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여기랑 여기에 도장만 찍으면 돼."

"간단하잖아?"



"........."



"뭐해? 나 바빠."




환자의 안정을 위해 온통 하얀색으로 도배해 둔 병실

침대에 앉아있는 남자는 얀붕이었다.




"그렇게 쳐다보지마."

"나도 믿을건 있어야지."




그를 옆에서 쳐다보고 있는 여자는 얀순

정말 바쁘다는 듯 손목의 작은 시계를 들여다 봤다.




"계약서가 문제야?"

"독소조항같은건 없어."



"........"



"........그래, 일주일에 140시간 이상 나랑 함께 있어줘야 하긴 해."



"......."



"알았어, 130시간으로 줄여줄게. 됐지?"



"........"



"......120시간, 더 이상은 안돼."



"........"



"도데체 얼마나 욕심내는거야!"

"110시간! 이게 최소야!"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녀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남자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길길이 날뛰었다.


잠시후 그가 조용히 계약서의 페이지를 넘기자 그녀가 미간을 찌뿌렸다.




"........"



"끙....그래 이거 혼인신고서야, 말 안해서 미안해."

"그런데 결혼하기로 이미 동의했잖아!"



그는 그녀의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이상하다는 그의 태도에 오히려 그녀가 당황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또 내가 잘못한거야?"



".........구야"



"응?"



"너 누구야."




한참동안이나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던 그의 얼굴이 짜게 식었다  




"......어?"



"누구냐고."



"뭐야....지금 장난이지?....."

"아니면 머리라도 다친거야? 괜찮아?"



"니 이름 뭐냐고."




확연히 다른 둘의 태도에 

병실 안에 조용히 서 있던 그녀의 비서마저 이상함을 느꼈다.




"진짜 기억 안나?"

"나 얀순이!"



"너 나 알아?"




차가운 그의 모습에 그녀는 속이 뒤집어지는 듯 했다.




"진짜 기억 안나는....."



"하 씨발, 안그래도 머리 아픈데 미친년까지 지랄이네."



"뭐...? 갑자기 왜 그래...."



"언행을 삼가주십시오."




뒤에서 지원해주는 비서의 말에 그녀가 다시 힘을 얻었다.




"그래! 너 평소엔 안 이랬잖아!"



"내가 평소에 어땠는데."



"응....? 어....별 말 없이 웃고...."



"어디서 그걸 봤는데."



"어....."



"그만해주십시오, 아가씨께서 부담스러워하십니다."




참으로 적절한 비서의 도움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녀는 돌아가면 비서의 연봉부터 올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건 별로 중요한게 아니잖아!"



"맞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서류부터 작성해주시지요."



"......미친년과 미친년 보모라, 잘 어울리네."



"말 조심해주십시오!"




발끈하는 비서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대답해,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지?"



"정말 기억 안나는거야?"

"중학생때 같은 학교였잖아!"



"중학교 이름이 뭔데."



"미래중학교!"



"3학년때 반은?"



"1반!"



"난 6반이었는데?"



"그래! 드디어 기억 났구나!"




그의 대답에 그녀가 처음으로 미소지었다.

하지만 이어진 대화에 그녀의 표정이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럼 처음부터 이야기해보자."

"지금이 몇년도지?"



"누굴 바보로 알아? 2021년이야."



"그럼 중학교 3학년이 몇 년도?"



"11년 전이니까...2010년."



"너 2010년에서 왔구나?"

"시간여행자는 처음보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난 11년은 커녕 27년 평생 널 본적이 없는데."

"내가 어디 대가리 박고 기억을 잃은게 아니라면 넌 다른 세계선에서 온 거겠지."



"더 이상 헛소리 안들어줄거야!"

"너랑 나랑 연인이라는 증거도 있다고!"



"허, 꺼내 보시던지."




얼탱이 없다는 그의 비웃음에 그녀는 매끈한 입술을 깨물며 

지갑에서 작은 종이 하나를 꺼냈다.


