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이익, 공방의 문이 열리며 쌓여있던 먼지가

피어올랐다.

 

고작해야 사람 한 명이 겨우 살 정도로 작은

오두막 안, 벽에는 온갖 기계 장치와 공구가

걸려있었는데 모두 한참 쓰지 않은 것인지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이런 곳에도 공방을 만들어뒀다니.”

 

대체 몇 개나 있는 걸까.

피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침내 그것을

발견하고선 다가갔다.

 

먼지가 잔뜩 쌓인 채 방치되어 있던 여자.

아니, 그것은 여자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여자를 닮은 인형’이었다.

 

“가장 여자다운 인형, 이라.”

 

문득 떠오른 것은 피노의 아버지, 제페토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가장 뛰어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그는, 인형술사는 언제나 가장 

훌륭한 인형을 만드는데 집착했다.

 

이것 또한 마찬가지로― 제페토는 이것을

가장 여자다운 인형으로 만들었다.

 

대체 뭐가 여자답다, 라는 건지는 그도 모른다.

다만 그가 그렇게 만들었음을 알뿐.

 

‘어쩌면 외모가 가장 여자답다는 걸지도.’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인형이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워,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인간답지 않은 부자연스러움이 있었다.

 

보라색과 분홍색이 섞인 머리카락은 먼지가

쌓여있음에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두 눈을 감고 있지만, 그 얼굴은 피노가

지금껏 본 그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웠다.

 

마치 미의 여신 프레이어를 닮았다, 물론

직접 신을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들렸던

신전에서 그는 그토록 아름다운 조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제페토도 프레이어를 모티브 삼아

그녀의 얼굴을 조각한 걸지도 몰랐다.

 

마지막으로 순백색의 드레스. 대체 무슨

재질인지 몇 년이나 방치된 상태였음에도

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리고 큰 가슴…….

 

윽, 피노가 두 눈을 돌렸다.

이래선 안 된다. 설마 인형한테 발정하다니.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

피노가 가방에서 공구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동시에, 인형이 눈을 떴다.

 

“어?”

“하암……잘 잤다.”

 

이럴 리가 없다.

몇 년이나 방치된 인형이, 기동 명령어나

스위치를 누르지도 않았는데 깨어나다니?

 

“어머.”


그녀가 두 눈을 크게 뜨고 피노를 올려보았다.

―아. 눈동자마저 아름다울 줄이야.

아주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저기, 당신은 누구신가요?”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계획이 틀어졌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이래서야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었다.

 

‘이제 어쩌지, 이런 건 예상 못했는데.’

“저기요? 아, 혹시 말을 못하시는 분인가?”

그녀가 손을 열심히 놀려 수화를 했다.

 

“뭐하는 거야?”
“아! 뭐야, 말하실 수 있으셨네요?”

“수화는 또 어디서……아니, 됐어.”


분명 아버지의 괴상망측한 취향이겠지.

그 사람은 천재였지만, 천재성 이상으로

괴짜이기도 했다. 

 

그는 아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였다.

 

“내 이름은 피노, 너는?”
“저는 키오! 안녕하세요, 피노 씨!”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일어섰다.

……설마 나보다 키가 클 줄은 몰랐는데.

피노가 키오를 올려보며 생각했다.

 

“근데 여긴 어디죠? 으음, 기억이 애매하네요.”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어? 그래, 네 제작자가

누구인지는 기억나?”

“제작자……제작자? 부모님 말씀이시죠?”

 

부모님?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피노가 피식 웃었다.

 

“넌 자동인형이야, 인간이 아니라.”

“실례네요! 저는 확실하게 인간이거든요! 자!”

 

훌렁! 그녀가 자신의 상의를 휙 거뒀다.

 

“으아악!? 뭐, 뭐하는 거야!”
“보세요! 가슴이 있잖아요, 자동인형한테

가슴이 달려있을 리는 없잖아요? 뭐하면

만져서 확인해보셔도 되는데요?”

“이, 일단 옷부터 입어! 응?!”

 

그제야 키오가 드레스를 도로 입었다.

이게 가장 여자다운 인형……이라.

피노는 어이가 없어 또 실소하고 말았다.

