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유그드라실 제국.


모든 엘프들의 조상이자 어머니인 ‘세계수’가 위치한 대수림 안에 세워진 제국.


그곳의 황제는 선천적인 지병 하나가 있었다.


엘프로서의 재능을 뜻하는, 정령과 교감하기 위한 심장에 코어에 문제가 있어, 정령과 교감하지 못하는 엘프로선 아주 심각한 지병이.


엘프에게 있어 정령과 교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으로 치면 사지가 없는 것과 같았다. 실력 지상주의를 지고로 여기는 대수림의 엘프에겐 더더욱.


허나, 그녀는 그것을 극복하여 대수림의 황제가 되었다. 대수림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이자, 모든 엘프들의 어머니. 세계수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고귀한 존재가.


그녀가 그런 자리에 앉을 수 있게한데는. 한 명의, ‘인간’의 도움이 있었다.


사각사각. 펜촉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대륙에선 그리 흔하지 않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내.


그리고 그런 머리카락만큼이나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내.


“얀붕. 쉬어가며 일하지?”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업무가 많이 밀렸습니다.”


기껏 평소의 태도와는 다르게 상냥하게 말했건만,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로 냉대하는 그였다.


뭐, 그래서 그인 것이니까.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펜대를 잡고 문서작업을 계속하려 하다, 이내 아쉬워져.


“···흐.”


그의 얼굴을 조금 더 보고 있기로 했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쏟아지는 제사나 국정감사, 여러 가지 인수인계에 바빠 오랜 시간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다.


비록, 가혹한 근무시간에 쫓기느라 눈 밑이 검게 내리 앉고, 머리카락은 씻지 못한 듯 조금 부스럭 거렸으나.


여전히.


‘보기 좋구나.’


보고 있기 좋은 얼굴이었다.


허나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


살인적인 근무시간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것을 감내해야하는 이유가.


돈도 아니라, 빌어먹을 의무감 때문이라면 더더욱.


김얀붕.


이세계인 1813일차 인간의 직장 근무환경에 대한 감상이란 그것이었다.


옛날.


땡전 한 푼 없이 이세계에 떨어져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를 주워다 자신에 곁에 둔. 한 명의 여인에게 나는 약속했다.


여인은 황녀였고. 엘프였으나, 정령과 소통하지 못하는 반푼이었다. 그러나 황제가 되어 세계수를 모시고 싶다는 장대한 꿈이 있었다.


나는 말했다, 아니. 말해야만 했다.


‘당신을 황제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내 허황되다 못해 허언이라 부를 망언을 듣곤, 마치 세차게 몰아치는 눈보라 사이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본 사람처럼 좋아하던 여인이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꿈을, 엘프로서의 최고의 명예를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몇 번이나 죽을뻔하고, 고통받았으나 약속의 때에 보여준 그 웃음을 몇 번이고 회상하며.


반푼이 엘프를, 황제로 만들어 주었다.


···그렇지만 이런 근무환경은 정말 사양이었다.


군대-대학-대학원 테크를 밟은 나로서도, 정말 사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구 시절에는 두려워 꺼내지 못했던 것을 꺼내려 했다.


[사직서]


정갈한 문체로 적힌 종이봉투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그 위에 물약 하나를 올려놓았다.


특제 엘릭서였다, 드래곤과 몇 가지 물물 교환과 몇가지 계약을 함으로써 힘들게 얻어낸 물건이었다.


‘만능종’이라 불리는 만큼 그 힘은 대단하나 쉬이 힘을 빌려주지 않는 드래곤제 엘릭서니 그 효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본인이 말하길 9서클 마법사의 서클이 완전히 박살 나서 폐인이 되어도 이거 하나면 9서클이 돌아오는 걸로 모자라 10서클이 될 거라나. 허세를 싫어하는 드레곤의 말이었으니 확실했다.


이거면 충분히 루시엘의 코어도 정상으로 수복될 것이다.


약간의 아쉬움과 뿌듯함을 느끼며 방밖으로 나왔다.


“그럼···.”


오랜만에 자유라는 것을 느껴보는것도 나쁘지 않겠군.


엘릭서와 함께 덤으로 받은 물품들을 확인한뒤.


