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주중에는 본업을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취미로 약초를 캐는 투잡 심마니입니다.


전문 심마니와는 달리 투잡 심마니란 아마추어 약초꾼을 말합니다.


제가 투잡 심마니란 일을 하게된 이유는 강원도 양구군에 있는 펀치볼마을의 한 야산에서 오래된 도라지를 캐 한의원에다 비싼 값에 판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후 쥐꼬리만한 월급쟁이였던 저는 용돈을 벌기 위해 전국의 깊은 산을 찾아다니며 약재를 찾는 투잡 심마니가 되었죠.


이따금 깊은 산속을 헤매다보면 6·25전쟁 때 철모와 군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근처에서 발견되는 약초는 건강한 시신을 영양분으로 이용하여 크기 때문에 색깔과 모양이 아름답고 약성이 뛰어나서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습니다.


6월이 되면 전문 심마니들은 약초의 왕인 산삼을 찾아 대박 횡재를 꿈꾸며 등산을 합니다.


산삼들 중에서도 하늘이 내린 산삼이라는 천종산삼이 있습니다.


천종산삼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깊은 산속에서 자연상태로 재배되는 산삼으로 산에서 재배하는 산양삼보다 약성이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천종산삼은 전문 심마니도 평생 한 번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귀한 산삼이라 비싸게 팔리고 있습니다.


보통 산삼을 찾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곳에는 독사부터 야생동물, 누군가가 설치한 올무에 이르기까지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지 않는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은 천종산삼으로 유명한 지리산입니다.


약 10년 전,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알게 된 전문 심마니들과 지리산에 오를 기회가 생겨 휴가 기간 동안 전라도 지리산에 가서 캠핑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전문 심마니를 따라 지리산 천종산삼이 발견되는 자생 환경인 산삼자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우리는 지리산 연곡사라는 큰 절에 모여 4박 5일 동안 천종산삼을 찾아 지리산에 오르기로 했죠.


무거운 배낭은 등산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텐트 대신 비닐을 준비했고, 지리산에서 먹을 밥과 고추장만 챙기고 반찬은 지리산에서 캔 나물들로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현장 지형을 살펴보기 위해 약속일보다 하루 일찍 고속버스를 타고 전라남도 구례군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구례시장에 가서 지리산에 가져갈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고 연곡사 입구에 있는 민박집에서 짐을 풀었죠.


그리고 연곡사 계곡을 따라 지리산 피아골이 있는 반야봉 쪽으로 가볍게 올라갔습니다.


피아골은 6·25전쟁 직후 북한 빨치산 게릴라들과 국군과 경찰이 끊임없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죽은 사람의 피로 계곡이 빨갛게 변했기 때문에 피아골이라고 불립니다.


여름이라 그런지 이날은 날씨가 유난히 흐리고 지리산 안개로 습도가 높았고 갑작스러운 소나기까지 내려 지리산 쪽으로 걸어가던 중 옷이 비에 젖었죠.


도로와 계곡, 산길을 번갈아 가며 주변을 둘러보던 중 동굴처럼 생긴 바위그늘 옆에 다 쓰러져가는 성황당이 있었습니다.


성황당은 조선시대 마을의 효녀를 기리는 열녀문처럼 작은 기와집처럼 생긴 사당입니다.


잠시 비를 피하려고 성황당으로 갔는데, 그 뒤에는 무덤이 있어서 매우 음습했습니다.


무덤이 있는 성황당은 본 적이 없었기에 궁금해서 잠시 둘러보기로 했죠.


무덤은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 듯, 무덤 봉분 위에 기괴한 느낌의 서낭나무가 우뚝 서 있었고, 그 나무 때문에 무덤 봉분 위의 흙더미가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너진 무덤 봉분에는 보라색 도라지가 피어 있었고, 빗물에 살짝 씻겨나간 도라지는 1m가 넘는 길이로 보였습니다.


이 정도 크기라면, 그것은 200년 된 대물 도라지임에 틀림없고, 무덤 속에 숨겨져 있어서 아무도 찾지 못한 것 같았죠.


