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얀붕아! 얀붕아! 우리 오늘은 뭐하고 놀래?"


"우리 모래성 지을까?"


"소꿉놀이는 어때? 내가 오늘 찻잔 가지고 왔어!"


"그럼 얀순이는 엄마하고, 얀진이는 딸 하면 되겠다!"


"그러면 얀붕이가 아빠다 아빠!"


얀붕이, 얀순이, 얀진이. 셋은 동네 친구였어. 놀이터 모래밭에서 만나서 같이 놀게 된 걸 계기로 급속도로 친해진. 


매일같이 엄마에게 졸라서 동네에 나가면, 셋이 맨날 끈덕지게 붙어서는 재밌게 놀고는 했지. 


"어라? 쟤 또 여자애들하고 논다!"


"여자애랑 논대요, 얼레리 꼴레리~"


"아니야! 얀순이랑 얀진이는 내 친구야! 여자인게 뭐가 잘못인데!"


"므가 잘모신데에~"


"야! 니들 또 얀붕이 괴롭히지!"


"야야 조폭마누라 나왔다! 도망쳐!"


"어휴, 남자 애들은. 얀붕아! 우리 가자."


"얀붕이 어디 안 다쳤어? 쟤들이 너 안 괴롭혔지?"


"난 괜찮아! 고마워!"


초등학교도 같이 다니게 되고, 반이 달라져도 매일 학교가 끝나면 만나기도 한 셋의 관계는 어딘가 어긋나기 시작했지. 


어릴 때는 애들 얼굴에 그리 차이가 없어. 다 거기서 거기지. 


그런데 나이를 먹고, 중학생이 되는 시점에서 얼굴에 확연한 특징들이 생기고


남자와 여자를 확실하게 구별하기 시작하지.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순수한 얀붕이는 여전히 둘을 친구처럼 대했지만, 얀순이와 얀진이는 그러지 않았지. 


"얀순아, 오늘 저녁 떡볶이 같이 먹을래?"


"오늘은 반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서, 힘들거 같아."


"알았어. 얀진이한테 물어보지 뭐."


"얀진이도 거기 올거야."


"아, 으음... 그럼 나도 같이 가도 돼?"


"여자 애들 있는 곳인데?"


"아, 알았어 그러면. 다음 번에 같이 먹지 뭐."


그래도 이 때는 정중하게 거절하기라도 했던 얀순이와 얀진이였지만,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이, 


얀순이와 얀진이는 더 이상 그 때의 그 아이들이 아니었어.


오직 친구가 별로 없던 얀붕이만 순수했던 그 마음을 소중히 두 손으로 품고 있었지. 


얀순이는 특유의 외모로 학년의 퀸카로 자리잡았지. 


여러 고백을 차면서도, 그 외모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주변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놓았어. 


선생님들은 성우를 해도 되겠다면서, 그녀의 목소리를 치켜세웠지. 


어렸을 때부터 과한 칭찬은 독이 된다고, 얀순이는 갈 수록 거만해져 갔어. 


얀진이는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영 좋지 않았지. 


왕따 좀 시켜보고, 인터넷에서 담배라던가 술을 중학생부터 마셔대면서 자랑질이나 하는 그런 부류들과 어울리게 됬지. 


잘못된거를 알았냐고? 


모르면서 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얀진이는 그렇게 반의 불량 학생 중 하나로 자리를 매겨. 


분칠한 화장과 거친 입담은 덤이였고. 


얀붕이는 초등학교 때와 변한게 없었어. 


얀순이와 얀진이와 연이 있다는 것 하나로 가끔 그에게 그녀들의 정보를 캐 내려는 애들 외에는 접점이 없었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와 시험. 그 둘을 쳐 내는 것에만 몰두를 하던 얀붕이었어. 


하지만 속은 아직 마치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도화지였어. 


얀순이와 얀진이, 그리고 자신을 그려 놓은. 


고등학교로 셋은 진학하게 되었어.


얀순이는 나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지. 


주변 학교에서도 그녀의 외모는 유명했고, 이제는 아예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어. 


얀순이는 그야말로 공주, 자신의 주변을 지배하고 유혹하는 여자였지. 


얀진이는 남자친구를 만들었다 찼다 만들었다 찼다를 반복했지. 


빡쳐서 그녀를 건드리려던 멍청이들은 그녀의 매운 손맛을 봐야 했고. 


