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참 어리석다.

눈 깜짝하면 사그라드는 얼마 안되는 수명을 가지고도 죄악은 우리 악마를 넘어서려고한다.

그래도, 그렇기에 나같은 나태한 악마도 먹고 살기 쉬운거겠지만.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자의 기념일이기도 하지만, 보다 많은 죄악이 탄생하는 날이기도 한다.

지금도 내 눈앞에는 자기가 태어난 날에 부모에게 버려진 소녀가 있다.


기구한 운명을 가진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 역시 악마에 범주에 속하는지라 그녀를 속여 영혼을 갈취할 생각으로 현세에 강림하였다.

갑자기 나타난 내 모습에 겁을 먹은 듯 숨을 크게 들이쉬는 소녀이지만, 오히려 내게 경외감과 위압감을 가지면 더욱 조종하기 쉬워지기에 차라리 잘 된 일이였다.


"소녀여. 미움과 원망과 증오로 몸을 불사르는 소녀여. 너의 영혼을 대가로 그 꿈을 이뤄주겠다. 경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복수를 할 수 있는 힘을 주겠다. 그러니 나와 계.."


"할게요!! 할래요!!"


"엥?"


기껏 목소리도 다듬고 톤도 바꾸었다만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에 그만 말을 멈춰버렸다.

방금까지 죽어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밤하늘의 별을 받아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계약말이죠? 어떻게 하는거에요? 빨리! 빨리 계약해요!"


"아니아니아니 잠깐만. 계약이 뭔지 알아?"


"네! 악마님이 저를 가져가주신다는거잖아요! 에헤헤.. 완전 내 취향.."


완전히 잘못이해하고 있다.

이런 소녀, 그것도 처녀의 영혼을 가져가면 내 힘은 크게 상승하겠다만...

아무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를 속이는건 마음에 걸렸다.

우리는 적어도 소원은 이뤄주니까.


"복수하고 싶지 않아? 널 버린 부모에게?"


"복수요? 딱히? 방금전까지만 해도 그냥 다 칼로 쑤셔박은 다음에 이러쿵저러쿵 할 생각이였는데, 악마님을 보고 마음을 바꿨어요."


조금 잘못걸린듯한 느낌이 강하게 오길 시작했다.

배때지니, 칼로 쑤신다니.. 이거 정신이 나간건가?


"그.래.서. 계약은 언제해요?"


"취소.."


"아앗! 도망가지마!"


미친년과는 상종하는게 아니다.

안그래도 천계에서 들러붙는 미친년 때문에 죽을 맛인데.

마음을 정하고는 바로 도망갈 준비를 하였지만, 소녀의 입에서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나와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내일 신문 1면... 일가족 살해 사건..."


"야! 야! 잠깐만!"


"이제야 절 바라봐주시는군요!"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끼며 나를 향한 정렬적인 눈빛을 애써 피했다.

차라리 그녀를 그냥 행복하게 바꾸고 남자를 붙여버려?


대가 없는 소원은 힘을 조금 소비하긴 해도 난 이미 충분히 강하니까..

힘을 모으는건 천계에서 날 쫒는 그녀에게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인데, 이런데서 힘을 또 썼다간..


혼자 고민하고 있는 사이, 내 앞에서 소녀는 자꾸만 이상한 말을 하늘에 대고 소리지르고 있었다.


"계약!"


"나 얀순이는 이 악마님에게 평생을 바칩니다!"


"우씨! 왜 안되는거야! 계약!!"


이거 어쩌지...

함박눈이 쏟아지는 거리 위에서 소녀는 맨발로 펄쩍거리며 뛰고 있었다.

빨갛게 물든 그녀의 발에 저절로 시선이 갔기에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고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일단 어디로 들어가자. 동상 걸리겠다."


"어머. 벌써 첫날밤?"


"나 그냥 간다?"


"엄마, 아빠... 죽을 준비는 됐나요?"


"알겠다고!!"


힘을 조금 소모해서 한적한 곳에 조그마한 집을 지어 그녀를 집어넣었다.

적당히 따듯하게 온도를 조절하고는 그녀의 처지를 다시 고민하려했다.

그녀가 날 덥치지 않았다면.


"뭐하는거야!"


"먼저 유혹했으면서~ 뭐라 불러줄까요? 당.신?"


당황해 몸을 움직여 벗어나려했지만, 조금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다.

천계에서 만난 미친년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


그렇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얀순이. 거기 앉아봐."


"흐흥~ 내 손은 멈추지 않아. 내 이름을 불러주다니, 벌써 조금은 내게 넘어왔나보네."


"내가 도와줄테니까 무리하지마."


쓸데없이 과거가 떠올랐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애써 마음을 숨긴채 살다 악마가 된 소년의 이야기가.

정말로 똥을 밟아 버렸다.


"..."


그제야 조금은 이성을 찾고는 정좌해 내 앞에 앉는 소녀.


"... 반한건 사실이야."


"어차피 몇년이면 사라질 감정이다. 그전까진 내가 돌봐주지."


인간 한 마리를 기르는 것쯤이야 별거 아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다.

그냥 자립할 나이가 되면 보내면 될 일이야.

나같은 악마는 이제 필요없으니까.


"... 고마워요."


"출세해서 악덕 사장이 돼서 원망이나 쌓아 나에게 헌상하면 된다."


"부끄럼쟁이."


"시꺼."


"츤데레."


"오늘은 밥 없다."


그렇게 나와 그녀의 비밀 생활이 시작됐다.