[사랑합니다] 라고 쓰여있는 종이


꽤나 오래되어 보이는 그것은 깔끔하게 필름지로 보호되어 있었는데

누가 봐도 소중하게 다뤄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 너가 나한테 고백할때 줬던 편지!"



"이건 롤링페이퍼잖아."

"빈칸 채우기용으로 쓴건데."

 



부반장이었던 그는 부장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모든 롤링페이퍼의 빈 칸을 수필로 채웠다.


당연히 수십개나 되는 내용을 하나하나 적을 순 없었으므로

모든 칸을 사랑합니다로 통일했었다.




"이익! 다른...다른것도 있어!"




이번에는 음성 파일이었는지 휴대폰의 볼륨을 올린 그녀.

곧 안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 저기 니 여친 지나간다 ㅋㅋ>

<지랄하지 마라 ㅋㅋㅋ>

<님 여자 싫어함?>

<뭐라는거야 ㅋㅋ>

<쟤가 니 여친 아니면 님 게이 ㅅㄱ>

<아 게이는 어쩔수 없지, 여친 인정~ ㅋㅋ>




"자, 우리 사귀는거 맞지?"



"........."




그녀의 당당한 태도에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던 비서의 얼굴마저 썩어들어갔다.


그간 하루도 빠짐없이 자랑하던 남자친구에 대한 진실이 이런것이었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그녀는 똑바로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김비서! 너가 왜 사과하는거야!"



"야, 더 없냐?ㅋㅋㅋ"

"듣다 보니 재미있네 ㅋㅋㅋㅋ"




정말로 즐거운 듯 웃는 그의 얼굴에

방금전 까지 화내던 것이 무색하게 그녀도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아, 오랜만에 웃으니 기분은 좋네."



"맞다! 싸인!"

"싸인부터 하라고!"



".......일단 웃겨줘서 고마워 자칭 여친님."



"고마워 여친....고마워 여친...."



"또,또 지랄 시작이네"

"저기요, 보모씨가 좀 말려봐요."



"죄송합니다 도련님."



"호칭은 바꿔주시죠, 얀붕씨로."



"네 알겠습니다, 얀붕씨."



"도련님이 뭐 어때서!"



"아가씨, 서류 이야기 먼저."




그는 눈앞에 서 있는 여자들의 개그에 실소를 흘렸다.




"일단 다들 앉으시죠."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파란색 접이식 의자 두개.


조금 전보다 확실히 우호적인 말투에 

두명의 여자는 순식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 남친이니 여친이니 하는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합시다."



"응."



"네, 얀붕씨."



"이건 다 뭡니까?"




그가 집어든 서류뭉치들

처음 봤을때부터 무슨 서류들인지는 알았지만

그는 앞뒤 맥락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 급성 신부전이잖아."



"......어떻게 알았는지는 안 물어볼게."

"그런데 그거랑 이 서류랑 무슨 상관인데."



"신장 이식 안받으면 한달 안에 죽는다면서!"



"의사까지 매수했어?"



"그런건 별로 안중요해."

"진짜 중요한건 이거고!"




비서에게 손짓하자 그녀가 들고 있던 파일 중 하나를 건넸다.

 얀순이는 파일을 펼쳐 그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나 죽을병 걸렸다 - 로 시작하는 pdf 형식의 사진

그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자살예고 글이었다.


그녀가 당당하게 내민 사진에 그의 얼굴이 찌뿌려졌다.




"이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남친이 죽는다는데 상관이 왜 없는데!"



"남자친구 아니..."



"시끄러워! 넌 내 남자친구야!"




답답한 얀순의 태도였지만

그는 슬프게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런거 가져온거야?"




그는 서류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장기기증 서약서, 혼인신고서, 근로 계약서 등 

여러 계약서들에는 모두 자신의 이름이 써져 있었다.




