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지금은 이미 옛날 이야기지만, 어린시절의 나날은 아직도 내게 큰 상처로 남아있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적 우리 아버지는 무언가 사업을 한다고 하셨나, IMF가 터지기 직전까지는 꽤 잘 나갔다는걸로 아버지 본인에게 들었다

그러나 모두에게 잔인했던 1997년의 겨울이 지나고 우리 가족 또한 일자리를 잃고 그저 길거리를 진전하던 한 무리의 실업자가 되었고, 부모님 두분 스스로도 자신을 부양하기 힘들 시간에 나는 태어났다.


나는 태어난 시절부터 축복받지 못한 아이였다는 것이다.


친척 집,외가 집을 진전하며 살아가던 우리 부모님들은 어떻게든 금전을 마련하여 서울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는 동네의 작은 아파트의 한 방을 구할 수 있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우리 동네 바로 옆은 화려한 고층 건물이 즐비하여 있고, 비싼 외제차들이 수를 놓아 있는 부유한 동네였다.


어린시절부터 무너져가는 집 밖을 나서자마자 보였던 서울의 화려한 빌딩의 숲은, 나를 더욱 박탈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동네 이야기는 이쯤 하고, 다시 우리 부모님 이야기로 돌아와보면 아버지, 아니 애비는 내가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이전부터 허구헌날 술을 처먹고 돌아와 나와 내 어머니를 구타하였으며 사업을 하던 시절의 재력에 대한 집착을 벗지 못했는지 도박,주식등으로 집안 살림살이들을 날려먹었지만 본인은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듯 했다.


어머니, 아니 애미라는 작자라고 덜하진 않았다. 애미는 아버지에게 당한 폭행이 전부 나의 잘못이라며 나를 구타했고, 집안일마저 전부 내게 떠맡겨둔 채 내가 무언가 실수라도 하면 나에게 엄청난 폭언과 폭력을 휘둘렀다.


이런 현실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도망가고 싶었으나, 그 나이의 소년이 자립적으로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그저 심신이 피폐해질때면 사거리를 건너 부자동네와 우리 동네의 사이에 위치한 한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조용히 스스로를 사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잣집 아이들과 가난한 집 아이들이 엉겨붙어 놀던 그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운명,수저의 존재를 알고나 있었을까ㅡ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그녀와의 만남도 그때가 처음이다.


그 날도 아버지에게 맞은 이후 집을 나와 이미 황혼의 시간을 맞아 나 말고는 아무도 없던 놀이터의 그네에 가만 앉아있었는데,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너 여기서 뭘 하고 있어?"


8월이라는 무더운 여름에도 불구하고 긴 치마에 긴 팔을 입은, 맑고 똘망하지만 어딘가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가 고혹적인, 윤기가 흘러 싱그로운 흑발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소녀, 얀순이와의 첫 만남이였다.


"아니.. 그.. 그냥.. 그냥 앉아있는거야"


"너도 학원 끝나고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이러고 있는거니?"


학원? 그때 나는 학원 비슷한 그 어떠한 기관에 연관이 없는 사람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무언가가 달랐는지, 수학,영어,피아노,유도 학원을 다닌다고 하였다. 


"... 그러니까 부모님들이 서로 싸우는게 싫어서 밖에 나온거라고?"


"어? 어..."


"그렇구나, 사실 우리 부모님도 맨날 나한테 공부하라, 품행을 단정히 하라 극성이시거든. 가끔은 내게.... 아니다, 그나저나 너 이름이 뭐니?"


"얀붕, 김얀붕이야."


"나는 연얀순이야, 너 여기 동네 살아?"


"그건 아니고 이 옆에 OO라는 곳에 살아"


"그러면 우리 동네 바로 옆이구나! 나는 XX동에 살거든,"


그렇게 그녀와 나의 기묘한 인연이 시작되었다.....


사는 곳이 가깝던 우리는 자주 만나 서로의 고민을 터놓은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재벌가의 3세 자녀로, 집안이 부자라서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그녀의 부모님은 연씨 문중은 어때야 한다면서 아직 뛰놀 나이의 소녀에게 4개나 되는 학원을 매일매일 다니게 하고 조금이라도 그 나이 소녀에 걸맞는 행위를 하면 품행이 옳지 못하다면서 허리띠로 그녀를 구타했고, 그렇게 생긴 상처를 보이기 싫어 늘 긴팔에 긴 치마를 입는다는 것이였다.


참으로 잔인한 운명이였다.

돈이 사람의 행복을 갈라놓지 않는다면, 사람의 행복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나 또한 내가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이야기 하며 우리는 금방 서로의 상실감,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우리는 같은 학교에 배정받았으며 곧이어 같은 반까지 되었다. 당시엔 그녀와 같은 학교에 같은 반이라는게 정말 행복했다..


중학생이 된 나는 이전까지 소심했던 성격을 한꺼풀 벗고 점차 친구들도 사귀며, 원만한 학교생활을 보냈다.


반면에 얀순이는 교우관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나를 제외하면 학교에서 대화하는 상대는 거의 없는듯했다.


점점 친구가 많아진 나는 점점 얀순이와의 접점도 적어지기 시작했고, 시도때도 없이 찾아와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는 얀순이가 귀찮아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친구들과 방과후 피시방에 가기로 약속을 잡은 날이였다, 마지막 6교시가 끝나고 가방을 싸던 내게 얀순이가 다가와 어째서인지 우물쭈물대며 말하길


"...저기 얀붕아 오늘 학교 끝나고 나랑 같이.."