평소라면 저는 묘지에서 약초를 채취하는 것이 무덤 주인의 휴식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십년 묵은 도라지는 산삼보다 약성이 좋다고 알려져 산삼보다 비싸게 팔리다 보니 욕심이 생겨 캐야 할지 말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이 도라지를 내일 모일 전문 심마니들에게 보여준 뒤 캐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리산에서 내려와 민박집 주인에게 피아골에서 본 성황당에 대해 물어봤지만 주인은 그 쪽으로 가본 적이 없어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저는 잠자리에 누워 도라지를 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대박꿈을 꾸었죠.


꿈에서 회색 승복을 입은 도사가 삿갓에 108염주를 목에 걸고 목탁과 지팡이가 붙어 있는 커다란 나무 뿌리 지팡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지리산에는 방술을 익히며 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도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도사는 흰쌀로 만든 주먹밥을 주면서 뭐라고 말하고 구름 속으로 사라졌는데, 꿈에서 깨어나니 도사의 말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꿈이 길몽이라고 생각했고, 지리산에서 산삼을 캐게 될 징조라고 믿었죠.


다음날 연곡사 입구에서 지리산 등반을 약속한 전문 심마니들을 만났습니다.


20년 동안 산삼을 캐러 다닌 전라도 지역의 전문 심마니, 35년 동안 약초를 재배한 건강원 사장, 한의학 박사 출신의 한방병원 원장 등 저를 포함해 총 4명이 모였습니다.


처음 보는 사이라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등산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문 심마니와 건강원 사장은 돈을 벌기 위해 산을 오르지만, 오직 한방병원 원장만은 돈이 아니라 환자들을 치료할 약초를 구하기 위해 산을 오른다고 말했습니다.


어제 등산을 하면서 본 성황당을 지날 때, 일행에게 전날 겪었던 일과 도라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성황당 뒤에 무덤이 있는데 무덤 안에는 200년 된 도라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귀신이 붙을까봐 무덤의 도라지를 아직 캐진 않았죠."


성황당 뒤로 저를 따라온 일행은 무덤의 봉분에서 자라는 도라지를 보고 깜짝 놀랐고, 한방병원 원장은 저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캐지 않길 잘했습니다. 남의 무덤에 약초를 캐지 않는 것은 불문율입니다. 산신령의 화를 사는 행동을 하면 산행의 안전이 위협받거나 산삼을 찾는 행운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한방병원 원장은 미신을 많이 믿는 듯했고, 다른 일행들도 망자의 안식을 방해하면서 그 도라지를 캐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다른 일행의 반응이 냉소적이었죠.


한방병원 원장의 말을 들은 전문 심마니가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지금껏 20년 동안 산삼을 캐러 다녀도 100년 이상된 도라지도 좀처럼 보기 힘드는데, 산신령은 무슨 얼어죽을... 거짓말도 참 잘 하시네요."


전문 심마니의 말을 들은 건강원 사장이 곡괭이부터 꺼내며 말했습니다.


"5년 전 제천 경매장에 100년 된 도라지가 나왔는데 감정가가 300만 원이었다고 뉴스에 나왔습니다. 200년 묵은 도라지면 값이 얼마인데 이걸 왜 안 캐요?"


저와 한방병원 원장은 귀신이 붙을까봐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고, 전문 심마니와 건강원 사장은 무덤 봉분 위에 올라가 흙더미를 파느라 두 시간 동안 공을 들여 그 도라지를 기어코 캐냈습니다.


길이 164cm의 대물 도라지는 어른 키만큼 컸고, 두 개의 뇌두에 잔뿌리가 촘촘해 일반 도라지와는 구별되는 야생 산도라지였습니다.


캐낸 직후의 도라지 향은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강렬했죠.


도라지를 감정한 한방병원 원장은 200년 이상 된 것으로 예상되며 가격은 900만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일행은 이렇게 비싼 도라지를 처음보고 들떠서 지리산에서 어떤 약초를 캐낼지 꿈에 부풀어 신명나게 지리산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저는 제가 처음 발견한 도라지를 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행이 차지한 것에 대해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게다가 무덤을 파헤치고 도라지를 캔 것이 불길한 징조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이후 저와 일행은 3일 동안 지리산에서 비닐에서 잠을 자고 산속을 헤맸지만 아쉽게도 산삼 한 뿌리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산에서 보낸 4일째 되는 마지막 날, 저는 소리쳤습니다.


