성한 적이 있다. 당시에 부상병에게 제공되는 치료조차 제대로 없어서 죽은 자의 군복을 찢어서 간신히 지혈을 하고 돌아오는데 성문에서 웬 여인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주변에 시중들을 거느린 채 우아한 자태로 기다리는 그 얼굴은 내가 잘 아는 얼굴이었다. 



옛날과는 다르게 기품이 있는듯한 태도에 순간 알아보지 못 할 뻔 했지만 아름다운 얼굴을 자세히 보고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눈이 휘동그래 진 채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이 선두에 있던 귀족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귀족도 오랜만에 자신의 아내를본 것이 기뻐서인지 평소의 근엄한 태도와는 다르게 조금 풀어진 표정으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그녀가 혹시나 나를 알아볼까 하는 두려움에 고개를 숙이고 힐끔힐끔 훔쳐 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전투 이후로 어느정도 세력다툼이 끝나게 된 것인지 일정이 널널 해 졌다. 난 여전히 치료를 받지 못해 한쪽 팔이 만신창이가 된 것을 붕대로 숨기고 비번일 때에 정말로 오랜만에 도시로 외출을 할 수 있었다. 아니, 지금까지 시골에서만 살던 내가 수도에 가까운 지역까지 원정을 나갔으니 이정도는 외출이 아닌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피비린내 나는 곳을 벗어나 사람이 사는 곳을 둘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물론 막상나와보니 그렇게 즐겁진 않았다. 내 전우라고 부를만한 사람들은 너무나 많이 전장에서 죽었고 난 도시에 아는 사람도 없었는데다가 전에 그녀와 함께 갔던 곳들은 이미 사라진 곳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한적한 식당에서 식사나 하게 되다가 나는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확실하게 사실을 듣게 되었다.


그녀는 결국 그 귀족 나부랭이와 혼인을 했다. 하지만 상인 출신에 매관매직으로 하급 귀족 신분을 사고 명예만 남은 몰락귀족과 혼인해 신분상승을 한 그녀와 내 주군인 귀족 나부랭이의 혼담은 성사되기가 어려운 것이었는데 출세에 눈이 먼 그녀의 아버지가 결국 왕도에서 꽤나 출세를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통성 없는 뒷배경을 가진 가문과 정통성이 있는 멀쩡한 가문과의 혼담은 성사되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왕도의 그 어떤 여인들 보다도 아름답기로 유명해 진 모양이다. 그녀와 동문이기도 했고 그녀의 아름다움은 그녀가 재학중이던 당시에도 유명했던 모양인지 극적으로 혼인이 성사 된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평민 출신 주제에 기품이 있고 우아한 척을 한다며 시기하는 듯했다.


그 얘기를 듣다가 결국 참지 못해 마저 음식도 다 먹지 못한채 가게를 나왔다. 이제는 잊을 때도 되었다고 생각 했는데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그녀가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도성내의 병사는 비번 중일 때에도 유사시를 대비해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이 허용되었고 내 허리춤에는 칼이 채워져 있었다. 다시 가게로 들어가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릴까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랬다가는 모진 고문 끝에 사형을 면치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관뒀다.


이후에 나는 다시 다른 곳으로 배속이 되었다. 그곳은 전에 내가 살던 마을과 같이 평화로운 곳이었지만 그 귀족 나부랭이의 영지에 속한 곳이었고 그곳 사람들은 전부 농노였다. 난 그들이 영지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그곳 사람들은 감히 영지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평화로운 복무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농노의 여식과 친분을 맺을 수 있었다.


감시를 하는 업무가 슬슬 질릴 때 즈음에 아비에게 새참을 가져다 주던 여식이 웬 들개들에게 둘러싸인 것을 보았다. 꼬리가 짧아서 없는 그 들개놈들은 이따금씩 농지로 쳐들어와서 사람을 공격하곤 했던지라 골칫거리였는데 당시에 수많은 전장을 오갔던 나는 고작 병사 나부랭이였지만 꽤 괜찮은 솜씨로 그것들을 도륙낼 수 있었다. 