나는 복도를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


“···으음.”


꽤나,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깨어났다.


무의식적으로 창문을 바라보니 아직 이른 새벽이었다.


지금쯤이면, 아마 그도 자고 있지 않을까?


“···히히.”


그녀는 익숙한듯 자신의 침구류를 챙겨 방 밖으로 나왔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그녀가 애용하는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


그와 내가 일하는 사무실 바로 옆, 출근길과 퇴근길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그가 몇번 하지도 않는 부탁까지 해가며 일부러 고른 방이였다.


나도 좋았다. 그의 출근과 퇴근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걷다, 어느새 그의 침실 앞에 도착했다. 나는 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문을 열었고. 그 안에는.


“···어?”


탁. 맥절없이 떨어지는 탄식 소리가 공허한 방안에 울러펴졌다.


그가 없다.


그 빌어쳐먹을 사실이 루시엘을 미치게했다.


“···아.”


다만, 한가지 의혹이 그녀의 사고회로를 제동했다.


‘이 밤까지 일하고 있는 건가? 참, 밤에는 좀 자두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루시엘은 재빠른 발걸음으로 자신의 사무실. 그의 바로 옆방으로 향해 조금의 주저도 없이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아, 폐하. 오셨습니까. 또 잠이 안오시는건가요?’


‘저야 일개 관료에 불과하지만 폐하께선 아니시지 않습니까.’


하며 맞아주는, 그는 없었다.


‘폐하는 이 나라의 얼굴이자, ‘세계수’를 가장 곁에서 모시는 고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아아.


‘일찍 자야지. 루시엘.’


“아아아아···!!!!”


달빛이 내려오는, 그가 앉아있어야 할 그의 자리에는 하나의 종이봉투와 유리병 하나가 외로이 놓여있었다.


봉투에는 사직서라 적혀있었고. 그녀는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애써 봉투를 뜯어 그 안에 있는 편지를 읽었다.


[루시엘에게.] 


[우선 황제의 자리에 앉게 되신걸 진심으로 감축드립니다. 폐하.]


편지는 이젠 아무래도 좋은 황제의 자리에 대해 축하하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그깟 황제. 그에 비하면 길거리에 떨어진 휴지조각만도 못한 것인데.


[그리고 내가 약속했었지? 널 황제의 자리에 앉혀놓겠다고.]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만 약속을 이뤘으니 그때의 말이 마냥 허언은 아니었음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


문장의 격식은 급격하게 평어체로 떨어졌고, 그것은 오히려 루시엘을 불안하게 했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론 사적인 자리에서도 격식체를 사용했던 그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편지의 내용은 밑으로도 쭉이어졌다. 대부분 고맙고 감사하며 수고했단 내용이었다.


문제는 밑으로부터 5번째 문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내가 네 곁에 있는 것이 나는 오히려 내게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불안감이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네 곁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니···아니야. 아니야···.


[내 비록 네게 해준 것이 너무나 부족하고, 네게 받은 것이 너무나 값지고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내가 이것 하나만큼은 네게 줄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더···내가, 내가 훨씬 더 많이 받았는데···.


눈물이 차올라 시야를 가렸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도 그 문장만큼은 보여 더더욱 가슴을 옥죄어왔다.


[동봉된 포션은 네 선천적인 질병을 낫게 해줄 비약이다. 내 특별히 드래곤에게 제조를 맡긴 것이니 확실할 테지.]


봉투 옆에 놓여져 있던 약병을 집었다.


부들부들. 고작 이런 게 뭐라고···.


루시엘은 포션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그것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내가 남긴 것임을 기억하곤 힘이 빠진 듯. 포션을 쥔 손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그리고 축, 하고. 책상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편지의 마지막 문구와, 증오스러운 포션을 바라보며.


[그대의 오랜 스승이자 오랜 친구. 김얀붕.]


“···하.”


탄식 섞인 실소가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하, 하하하하···!”


절망은 광기로 바뀌고, 이내 한 가지 끈적한 감정으로 변모한다.


루시엘은 손에 쥐고 있던 포션을 잠시 내려다 보고는 그 마개를 열어 한입에 들이켰다.


