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는

한 명의 사람으로써, 또는 한 명의 애인으로써. 


그것도 아니라면





*





" …… 괜찮다고 했잖아. " 


" 그래도 또 저번처럼… . " 


" 괜찮다고. " 



무심결에 싸늘히 내뱉은 말 한마디가 그녀의 말을 끊었고, 동시에 서로를 감싸는 적막. 

잘 모르겠다. 얼마나 더 밀어내야 그녀가 마음을 다잡을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비좁은 집안. 그와 상반되는 검은 정장. 

현관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나를 올려다보기만 하는 그녀에게 오늘도 꺼내야 할 한마디를 삼켰다. 


' 그만하자 ' 


얼마나 무거운 말이기에 아직도 나는 이 짧은 단어 하나를 꺼내지 못하는 걸까.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리고, 현관 문을 닫고 집에서 나오는 순간까지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를 애써 못들은 척 했다. 

그녀는 알까. 내가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원 룸 주차장.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세단 앞에서 나는 오늘도 망설이고 있었다. 

돈 많은 남자를 만나라. 돈 많은 여자를 만나라. 이상에 가까우면서도 상상과도 같았으며 결코 완벽한 이상은 아니었다. 





**





첫 만남은 대학생일 무렵이었다. 

부모님의 압박에 못 이겨 공부만 주구장창 해오던 내가 명문대에 입학하고, 공부에 질려 흥미를 잃어갈 즈음 만났던 그녀. 


처음엔 누군지도 몰랐으며, 같은 과도 아닌 그녀를 만날 일도 없었으니 일면식도 없던 상대였다. 

그러다 그저 늘 혼자 있는 모습이 신기해 말을 걸어본 것이 시작이었다. 


늦은 겨울. 여느 때처럼 대학 벤치에 홀로 앉아있던 그녀에게 내가 마시려 샀던 따뜻한 캔커피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 추운 날씨에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나 궁금해 말이라도 걸어보려 했건만 날 경계하는 그 눈빛 탓에 두 눈만 깜빡이며 건네준 커피.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추워보인다며 얼버무리며 급히 자리를 떴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꽤 날이 지나 강의실로 들어갈 즈음, 다시 그녀와 만났다.



" 그… 전에 주셨던 거. "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아 그녀의 얼굴만 바라보던 중 얼떨결에 받아든 커피. 

분명 내가 건네 주었던 것은 값싼 레쓰비 였는데. 카페에서 방금 막 사왔는지 손에 잡히는 종이 재질이 꽤 따뜻했다. 

그제서야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려 했건만,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는 그녀의 흔적을 잠시 바라보다 강의실로 들어갔다. 

친구놈이 옆자리에 앉으며 웬 커피냐고 물었을 때 여친이 줬다고 장난스레 말한 것이 사실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우연히, 정말 우연히? 어쩌다 보니 그녀와 가까워 졌고 내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본 친구들이 대뜸 그런 소릴 꺼내었다. 



" 너 뭐 협박이라도 했냐? 쟤 옆 과에서 어렵기로 소문났는데. " 



농담일까 싶어 웃으며 얘기를 듣기를, 꽤 여러가지 소문을 들었다.

어디 돈 많은 집안의 딸내미라던지, 겉으로는 얌전한 척 하면서 뒤에서는 남자를 홀리고 다닌다던지. 

평소 친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 할 일만 조용히 하던 편인 아싸라 남들 얘기를 듣고 다닐 리가 없었으니까. 

당연히 웃으며 넘어갔고, 혹시나 싶어 이후 그녀에게 술이나 한 잔 하자며 불러내어 들었던 얘기는 본인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아직까지도 그녀가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시간이 꽤 지나 여러 친구들을 만들고, 어장관리라는 얘기가 끊임없이 들려와도 나는 부정했다. 

어느새 연인이 되어 있던 그녀는 늘 내게 맞추어 행동했고, 늘 웃으며 날 바라봐줬으니까. 