악마와 버림받은 소녀의 일상이.




- - - - - - - - - - - - - - -




"오늘은 언제 오실까?"


내가 나의 유일한 신에게 구원받은지 벌써 7년째, 내일은 내 스무살의 생일이다.


조금이라도, 조금만 더. 

그와 함께하고 싶다.


악마이면서 가장 악마답지 않은 그.

나는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나를 갈고 닦았다.


사립고 최우수 성적과 평판.

과외로 알뜰하게 모은 조금의 돈.

탄탄대로가 놓여진 인생이지만, 그가 없이는 조금의 의미도 앖다.


아마 내일 그는 성인이 된 내게 이별을 고할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마음이 커지는 나와 달리, 그는 나를 어디까지나 동정의 눈으로 보고 있으니까.

아무리 유혹해도 인간의 몸인 나는 그에게 다가갈 수 없다.


그것이 너무 절망적이다.

차라리 내 영혼이라도 가져가 주었으면, 나를 그의 소유물로서 대해주었으면..


깊은 절망이 나를 침전시키고 있다.




그런 내게 있어 오늘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가 내게 오는 시간은 항상 새벽 3시로 동일하다.

물론 그와 시간을 보낸만큼 피로가 있지만, 그를 보는데 뭐가 더 필요한가?


오늘도 마찬가지로 저녁밥을 그와 먹기 위해 굶고 밤에 조리할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우리 둘만의 러브하우스에 침입자가 들어온 것은.


"거기까지다! 악마가!!"


한눈에 봐도 신성한 빛을 내뿜는 빛나는 날개를 가진 머리에 고리가 떠오른 남성.

그가 천사라는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녀여! 괜찮은가? 이제 걱정하지 말거라. 나쁜 악마로 부터 내가 구원해줄지어니."


구원?

그 단어가 내 머릿속에 올라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 토할 것 같다.

구원이라니, 구원이라니!


7년전 가장 추웠던 크리스마스에 죽을 생각을 한 내게 찾아온건 부모도, 천사도 아닌 하나의 악마님이였다.

지금까지의 내 삶을 지탱해준것 또한 복수심, 미래의 대한 성취욕도 아닌 얀붕이였다.


그런 내게 구원?

역겨워서 온 몸에 소름이 올라오는 것 같다.


"참으로 깨끗한 영혼의 소녀이구나. 내 너를 불쌍히 여기니, 나의 시종천사가 될 영광을 주겠다. 나의 힘을 받아들여, 함께 악마를 타도하자!"


당연히 내 영혼은 깨끗하겠지.

얀붕이에게 바치기 위해 항상 나를 연마했으니까.

가장 깨끗한 처녀의 영혼에 지적이고 순수함을 더했으니까.

너 따위가 신경쓸게 아니라고!


순간,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쳤다.


아니야.

만약 실패하면 한번이라도 더 얀붕이를 볼 수 없을거야.


아니야.

실패하더라도 나를 위해 울어주는 그가 보고 싶어.

나를 생각해서 내가 머릿속에 가득찬 그를 보고 싶어.


하자.

하자.

하자.


나는 천사의 손을 잡는 척하면서 그를 칼로 찔렀다.

움푹하며 베어드는 살이 찢어지는 느낌.

나는 사람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를 저질렀다.


경악하며 죽어가는 천사의 얼굴과 손을 타고 내려오는 뜨겁고 붉은 액체.

내 영혼이 순식간에 더럽혀지는 느낌이 든다.


아아-

짜릿하다.

너는 이렇게 된 나를 보고 어떻게 생각해줄까?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내가, 살인이라는 오물로  더렵혀지고 썩어들어가면 나를 봐주지 않을까?


불쌍해할까?

걱정해줄까?

어쩌면 그동안의 노력을 헛되이 했다고 저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그 순간만은 나를, 나만을 생각해줄거잖아?


째각. 째각. 째각.

새벽 3시가 다가온다.


이럴때가 아니지. 

그를 위해 밥을 준비해야한다.

천사의 시체를 밟고 그를 위해 최고의 요리를 준비한다.

언제나 나의 사랑이 듬뿍 담긴 요리를.


그리고, 시간이 됐다.






우리의 집으로 돌아온 그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였다.

천사의 시체를 보고, 나를 보고. 

그리고 자신의 손을 보며.


후회하고, 슬퍼하고, 상처받은 표정.

그 표정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온몸이 떨려온다.


지금 그의 뇌 속에는 나만이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이.


아아- 

아아아-

갈거같아.


"내가.. 너를 망쳐버렸구나.. 나는 결국 악마의 범주에서..."


무릎을 꿇고 자책하는 그에게 다가와 따스하게 안아준다.

그의 체온이 내 몸을 적신다.


"내가 미안하구나...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요. 저는 언제나. 처음 우리가 만났을 적부터 한결같았어요. 오로지 당신만을 그리워하고, 사모하고 있어요."


천사를 죽이고 내가 변한 단 한 가지.

그것은 언제나 일편단심인 마음도, 그를 위한 처녀성도 아닌.

내 종족.


등에서 날개을 꺼내어 그를 더욱 감싼다.


"이젠 영원히 함께에요. 유한한 시간도, 끝이 있는 만남도 아닌. 영혼이 사그라질 순간까지. 저희는 함께할거에요."


흐느끼는 소리가 고요함을 감싸지만 상관 없다.

이제야 나는 그와 맺어질 수 있으니까.

응. 이것은 해피엔딩이야.


공주님이 왕자님을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해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