"나 기증받을 생각 없는데."



"자꾸 그러면 나 화낼거야?"



"하나도 안무서운데."




그가 이렇게 베짱을 부릴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가족이 없었다.


그가 12살이 되던 해, 부모님이 이혼했다.

자연스레 할아버지 집으로 보내진 그는 그 이후로 엄마를 볼 수 없었다.


재혼해 새가정을 차린 아버지는 매달 양육비만을 보내왔고

20살이 되자 그마저도 끊겼다.


그리고 5년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조부모님

그렇게 그의 죽음을 슬퍼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더 이상 살기도 귀찮다."



"야! 김얀붕!!"



"보모씨, 얘 조용히 좀 시켜봐요."



"이번엔 얀붕씨가 심하셨습니다."




그를 타박하는 그녀의 말에

얀붕은 쩝하고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뭐, 이상한 이야기해서 미안합니다."



"그러면 기증 받을거지??"



"......."



"시간 없는거 알잖아!!"



"........."




다시 시작된 그의 주특기

쌩까기였다.




"도대체 왜 그러는건데!"



"그거 알아?"



"응?"



"7년 동안 좆소에서 구르다 보면."

"가끔씩 삶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와."



"그게 무슨..."



"물론 일 할때는 그런 생각도 안들지."

"힘들어 죽을것 같은데 무슨 생각을 해 ㅋㅋ"



"........."



"그런데 휴일, 특히 공휴일에 사장새끼가 부르면."

"내가 왜 이렇게 사나 싶어."



".....다른 회사로 가면 되잖아!"

"우리 회사로 와, 내가 편히 쉬게 해줄게!!"



"그런걸로 치유 됐으면 얼마나 좋겠어."

"이미 머릿속에 각인 돼버렸어."

"죽고싶다라는 생각이."



"제발....그런말은 하지 말아줘.....제발...."




의자에 앉아있던 그녀는

어느새 침대 앞에 무릎꿇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돌아가, 이런거 필요없어."



"흐윽...나는 너 덕분에 구원받았는데...."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난 더이상 누군가를 구해줄 수 없어."

"나 스스로도 못 구하는데."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감돌던 병실에는

혈액 투석기의 소음만이 울려퍼졌다.




"......이래도 안가?"



"흐윽....남친 끅! 두고....어딜 가...."



"독하다 독해!"



"얀붕씨, 부디 생각을 바꿔주십시오."



"제 이야기 안들었어요?"



"부모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은 당신 뿐만이 아닙니다."



"........."




그녀의 말에 그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말씀드리긴 부끄럽지만, 저는 물론 아가씨의 가정에도 불화가 있었습니다."



"난 부모님 이야기를 한적이 없는데."




그녀는 그의 앞에 조심스레 다른 파일을 올려두었다.

그 파일을 열어보자 안에는 그에 대한 정보가 가득했다.




"남 뒤를 캐고다니는게 자랑인가?"



"죄송합니다."

"그저 사랑을 위한 귀여운 몸부림이라 생각해 주십시오."




대충 눈치를 보니 자신의 옷깃을 간절히 붙잡고 있는 얀순이가 시킨 짓이리라.

 어렸을 적 키웠던 햄스터 같은 눈빛에 그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씨발.....씨발!! ㅋㅋㅋㅋ"



"........."



"평생 남은 웃음 오늘 다 쓰겠네 ㅋㅋㅋ"

"내가 이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은 아닌데 ㅋㅋㅋㅋ"



"저희에게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기회야 얼마든지 주고말고요."




그는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를 쳐다봤다.

다시 보니 조금 마음에 드는 얼굴이었다.


조금이 아니라 아주 쪼오금


피식 웃은 그는 그녀의 단정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그렇게 병원에서 두명의 생활이 시작됐다.


왜 두명이냐고?




"죄송합니다, 회장님이 급히 부르셔서."


"응, 나중에 봐."