불량학생처럼 하고 다녀도 의외로 머리는 좋았던 얀진이는 이미 몇을 사회적으로 매장해놓기까지 한, 


여우 그 자체가 되어 가고 있었어. 온갖 교태와 끼, 그리고 교활함. 


그것이 자신의 무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 


얀붕이는? 사람들과 접점이 점점 더 사라지기 시작했어. 


마지막으로 얀순이와 얀진이와 대화한게 언제적인지 희미할 정도로. 


운명의 장난일까, 셋은 우연히도 그 놀이터 모래밭에서 마주치게 돼. 


예전에 같이 놀던, 그 모래밭 말이야. 


"얀순이...? 얀진이? 오랜만이야 다들."


"아... 안녕."


"..."


"다들 반응이... 영 떨떠름하네."


"뭐, 시발 그러면 우리가 너한테 앵기면서 막 얀붕아~ 정말 오랜만이야~ 어떻게 지냈어~ 이렇게 할 줄 알았냐?"


"...아?"


"하아... 얀붕아. 우리 예전같지가 않아. 더 이상 유치하게 모래밭에서 놀던 때가 아니라고. 내 말 알아들어?


찐따같이 다니지 말고 제발 신경 좀 꺼. 눈치를 그렇게 줘도 알아 쳐 먹질 못해 너는?


중학교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맨날 그렇게 놀자고, 만나자고 연락하는 거 진짜 기분 뭣 같거든?"


"아이고, 팩트로 애 후드려 패지 마라. 아프겠다 야. 


얀붕아, 한국말 알아듣지 응?


그러니까 제 분수 좀 알고 행동하세요. 


나대다가 한번 크게 다치는 수가 있어. 응?"


얀붕이는 그 자리에서 얼어 붙어 있었어. 


얀순이, 얀진이는 그 자리를 그대로 떠났지. 옛 친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로 말이야. 


이 시점을 계기로, 셋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이 나 버렸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얀붕이와의 다리는 둘이 완전히 깨 버렸고, 


얀순이와 얀진이는 잊었던 다리를 찾았지. 


둘은 그렇게 얀붕이의 옛날 모습들을 떠올리면서, 마구 씹어댔어. 


분수도 모르는 찐따라고 말이지. 


그리고 그걸 누가 주워 들었어. 


얀붕이의 지옥은 그렇게 시작되었지. 


있잖아, 따돌림이라는건 그렇게 큰 이유가 없어. 


그냥 건수 잡으면 마구 물어 뜯어버리는 거야. 


그리고 그 잔인함에는 정도가 없고. 


얀붕이의 삶은 급속도로 피폐해졌어. 


학교는 교육의 장에서 지옥이 되었고, 


매일같이 어질러져 있는 자신의 책상을 보고 자신의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것을 느껴야만 했지. 


그래도 공부는 포기하지 않았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이어져 있어도


대학교는 순수한 지식으로, 공부한 것들로 판가름이 나는 곳이니까. 


그래서 더 매달렸어. 어떻게든 이 지옥같은 고리를 끊고


좋은 대학교에 가서, 좋은 직장을 얻고,


지금 자신을 비웃고 따돌리는 녀석들 위에서 마음껏 비웃으면 되니까. 


얀순이는 배우의 길을 택했어. 


얼굴도 돼, 목소리도 좋아. 그러면 배우가 당근빠따가 되겠지!


좋은 소속사를 만나 계약을 하고,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 


얀진이는 성적이 망해가기 시작했어. 


초등학교, 중학교는 물로 봐도 고등학교는 한계가 있지. 


그래도 뭐, 나름 선방해서 평범한 대학교로 갈 수 있었어. 


자신을 따르던 무리는 공부 따위 집어친 인생이라, 막판에 와서 뭔가 잘못된 걸 느꼈지만. 


얀붕이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어. 


처음에는 따돌림에 고통받았지만, 성적이 워낙 좋아서 선생님들이 슬그머니 커버를 쳐 주기 시작했거든. 


따돌림 때문에 실적이 날아간다? 선생님들은 그렇게 둘 수 는 없었지. 


그 비호 아래에서 여러가지 도움을 받아가며, 얀붕이는 성공적으로 입시를 마칠 수 있었어. 


물론, 망할 3년 동안 인간 관계고 뭣도 없이 지낸 얀붕이는 발랄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필요한 말 외에는 입을 열지 않는 돌부처가 되어 있었지만. 


