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덜그럭"


그녀의 목 대신 떨어진 팬던트에서는, 흑발의 귀여운 소녀가 한 부부와 함께 숲 속에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담겨져 있었다. 


"챙그렁"


나는 검을 바닥에 버린 후,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벨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로 덜덜 떨리는 전신과 치마 밑에서 새어나오는 노란 액체. 그녀는 내 공허한 눈을 차마 마주치지 못한채, 깨어진 팬던트와 내 모습을 연달아 바라보았다.


"아...아아..아...."


그리고 이내 머리를 바닥에 조아린 채, 미친 듯이 나에게 빌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용서해 주세요...흐윽...죄송합니다...가족분들을 제가....흐윽....죄송합니다...."


나는 비에 젖은 새끼고양이처럼 처량하게 떨며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벨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내가 나가고 한참 뒤에도, 케일이 들어 올때까지 벨은 한참 동안  "죄송합니다...용서해 주세요..." 라고 수없이 되뇌이고 있었다.


난 아픈 몸을 억지로 이끌고 궁 밖으로 나왔다. 


"용사 자리를 포기한다는 쪽지를 남겼으니, 이제 날 쫓아오진 않겠지."


"그러고 보니 비비안은 코빼기도 안보이는군. 뻔뻔한 년 같으니.."


난 씁쓸하게 웃으며, 절뚝거리며 성문 밖으로 나갔다.


여동생인 바이올렛을 찾을 생각이었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내 가족을 찾아 조용히 숨어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이올렛이 어디로 간 줄 알고 찾는다..."


"요새 부쩍 마물이 많아졌는데, 설마 마물에게 잡혀간 건 아니겠지..?"


몇달 전, 마물에게 잡혀간 여자들을 여럿 구해본 적이 있었다. 그녀들은 마왕성에서 무슨 세뇌를 받았는지, 끊임없이 색을 갈구하고 욕정을 발산했다. 


"설마 바이올렛도....아니겠지.."

 

난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떨쳐버렸다.


'우선 변장을 하고 정보 길드에서 수소문을 해봐야겠군"


그렇게 정보 길드로 향하려던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바이올렛.....?"


다 헤진 옷. 헝클어진 머리카락. 하지만 여전히 초롱초롱한 보랏빛 눈동자는 내 여동생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오열했다.


"미안해...미안해 바이올렛...내가 못나서...부모님을...흐윽.."


난 무능했던 나를 자책했고, 바이올렛은 말없이 울며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오빠...집으로..집으로 돌아가자..."


"그래 바이올렛. 난 이제 용사도 뭣도 아니야. 집으로 돌아가서 밭을 일구면서 살자.."


"아니야 오빠. 근처에 내가 집을 구해놓은 곳이 있어. 그곳으로 가자 오빠..."


"그래...?"


분명히 바이올렛은 간신히 도망쳐나와 수중에 아무것도 없었을텐데. 순간 의심이 들었지만, 난 개의치 않기로 했다.


난 바이올렛에게 부축을 받으며, 새로운 집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바이올렛은 날 부축하며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이제야 오빠를 독차지할 수 있게 되었어...


"응? 뭐라고 했어 바이올렛..?"


"아무것도 아니야 오빠. 어서 가자!"


오랜만에 신난 동생의 얼굴을 보며, 난 흐뭇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


"비비안님! 정신이 드십니까?!"


"에릭...내가 정신을 잃었나요..?"


"이틀간 쓰러져 계셨습니다.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막 깨어나 몽롱한 가운데, 성녀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에릭에게 물었다.


"용사는...다니엘은 어떻게 되었나요..?"


"용사님께서도 기절하셨다가 아까 깨어나셨습니다. 아마 지금 케일님의 방에 계실 겁니다.


"아아..."


성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비비안님! 그 몸으로 어딜 가려 하십니까?!"


"용서를...속죄를 구하러 가야합니다..."


극구 만류하는 에릭을 뒤로 한채, 성녀는 긴장한 얼굴로 케일의 방으로 향했다.


"용사님, 깨어나셨습...어..?"


그곳엔 분명 있어야 할 용사는 없고, 노란 물웅덩이에 머리를 처박고 '죄송합니다...용서해 주세요..' 라고 연신 중얼거리는 벨과,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케일만이 있을 뿐이었다.




엔딩을 어케 볼지 모르겠다 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