 

“아, 아무튼 넌 자동인형이 맞아. 제페토는

기억이 나? 우리 아버지 말이야.”

“아버지?……아! 파파를 말씀하시는 거죠?”

파파? 피노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네에, 파파는 기억나죠! 저를 어찌나 애지중지

아껴주셨는지, 전부 기억하고 있어요!”

 

애지중지라…….

피노가 입술 근처를 긁적였다.

 

“그런데 파파는요?”
“……아버지는 만날 수 없어. 그렇게만

알아둬, 자세히 설명할 순 없으니까.”

“잠깐, 아버지? 그럼 혹시……?”

 

키오가 활짝 웃더니, 느닷없이 그를

확 끌어안고 뺨을 비벼댔다.

 

“와아! 당신도 파파의 자식이군요! 그럼

저희는 남매네요, 그렇죠!?”

“이, 이거 놔! 잠깐, 기다리라고!”
“그럼 제가 누나인가요? 피노는 저의

동생이니까, 뽀뽀도 잔뜩 해드릴게요!”

“잠깐 기다리라니까!”

 

그가 쏙,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

 

‘무슨 힘이 이렇게 좋아……!’

“피노는 부끄럼쟁이군요? 괜찮아요!

이 누나는 피노가 어떤 아이든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누가 할 소리를, 애초에 말이야! 내가

너보다 빨리 태어났다고, 알겠어!?”

 

그 말에 키오가 충격받은 듯 입을 떡 벌렸다.

 

“……그럴 수가……누가 봐도 제가 누나인데!”

“누가 봐도 내가 더 먼저 태어났지.”
“그럴 리가 없잖아요! 보세요, 이렇게 작고 

여리고 귀엽고 사랑스럽잖아요!”

 

아픈 곳을 때리네……그가 입을 다물었다.

실제로 그랬다. 피노는 남자치곤 키도 작고

나이도 어려 보였다. 고작해야 15살 정도로

보였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아직

꼬마아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외모마저 남자보단 여자에 조금 더

가까워보였다. 중성적이고 어려보이는 외모는

피노의 가장 아픈 콤플렉스였다.

 

“아무튼 내가 오빠……가 아니라! 어차피

우린 남매라고 부르기도 애매하잖아.”

“어째서요?”
“그야……넌 자동인형이니까.”


어쩔 수 없지, 확인시켜주는 수밖에.

피노가 드라이버를 뽑아, 키오의 목에 달린

아주 작은 나사를 슥 돌렸다.

 

“봐, 네 몸에서 나온 거.”
“나사……네요? 왜 나사가 나온 거죠?”
“그야 네 몸이 쇳덩어리니까?”


물론 외피 부분은 진짜 인간과 거의 똑같았다.

체온, 냄새, 땀, 심지어 털까지 난다.

 

더 신기한 것은, 만약 몸에 상처가 나면

인간의 혈액과 거의 유사한 액체가 흐르며

상처가 스스로 치유되고, 나중엔 흉터까지

생긴다는 점이었다.

 

기계로 만든, 가장 인간에 가까운 존재.

그것이 바로 천재 인형술사 제페토가 만든

‘가장 시리즈’의 본질이었다.

 

“그럼……저는 진짜로?”
“진짜로 자동인형이야.”

 

키오가 눈만 몇 번 깜빡였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망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그거……정말로…….”
“정말로?”

“정말로……멋지네요!!”


그녀가 활짝 웃으며 방방 뛰어다녔다.

 

“제가 자동인형이라니! 와아, 굉장해요!

어떻게 이렇게 정교할 수가 있죠? 거의

인간이나 다름없잖아요! 아아, 역시 파파는

위대하신 분이셨군요. 저를 이토록 완벽하게 

만들어주시다니, 저는 제가 인형이라는 걸 

전혀, 완전히, 새까맣게 몰랐다니까요!?”

 

피노는 할 말을 잃고 그녀를 보았다.

 

‘이게……가장 여자다운 인형……?’

 

그보단 가장 바보 같은 인형이란 호칭이

더 적절하지 않나 싶었다.

본인 앞에선 말할 순 없겠지만…….

 

“아! 그렇구나!”