얀순이는 배우로서 성공하기 시작했어. 데뷔작이 대박을 쳐서, 얀순이의 이름이 유명해지기 시작했지. 


얀진이는 대학 선배 하나를 꼬시는데 성공했어. 나름 돈도 있고 얼굴도 반반했지. 


얀붕이는 교수님들의 관심사가 되었어. 가르친 것의 외적으로 질문도 하고, 태도도 싹싹했거든. 


얀순이는 나름 유명해졌어. 광고도 몇 개 진행하고, 정말 이례적으로 일찍 성공한 배우가 되었지. 


얀진이는 남자를 갈아치우기 시작했어. 그 악명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지. 


얀붕이는 대학교 미팅에서 상냥한 선배를 만나게 되었어. 두 살 연상이었지만, 뭐 어때?


너무 오랜만에 만난, 목소리에서부터 묻어나오는 상냥함에 얀붕이는 미팅에서 그만 울어버렸어. 


얀순이는 커리어가 박살나기 시작해. 


중학교 떄 부터 쌓아오던 그 잘난 성격 덕에 매니저를 부려먹고 꼽을 잔뜩 주다가


그만 매니저가 그 사실을 언론에다 뿌려버렸거든. 


얀진이는 대학에서 아주 유명해졌어. 


나쁜 쪽으로. 


더 이상 친구도, 새로운 남자 친구도 없었지.


얀붕이는 첫 사랑을 시작해. 


순애 선배는 공부도 나름 도와 주고, 땡땡이치고 같이 노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지. 


칙칙해 보였던 거리에 색이 도는 기분이었어. 


얀순이는 방에 틀어박혔어. 


위약금? 간신히 물어냈어. 


대신 인터넷에서 욕을 먹을 대로 먹었던 터라,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정해져 있었지. 


얀진이는 더 이상 화장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러 가지 않았어. 


후드를 푹 쓰고, 누가 알아볼까 노심초사하며 


그저 대학교 수업만 듣고 빠져나오는 수준이었지. 


사람과 대화, 그것이 너무나도 그리웠지만


그녀는 그럴 자격이 없었지. 알잖아?


얀붕이는 일편단심으로 순애 선배에게 자신의 사랑을 바쳤어. 


100일 기념으로 목걸이도 선물하고, 그 답례로 커플링을 받았지. 


그럴 수는 없다고 거절하려 했지만, 순애는 한사코 커플링을 손에 쥐여주고는, 


마지못해 내어준 얀붕이의 손에 반지를 끼워 줬지. 


내가 선배인데,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다고 말이야. 


그리고, 목걸이는 정말 예쁘다고, 고맙다고 하면서. 


둘의 관계는 점점 더 깊어지게 되었어. 


이제 둘은 서로에 대해 모르는게 없었지. 


그래, 입영 날짜도. 


얀붕이는 군대를 가게 되었어. 


순애는 일편단심으로 그 기간을 기다려 줬지. 


커플링과 목걸이를 만지작 거리면서, 


휴가를 나오면 애정공세를 퍼부어 주면서 말이야. 


한편, 얀순이와 얀진이는 점점 더 끔찍해지고 있었어. 


얀순이는 불안 증세가 더 심해졌어.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어. 


상냥하게 보듬어 줄, 나락까지 떨어진 자신을 붙잡아 줄 사람이. 


얀진이는 사람이 필요했어. 


자신에게 말을 걸어줄 사람이, 그리고 다시 한번 친구가 되어 줄 사람이. 


둘은 이제 와서, 친구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알았지.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허황된 것을 보고 쫓아온 필요도 없는 사람들. 


예전의 그....


얀붕이가. 


얀붕이가 필요했어. 


얀순이는 방에서 나와, 얀붕이의 부모님을 찾았어. 


얀순이의 부모님은 쥐 잡듯이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간신히 연락이 닿았지. 


얀진이 역시 부모님에게 부탁을 했어.


거칠었던 아이가 부탁이라니!


역시나 얀붕이의 부모님과 연락을 해 냈지. 


중요한 건, 얀붕이의 부모님은 몰라. 


얀붕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공부에 매달렸는지.


아들이 친구가 있다고 하길래, 그냥 믿었어.


학교? 무난하게 다니는 줄 알았어. 


