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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네 영지로 돌아간다고?”

 

용사는 살짝 놀란듯한 얼굴을 하고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럼, 누가 저희 파티를 감- 아니, 지원하죠?”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법사도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질문을 던졌다.

 

“그건 걱정하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일주일 내로 여러분을 보좌할 제 후임이 올 겁니다.”

 

“이미 사전 조율이 다 되었다는 이야기네요…”

 

어딘가 아쉬운 듯 마법사는 말꼬리를 흐렸다.

 

더 이상 질문이 없을 것 같다고 느낀 나는 미리 생각해 두었던 말을 건네기로 했다.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용사 파티의 임무를 지원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아마 저보다 더 뛰어난 분이 오셔서 저를 대체할 예정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저는 인수인계서를 작성해야 하니 이만 나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후임이 올 때까지 이 숙소에서 머물 테니 편히 쉬고 계세요.”

 

나는 가슴 속 소리가 새나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면서 네 명의 여자 용사 파티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그녀들은 무언가 더 이야기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내가 설명은 끝났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있자 

결국 나의 방에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후우… 해방이다. 퇴장하는데 너무 오래 걸렸네…” 

 

그들이 나가자마자 나는 그런 가슴속의 말을 내뱉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곳은 내가 원래 살던 곳이 아닌 소설이고 나는 초반에 퇴장하는 발암캐였기 때문이다.

 

내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내가 전생한 이 판타지 소설에서는 마왕이 있고, 

이 마왕을 무찌르기 위한 용사, 궁수, 마법사, 도적으로 이루어진 용사파티가 있다. 


이 용사파티의 구성원 중에서 용사와 마법사는 평민이고, 궁수와 도적은 이종족이기 때문에 

이들이 왕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한 왕국은 파티의 감시 겸 지원 임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붙여놓는다.

그리고 감시역으로 붙은 신분을 숨긴 왕자와 파티간의 로맨스가 싹트는 그런 로맨스판타지… 

인걸로 대충 알고 있다.

 

그래서 왕자에 빙의된 거냐고?

 

“그랬으면 내가 물러나는 발암캐라 하진 않았겠지…”

 

내가 빙의한 이 친구는 디즈니 영화 뮬란에서 매번 태클거는 꼰대 관료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업햄을 섞어놓은 듯한 걸림돌 같은 캐릭터였다.

 

“백작가 셋째.. 나름 마법재능이 있어 관료로도 일했고 충성심도 나름 있으니 위험한데 보내놓기 좋다고 생각하고 붙여놓은 거지만…”

 

애초에 여자 용사에 대한 믿음이 약한 왕국에서 버림패로 붙여놓은 이 녀석은 당연히 싸움에는 도움이 안 되는 짐 덩어리였으며 

보급 관련해서도 책상물림, 백면서생이라 처참한 모습만 보인다.

 

“결국 불만이 쌓인 파티의 암묵적 합의를 바탕으로 어느 날 전투에서 사고로 위장된 죽음을 맞이하고 말지…”

 

당연히 감시역이 죽었으니 어느 정도 소란은 있으나 이미 이 파티의 업적이나 명성이 왕국에 퍼져 있었고 

파티에 호기심을 느낀 왕자가 몰래 신분을 숨기고 여기로 합류한다. 는 스토리였는데

 

당연히 그대로 죽어줄 순 없었으니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긴 했는데 수습은 어떡하지?

가 지금 나의 고민이 되어 버렸다.

 

원래 나는 파티 출발 후 6개월이면 퇴장하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처리 당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미리 알고 있는 지식과 더불어 관료로 일하며 받았던 녹봉 전부, 


그리고 가문의 자산까지도 몰래 끌어다가 사용해 이 파티를 지원했으며 그 노력의 결실로 파티 출발 후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살아있다.

 

“그게 문제의 전부가 아니란 말이지.”

 

내가 죽음을 피하기 위해 했던 행동 때문에 파티의 마왕 퇴치 일정은 단축되었는데 왕자의 등장은 늦춰졌다. 

