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약속이 7시라면 나는 5시부터 기쁠거같아]


"어쩜 그리 말을 이쁘게 하니?"


[히히- 내가 누구의 남자친구인데?]


"빨리 약속시간이 되면 좋겠다."


[내가 말하긴 뭐하지만 진짜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각오해]


"나는 설령 얀붕이가 그저 축하한다고만 말해줘도 기쁠거같은데"


수화기 너머로 그 특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잠시 눈을 감고 그를 느꼈다.


[크큭- 자꾸 그렇게 딴짓하면서 전화하면 또 상사한테 혼나는거 아니야?


"얀붕이랑 전화하는 것보다 중요한게 어디있다고 그래~"


[저녁에 보자. 기다리고 있을게]


통화가 종료됐지만, 그 여운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차지한 얀붕이는 내 전부였다.


유들유들한 성격과 잘생긴 외모 덕에 그를 노렸던 여자는 많았지만, 힘겹게 승리한 싸움.

그 싸움은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지금도 얀붕이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몸이 녹아버릴것 같다.

게다가 오늘은 내 생일.

자기가 깜짝 파티를 준비했다고 말하는 그가 기다려져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오늘처럼 기분 좋은날은 유독 시간이 가질 않는다.

계속해서 틈 날때마다 고개를 돌려 사무실의 시계를 보지만, 좀처럼 움직이질 않는 시침.


키보드 자판을 치는 단조로운 소리만이 가득 찬 이 공간이 나와 얀붕이를 가로막는 벽이 된 것 같아 답답하다.

그래도 얀붕이를 먹여살리려면 내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고개를 돌리니 아까보다 15분 지나있었다.

그래, 이건 분명 신의 시련이야.

나의 사랑을 시험하는게 아니면 이렇게 시간이 안갈리가 없어.


그렇게 생각하길 잠시, 이제는 참을 수 없었다.

굳은 다짐을 하고 의자를 끌며 큰 소리로 일어난다.


"얀, 얀주임?"


갑자기 일어난 내게 당황했는지, 평소의 짜증스런 어투가 아닌 진짜로 당황환 어조로 상사가 나를 불러왔다.

평소라면 그를 골려주고 싶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저 퇴근합니다."


"퇴근이라니? 지금 아직 오후 4시.."


"저 퇴근합니다."


"그,그래.. 무슨 일 있는건 아니지?"


무슨 일?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기쁜 날이다.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상사를 지나쳐 밖으로 나간다.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진다.

그냥 걸음에서 빠른 걸음으로.

빠른 걸음에서 달려가는 것으로.


얀붕이가 나를 기다려 줄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옆을 스쳐가는 꼬마애가 내 표정을 보고 놀랐던 것 같은데, 신경 쓸 바 아니다.


[어쩐일이야? 이렇게 이른 시간에. 벌써 끝났어?]


"허억- 허억- 얀붕아. 거기 딱 기다려-"


그의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선을 벗어나도 그저 웃으며 수긍해주는 그.

몇 마디를 나눴을 뿐인데 전후사정을 눈치챈 것 같았다.


[내가 못산다, 진짜. 천천히 와. 천천히. 뛰다가 다친다.]


"사랑 앞에서 나는 무적이야!"


[내가 무적이 아니라 버거우니까 그러지]


"뭐? 얀붕이. 오늘 착정 500배-"


[크크큭-- 기대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게. 나도 슬슬 준비해야겠네]


파티는 상관없었다.

아니, 나를 위해 그가 준비해준 만큼 보고는 싶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의 손을 잡고 그를 느끼고 싶다.


신기하다.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는다.

횡단보도 너머로 그런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주는 그가 보인다.


손에 들고 있는 저 곰인형은 묘하게 나랑 닮아있다.

저게 내 깜짝 선물인가?


마치 어쩔 수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 특유의 분위기로 나를 기다려주는 얀붕이.

그에게 도달하기 까지 1분 전이다.


"얀붕아-!"


순간,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언가에 쫓기듯 내게 달려오는 그.

뭐라 내게 소리를 치고 있었지만, 갑자기 들려오는 경적 소리에 잘 들리지 않았다.


"앗, 얀붕이도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


한순간이였다.

달려오는 날 얀붕이가 밀쳐낸건.


"조심해!"


그리고 지나가는 대형 화물차.

들려서는 안될 소리와 함께 세상이 빙글빙글 회전한다.


"어...?"