“뭐가?”
“그럼 피노가 저한테 온 이유는, 절 파파한테

데려가려고 그런 거죠? 이제야 이해했어요!”

 

전혀 아닌데.

하지만 뭐, 차라리 그렇게 믿게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일단은 그런 느낌이야.”
“역시나! 저는 똑똑하다니까요?”

대체 어디가? 피노가 혼자 신나서 방방 뛰는

키오를 보며 생각했다.

 

“자! 그럼 어서 저를 파파한테 안내해주세요!”

“알겠어, 알겠으니까 좀 진정해. 응?”
“어서 빨리 파파를 만나고 싶네요! 분명

저를 기다리고 계시겠죠? 그렇죠?”

 

기다리고 있다, 라.

피노는 쓴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럼 따라와, 대신 조심하고.”
“네?”

“뭐야, 여기가 어딘지도 몰랐어?”


끼익, 그가 공방의 문을 다시 열었다.

그러자 바깥에서 짐승의 괴상망측한 포효와

새 지저귀는 소리가 마구 울려 퍼졌다.

 

“이곳은 세계 12대 던전 중 하나, 던전

카리굴럼의 최하층이야.”

“던전……카리굴럼?”
“여길 다시 올라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해.”


이곳이 세계 12대 던전이 된 이유는

단순히 이곳이 거대한 것 때문이 아니었다.

 

여긴 위험도만으론 세계에 존재하는 수백 개의

던전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그렇기에, 여긴 목숨을 걸지 않고선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마굴이었다.

 

“죽고 싶지 않다면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
“아, 네! 잘 부탁해요, 피노!”
“흥…….”


계획은 틀어졌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어쨌거나 마지막에 가면…….

 

피노는 그리 생각하며, 발을 내딛었다.

 

 

 

 

 

“흥, 흥, 흥…….”
“조용히 해, 괴물들 눈에 띈다고.”
“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예쁜 곳에서

콧노래를 부르는 건 숙녀의 소양이라고요!”

 

피노는 할 말을 잃고 헛웃음 지었다.


이런 위험천만한 곳에서 콧노래라니, 누군가

그들을 봤다면 미쳐버린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그거랑 별개로 풍경이 좋긴 하지…….’

 

카리굴럼은 그 위험성과 별개로 가장 아름다운

던전이라 불리곤 했다.

 

피노는 그게 허풍이라고 믿었지만, 직접

와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봐라, 이 절경을. 끝을 모르는 절벽 위로

폭포가 쏟아져 내렸고, 사방에는 온갖 나무와

꽃이 자라 어딜 봐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여긴 던전 내부.

이 아름다움에 취한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꺅!?”


그때, 키오가 거꾸로 뒤집히며 위로 치솟았다.

무언가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들어올렸다.

 

“쯧, 뱀부 트리인가.”
“피노오오오……이게 대체 뭔가요오오오…….”

뱀부 트리, 일명 함정 나무라 불리는 생물이다.

 

나무처럼 생겼지만 실제론 식물이 아니라

동물이며, 지나가는 생물의 발목이나 목을

낚아채 말려 죽인 뒤 시체를 흡수한다.

 

만약 도와줄 사람이 없거나, 혼자 빠져나올

능력이 없다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조심하라니까.”

 

픽! 피노가 던진 단검이 덩굴을 뚝 끊었다.

 

“꺄아아악!?”
“이크.”

 

피노가 뛰어올라, 떨어지던 키오를 낚아챈 후

바닥에 사뿐 착지했다.

 

“조심하라는 이유, 알겠어?”
“네……네에…….”
“뭐야, 얼굴은 왜 붉히는데.”
“살짝……반했을지도?”

 

쿵! 그가 그녀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아야! 아프잖아요?!”
“헛소리 그만하고 따라오기나 해.”

 

두 사람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저기 피노 씨?”
“왜.”
“파파는 어떤 분이셨나요?”


파파, 아버지, 제페토.

피노가 한숨을 내뱉었다.

 

“제멋대로에 오만하고 고집 세고 짜증나고

남 엿 먹이길 좋아하고……또 뭐가 있더라?”

“파파, 싫어해요?”

“싫어해.”


한 번도 좋아했던 적이 없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무시무시할 정도로 천재였지.”