이제 이 파티가 성장을 마치고 마왕을 잡기 일보 직전인데 이제야 왕자가 오는 것이다.

 

“아마 신분을 숨기고 오는 것도 아니겠지, 이미 이 파티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으니.”

 

왕국은 마왕 퇴치의 공을 왕자에게도 나누어 왕권을 강화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사단을 대동한 왕자를 파티의 지원군으로 붙일 것이므로 이제 물러나라는 명령을 나에게 내렸다. 

 

공을 빼앗겨 심란하냐고? 천만의 말씀, 어차피 파티의 그림자에서 일한 나한테 뭐 떨어질게 있다고. 

살아남은 것만 해도 만만세다. 단지 내가 알지 못하는 스토리가 진행 되는 게 조금 머리 아플 뿐.

 

나의 머리를 진짜 아프게 하는 것은 가문에서 날아온 협박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살아남는데 급급한 나는 사용 가능한 모든 것을 활용하려 했고, 

자금이 급하자 가산에 손을 대고 말았다. 

몇 번은 사용을 숨길 수 있었지만 결국 꼬리를 잡히고만 것이다. 그래도…

 

“레밍턴 후작가와 혼담을 잡았다라, 이런 식으로 벌을 주겠다니… 음?”

 

뭔가 우지끈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멀리서 난 건 착각인가?

뭐 중요한 건 아니겠지.

 

레밍턴 후작가는 명망있는 가문이다, 

본래라면 나 같은 백작가 3남 나부랭이가 혼사를 넣어 볼 수도 없는 가문이지. 

허나 그 가문의 여식은은 걷기조차 힘들어 하는 매우 연약한 몸을 가져 바깥 활동이 없다. 

그래서 그 얼굴은 본 사람이 드물며, 그나마 초상화로 볼 수 있는 그 얼굴은 추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물론 어떻게든 신분상승을 노려보는 멍청이는 많았겠지만 내가 그 멍청이 중에서 제일 나은 조건이었다고?”

 

그렇게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불평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나의 방문을 두드렸다.

 

“지원가님? 잠시 이야기할 게 있어서 그런데 들여보내주시겠어요?”

 

마법사의 목소리였다. 나는 가문의 편지를 대충 구겨서 주머니에 넣고 문을 열어주었다 

숙소 방문 앞에는 마법사가 가벼운 복장에 와인병을 들고서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신다는 말을 하셔서요, 가볍게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었어요.”

 

“알겠습니다, 들어오세요, 다만 제가 지금 떠나는 것도 아니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은 많을 겁니다.”

 

중급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나는 파티에서 그나마 마법사랑 가장 이야기가 통했다.

그래도 떠난다니 아쉬움을 느끼는구먼, 이라고 생각을 넘기고 나는 그녀를 자리에 앉혔다.

 

“고마워요, 길게 이야기 할 건 아니고, 제 세가지 질문에 거짓없이 답해주시면 됩니다~.”

 

그녀의 실눈을 살짝 뜨면서 마법사는 나에게 장난스런 말투로 물어왔다.

“첫째로, 그럼 저희를 감시하면서 왕실에 보고하는 의무는 사라지신 건가요?”

 

최상급 마법을 구사하는 그녀 앞에서 역시 감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최대한 숨겨보려 해도 부처님 손바닥이었던 것 같다.

 

“……글쎄요, 다른 파티원도 알고 있는 사실인가요?”

일단은 넘겨보자는 생각으로 말을 돌려보았다.

 

“아~,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마세요, 숨길 수 없단 걸 알고 계시잖아요?”

 

“아직 제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는 대답 밖에 해드릴 수 없네요.”

 

“그런가요? 아쉽네요.”

 

마법사는 여전히 미소를 띈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 파티를 떠나고 난 뒤 계획이 어떻게 되세요?”

