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요보~ 아 해보세요 아앙~~"

"....아앙..."


얀순이 알록달록한 장난감 식기를 얀붕의 입에 갔다 대었다.

이에 얀붕이 마지못해 입을 크게 열고 텁- 닫았으나 얀붕의 리액션이 아무래도 성에 안찬 것인지, 얀순의 눈빛이 싸하게 변했다.


'분명 저번주만해도 케이블 일본채널에서 나온 이상한 아저씨처럼 반응해 줬는데..'


"사랑이 식어써..."


말과함께 얀순이 뿜어낸 냉기에 순간 움찔한 얀붕이였으나 오늘은 절대로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분명 소꿉놀이대신 얀붕이 푹 빠진 만화영화 '무적얀붕가면' 놀이를 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얀순은 약속은 까맣게 잊은듯 자연스레 소꿉놀이를 시작했던 것.

작금의 사태는 일종의 묵비권행사 시위였던 것이다.

불만을 더욱 어필할 심산으로 얀붕이 팔짱을 키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

.

.

하지만 역효과, 그것도 너무 큰 역효과를 내었다.

얀붕의 입에서 나온 말에 얀순의 낯빛이 바뀌고

생기가득한 두 빨간 눈은 죽은 것 마냥 빛을 잃었다.


'흥' 이라니.

전혀 상상도 못한 단어를 들은 탓에 일순간 얀순의 뇌가 정지했으나 다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재 가동 되었고 이내 상상은 망상이 되었다.



"...언녀니야..."

"ㅁ..뭐!"

"언녀니냐구!!"


얀순이 소리를 빼액하고 지르자 놀란 얀붕이 철푸덕 하고 모래사장에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아랑곳 않고 얀순이 말을 이었다.

너무나 흥분한 탓에 평소에는 추욱 쳐져있는 귀라 도베르만처럼 종긋 솟아올랐다.


"누구냐구! 나말고 따른 여자애랑 소꿉놀이 해찌?!"

"뭐...뭔소리야!"

"주하 그녀니야? 아님 민지?"


얀순은 계속해서 귀와 꼬리를 팍 치켜든 채 엉덩방아 찧은 얀붕을 몰아갔다.




평소와 같았다면 없는 꼬리를 내리고 얀순에게 적당히 맞춰주고 져 주었을 얀붕이였으나 오늘은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얀붕과 알게된 뒤로 져주기만 한지 어언 5년, 이제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얀붕이 얀순이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먼소리야! 오늘은 얀붕가면 놀이 하기로 했는데 안해서 화난거자나!"

"흥! 그딴 유치한거보다 소꿉노리가 더 중요해!"

"...모라고 햇서..?"

"유치한 놀이라구 햇다, 왜!"


그 말을 들은 순간 얀붕의 표정이 굳었다.


얀순이 자신이 좋아하는 얀붕가면을 '유치' 하다고 표현한 것에대한 충격, 약속을 어기곤 뻔뻔히 으름장을 놓아대는 얀순에 대한 충격이였다.

얀붕이 한숨을 푹 쉬고는 자세를 고치고는 우뚝 일어나 얀순을 노려보았다.

평소의 헤실헤실 웃는 표정이 아닌 싸늘한 표정에 얀순이 흠짓하며 어깨를 들썩였지만, 얀붕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얀수니 너는 항상 그런식이야.."

"얀붕아... 갑자기 왜..."


한번도 보지못했건 얀붕의 분노에 적잖이 당황한 얀순이 화를 거두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얀붕은 계속 말을 이었다.



"맨날 자기 하고시픈대로 하구...나를 칭구라 생각하기는 해?"

"...얀붕아.."

"...대답"

"미아내...근데.."


이내 올망졸망한 얼굴로 사과하는 얀순의 귀여움과 측은함에 무너지려 한 포커페이스를 간신히 유지한 얀붕이 이어 말했다.


"조금 열좀 식히구 올게..."

"얀붕아 잠ㄲ..!"

"따라오지마, 따라오면... 진짜루 절교야!"

"얀붕..아...얀붕이"


얀붕의 단호한 태도에 심장이 퍽 하고 멈춤을 느낀 얀순이 손을 뻗어 얀붕을 잡으려 했으나, 금제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 허락치 않았다.

얀붕과 절교는 죽는것 보다 싫었다.

그래서 자리에 서서 망부석처럼 서 있을 수 밖에는 없었다.

그저, 떨리는 손과 흐르는 눈물로 얀붕을 잡아보려고 할 뿐이였다.