가끔 술이 들어가 그녀에게 넌지시 너는 왜 날 좋아하냐고 묻던 질문에도. 


' 남들은 다 뭘 가져가기 바쁘니까. ' 

' 소문만 듣고 날 판단했으니까. ' 

' 사랑이 아니라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니까. ' 


내가 그 사람들 중 한 명일지 어떻게 아냐는 물음에도. 


' 그랬으면 이런 걸 안 물어봤겠지. '

' 넌 오히려 나한테 뭘 해주려고 하잖아. ' 

' 그리고, 날 사랑해주잖아. ' 


단지 그걸로 좋았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그녀의 배경이 어떻던.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서로의 얘기를 터 놓고, 어째서 인지 숨기기 바빠 보이던 그녀의 배경도 천천히 내게 들려주고. 


그 이후부터는, 어딘가 잘못되어 가기 시작했다.


옷을 선물 받았다. 친구들이 알바라도 시작했냐 묻기 시작했다. 

학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유를 모르겠다. 어딘가 정신이 팔려있기 때문일까? 

항상 핸드폰만 보고 있다는 얘기가 자주 들려왔다. 왜? 나는 평소대로 인데. 

요새 왜 술자리에서 자주 빠지냐니, 여자친구가 있잖아. 

조심하라니… 도대체 뭘 조심하라는 건데?



" … 그, 아무리 그래도 커피는 내가 살게. " 


" 응? 아냐 괜찮아. 내가 좋아서 내는 건데. " 



뭔가 이상했다. 아니, 틀에 박힌 생각이라 해도 좋다. 

처음엔 내가 내던 데이트 비용들이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그저 그녀가 나를 배려해 주고 있구나 싶어 기뻤지만, 빈도가 늘어날 수록 친구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 돈 많은 여자 만나서 좋겠다? ' 

' 야 걔가 선물해 준거 다 가만히 냅둬. 나중에 무슨 일 생길지 모르잖아. ' 

' 근데 걔는 너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오래 만나준대? ' 


내가 친구들을 비웃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라도 있는 걸까 싶어 그녀에게 물어보면 해맑게 웃으며 말하기를. 



' 사랑하는 사람한테 이런 것도 못해줄 까봐? '



그럼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까. 

사랑하기 때문에 너에게 무언가를 더 해주고 싶었던 건데. 

모순이라 해도 상관없다. 받기만 하는 것이 과연 사랑일까. 


그녀는. 돈으로 사랑을 사려는 걸까. 


한 번은 진지하게 물었다. 

이렇게 까지 해주는 이유가 뭐냐고. 

그리고 들려온 대답. 


그저 사랑하니까. 너와 함께 있고 싶으니까. 


잘 모르겠다. 

복에 겨워 눈물이 나야 할 텐데. 어째서 의문만 가득 생기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졸업을 하고도 그녀와 나의 조금 뒤틀린 관계는 계속 되었지만, 몇 번이고 변함 없이 나를 바라봐 주는 그 모습이 좋았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





열등감으로써 비롯된 묘한 의심을 몇 번을 그녀에게 부딪혀 보아도 사랑만 있으면 괜찮다던 그녀. 

내가 널 사랑하니까. 그리고 너도 날 사랑하니까 괜찮다는 그녀에게 나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러운 상황이었으니까. 내가 생각해도 전생에 나라를 구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기에 차마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내가 직장을 갖고, 늘 버스와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던 내게 그녀가 동거를 하자던 제안과 더불어, 

그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내게 그녀가 차를 사준 것부터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뭔가 이상하다고. 


늘 사랑한다며 내게 일러주던 그녀에게 나는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말이다. 몇 년 전부터 남아있던 작은 의심이 이제서야 폭발하고 만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녀는 내게 이토록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가. 


밥을 해주겠다며 요리를 배우던 그녀는 어느덧 레스토랑 쉐프 못지 않은 실력이 되어 있었고, 

내가 이른 시간 출근을 하면 그녀는 나를 배웅해 주고 내가 집에 돌아올 시간 까지 홀로 집을 지키고. 


