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는 "전쟁이 터진 후 페미니스트들의 운명.gif"라는 제목, 그리고 "두두두두두" 경쾌한 묘사와 함께 베라에 간 움짤이다.

그러나 자막과 배경만 봐도 심상치 않은 장면인게 뻔히 보인다. 교실을 배경으로 "너희는 페미니스트 떼거리야,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어"라고 말한 뒤 반론하려는 여자들에게 총을 난사하는 장면이 통쾌한 움짤일까?



저 움짤은 2009년 영화 "Polytechnique"의 한 장면이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이는 캐나다 역사의 비극 중 하나인 "몬트리올 에콜 폴리테크니크 학살"(École Polytechnique massacre)이다.


 ▲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소재된 희생자 추모비


▲ 사건이 발생한 몬트리올 에콜 폴리테크니크


1989년 12월 6일 오후 4시, 마크 레핀(Marc Lépine)은 루거 미니-14와 사냥칼로 무장한 채 캐나다 몬트리올의 에콜 폴리테크니크(École Polytechnique)에 들어섰다. 레핀은 한동안 말없이 교내를 어슬렁거리다, 5시 10분 경 60명 정도가 모인 2층 기계공학 교실에 침입한다. 그는 진행 중인 학생 발표를 포함해 모든 동작을 멈추도록 한 뒤, 남녀 모두 교실 반대편에 모이게 했다.

 레핀은 여자 아홉 명을 골라낸 뒤 나머지 남자들은 모두 떠나게 했다. 그는 남은 여성들에게 왜 그들이 남아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한 명이 모르겠다고 답하자, 그는 “나는 페미니즘과 싸우고 있어.”라고 말했다. 학생 중 한 명인 나탈리 프로보스트(Nathalie Provost)가 “보세요, 저희는 그저 공학을 공부하는 여성일 뿐이고, 거리를 행진하며 남성들에게 대항한다고 소리칠 준비가 된 페미니스트가 아니에요. 저희는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는 학생일 뿐이라고요.”라고 말하자, 레핀은 “너희들은 여자고, 공학 기술자가 되려고 하지. 너희들은 하나같이 페미니스트 떼거리야.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어.”라고 답한 뒤 발포를 시작, 6명을 살해한다.

맨 위 움짤이 바로 저 장면이다.


▲ 응급실로 이송되는 피해자들


레핀은 교실을 나와, 복도, 식당, 다른 교실을 오가며 20분 동안 여성들에게 발포, 8명을 더 살해한 뒤 마침내 자살하며 범행을 끝냈다. 자살 당시 아직 총탄 60알 정도가 남아 있었으며, 사건으로 인해 총 14명의 여성이 사망하고, 10명의 여성과 4명의 남성이 다쳤으며, 적어도 2명의 학생이 사건 후유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마크 래핀이 자살한 강의실


▲ 1989년 마크 레핀의 사진


마크 레핀은 프랑스계 캐나다인 어머니와 알제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남녀 평등에 반대했으며, 일상적으로 가정폭력을 저질렀다. 레핀이 7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집을 나갔으며 곧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레핀의 본명은 가밀 가르비(Gamil Gharbi)였는데, 아버지에 대한 증오 때문에 14살에 개명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총명하지만 상당히 불안정하고 사회성 없는 성격으로, 교우 및 가족 관계에 서투른 사람이었다고 증언한다. 레핀은 군에 지원하기도 했으나, 반사회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는 대학 때 순수과학을 전공했다가 전자공학으로 전과, 마지막 학기 때 이유 없이 이수를 포기했다. 

추후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지원하였지만 필수 강의 2개를 이수하지 않아 반려되었다. 총기 난사 직전 요구된 강의 중 하나를 이수했다고 한다. 레핀은 페미니스트, 직장인 여성, 특히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여경과 같이)을 혐오했다고 한다.


▲ 합동 장례식


퀘백 및 몬트리올 정부는 사흘간을 애도의 날로 지정했으며, 12월 11일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그 중 9명의 합동 장례식이 치러졌다. 브라이언 멀루니(Brian Mulroney) 당시 캐나다 총리도 여기에 문상했다. 이 사건은 현대 캐나다에서 2020년 노바스코샤주 총기 난사 사건 다음으로 가장 큰 대량 살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을 단순히 미치광이의 행동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반페미니즘 공격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사건 이후로 캐나다는 강력한 총기 규제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사건이 발생한 12월 6일을 “여성에 대한 폭력 환기 및 근절을 위한 실천 기념일”(National Day of Remembrance and Action on Violence Against Women)로 지정해 추념하고 있다.


▲ 2016년 추모 집회 당시 사용된 촛불과 장미, "여성에 대한 폭력 환기 및 근절을 위한 실천 기념일"의 상징물은 흰 리본이다.


▲ 25주년, 14명의 희생자를 상징하여 빛을 밝힌 모습


희생자 명단

Geneviève Bergeron (1968, 토목공학도)

Hélène Colgan (1966, 기계공학도)

Nathalie Croteau (1966, 기계공학도)

Barbara Daigneault (1967, 기계공학도)

Anne-Marie Edward (1968, 화학공학도)

Maud Haviernick (1960, 재료공학도)

Maryse Laganière (1964, 재무과 경리)

Maryse Leclair (1966, 재료공학도)

Anne-Marie Lemay (1967, 기계공학도)

Sonia Pelletier (1961, 기계공학도)

Michèle Richard (1968, 재료공학도)

Annie St-Arneault (1966, 기계공학도)

Annie Turcotte (1969, 재료공학도)

Barbara Klucznik-Widajewicz (1958, 간호학도)


▲ 희생자들의 사진


나도 움짤이 찝찝해서 검색해보기 전까지는 사건의 내막을 몰랐다.

저 움짤이 내심 통쾌했을 냥붕이들 중 반의 반이라도 찔리는 마음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올려본다.


2줄 요약

1. 베라 간 페미니스트 쏘아 죽이는 움짤은

2. 페미니스트를 죽이겠다고 무고한 여성들을 14명 살해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