 

인형술사 제페토, 자동인형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도 아는 세계 최고의 인형술사.

 

본래 자동인형이란 그리 발전되지 못한,

일종의 유희용 기술에 가까웠다.

 

기껏해야 조금 독특한 사치품 정도로

여겨졌고, 그 기능과 성능 또한 저열했다.

 

명령을 내려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그나마 아주 간단한 명령만 겨우 수행했다.

정교하게 움직이려면 직접 손으로 조정해서

다뤄야하니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만들 수 있는 사람도 극히 적었고,

그 외견 또한 조각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제페토라는 천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우리 아버지는 자동인형의 신이야. 짜증나는

인간이지만, 자동인형이라는 건 사실상

제페토라는 남자가 혼자 완성한 기술이지.”

“역시 파파는 대단한 분이셨군요?”
“대단했지……대단하긴 대단했어.”


고작해야 말할 줄 아는 인형을, 사실상

인간에 가까운 존재로 탈바꿈했다.

 

그의 천재성에 대해선 밤이 새도록 떠들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아무튼, 해가 지기 전에는 중간 지점까지

가야 해. 더 걸을 수 있겠어?”

“물론이죠! 저는 생각보다 튼튼하답니다?”


뭐, 그렇겠지. 제페토가 만들었으니.

 

두 사람은 또 걷고, 또 걸었다.

밤이 되기 전에는 올라가야만 했기에.

 

 

 

 

 

새벽.

 

두 사람은 야영지에 천막을 세운 뒤, 거기서

조금 쉬었다가 올라가기로 했다.

 

밤이 되면 괴물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한다.

더해, 아무리 자동인형이라 할지라도 너무

쉬지 않고 움직이면 고장날 수도 있었다.

 

‘이런 부분까지 인간답게 만들어선…….’

“저기, 피노 씨?”
“흐갹!?”


그가 깜짝 놀라 앞으로 넘어졌다.

 

“뭐, 뭐, 뭐야!? 놀랐잖아!”
“어머, 죄송해요.”
“쯧……뭔데? 아무리 자동인형이라도 좀

쉬는 게 좋아. 고장나면 못 고친다고.”

 

키오의 표정이……뭔가 달라보였다.

그도 자세를 고쳐, 똑바로 앉았다.

 

“무슨 일이야?”
“저……생각해봤는데, 어째서 기억이

이렇게 애매하고 흐릿한 걸까요?”

 

그녀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분명 파파에 대한 건 생각나는데, 다른

건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어째서죠?”

“그건…….”


그 이유는, 피노도 몰랐다.

애초에 아버지의 행동에 이유라는 게 정말

있기나 한 건지도 몰랐다.

 

언제나 제멋대로에, 자기중심적이었으니까.

 

“파파는, 정말로 절 사랑했을까요?”

 

―언젠가 피노 그 자신이 했던 질문.

스스로에게, 아버지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그 답은, 결국엔.

 

“사랑했어.”


피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사랑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정말요?”

“짜증나는 인간이지만, 자기 작품에 대한

애정만은 언제나 진심이었거든.”

“에헤헤, 다행이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여자답다, 라고 했던가.’

 

줄곧 여자답다는 게 뭔지 생각했다.

외모? 말투? 목소리? 냄새?

그런 게 아니다.

 

여자답다는 건 아마, 키오의 마음일 것이다.

조금 제멋대로에 자유분방하고, 그러면서도

섬세하면서 여리다. 

 

마치 그 날의 너처럼―

 

쿵!!

 

그 순간, 섬뜩한 소리에 피노가 일어섰다.

 

“쯧, 괴물이 왔나?”
“어, 어, 어쩌죠!?”
“괜찮아, 여기 숨어있어. 절대 나오지 마.”


피노가 천막 밖으로 나갔다.

 

‘누군가가 있다― 괴물은 아니야.’

 

어둠 속에서, 저 수풀 너머에 누군가가 있다.

다른 모험가? 아니면 약탈자인가?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무언가가 달랐다.

 

“인형 파괴자, 피노.”
“!”


파악! 피노가 허리를 뒤로 젖혔다.

칼날. 어느새 예리한 칼날이 날아든 것이다.