얀붕이의 몸이 마치 종이인형처럼 하늘을 향해 튄다.

새빨간 액체들이 시야를 가렸고, 나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눈 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어서.

아니, 받아들일 수 없어서.


"꺄아아악----!!!!"


그 순간에도 얀붕이의 몸은 떨어졌다 튕겼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급격하게 방향을 튼 화물차는 건물을 박고는 불에 타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광경에 방금까지 있었던 사건이 오버랩됐고,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야..ㄴ붕아.."




..........




삐--. 삐--. 삐--.


영화에서 듣던 소리가 귀를 울린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자 내가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몸에 붙은 붕대를 보고 잠시 상황을 정리했고, 이내 방금 전 일이 생각났다.


"얀붕아-!!"


"환자분. 진정하셔야합니다!"


"얀붕아! 이럴때가 아니야. 얀붕이가, 얀붕이가..!!!"


"환자분!! 환자분!! 간호사!! 진정시켜!"


내가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성인 여성 몇명이 나를 짓누르자, 결국 나는 다시 침대에 눕혀졌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정신이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1순위는 내가 아니라 얀붕이기에 나는 그를 보러가야했다.


"이거 놔!!"


"남자친구 분은 무사합니다! 수술은 잘됐어요!"


"어..?"


"지금은 진정을 취해야합니다! 일단 좀..! 멈춰서..!"


나를 누르며 필사적으로 말하는 간호사들의 말에 행동을 멈췄다.

눈에 띄게 안심한 간호사를 붙잡고 아까 전의 말을 되묻는다.


"얀붕이 괜찮나요? 언제부터 볼 수 있나요? 다 제 잘못이에요. 내가.. 내가.. 약속시간을 앞당기지만 않았으면..!"


"아니에요. 경찰 조사 결과 사고의 원인은 화물차 운전기사의 졸음 운전으로 판명났어요. 얀붕씨는 중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골든타임 내에 응급실에 도착해서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었어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다만..."


"다만?"


"크흠."


간호사가 내게 뭔가 말을 하려 할때 뒤에서 헛기침이 들려왔다.

어느새 다시 돌아온 의사는 내게 말을 하던 간호사를 뒤로 빼고는 내게 무슨 약을 얼마나 먹을지, 입원기간 등을 알려주고는 가버렸다.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빨리 완치되어 얀붕이를 맞이하러 가야하는 것이었기에, 애써 무시했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못하는 얀붕이를 내가 간병하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얀붕이와 대화를 나눌 수 없던 긴 시간이 너무 괴로웠지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간신히 버텨왔다.


내게 전화를 하지 않는 얀붕이가 의아했지만, 그를 믿고 있었기에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드디어 나의 퇴원일이 되었다.


하지만, 퇴원임에도 불구하고 내 주위의 간호사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이상하다.

분위기가 너무 이상하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예감이 빠르게 일었다.

그 순간 생각난 얀붕이.

내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간호사들을 밀치고 말로만 들었던 얀붕이의 병실로 달려갔다.


뒤에서 성급히 내게 할 말이 있다며 말렸지만, 나는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도달한 얀붕이의 병실 앞에서 나는 주저했다.


무서웠다.

이 문을 열었을때, 얀붕이가 없을까봐.

내 인생의 빛이 되어준 얀붕이가 사라졌을까봐.


떨리는 손과 두근대는 가슴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괜찮을까?

내가 이 문을 열고, 얀붕이에게 다가가도 괜찮은걸까?


내가 망설이고 있을때, 문이 열렸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나는 문을 나오는 얀붕이와 눈을 마주쳤다.



"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병실 문을 열고 나온 얀붕이는 매우 건강해보였다.

머리에 두른 붕대를 제외하고는 이전과 같은 모습.

특유의 어색한 미소도 장착한 채로 날 보는 얀붕이.


"얀붕아-!"


기쁜 마음에 그를 와락 안았다.

이어지는 그의 따스한 말과 나를 안아주는 광경을 기대했지만, 그는 그저 머뭇거릴 뿐이었다.


"얀붕아?"


그를 계속 안고 있는 채로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았다.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나와 얀붕이.


얀붕아, 나 너무 불안해.

빨리 나를 안아줘.

내게 말을 해줘. 


그의 입이 열릴때까지의 시간은 짧았지만, 기다리는 나는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를 무너트리기에 충분했다.


"죄송합니다. 저 혹시.. 저를 아시나요?"