"심~ 봤~ 다~~"


지리산 아래서 대박꿈을 꾸고 올라온 탓인지 천신만고 끝에 100년이 넘는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산삼을 드디어 찾았습니다.


그것도 부르는게 값이라는 천종산삼을 7뿌리나 발견한 것이었죠.


소나무 밑에 매트를 깔고 천종산삼을 주신 지리산 산신령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옆에서 한방병원 원장이 산신령을 위해 함께 절을 했는데 전문 심마니와 건강원 사장이 크리스천이라며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제사가 끝난 뒤 3시간 정도 처음 캐는 천종산삼의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땅을 파느라 온몸에 진땀이 흘렀습니다.


캐낸 천종산삼은 가족으로 군락을 이룬, 70년 이상 된 모삼 2뿌리와 20년 이상 된 자삼 5뿌리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천종산삼들의 노두 개수, 길이, 무게를 측정하던 한방병원 원장은 전체 감정가를 1억 5천만 원 정도로 추산하고 신문에 기사가 실릴 정도라고 칭찬했죠.


하지만 전문 심마니와 건강원 사장은 200년 된 도라지 말고는 산삼 한 뿌리를 캐지 못해 자존심이 매우 상한 듯했습니다.


천종산삼을 스티로폼 상자와 생이끼에 정성껏 싸서 배낭에 넣었는데, 문득 저를 바라보는 일행의 시선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저와 일행은 지리산 깊은 산속에 화전 사람들이 살았던 폐가에 들어가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지리산에서의 마지막 밤은 비닐이 아닌 폐가에서 편히 잘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죠.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건강원 사장이 가져온 칠점사 뱀술을 폐가 사랑채에서 나눠 마시며 회포를 풀었습니다.


저는 지리산을 4일 동안 헤매느라 너무 피곤해서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종종 뒤통수를 맞았다는 일을 당했습니다.


자다가 매캐한 냄새가 나서 눈을 떴을 때 저는 케이블 타이와 청테이프에 묶여 부엌 아궁이 옆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궁이 위에는 두 개의 큰 가마솥이 있었고, 한 가마솥에는 큰 옹기가 중탕으로 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문 심마니와 건강원 사장은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장작을 계속 아궁이에 넣었습니다.


아궁이 주변에는 불에 타다만 등산화가 흩어져 있었고, 부뚜막에는 오래된 핏자국이 묻어 있어 한방병원 원장이 이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죠.


전문 심마니와 건강원 사장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면, 제가 캔 1억 5천만 원 상당의 천종산삼들을 훔치려고 그러는 게 분명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뭐하시는 거예요? 이거 풀어주세요!"


아궁이이에 넣을 장작을 쪼개고 있던 전문 심마니가 무뚝뚝하게 말했습니다.


"이제 깨어났군. 천남성을 법제하는 과정이다. 너도 곧 가마솥에 들어가게 될 거야."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죠.


천남성이란 조선시대 사약에 사용된 맹독성 독초로, 독을 약화시키는 법제를 통해 사용하면 훌륭한 치료제가 되지만, 왜 이 밤에 법제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애원하고 이렇게 말했죠.


"제발 이러지 마세요. 천종산삼 7뿌리를 다 드릴 테니 저를 풀어주세요.


제 쪽으로 고개를 돌린 건강원 사장이 크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실, 너가 캔 산삼은 천종산삼이 아니라 천남성이야. 천남성과 산삼은 모양이 비슷해서 초보들이 헷갈려 하지."


저는 다시 빌고 말했습니다.


"제 목숨만 살려주시면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전문 심마니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시끄럽게 굴지마! 너를 살려줬다가 경찰에 신고를 할지 안할지 어떻게 믿냐?"


그리고 장작을 쪼개던 오함마를 거꾸로 들어올려 저를 마구 때렸습니다.


부엌에서 소란이 일자, 죽은 줄 알았던 한방병원 원장이 부엌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한방병원 원장에게 도와달라고 했는데 한방병원 원장이 저한테 한 말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죠.