안보일줄 알고 밖에서 화이팅 포즈를 보내는게

회장의 부름 때문이 아니라 그냥 눈치껏 빠져준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사라진 내 가방.




"어? 내 가방."


"응? 중요한거야?"


"아....아니."




목매달 밧줄이 들어있던 가방이었는데.

그걸 쏠랑 가져가다니.


이정도 눈치는 있어야 회장님 딸래미 보호자 노릇을 하나 싶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생각을 하자 

자신이 눈앞의 여자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야."



"응? 왜 불러?"



"너 이름이 뭐라고?"



"얀순, 김얀순!"



"얀순...."



"히히, 드디어 이름 외워주는거야?"



"좀 있으면 까먹을거니까 너무 좋아하진 말고."




인간의 궁금증이란 저주와 같아서 

하나를 알면 다음것도 알고싶게 되기 일쑤였다.


이름을 아니 그녀의 다른 부분들도 궁금해졌다.


그래, 어차피 곧 죽을건데 지금 좀 즐기면 어떤가.


그는 편하게 마음을 먹었다.




"방금전 보모씨가 회장님이랬는데 무슨 사업하시는거야?"



"드디어 우리 남친님이 한와그룹 사위가 될 생각이 들었구나!"



"한와그룹? 그리고 남친 아니라고."




우리나라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 한와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기업이었다.

물론 그도 잘 알고 있었고 말이다.




"아빠한테 뭐 달라고 하지?"

"얀붕이는 남자니까 레져분야? 아니면 건설?"



"그만, 그만해."



"아들이 태어나면 얀동, 딸은 얀유로 하자."

"아참, 아들은 두명 있었으면 좋겠는데? 딸도 한명 낳고."

"그리고 손자 이름은 뭐라고 짓지? 헤헤...."


 

".........."



이제 별 말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그녀를 보고 있던 그의 입가에는

 자신도 모르는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31도를 넘나드는 더운 한여름밤

비록 병실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었지만

이런 밤에는 맥주 한잔이 간절했다.


그렇게 찾아간 근처 편의점.




"꿀꺽.....고놈 참 맛나게도 생겼다."




좆소에 다닐 때 사수의 말투가 몸에 배여버렸는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말투를 따라했다.




"씨발, 곧 죽을건데 말투가 무슨 상관이야 ㅋㅋ"




그때가 생각나 기분이 더러웠지만 곧 훌훌 털어냈다.


그렇게 검은 봉투에 맥주 네 캔과 음식을 챙긴 그는 

간호사에게 들킬까 조심조심 병실로 돌아왔다.




"밖에서 마시는게 진짜 직이는데."




이젠 일부러 그의 말투를 따라한 그는 핸드폰을 켜 날씨를 확인했다.

31도 열대야.


지금 나가면 쪄죽는게 확실했다.

밤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지 못하는건 아쉬웠지만 더운건 더 못 참았다.


바로 포기한 그는 주위를 한번 살피고는 안주를 꺼내기 시작했다.




"얀순이 한테 걸리면 한소리 듣겠지."

"그런데 지금은?"

"집에 가버렸지! ㅋㅋㅋ"




한 시간 전 옷가지를 챙기려 집으로 간 그녀

역시 옷 한벌도 없이 병원에서 3일이상 숙박하긴 힘들었으리라.

 



"지금 아니면 언제 먹겠냐."




눈앞에 펼쳐진 진수성찬

꽤나 많은 지출이 있었지만

이 돈은 지옥에서는 쓸수 없을 듯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씀씀이가 커졌다.

지금 이인실에 들어온 것도 남아있는 돈을 모조리 다 쏟아 부을 각오로 들어온 것이었다.




"기껏해야 삼도천 톨게이트비로 나가겠지."




그의 병실은 이인실이었지만

맞은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 그녀가 손을 써두었을것이라 짐작했던 그는

주저하지 않고 핫바를 물어뜯었다.