그냥 그랬다는 거야. 얀붕이는 부모님에게 괜한 걱정을 드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얀붕이는 부모님에게서 얀순이와 얀진이를 오랜만에 만날 생각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어.


얀붕이는 순간 머리 끝까지 화가 나려 했었지. 


그 둘 때문에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를 곱씹었지. 


순간 거절하려 했지만, 둘이 궁금하기도 했었어. 


그래서 간단히 만날 요령으로, 약속을 잡았지. 


먼저 얀순이와의 만남이야. 


얀순이는 야심한 밤의 공원... 그 모래밭 앞의 벤치를 골랐어. 


얀붕이와 자신이 놀던 장소라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모래를 손으로 잡아 보기도 했지. 


손을 아무리 세게 쥐여도, 새어나가는 모래에 알 수 없는 허망함을 느끼기도 했지. 


"저, 혹시..."


얀붕이가 얀순이를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지. 


얀붕이는 순간 충격을 받았어. 


말라도 너무 마른 얼굴,


스트레스 때문에 짙게 낀 다크 서클.


모자 아래로 내려온 푸석푸석한 머리.


빛나던 그 오만한 공주는 온데 간데 없고


이제는 처량하고도 가련한 여자 하나가 있었지. 


얀순이는 충격을 받았어.


안경을 낀, 까까머리의 전형적 찐따는 사라지고


폼 나는 머리에 떡 벌어진 어깨 


그리고 멋진 옷매무새를 자랑하는 건장한 청년이 그녀의 앞에 있었거든. 


숱한 남자들을 만나고 남자 배우들을 봐 왔지만


그녀를 만족시킬 사람은 지금 이 앞, 얀붕이 밖에 없었지. 


"어... 저기..."


"얀순이, 맞아?"


"어.. 응."


"일단... 앉자."


.

.

.


"후우, 너 하나 묻자. 몰골이 그게 뭔데."


"...몰랐어? 나름 나, 유명한 줄 알았는데."


"찐따가 뭘 알겠냐."


"아... 저기,"


"뭐."


"고등학교 때 일... 정말 미안해."


"사과하려고 불러낸거야?"


"...만날 사람이 필요 했어. 정말로."


"그래서 사과로 퉁 치고, 옛날 처럼 하하 호호 웃으면서 지내자고?


한 2년? 3년인가 지옥같이 보낸건 너도 잘 알텐데. 


매일 일어나서 학교 가보면 책상은 개판나있고


내 실내화는 매일 찢어져 있지. 


그래서 선생님들한테 부탁하니까, 이제 그냥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어. 


아예 말 자체를 안 걸고, 시험지 내 놓으라고 말을 해야 그제서야 주는 미친놈도 있었어. 


내가 도대체 너랑 얀진이 덕에 얼마나 개같은 생활을 했는 지 알아?"


"...아니야 ...내 얀붕이는 이렇게 말을 험하게 안 했어...."


" "내" 얀붕이? 착각은 재주껏 하세요. 이미 임자 있는 몸이니까."


"뭐?"


"이 찐따는 이미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네요. 너보다 훨 이쁘고, 상냥하고, 부드러운.


할 말은 다 한 거 같은데, 이만 일어날게."


"저기 - "


"아, 그리고, 너 양심이라도 좀 있어라.


그날 날 그렇게 씹어댔던 곳에다가 날 불러내냐?"


그렇게 한마디 날려 주고는, 얀붕이는 그대로 뒤 돌아서 가 버렸어. 


얀순이는 멍하니, 모래밭을 쳐다보고 있었지. 


그리고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는지,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이쁘고... 상냥하고... 부드러운...


이쁘고... 상냥하고... 부드러운...


그러면... 그런 사람이 되면...


얀붕이랑 같이 있을 수 있겠네...


예전처럼... 다시 같이 놀 수 있는 거겠지...


예전처럼... 얀붕이는 남편... 나는 부인....


예쁘고... 상냥하고... 부드러운..."


얀붕이는 한편 기분이 뭣 같았어. 


얀순이를 보고 나니까, 대충 얀진이가 왜 불러 냈는지 감이 좀 잡히는 것 같았거든. 


"얘도 인간관계 터졌나 보구만."


얀붕이는 가는 길에 얀순이의 이야기를 읽었어. 


인과 응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 


읽으면서 왜인지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면서, 


그런 몰골이 된 얀순이가 정말 딱하기도 했지. 