출근길이 무거웠다. 여느 때처럼 막히는 도로가 평소보다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후로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상사에게 대판 깨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은 평소처럼 가볍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 속에 맴돌며 나를 괴롭히는 의심이 사그라 들지 않았으니까. 


집에 도착해 현관 문을 열면 풍기는 음식 냄새. 그리고 왔냐며 해맑게 웃으며 내게 안겨오는 그녀를 안아주지 않았다.


말 없이 겉옷을 벗어 소파에 앉은 나는 할 얘기가 있다며 그녀를 조용히 불러내었다. 

현관에서 멀뚱히 날 쳐다보던 그녀는 조금 싸늘해진 표정으로 내게 걸어와 내 옆자리에 앉아 내게 물었다. 



" 오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 



" …… 있잖아. 진심으로 나한테 잘해주는 이유가 뭐야? " 



" … 또 그거야? 왜냐니, 사랑하니까 그런거지. " 



"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 



몇 년 간 꺼내지 못했던 말이 처음으로 무겁게 내리 깔리고, 둘 사이를 맴도는 침묵이라는 이름의 차가운 공기.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누군가 나를 본다면 미친놈이라고 말할 것이다. 

밥해주고, 차사주고, 돈 많은 여성이 나만을 바라보며 사랑해준다는데 어떻게 그걸 제 발로 차버릴 수가 있냐고. 

아니. 반대로 생각하면 다르다. 


밥해주고 돈 많은 여성이 도대체 왜 나를 사랑해주는가?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이 있기에? 



" …… 내가 뭔가 잘못했어? 미안해. 그… 청소는 다 해놨는데. 아, 밥이 맛이 없었나? 아니… 그… . "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되려 내가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찌 이런 모습을 보고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몇 번이고 사람에게 배신 당해 상처를 갖고 있는 그녀에게 내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가. 

도대체 열등감이 뭐기에. 의심이 뭐기에. 



" 아니다. 아니야. 너처럼 완벽한 사람이 왜 나를 사랑해주는가 해서. " 



한숨과 함께 내뱉은 그 한마디에 그녀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괜한 의심이겠지. 그래. 이것 봐. 날 사랑해 주잖아. 그거면 전부잖아. 

화 한번 안내고 이렇게 참기만 하고, 늘 날 먼저 생각해 주는데 왜 사랑하냐니, 웃기는 소리잖아.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하려던 순간, 나는 내 귓가에 들리는 작은 목소리에 움직이려던 입술이 멈추었다. 



" …… 부족한가? 아직 난 완벽하지 않은가 봐. 이렇게 해도 사랑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안되나. " 



" … 무슨 소리야? 너처럼 완벽한 사람이 어딨다고 …… . " 



" 거짓말. " 



내 귀를 의심했다. 그녀에게서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였다. 

싸늘했고, 무엇보다도 차가웠다. 늘 밝게 미소 짓던 그녀의 표정조차 지금은 싸늘히 굳어 날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럼 왜 날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바보야? 이미 알고 있었어. 졸업 이후에 단 한번도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잖아. " 



말문이 막혔다. 

그것이 사실이니까. 지금에 와서야 터져버린 의심은 졸업 전부터 늘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기에, 도대체 왜 나랑 만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 소문 따위는 신경 안 쓴다고 말했잖아. 아직도 날 의심하는 거야? 내가 지금까지 그게 거짓말이란 걸 몇 번이고 보여줬는데. 

  사랑한다고 네게 몇 번이고 말했어. 널 좋아하니까 네게 돈을 쓰는 것 정도는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저 겉모습 때문에 날 멀리하고, 제 각각의 목적을 가지고 내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미치도록 싫었어. 

  넌 다를거라 생각했어. 아니. 달랐어.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봐주었고 소문에 감싸있던 나를 온전히 한 사람으로써 봐주었어. " 



널 사랑했다. 