“젠장! 누구냐?!”
“알아보지 못한 형제, 슬프군.”

 

형제라고? 설마!

피노가 가방을 벗어던진 뒤 소리쳤다.

 

“SET, UP!”

 

철컹! 가방 안에 있던 기계 부품들이 빠져나와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자율 합체 인형, 램프윅.

마치 양동이와 양철로 만든 듯, 투박하고

네모반듯한 외형을 가진 인형이었다.

 

“소개한다, 나를. 가장 노련한 자동인형.”

 

철컥! 갑주를 입은 자동인형이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부르라, 스트롬볼리.”
“설마 날 추격한 건가!?”
“추격보단 미행. 나는 노련하니까.”

 

던전에 들어오기 전부터 따라오고 있었다.

설마, 그렇게 오랫동안 미행하고 있는데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다니.

 

‘가장 노련한 인형이다, 이거지?’

 

제페토가 만든 ‘가장 시리즈’의 22번째 작품.

가장 노련한 전사를 목표로 한 자동인형.

―백병전 특화형 자동인형이다.

 

‘하필이면 이럴 때!’

 

램프윅 말고 다른 인형은 가져오지 못했다.

다른 걸 들고 오기엔 짐이 너무 많았다.

아마 스트롬볼리도 그걸 노린 것이리라.

 

“질문한다, 어째서 우릴 부수고 있지?”
“그걸 알면 뭐가 달라지는데?”
“모른다, 하지만 알고 싶다.”


램프윅은 만능형, 하지만 저런 백병전

특화형 인형에겐 약한 편이다.

이길 수 있을까? 이놈은 얼마나 강하지?

 

“제페토는 선을 넘었다.”

 

상관없다.

이긴다, 그리고 부순다.

나는 그걸 위해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이게 인형이 아닌, 인간의 선택.

 

“가장 시리즈는, 내가 전부 부순다!!”
“이해불능, 하지만 뭐 좋다.”

놈이 검을 높이 들었다.

 

“가장 좋은 대화, 폭력!”
“가라, 램프윅!”


램프윅의 거대한 주먹이 놈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어느새 놈이 램프윅의 주먹을 베어

갈라버렸다.

 

‘빨라! 전혀 안 보였어!’

 

어느 틈에 벤 거지? 게다가 램프윅의 재질은

크롬 메탈이다. 검으로는 벨 수 없을 터인데.

 

“나의 주, 제페토가 주었다. 이것이 바로 그것.”

스트롬볼리가 대검을 가볍게 휘두르며 말했다.

 

“코로스야. 가장 예리한 대검.”

‘저 대검도 제페토가 만든 건가!’

 

그럼 평범한 대검은 아닐 테고, 젠장.

피노가 조금 뒤로 물러섰다.

 

‘역시 백병전은 불리해, 일단 도망치자.’

“판단한 것인가, 도망친다고?”


들켰나, 놈이 비웃는 듯 소리 냈다.

 

“그렇게 두지 않는다, 내가.”

“!”


빠르다!

놈이 순식간에 돌진해, 램프윅의 왼팔을

베었다. 하지만 그도 이미 예상했다.

 

“받아라!”
“!”


훙! 램프윅의 발차기를 받아냈다.

빠르고, 노련하다. 마치 전부 예측했다는 듯

완벽한 방어였다.

 

“말했다, 가장 노련하다고.”

“제기랄!”


이 녀석, 강하다―

이미 다른 시리즈를 4체나 파괴했건만,

녀석은 그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기대 이하, 너는 생각보다 약했다.”
“램프윅, 전개!”


끼이익― 램프윅의 가슴팍이 열렸다.

 

“이건!?”
“받아라!!”


투두두두두―!!

 

램프윅의 가슴에서 발사된 철갑탄이

바로 앞에 있던 스트롬몰리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숨겨두었나, 이런 걸!”


지금이다.

피노가 손가락을 재빨리 놀려, 램프윅의

제어권을 자신에게 돌렸다.

 

“파워 피스트!”


콰앙!! 스트롬몰리가 저 멀리 나무에 처박혔다.

하지만 방심해서도, 망설여서도 안 된다.

피노가 이어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로켓 펀치!”


푸슈욱―! 램프윅의 주먹이 발사됐고.