 

“글쎄요… 저는 관료로 일했다 보니 아마 돌아가서 다시 관직에서 일하지 않을…”

 

“거짓말.”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더니 전신에서 마력이 꿈틀거렸다.

 

그리고는 그 마력을 가지고는 나의 목 주변을 덮치더니 내가 숨쉬는 것을 방해했다.

 

“케헥… 컥…”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굳은 표정으로 주머니를 뒤지고 편지를 꺼내고는 마법사는 다시 나에게 질문했다.

 

“가문이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하는데 어쩔 생각이었냐고 묻는 거에요, 대답해!”

 

마력에 의해 목이 졸리고 있었던 나는 켁켁이며 최대한 빠르게 대답 하려고 노력했다.

 

“나도 잘… 몰라…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혼할지… 아니면 도망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

 

그런 나의 대답을 듣고 나서 마법사는 나를 놓아주었다.

 

“그렇군요.” 어딘가 기쁜 듯이 그녀는 중얼거렸다.

“아직 기회가 남아 있었네요.”

 

기회? 무슨 소리야? 나는 졸린 목을 부여잡고 일어나 마법사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세 가지 질문에 대답했으니, 나가주시겠어요? 

이 쯤에서 끝낸다면 문제삼지 않고 끝낼… 윽...”

 

그녀는 다시 마력으로 나를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는 나에게 이렇게 전했다.

 

“아니요. 저는 아직 당신에게 두 번 밖에 질문하지 않았어요, 

아까는 당신이 저한테 거짓말을 해서 그랬으니까요.”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할게요, 이번에는 정말 거짓말 없이 답하길 원해요.”

“여태까지 저를…. 아니 우리를…. 어떻게 생각했죠?”

 

처음으로 웃음기 없이, 어쩌면 절박해 보이기 까지 한 얼굴로 마법사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보면 처음 보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나의 속마음을 내뱉었다.

 

“나는 뒤에서 너희를 보조하는 그림자라고 느꼈고 파티가 나에게는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나는 너희와 거리를 두었어, 이제 임무를 마칠 수 있어서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고.”

 

“홀가분… 당신은 도대체 우리를 뭐라고…”

 

“물론 같이 지냈던 시간은 소중해, 하지만 우리 목적은 마왕의 타도고, 

내 최우선 목표는 너희가 그걸 해낼 수 있도록 인도하는 거였어… 

거기에 다른 생각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지.”

 

결국 이것이 내가 가진 그녀들에 대한 본심이었다. 나는 이 세계에서 생존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고 

텍스트 속의 인물이었던 그녀들이 아무리 미녀라고 해도 나를 죽일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속마음을 듣고 난 후 마법사는 평상시 항상 웃고 있었던 얼굴과 

대조적인 굳어진 얼굴로 그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반면 나는 목이 졸린 후유증으로 인해서 살짝 어지러우면서 피곤했다.

 

“….이제 제 대답은 끝났어요. 피차 오늘 일은 잊어버리도록 하죠.” 

이미 내 가면은 벗겨졌는데, 나는 소용없지만 그것을 다시 쓰려고 했다.

 

“토벌 보상으로 받는다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멍청한 년들…”

 

그녀는 아래를 쳐다보면서 무언가를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고 다가갔다.

 

“-!”

 

갑작스럽게 마법사는 무언가 주문을 영창했고 소환된 검은 촉수가 나의 사지를 구속했다.

 

“아직 내 감시의무는 끝난 게 아니야! 나에게 이런 위해를 가하는 것은 왕실에 대한…!”

내가 말을 하는 찰나에 검은 촉수는 나의 입까지 막았다.

 

“위해? 재미있네요.”

퍽이나 재미있다는 듯이 마법사는 코웃음 지었다.

 

“잠시 기절해 계세요, 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테니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촉수에서 나온 액체를 마시고 기억을 잃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눈물을 흘리면서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법사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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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4명 다 얀데레고 약혼녀까지 집착녀로 만들고 싶었는데

실력이 부족해서 초반 설명충 프롤로그 처럼 되버린 망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