한 사람으로써 사랑했다. 그 흔한 사랑 싸움 한번 없이 너와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전부 네가 내게 맞춰 주었기 때문에. 전부 너의 노력 덕분에. 


네 볼에서 흐르는 눈물을 부정하고 싶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몇 번이고 그녀는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날 사랑했기에 지금까지 내게 화 한번을 안냈던 것이겠지. 그런데도 난 의심했다. 그녀의 사랑을 믿지 못했다. 

왜? 왜 였을까. 그저 일방적으로 와닿는 사랑이라 느꼈기에? 그게 아니라면 너의 사랑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그저 단순히 받기만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칭해도 될까? 

아니, 아직 남아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 터 놓는다면 그게 다시 사랑이 될까. 



" …… 자꾸 왜 사랑하냐고 묻지마. 도대체 그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고 싶어 하겠어? 

  내가 널 좋아한다잖아. 같이 있고 싶어한다고. 도대체 거기서 왜 이유를 찾으려 하는 건데? 

  혹시 졸업 후 혹여 네가 이런 내가 질려 도망갈까 봐 억지로 동거하자 했던 내가 싫어? 

  매일 불편하게 출근하던 너를 위해 선물해줬던 차가 그렇게 부담스러워?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내가 원하는 건 너인데. 너도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 도대체 왜…… . " 



가슴 한 켠이 시큰거렸다. 


듣고 싶었던 대답은 전부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간단한 문제였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이유를 찾으려 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받아들이면 됐을 쉬운 문제였다. 

여전히 울먹이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매에서 흐르는 눈물이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그렇구나. 쓸대 없는 걱정이었다. 


조용히 그녀를 품에 안았다. 

몇 년 만일까? 내 의지로 그녀를 안아본 것은. 

잠시 당황이라도 한 것인지 갈 곳 잃었던 그녀의 팔이 내 등을 감싸고, 나는 미안하다며 내뱉었다. 


놓치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사람이다. 

너무나도 늦게 깨달았다.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 제발… 날 의심하지 말아줘. 난 너만 있으면 되니까. " 



" 의심해서 미안해. 사랑해. 진심으로. " 



천천히 붙어있던 몸이 떨어지고, 늘 그랬던 것처럼 미소를 그리는 그녀의 눈가에 맺혀있는 마지막 눈물을 엄지로 쓸어냈다.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제외하면 평소에 봐왔던 그녀다.


늘, 내 곁에 있어주었던 그녀였다. 



" 나… 너 놓치면 정말 슬퍼할 테니까. 너 말고 다른 사람에게 줄 사랑 따위는 이제 남아있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미워하지 말아줘. "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의심할 여지도 없었으며, 내가 그녀를 싫어할 이유도 없었다. 


단지, 그녀를 사랑하기만 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시간이 늦어 잠을 자자며 방에 들어왔다.

평소와 달리 마음이 편안했다. 가슴 속 응어리가 풀려 그런 걸까. 

등 뒤에서는 그녀가 같은 침대 위에서 새근거리며 잠을 자고 있었고, 이 핸드폰마저 그녀가 사준 것이란 사실에 쓴 웃음이 지어졌다. 


어째선지 정신이 멀쩡해 열어본 핸드폰 스크린. 

이 핸드폰마저 그녀가 사준 핸드폰이란 사실에 소리 없는 쓴 웃음이 흘러나왔다. 

동창들은 잘 지내나 싶어 연락처와 메신저, 인스타를 둘러보던 나는 묘한 이질감에 스크롤을 내려대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아무리 최근엔 확인을 안했다고는 해도 이렇게 줄어들어 있었나? 

분명히 기억 속에 박혀있던 친한 친구들의 연락처가 지워졌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 나는 묘하게 느껴지는 서늘함에 몸을 옅게 떨었다.

내가 지웠을 리가 없는데. 

핸드폰 초기화를 했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혹시나 싶었다.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또렷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두 눈동자에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 … 안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