 

“역시 나왔군, 그렇게.”
“무슨!?”


스트롬몰리의 대검이 번뜩였다.

스겅! 발사된 주먹이 반으로 갈라지며

땅바닥에 툭 떨어졌다.

 

“조사했다, 너의 인형. 모든 기능을.”

“설마― 젠장!”


“말했을 터, 나는 가장 노련하다고.”

노련한 사냥꾼, 노련한 전사.

그리고 노련한 살인자.

 

그것이 바로 스트롬몰리의 정체성.

그는 피노를 몇 주, 몇 달이나 미행하고

조사했다.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피노가 가진 가장 상대하기 편한 인형을.

그리고 가장 상대하기 편한 장소를.

 

“더는 없겠지, 무기는.”


그 말대로였다.

팔과 주먹이 없는 램프윅은 무용지물이다.

더해, 비장의 수였던 철갑탄도 이미 써버렸다.

 

“승리다, 나의.”
“빌어먹을!!”


쿵, 쿵, 쿵! 램프윅이 돌진했고―

스겅! 동시에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됐다.

 

“컥!”

 

콰앙! 스트롬몰리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피노는, 이길 수 없었다. 그의 몸체는

전투에 적합하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째서지?”

“크으윽…….”
“형제다, 우리는. 이런 살육은 무의미할 터.”
“개소리 하지 마, 난 네 형제가 아니야!!”
“정말로?”


스걱! 피노의 왼손이 잘려나갔다.

 

“크아악……!”
“보아라, 너의 몸을.”


흘러넘치는 피 너머로 보인 것은, 뼈도 근육도

아니었다.

 

거기엔 기계 장치와 와이어가 있었다.

그의 몸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아니었다.

 

“피노, 가장 정밀한 자동인형.”

“아니야……!”
“제페토의 편애를 받았다. 우리의 주에게.”

“그런 놈은 내 주인이 아니야!!”

 

아버지도, 주인도, 창조주도 아니다.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피노는― 자신의 신을 죽였다.

 

제페토를, 자신의 손으로 끝장냈다.

 

“우리 모두 사라져야 해! 가장 시리즈는!

우리는 저주받은 존재니까!!”

“이해불능. 우린 가장 뛰어난 존재이다.”

“가장 위험한 존재겠지!”


제페토는, 분명히 천재였다.

또한 그는 미치광이였다.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었고, 해선 안 될 짓을

저질렀고, 범해선 안 되는 죄를 범했다.

 

그래서 피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

죽여야만 했다, 모두를 위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너는 가장 시리즈가 왜 만들어졌는지 몰라.”
“있나? 알 필요가.”

“없지― 너는 고작해야 꼭두각시에 불과하니까.”

 

그 말에, 스트롬몰리가 불쾌한 듯 칼날을

그의 팔에 쑤셔 박았다.

 

“크아악!”
“아니다, 꼭두각시. 나는 자유다.”

“자유? 웃기시네. 너는 실에 매달린 인형이야.

결코 거기서 벗어날 수 없지, 자기 자신이

어째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니까!!”

“역시 이해불능. 어째서? 가장 총애 받던

네가, 왜 주를 죽인 것인가?”

 

―그랬다.

분명히 그랬다.

피노는 가장 사랑받은 인형이었다.

 

제페토는 다른 인형보다도 피노를 사랑했다.

그렇기에 아들처럼 대했고, 자신의 기술과

유산을 모두 넘겨주었다.

 

심지어 죽는 순간마저, 그는 피노를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가장 큰 절망이었다.

 

“죽여.”
“틀리다, 죽여. 부순다가 옳다.”

“어느 쪽이건 빨리 해치워.”


더는 움직일 수 없다.

실패했다, 실패해버리고 만 것이다.

피노는― 

 

“그만.”


그 순간이었다.

스트롬몰리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금도 알지 못했다.

 

어느새, 땅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피노를 다치게 하는 건 용서하지 않아!!”

“누구, 아. 가장 여자다운 너는―”
“닥쳐!!”


콰아앙!! 그의 머리가 움푹 파였다.

 

“피노는 내 동생이야! 다치게 하는 사람은

누구든 용서치 않아, 알겠어!?”