"무, 무슨 소리야.."


"제가 사고를 당해서 기억을 잃어서요.. 죄송합니다. 저랑 무슨 사이였나요?"


"장난이지? 재미없어... 얀붕아, 장난이지?"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이럴리가 없어.. 아니야.."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 앉았다.

나를 부축하는 그의 묘하게 나를 피하는 행동이 눈에 띄었다.


마치 처음보는 사람을 대하는 행동.

그는 평소에도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기억이 없어도 몸이 기억하듯이 나를 부축해주는 그의 모습에 그가 진정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했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지금도 느끼고 있는데.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나를 모른다.


나를 따라오던 간호사들이 그제야 현장에 도착했고, 엎어진 나를 부축하여 상담실로 데려갔다.


"미처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상담실에 도착하자마자 꺼낸 간호사의 말에 분노가 쏟아올랐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걸 알기에 가만히 있었다.

그저 공허한 눈으로 그녀가 하는 말을 들었다.


"얀붕씨는 현재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리셔서 최근 몇년간의 기억이.."


"이것은 사고 당시 얀붕씨가 가지고 있던..."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


그녀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흘려보낸 뒤 그녀가 건내준 얀붕이의 소지품을 안은채 병원 앞 벤치에 앉았다.

나는 지금도 쌩쌩한데, 지금 당장이라도 네게 달려갈 수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기뻤을 날이 가장 원망스러운 날이 되어버렸다.

나를 저주한다.

내가 제 시간에 맞춰 약속 시간을 지켰더라면, 내 생일은 은연중에 티내지 않았더라면...


후회의 감정으로 얼룩진 마음이 그의 소지품을 보자 더욱 증폭했다.

해맑게 웃고 있는 나를 닮은 곰인형은 사고 당시 트럭이 밟았는지, 타이어 자국이 크게 나 있었다.


곰인형을 안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울었다.

병원 앞에서 세상을 잠글 정도로 크게 울었다.

그러자 들려오는 소리.


<얀순아, 생일 축하해! 부족한 남자친구지만 최선을 다해서 너에게 걸맞는 남자가 될게! 그러니 이제 한시간마다 보고는 그만해도 될까..?>


얀붕이의 목소리.

아까의 감정이 담겨 있지 않던 소리가 아닌, 평소의 나를 생각해주는 그 목소리.


서둘러 주변을 돌아보며 그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그는 없었다.

대체 어디서 소리가 들린건지 둘러보던 찰나, 꾸욱 안고 있던 곰인형에서 다시 소리가 나왔다.


<얀순아, 생일 축하해!>


아..

참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내 잘못같았고, 그를 잃은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살아갈 이유도 없었다.


무언가에 홀린듯, 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도착한 병원의 옥상은 그런 나를 반기듯 활짝 열려 있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다보니 세찬 바람이 내 볼을 마구잡이로 때렸다.

하지마. 왜 너를 포기하려고 그러는 거야?

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후회들이 나를 좀먹기 시작했다.


나는 자신이 없다.

나를 기억해주는 얀붕이가 없는 세상에서 홀로 설 자신이 더는 없다.

그렇세 한 발을 내딛여..


"잠시만요!!"


마지막이니만큼 가장 듣고 싶은 목소리가 들린다.

너의 목소리가 내 귀를 울려준다면 나는 죽더라도 웃을 수 있을거 같아.


"얀순씨! 얀순씨!!"


누군가 내 팔을 낚아채 나는 그 힘에 쏠려 넘어진다.

넘어진 내 시야에 보이는 누군가의 가슴.

그리고 코끝으로 들어오는 향기.


내가 이 냄새를 모를리 없다.

한창 우리가 사귀기 전에는 그의 집에 몰래 몰래 들어다녔으니까.


"얀붕아..?"


"얀순씨,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기억이 돌아온거야?"


"아쉽게도 그건 아니에요."


"그럼 왜 나를.."


"딱봐도 초췌한 모습으로 옥상으로 올라가는데 누가 안 따라가요!"


"흐윽.. 흡.."


"저희가 어떤 사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울지마세요. 얀순씨가 우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파요."


"나 잘할 수 있을까? 나만 기억하게된, 모든 것이 추억으로 되어버렸는데. 그것들을 짊어지고 다시 너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다시 일어설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얀순씨가 취향은 아니라서요. 하하-"


그의 웃는 모습을 보고 머리에 충격이 왔다.

나만 기억하면 어때? 