"그래도 어렸을 때는 그러진 않았는데.


어디서부터 꼬인 거야. 도대체."


버스에서 내려서, 한 카페 안으로 들어갔어. 


후드를 푹 뒤집어 쓴 사람 외에는 없는 한적한 카페였지. 


"뭐야, 여기 있을 거라고 하더니."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전화를 걸려고 하자, 후드를 입은 사람이 소스라치게 놀란 기색을 보였지. 


"설마."


그래, 얀진이었어.


얀진이 역시 영 좋지 않은 꼴을 하고 있었지.


"얀... 얀붕이?"


"그래. 그 찐따 되시겠습니다. 마음에 드냐?"


"...!"


얀진이는 그대로 고개를 숙였어. 후드를 양 손으로 꼭 붙잡더니, 힘겹게 단어들을 간신히 뱉었지. 


"잘... 지냈어?"


"잘 지냈다. 죄책감이 좀 덜어지냐?"


"...미...안."


"애들이 나이를 먹으니까 철이 들었나. 다 나한테 미안하대."


"..."


"얀순이도 너랑 똑같았어. 인성 빻은 둘이 쌍으로 그렇게 터지니까, 참 기분이 뭣 같네."


"...그러네. 개좆됬네."


"너 입 험해진게 도대체 언제부터였냐? 그거 진짜 싫거든?"


"...아 ...미안해."


"그놈의 미안, 미안, 미안. 그 단어의 무게는 알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네 밑에 꼬붕들이 내 책상을 아주 화려하게 꾸며줬던 건 기억 할라나 몰라. 


몇년이 지났더라? 이제는 가물가물하기까지 하네? 응? 


안 그래? 아, 이제 기억났다는 눈 하고는. 


...이 정도로 하자. 


내가 뭐하는 짓이냐. 힘든 사람한테.


너는 그래서 부른 이유가 뭐야. 그거라도 들어보자."


"나는..."


얀진이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를 전부 얀붕이에게 말해 줘. 빠짐없이, 전부 다.


얀붕이의 표정은 점점 더 구겨졌고 말이야. 


"감당이 되는 짓을 저질렀어야지.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닌 거야..."


"...미안-"


"나한테 할 게 아닌거 같은데.


그 선배들, 네 동기들한테 머리 박든가 해야 될거 같아.


너, 혹시 선물이라던가 뭐 그런거 받은거 있어?"


"잔뜩...있지..."


"그거 다 돌려 주고 와. 사과는 당연히 하고."


"그치만 - "


"너 지금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돼? 


너 이대로 가다가는 아예 사회 생활도 못한다고. 


가서 눈 감고 딱 사과하는거야.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도, 한명 한명 차근 차근 사과하고 와. 


오늘 나한테 하려던 것 보다는 수준이 좀 더 좋아야 할 거다.


하아... 내가 왜 이러고 있냐. 


어차피 나 만나려고 하지도 않던 애 한테."


"저.. 저기!"


"뭐, 할 말 더 있어? 나는 없는데."


"사과... 다시 하러 가도 될까."


"...연락처 줄게. 다 하고 나면 만나 줄 지도 모르지."


"...! 알았어..."


"...너도 불쌍하다. 얀순이도 그렇고. 다들... 하아."


한숨을 한번 내 쉬고는, 얀붕이는 그대로 카페를 나가. 


얀진이는 짐을 싸면서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지.


"...사과를 마치고 나면... 얀붕이한테 가서 칭찬 받을 거야...


옛날의 얀진이는 버리고, 새 얀진이가 될 거야...


잘했어, 잘했어 하던 얀붕이...


다시... 볼 수 있겠지?"


얀붕이는 진이 빠져서, 집으로 터덜 터덜 걸어가. 


오늘은 너무 피곤하니까, 내일은 순애 누나랑 만나서 위로라도 받을 심산이었지.


그렇게 지친 몸을 침대에 던지고, 눈을 붙였어.


하지만 얀붕이는 모르지.


얀순이랑 얀진이가 뭘 준비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계획하는지는. 


========================


시간이 조금씩 나기 시작해서 회로 돌린거 가져왔다. 


예전에 얀붕이가 소재 하나 만들어온거에 살 붙여서 가져왔는데, 의외로 조금 길어질 것 같네. 


어찌되었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