"저희 한방병원에서 요즘 홈쇼핑으로 정력제를 팔고 있는데 약성이 약해서 발기부전 치료가 안돼요. 그러던 중 동의보감에서 천남성을 인골가루로 법제하면 약성이 배가된다는 사실을 찾았죠. 그런데 하필 인골이 부족해서 급하게 데려오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인육 캡슐인데, 좋은 게 좋은 거죠, 그렇죠?"


저는 그들이 버려진 폐가에서 인육 캡슐을 불법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대화를 마친 한방병원 원장은 부엌을 나서기 전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키는 건강원 사장과 전문 심마니에게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호랑이의 기운을 많이 받을수록 더 약성이 좋기 때문에 건강원 사장은 새벽 3시인 인시까지 인육곰탕을 달여 인육진액을 빼내세요. 그때까지, 전문 심마니는 사랑채에서 잠을 자고 교대로 아궁이의 불 세기를 조절하세요. 저번처럼 기름이 섞이면 안되니까 이번에 투잡 심마니를 잡을 때는 뼈와 살을 분리하고, 피하지방이 나올 때마다, 국자로 그것을 퍼내세요. 증거를 없애야 하니까, 인육곰탕 달이실 때 신발과 옷을 아궁이에 넣고 태우세요."


그제서야 믿었던 한의원 원장이 그들과 한패가 되어, 우두머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들은 천종산 인삼을 알려준다는 이유로 투잡 심마니들을 불러 살해하고 인육 캡슐을 만드는 상습범들이었습니다.


부엌에 있는 가마솥과 옹기 안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입니다.


새벽 2~3시가 됐는지 전문 심마니가 일어나 칼을 갈았고, 건강원 사장은 옹기에서 인육진액을 채취하는 과정을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태에서 기력이 떨어지면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천둥 번개가 치고 밖에 소나기가 많이 내렸고, 아궁이 밑에서 샘물처럼 물이 솟아 아궁이의 불이 모두 꺼지고 부엌은 순식간에 칠흙같은 어둠에 휩싸였습니다.


당황한 건강원 사장이 랜턴을 가지러 나갔는데, 사랑채에서 누군가 목탁을 두드리는 기묘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똑, 똑, 똑, 똑, 똑, 똑"


부엌에서 이 소리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천장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목탁 소리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목탁 소리는 스님들이 불공을 드릴 때 두드리는 소리와는 달랐습니다.


매우 둔탁하고 큰 목탁소리가 이어졌는데, 흡사 누군가를 목탁으로 머리를 때려죽이는 것 같았죠.


"또-옥! 또-옥! 또-옥!"


"또-옥! 또-옥! 또-옥!"


그때 한방병원 원장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또 다시 목탁 소리가 들리자 건강원 사장이 죽어가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그 목탁 소리는 부엌 쪽으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똑, 똑, 똑, 똑, 똑, 똑"


사랑채의 비명에 놀란 전문 심마니는 부엌에서 어리둥절했고,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똑, 똑, 똑, 똑, 똑, 똑"


전문 심마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오함마를 들고 부엌문을 박차고 나갔고, 부엌 밖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죠.


"너 누구야?


"또-옥! 또-옥! 또-옥!"


"크엌! 살려주세요."


"또-옥! 또-옥! 또-옥!"


부엌 밖에서 머리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고, 누군가 목탁으로 사람의 머리를 때려 숨지게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똑, 똑, 똑, 똑, 똑, 똑"


이제는 부엌문 앞에서 소리가 났고, 제 차례가 될 것 같아서 불안에 떨며 기다리는데, 기괴하게도 짙은 도라지향이 풍겼습니다.


갑자기 번개가 치면서 주변이 밝아졌고, 그때, 부엌 문 앞에 서서 목탁을 두드리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죠.


그 사람은 지리산 아래 민박집에서 자고 있을 때 꿈에 나온 회색 승복에 삿갓을 쓰고 108염주를 목에 두른 도사였습니다.


꿈에서처럼 도사는 목탁이 달린 커다란 나무 뿌리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지팡이는 방금 묻어 뚝뚝 떨어지는 피와 살로 지저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기절했고, 사경을 헤메는 내내 부엌에는 억울하게 갇힌 사람들이 죽기 전에 내뱉은 한숨이 쌓여 숨쉬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폐가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고, 천남성이 말라붙은 가마솥의 옹기는 과열로 깨져있었습니다.