"에반데."




차가운 핫바는 늘 먹던 그 맛이 나지 않았다.

탕비실까지 가기엔 귀찮았지만 전자레인지는 그곳밖에 없었다.


검은 비닐봉투를 열어보자 보인 전자레인지용 음식들과 슈넬치킨.

탕비실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쩝, 최대한 빨리 갔다오자."




다시 조심스레 검은 봉지에 데울 음식들을 챙기고

탕비실로 향했다.


몇분의 위잉~ 소리와 함께 조리가 완성되길 기다린 

그는 뜨거워진 음식들을 가지고 병실로 돌아왔다.




"바로 이거지 ㅋㅋ"




핫바를 호호 불어 한입 베어문 그는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맥주

그는 여러 맥주 중 한 캔을 깠다.




"이럴때는 카스지 ㅋㅋ"




맥주브랜드를 이야기했지만 뭔가 소름돋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속에 스쳐지나가는 무시무시한 기억에 잠시 머리가 아파왔다.


이미 진작에 익숙해졌었지만 좆같은걸 떠올리는걸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고개를 내저으며 기억을 떨쳐낸 그는 맥주를 바라봤다.




"병원에서는 테라도 아사히도 이거엔 못 당하지."




소리가 새어나갈까 조심히 개봉한 캔

치이익 탄산 거품이 새어나왔다.


오랜만에 맡는 연한 맥주냄새에 머리털이 쭈뼜 섰다.



"딱대 ㅋㅋ"



"뭘?"



"뭘 딱 대긴 ㅋㅋ 당연히....."




뒤를 돌아보자 보이는 화난 표정의 얀순이

그녀의 무서운 얼굴에 그는 말을 제대로 끝낼 수 없었다.




"지금 뭘 마시는걸까?"


"아....이거?"



"나 주려고 딴거 맞지?"



"그건 아닌...."



"내가 하지 말랬지!!!!"



"쉿! 제발 쉿!"




다행히 병실 문은 닫혀있었고

문을 살짝 열고 밖을 쳐다봤지만

간호사가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휴...."



"술 마시지 말랬지...."

"내가...흑...술...끄윽..."




갑작스레 터진 그녀의 눈물샘에

그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그녀를 달래려 다가갔지만

그녀는 순식간에 맥주캔을 잡고 내용물을 모두 마셔버렸다.




"얀순아, 괜찮아?"




그녀는 그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다음 캔을 뜯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의 원샷

 

고개를 숙인 채로 손에 힘을 줘 캔을 구기던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술에 취해버렸다.




"내가...딸꾹!....어떻게 해야! 나 사랑...딸꾹!"




취하자 나온 본심

사실 처음부터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왔었다.


다만 그가 눈과 귀를 막았을 뿐


그녀의 말에 애처로움을 느낀 그는 그녀를 껴안았다.


가까워진 얼굴을 마주보자 알콜 향이 물씬 풍겼다.



오랜만에 술향기를 맡아서일까

그는 그녀가 예뻐보였다.


그녀가 예쁘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랑스러웠다.





10cm...

5cm....


서로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고

이내 부드러운 입술이 서로를 마주했다.




"하읍❤"




그의 숨을 전부 들이마시려는듯 

밀착하는 혀


설육이 부드럽게 얽히며 서로를 보다듬었다.


이어진 타액의 교환

애정 가득한 모습에 그는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




한참동안 이어진 딥키스에 

그들은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었다.



황홀한 연결이 끝나자 

그녀는 술기운에 어지러워졌는지 조금 휘청거렸다.



그는 취한 그녀를 끌어안고 침대에 누웠다.






"얀순아..."



"웅? 웅?"



"수술 잘 끝나면."



"웅"








"우리 진짜 사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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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간 총 41000자

새하얗게 불태웠다.


+재미있게 읽어준 사람들 모두 고마어! (๑˃̵ᴗ˂̵)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