여식은 통통하고 팔다리가 짧은데다가 얼굴엔 주근깨가 많았다. 하지만 순박하고 착한 성격에 겁이 많으면서도 힘이 꽤나 쎈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때 일을 기점으로 나에게 호감이 생긴 것인지 언젠가부터 내가 한가하게 농땡이를 피우고 있을 때마다 개미만한 목소리로 뭔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그런 그녀가 싫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점점 잃어갔던 미소를 되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 일이 끝나고 농지에 마련된 내 가택에 돌아올 때면 내 소꿉친구였던 그녀가 생각나곤 했다. 이제는 감히 친구라고 할 수도 없는 내 주군의 마님이지만 한때에 순박하고 말괄량이였던 그녀가 아직도 떠올랐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전장에서 내가 도륙한 적의 절망하는 얼굴은 어두운 밤이 될 때마다 환영처럼 떠돌아 다니는 듯 했고 꿈을 꿀 때마다 나타나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래도 낮에 그녀를 만날 때 만큼은 그 모든 잡념들을 잊을 수 있게 되었고 얼마 안가서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나는 결코 그녀를 이전에 사랑했던 마님과 비교하지 않았다. 깔끔하게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시작했다. 나는 아직 원래의 교향에 남겨둔 농지가 내 소유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녀는 농노 신분이었지만 내 쥐꼬리만한 봉급을 저축한 것을 드리면 해방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녀의 아버지인 장인어른을 그곳에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평화로운 시기인 것을 틈타 사직을 청하고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를 해방한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고향에 방문하자 동네의 어르신들과 형수님이 나를 반겨주었다. 하지만 이내 둘째 형이 같이 오지 않은 것을 보고는 결국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서 떠나갈 듯이 우는 것을 보고 나와 내 아내는 같이 울 수 밖에 없었다. 전장에서 이미 말라버린 줄 알았던 내 눈물은 그날 내 옷을 적실 정도로 많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이 아직 장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 장인어른, 그리고 내 아내가 형수님의 농지까지 같이 일을 거들어 주며 우리는 고군분투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자 형수님의 아이들이 장성했고 나는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나를 위해 할애할 수 있었다.


아내를 너무 오랫동안 고생하게 만든 것 같아 넌지시 이야기를 하니 웃는 얼굴로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달라며 답해왔다. 약간 눈물이 글썽여 지면서도 그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오랜만에 외출을 할 준비를 했다. 아내와 함께 도시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여주고 아이들에게 입힐 옷도 사 줄 생각이었다. 군에서 복무했던 시절보다도 농사를 지어서 그것을 내다 파는 지금이 오히려 수입이 좋아서 아내와 연애 할 때 보다도 저축은 수월했다. 아마 나의 아버지는 배우지 못해서 수탈을 당했기 때문에 가난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도시를 가 보는 것이 이번이 두번째였다. 처음 방문은 해방이 되고 내가 그녀에게 자유민으로써의 삶을 조금이나마 체험시켜주고 싶어서 데려갔었는데 여간 불편해 보였다. 마치 처음 내가 도시를 갔을 때 같아서 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때에 마음에 들어했던 가게에 다시 방문에 식사를 하는데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얼마 안 되는 살아남은 전우들이었다. 처음엔 순박한 시골 청년들이었지만 그들도 전쟁의 참상에 물들어서인지 얼굴이 그늘 져 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전역한 전우를 다시 보니 조금은 그림자가 걷어지는 듯 했다. 그들에게 내 아내되는 사람을 소개하면서 인사치레겸 주군을 잘 지내시냐고 물어보았다. 우리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증오스러운 놈이지만 우리끼리 피차 나눌 이야기가 얼마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꽤나 꼬시다는 듯이 이야기를 늘여놓기 시작했다.


내가 전역하고 얼마 안 있어서 적대세력중 하나가 그가 사병을 모집할 때에 왕명을 가장하고 그 내용과 옥쇄의 인장까지도 위조하였다는 증거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왕명을 위조해 사병을 모집하는 것은 왕실을 모독한 것임과 동시에 역모를 꽤한다는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중죄이다. 가문은 대대적으로 숙청이 되었으며 사돈 지간인 가문까지 숙청되나 싶었지만 이미 거대한 권력을 가진 가문이 되었기에 왕실조차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어 그들은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후 왕실이 손을 써서 혼인무효가 되었지만 미망인이 되어 갈 곳이 없어진 그녀는 다른 집안과도 혼담이 전혀 성사되지가 않는다는 것과 현재 그들은 사병의 신분에서 자유로워져서 용병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끝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난 착잡한 마음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 아내는 아직 나와 그녀의 관계를 몰랐기 때문에 의아해 했다.


그날 밤 여관에서 잠을 자려는데 아내가 물어왔다. 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며. 그래서 나는 조금 생각 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집에 돌아온 지 나흘 째 밤에 그녀와의 잠자리에서 회포를 풀었다. 당연히 지금의 내가 사랑하는 것은 내 아내이다. 하지만 한때 소꿉친구였던 그녀가 그런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을 이야기 하니 그녀도 이해 해 주었다. 난 그녀를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정말로 모든 것을 다 잊고 나와 그녀와 앞으로 태어날 그녀와의 아이들을 위해 일생을 살아가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또 살아가고 있던 도중, 어느날 밤. 농사도 끝났고 저녁 밥도 챙겨먹었지만 도통 잠이 오질 않아서 동네를 돌아다니던 중에 내 소꿉친구가 살던 집이 눈에 띄었다. 이쯤 되면 다른 사람이 제멋대로 눌러 앉거나 집을 부수고 다른 집을 지을 법도 한테 그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 가 보니 가구들이 누가 정리 해 놓은 것 같이 한켠에 치워져 있었다. 물론 이미 썩어 문드러져서 잔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긴 했다. 한가운데에 있던 식탁도 치워져 있었다. 여전히 온기는 느껴지지가 않는다.


"데커트?"


익숙하지만 거의 십년만에 들어보는 목소리이다.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목소리를 들은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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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스러운 상황을 안 만드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좀 그렇게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