저는 깨진 옹기 조각으로 케이블 타이를 끊고 부엌에서 조심스럽게 나와 사랑채로 갔습니다.


부엌 밖에는 핏자국이 선명했고, 전문 심마니, 건강원 사장, 한방병원 원장 등은 온데간데 없어 죽었는지 도망갔는지 알 수 없었죠.


사랑채에는 저와 일행이 들고 온 배낭과 비닐, 곡괭이가 놓여 있었지만, 200년 된 도라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문득 200년 된 도라지를 캔 성황당의 무덤이 도사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도사가 폐가로 돌아올 수 있어서 서둘러 배낭을 메고 도망쳤습니다.


지리산을 내려오는 길에 혹시라도 일행과 마주칠까 봐 전라남도 구례군에서 오는 길이 아닌 경상남도 함양군으로 가는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경상남도 함양군으로 가는 길에 어떤 아낙네가 밭에서 일하는 것을 봤고, 다가가서 물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낙네는 피 묻은 제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죠.


저는 피아골 성황당의 무덤부터 화전민 폐가에서 본 도사까지 지리산에서 제가 겪은 모든 일을 털어놓았습니다.


일행이 성황당에 묻힌 도사의 무덤에서 도라지를 캤다는 제 이야기에 아낙네는 깜짝 놀라는 눈치였죠.


제 말을 들은 후, 아낙네는 제게 기묘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피아골에서 본 성황당 뒤에 있는 무덤은 아마도 빨치산이었던 어떤 도사의 무덤일 것입니다.”


아낙네의 고조모는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시집와서 화전민 마을에서 살았는데, 아낙네가 어렸을 때 6·25전쟁때 겪은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원래 6·25전쟁이 끝나고도 피아골에는 아가리부대라는 빨치산들이 끝까지 저항했는데, 토벌 작전으로 포위되자 모두 자결했다고 합니다.


그들 중 한 명만 살아남았고, 알고보니 지리산에 숨어서 토벌 작전이 끝날 때까지 전우의 시체를 먹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그는 전향 후 인육을 먹은 것을 뉘우치고 도사가 되어 바위그늘 밑에서 살면서 피아골에 버려진 시체를 찾아 바위그늘 옆에 묻는 수상한 일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얼마 후 화전민들 사이에선 도사가 피아골을 지나던 행인들을 붙잡아 진액을 뽑아내 죽은 빨치산의 영력을 회복시키는 방술을 부렸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그 소문 때문에, 도사는 화전민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화전민 아이들은 도사를 보면 돌을 던지고 쫓아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화전민 한 사람이 심하게 구타당한 도사를 발견했고, 숨을 거두기 전 도사의 마지막 유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100년 이상 묵은 도라지에 뿌릴 거름이 없어 원통하다!”


그리고 도사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화전민 마을에 이런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전쟁 때 맛본 고기 맛을 잊지 못한 빨치산들이 바위그늘 옆 무덤에서 부활하고 있다.”


공포에 질린 화전민들은 죽은 빨치산들이 나올 수 없게 무덤 위에 서낭나무를 심고 그 앞에는 성황당을 세웠고, 그 이후로 소문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60여년이 흘러 화전민들이 산을 내려와 살면서 옛 화전민 마을이 폐가가 되었고, 이제 그런 것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깜짝 놀랐죠.


그러면, 어젯밤에 본 도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천둥번개가 몰아치던 날 밤에 사라진 일행은 도사에게 붙잡혀 약재가 되었을까요?


일행이 도사가 시체의 영양분으로 키운 도라지를 캐서 그런 걸까요?


그리고 도사는 왜 절 구해줬을까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죠.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은 천벌을 받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무덤의 도라지는 귀신이 붙을 수 있기 때문에 캐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성황당 뒤에 있는 무덤을 파헤쳐 도사를 화나게 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서양에 좀비가 있다면 동양에는 강시가 있습니다.


강시는 중국의 좀비인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런 경험을 한 이후로 다시는 약초를 캐러 지리산을 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