“웃기는군. 동생이라고? 인형한테?”


카앙! 스트롬몰리가 자신의 갑주를 분리해,

그녀의 손에서 벗어났다.

 

“덤벼라, 가장 여자다운 자동인형.”

“제 이름은 키오에요! 당신은요!?”
“스트롬몰리.”
“좋아요! 그럼, 지금부터 당신을 부수겠어요!”


대체 뭐라는 거야?
피노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안 됐다.

 

“넌 전투 특화형이 아니야! 도망치라고!”
“아뇨! 동생을 지키는 건 누나의 몫이니까!”


쿠웅! 그녀가 격투가처럼 자세를 잡았다.


“그러니까 얌전히 지켜보고 있으세요!”
“지켜봐라, 네 누나가 죽는 모습.”


―두 사람이 멈춰 섰다.

그 자세 그대로, 조금의 미동도 없이.

그저 서로를 노려보았다가―

 

“하아아아압!!”
“받아라!!”


검과 주먹이 교차한 순간―

콰드득! 주먹이 갈라지는 동시에, 검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우지끈 부서졌다.

 

“무슨―”


콰득!!

스트롬몰리의 가슴이 꿰뚫렸다.

 

“―졌군. 내가, 확실하게.”

“네, 졌어요. 확실하게.”


스트롬몰리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처음으로 그에게서 표정이 드러났다.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장 여자답군. 확실하게.”

 

쿵! 인형의 몸이 뒤로 쓰러졌다.

끝났다. 스트롬몰리의 가슴 안에 있었던

하트 박스가 부서졌다.

 

“오예! 첫 승리네요, 피노!”
“뭐지……너 분명 전투형은 아니었을 텐데?”
“그런 게 무슨 상관인가요?”


그녀가 당차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자는 소중한 걸 지킬 때 가장 강하답니다!”

“……뭐……그러셔?”

 

에라, 모르겠다.

피노는 그대로 드러누웠다.

 

“다 들었지? 내 목표.”
“……네.”

“사실이야. 나는 가장 정밀한 자동인형, 피노.

그리고 아버지 제페토를 죽인 패륜아.”

 

죽여야만 했다.

하지만, 죽이고 싶지 않았다.

피노는 그를 미워했고.

―분명히 사랑했다.

 

“내 목표는 나와 너를 포함한, 모든 가장

시리즈를 제거하는 것. 제페토가 만든

가장 시리즈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해.”

“어째서―”
“우리가 만들어진 이유 때문이야.”

 

이걸 말해도 될까?
그녀를 믿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이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피노는 말했다.

 

“우리는 인형을 넘어선 존재, 인간이 되기

위한 실험작이었다.”

“네……?”
“그리고 제페토는 성공했어. 인형을 인간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지…….”

 

그래서 피노는 그를 죽였다.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게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정확히는 인간을 인형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봐야겠지만, 자세한 건 설명할 수 없어.

언젠간……가르쳐줄게. 언젠간.”

 

이제 어쩔 테냐.

나를 죽이고 도망치던가.

아니면, 그냥 전부 포기해 버리던가.

 

그리고 그녀가 피노에게 다가왔다.

 

“피노,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렇겠지.”

“그러니까, 알고 싶어요.”


키오가 피노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엇이 옳고 틀린지는, 당신의 목표가 정말

옳은 건지도……하지만, 믿고 싶어요.”

“어째서?”
“그야 저희는…….”


그녀가 싱긋 미소 지었다.

 

“가족, 이니까요.”


가족.

피노는 그 단어에, 왠지 모를 슬픔을 느꼈다.

 

그들은 가족이었다.

아버지이고, 아들이었다.

스승이고 제자였으며, 또한 친구이자 동료였다.

 

제페토는, 피노의 모든 것이었다.

 

“어머, 왜 우시나요?”

“……인형이 눈물 흘릴 리가 없잖아…….”


이건 그냥 오일이 새는 것뿐이다.

아주 작은, 오류일 뿐이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동생 씨.”
“내가 오빠라니까…….”

 

두 인형이 손을 맞잡았고.

 

그리하여, 인형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하고 싶은 말은 여기 모두 담겨있다

인형 순애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