***


얀순이 그 자리에서 훌쩍이며 얀붕을 기다린지도 1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보통같으면 자리를 박차고 가문의 힘을 이용해 얀붕을 어떻게든 찾아내서 앵기어야 됐으나, 지금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했다.


돌아온다 해놓고는 1시간을 기다리게 했다.

"뭐지, 왜? 내가 정말로 싫어진 건가'


자신이 멋대로 굴긴 했으나, 절교까지 당할 정도는 아니였다.

평소의 얀붕은 이것보다 더한 성질과 집착도 웃으며 받아주었으니까.


돌아온다고 해놓고서 안 돌아온 이유를 찾아야 했다.


아니, 어쩌면 불량배들에게 둘러쌓여 돌아오지 '못' 하는 것 일수도 있다.

아님 어제 읽은 동화처럼 자신말고 다른 토끼를 착각해서 따라가 동화세계로 빨려들어간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디까지나 얀붕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합리화를 마친 얀순이 금제를 깨고 얀붕을 찾아나섰다.



***


얀붕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토끼수인의 우월한 후각으로 얀붕 특유의 포근한 냄새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얀붕을 발견했지만...변수, 아주 큰 변수가 생겼다.


'누구지...저 사람은..'


자신과는 다르게 쭉 뻗은 다리와 굴곡진 몸매, 완숙하지만 너무 과하지는 않은 몸, 미묘하게 얀붕을 닮아 귀여운 얼굴을 가진 여성이 얀붕을 가로막고 무언가를 따지듯 말하고 있고 얀붕은 그저 그것을 우울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얀순은 하필이면 이럴때 빠르고 힘센 말순이 없다는 것에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라는 속담을 떠올렸으나 지금 중요한건 그딴게 아닌 얀붕의 안전이였다.


그렇게 풀 숲에 숨어 얀석 오빠가 하던 이상한 중동닌자게임의 주인공처럼 여자가 한눈을 파는 순간 탓! 하고 팍!해서 얀붕을 데리고 도망칠 계획을 세웠을 참이였다.

순간 여인이 눈을 자신의 시선과 마주치더니 입을 열었다


"근데, 저 아인 누구니 얀붕아?" 


분명 자신을 보고 한 말이였다.

하지만 들킬리가 없었다, 자신의 위장은 완벽했을터인데.


귀는 생각 못하고 얼굴과 몸만 위장했던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얀순이 당혹감에 파들거렸으나 이내 정신을 다 잡곤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얀붕을 대자로 막아서며 여성 앞에 섰다.


"야..얀붕이는 건들지 마세오 납븐언니!"

"어머♡ 언니라니♡"


팍 하고 튀어나온 얀순에 얀붕의 눈은 휘둥그레졌지만 오히려 여인은 얀순의 귀여움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손으로 입을 가릴 뿐이였다.

정적을 깬 것은 얼굴이 시뻘개진 얀붕이였다.


"이분은 우리엄마야!!!"

"....에?..이분이 그럼 ...어머님?"


"어머♡"


단 0.1초만에 얀순이 말한 '어머님' 의 뜻을 알아차린 어머니였다.


***


"...그래서 나는 며늘아기 네가 귀여워서 증말~"

"어머님도 차암, 그때는 어릴때였죠~ 저는 얀붕이가 이쁜언니한테 납치당하는 줄 알고~"

"어머 얘, 아부는?"


한적한 오후 카페, 자매로 보이는 듯한 여성 둘이 화기애애하게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한명은 애가 둘 딸린 유부녀, 다른 한명은 그녀의 시어머니, 즉 고부관계였다.


"...아무튼 이거, 약소하지만 받으세요 어머니"


얀순이 품 안에서 고급스러운 봉투를 꺼내고 까서 건네자 안에서 나온것은 작은 열쇠와 두명분의 화와이행 비행기 표였다.


"어머~ 이런것 안줘도 되는데.."


"키는 저희 가문 별장열쇠구...항공권은 퍼스트 클래스, 별장은 방음 완벽하니까 아버님이랑 잘 즐기다 오시어요"


"흠...그럼 나도 우리 시애기한테 줄 게 있는데"


그렇게 가방에서 얀붕의 어머니가 꺼낸것은 백과사전 분량의 총 5개의 포토앨범이였다.


"우리 얀붕이 어릴때 사진모음이란다, 잘 쓰렴"

"어멋♡ 어머니임...♡ " 



그렇게 카페의 밤은 저물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