“···크윽.”


처음 느껴보는 기묘한 감각이 심장이 위치한 가슴 중앙을 휘감는다.


그리고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목에서 피가 튀어나오록 반복한 한 문장을 내뱉는다.


“···Vengan, niños.”


괴이한 문장이었으나 그 뜻은 명확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음성에 반응하여 주변에는 강력한 정령들의 기운이 점멸하며 모여들었다.


불, 물, 풀, 바람, 바위, 얼음, 번개의 일곱 원소들이 각각 반응하여 온갖 상호작용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소환된 것은.


정령들의 왕. ‘정령왕’이라 불리는, 보통 엘프에게 있어선 소환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명에로 불릴 만큼 그 소환자가 적다는 족속들을, 전원 한자리에 소환한 것이었다.


‘오, 세계수의 아이······인가?’


불의 정령왕. 이그니스가 말했다. 의문사로.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의문은 그녀가 느끼는 감정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정령에겐 언어가 없다.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코어가 있는자들이나 자신들을 소환하거나 계약할수 있기에. 대신 코어를 가진 자들과는 그 ‘감정’과, ‘생각’을 공유한다.


이그니스는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정상인지 확인했다. 온몸이 저릿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로 지독한 감정이었다.


주변 정령왕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심각한 것을 봤을 때, 이건 불현 자신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 터였다.


‘···심각하네. 아주.’


불의 정령왕, 이그니스의 옆에 서있던 물의 정령왕 엘퀴네스가 말했다.


엘프가 품기에는 지나치게 지독한 감정이었다.


사랑이라기엔 너무나도 질척였고, 집착이라기엔 너무나 순수했다. 온갖 모순으로 점철된 모순덩어리 감정, 허나 그것들의 끝은 하나같이 같았다.


‘···광애. 지독하디 지독한 광애로군.’


땅의 정령왕, 트로웰이 읊조렸다.


평소 바위처럼 단단한 성격을 가져, 무슨 일이 일어나도 평정을 유지했던 트로웰이었으나. 그는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이라도 본 것처럼 온몸을 떨었다.


그렇게 정령왕들이 한참을 수군대고 있는데.


“저기요.”


어디선가 흘러나온 차가운 목소리에 주변의 모두가 한순간에 침묵했다.


얼음의 정령왕, 이오웰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냉기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공허한 냉기를 품고 있는 목소리였다.


정령왕들은 그 냉기서린 목소리의 출처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서있는것은, 고작 하나의──방금 갓 정령을 소환할줄 알게된, 정령을 다루는데에 있어선 100살먹은 꼬맹이 엘프만도 못한. 반푼이‘였던’ 엘프.


제아무리 장수종이라 한들 그래봐야 필멸자, 영원을 사는 존재들에게 무슨 짓을 하려 한들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하겠다만, 그녀의 목소리는 존재 그 자체에게 영향을 미치는 마력이 있었다.


“도와주실래요···? 아니면···.”


루시엘은 고의적으로 말끝을 흐렸다.


애초에 너희들에게 선택지는 없었다는 듯이.


그리고 그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재능이 없는, 보통의 평범한 엘프라면 정령왕의 소환 그 자체만으로 거의 백 년에 달하는 수명을 대가로 바쳐야 했었으나.


사랑하는 그이의 선물.


특제 엘릭서. 그것이 그녀에게 본디 주어져야 했을 것을 다시 가져와 그녀에게 쥐여줬다.


그녀에게 없었던 것은 오직 코어를 다룰 수단이었음을 되새기듯, 코어가 수복된 그녀는 정령왕 전원을 소환할 수 있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그런 괴물의 기운을 눈치챈 정령왕들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계약이 완료되었음을 방증하듯 그녀의 몸이 원소의 기운을 품기 시작했다.


싱긋. 손을 펼쳐 정령 원소의 힘을 살짝 다루어본 그녀가 활짝 웃었다.


신조차 매혹시킬,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소였으나.


특유의 에메랄드 색 눈동자에는 그 무엇도 담겨있지 않아, 마치 질척한 심연을 내려다보는듯했다.


헬라 유그드라시이라 루시엘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완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