그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면 어때?


다시 시작하면 되는거다.

그가 모르는 그를 나는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


세삼 사랑스러워 보이는 그를 안고는 격렬하게 키스를 했다.

울지 않을게. 

다시 너가 나를 사랑해줄때까지 나 힘내볼게.


"우읍.. 저희가 이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지금은 일단 키스하자"


저항하는 그의 뒷통수에 힘을 주어 다시 키스를 한다.

기억을 잃었어도 결국은 얀붕이다.


이 사건 이후로 얀붕이는 내가 병문안을 올때마다 피하게 됐지만,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


"얀붕아, 나 왔어!"


"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구요! 6시간마다 뭐하는 짓이에요!"


"그치만 나는 얀붕이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걸?"


"아 진짜! 기억을 잃기 전의 나는 이런 여자를 어떻게 만난거야!"


발작하듯 컹충 뛰는 얀붕이가 귀여워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그런 일상이 매일 같이 반복됐다.


..........


"얀붕아~"


"얀붕이 없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키스할 상대도 얀붕이는 아니겠네?"


"이거 성희롱.."


"아잉♡"


"우읍.."


..........


"얀붕아~ 또 나야!"


"..."


"오늘은 왜 모닝콜 안해줬어?"


"..."


"나 얀붕이 목소리 안듣고 일어나면 그날 하루 컨디션 엉망인거 몰라?"


"아니, 세상에 누가 모닝콜이란 명목으로 전화하면 3시간 넘게 끊지 않으려해요?"


"그치만 기억을 잃기 전의 얀붕이는 잘 해줬는걸?"


"어쩐지 저번달 통화료가 어마하게 나오더니!"


"헤헤.."


...........


"얀~붕~아~~"


"얀붕이 예정있습니다."


"기억을 잃기 전의 얀붕이는 내 말에 무조건 복종했는데?"


"제가 기억 없다고 이제는 없는 과거도 만드는 거에요?"


"흥! 얀순이 삐졌어!"


"그럼 좀 가세요..."


"아! 맞다. 이번에 마블 영화 새로 개봉했다던데.."


네가 좋아했던 마블 영화.

히어로물을 싫어하던 나와 달리, 너는 항상 시리즈를 챙겨봤었지.


"아악-! 스포하지 마요!"


"그럼 나랑 보러 가줄거야?"


"그 어두운 공간에서 뭔 짓을 할 줄 알고!"


"사실 2대 아이언맨은..."


"으아악-! 갈게요! 간다고요!"


지루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봤던 보람이 있었다.

나 인생 저당잡힌거 같아..라며 웅얼거리는 얀붕이의 손을 잡고는 병원 앞으로 산책을 갔다.


이른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날이 저물었다.

달이 유독 밝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얀붕아. 나랑 춤 추자."


"엑.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요?"


"그러고보니 비전이 살아났던가..?"


"아, 춤춘다고요!"


싫어하는듯하면서도 내 말을 따라주는 얀붕이.

역시 몸은 기억하고 있구나.


달빛 아래서 춤추던 날. 

온 새상이 우리를 빛추던 날.


처음 얀붕이의 손을 잡고 춤추던 기억이 난다.

그날도 이런 날이었다.


참아왔던 웃음보가 터진다.

기쁜데, 다시 얀붕이와 함께할 수 있어서 이렇게나 기쁜데 눈물이 흘렀다.


내게는 수없이 반복한 이 춤도 그에게는 처음일 것이다.

그를 사랑하는 만큼, 우리의 추억이 사라졌음에 너무 슬프다.

이겨낼 수 있어도, 침전되는 슬픈은 가시지 않는다.


"얀순씨.."


"헤헤- 미안. 기쁜데, 너무 기쁜데.. 흐윽.."


"미안해요.."


성격은 변하지 않았는지 내게 죄책감을 느끼는 얀붕이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슬픈선 슬픈거고, 이용할건 이용할 것이다.


"나랑...."


결국은 얀붕이도 남자다.

이것을 거부할 리 없을거다.


"그건 좀.. 아무래도 사귀지도 않는 사이랑.."


빠직-


"얀붕아, 내가 너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뭐였는지 알아?"


"뭐, 사랑해 이런거겠죠..?"


"아니."


"그럼 뭔데요?"


"착정 500배"


"엑"


당황한 얀붕이를 끌어당긴다.

일단은 몸부터 기억하게 하자.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야.

힘내자, 얀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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