"어? 아 미안 나 오늘 선약이 있어서"


또 언제는 학교도 같고 동네도 가깝겠다, 항상 등교와 하교를 함께하던 얀순이가 언젠가 내게 의미심장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저기 얀붕아, 만약 네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너를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 어떻게 할거야?"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얀순이는 내가 은근히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걸까, 그때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얀순이는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 금방 소위 말하는 일진이라는 불량스러운 인맥을 만들고 나에 대한 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내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에 어머니는 가사를 내려놓고.. 뭐 그런것들을.


중학생밖에 안되는 어린 학생들에게 그러한 불우한 가정사정은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였다.


나는 금새 기껏 생겼던 친구들도 사라졌으며 일진 무리들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고, 정말 참을 수 없던건 그 무리 중에 얀순이도 있었다는 것이다.


매일매일이 괴로웠다. 심부름은 기본에 폭행은 스탠다드, 언제는 변깃물에 머리를 처박는것도 당했다.


친구 하나 없이 버려진 내게 얀순이가 그런 나에게 한마디를 던졌는데,

"이제 너를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을거 같아?" 였다.

아아. 바로 여기였다. 얀순이가 내게 왜 저럴까, 은근히 생각했던 온정도 순식간에 매말라붙게 한 그 한마디가...


그 날 이후에도 얀순이는 수시로 나를 찾아와 별 이상한 궤변들을 이야기 했는데,  그때는 사실상 나와 이야기 상대가 되는건 얀순이 밖에 없었다


괴로웠던 학교생활이였지만 그런 나에게도 위안이 되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도서부 부장이였다.

친구가 없어 갈 곳이 없던 나는 항상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부장은 항상 내게 다가와 내가 회피를 하려고 해도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다가와주었다.


하루는 늘 부장과의 대화를 피하기만 하는 나에게 부장이 말했다.

"야 얀붕아, 너 왜 자꾸 날 피하는거야? 내가 싫니?"


"아니 그런게 아니라.... 알잖아 나 찐따인거, 나 같은 애랑 친하게 지내면 너도 피해를 받을거니깐.."


"얀붕아, 여기 누가 있어?"


"우리 둘....?"


"그래, 나는 널 괴롭히는 일진들에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여기에 있는 바로 너에게 말하는거야, 우리 단 둘이 대화하는데 다른 사람들 인식같은게 뭐가 중요해?"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부장에 대한 짝사랑을 품게 되었다


긴 갈색 생머리에 청순한 외모, 은근히 볼륨감 있는 몸매..

우리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부장이 즐겨보는 문학 장르에 대한 이야기,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그 날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재미있는 예능 방송에 대한 이야기...


부장과 나누는 대환 시덥잖은 이야기 뿐이였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할때 유일하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얀붕아"

"내가 전에 얘기한 그 소설 알지?"

"응.. 알지?"

"실은 그게 영화화가 된다고 하는데.. 이번 주말에 우리 같이 보러 갈래?"


엄청나게 설렜다. 약속일이 되자 나는 부푼 마음을 애써 꾹 참은채 최대한 꾸미고 부장을 만나러 갔다.


영화관 앞에서 부장을 만났는데 교복 차림이 아닌 그녀는 평소보다 두배는 아름다워보였다...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그녀가 옆에 있다는 사실에 너무 설레서 집중이 전혀 되지 않았다.


"얀붕아 영화 재밌었어?"

"어? 어 어"

"원작에서는 그게 이런 장면이였는데 영화에서는 이렇게 각색되어서...."


그 순간이였다.

나를 괴롭히던 일진들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최대한 빨리 숨으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일진들에게 들켰는데..


"야 김얀붕 이새끼 뭐하냐?"

"시발 여자친구 있었냐?ㅋㅋ"


예상처럼 일진들은 나를 쏘아붙이며 곧이어 나를 때리려고 했으나 부장이 내 앞을 가로막고 나를 지키려고 했다.

"야 니들 뭔데? 뭔데 얀붕이 괴롭혀?"

여자에게 비호받다니 정말 한심하구나, 나

"오~ 존나멋진데"

"꼬우면 쳐보든지 시발련아~ㅋㅋ"

일진들은 이렇게 말하며 부장까지 때리려고 했다.. 부장이 눈을 질끔 감는 모습을 본 나는 더이상 참을 수 없어 일진들에게 달려들어 맞지도 않는 주먹을 마구 휘둘렀는데..


문자 그래도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지만 결국 부장은 지켜냈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두들겨 맞다니, 이걸로 부장은 나에게 질렸겠지


그러나 달랐다.

부장은 계속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중학교 졸업 이후 에도 같은 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


얀순이는 다른 고등학교로 간 터라 이제 그녀의 그늘 아래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따돌림 받는건 여전했다


그래도 부장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해주었고 고3이 되자 성적이 좋던 부장은 인서울 대학에 합격하였고 나 또한같은 대학까지 가.....


지는 못했다

학교폭력때문에 마음고생하던 내가 공부까지 할 겨를은 없었다 ㅡ사실 변명일수도 있지만ㅡ


그래도 부장과 같은 대학을 가겠다는 의욕 하에 재수학원에서 1년간 빡세게 공부한 결과 그 대학에 붙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첫 등교일이다! 페이스북에 검색해서 부장이 어느 과 학생인지는 아니까 한번 찾아가봐야겠다.


캠퍼스를 얼마나 돌아녔을까, 곧 나는 익숙한 갈색 생머리 뒤통수를 찾았다

그리고 이젠 중학교 고등학교 6년 사이에 하지 못한 이야길 전해야겠다.. 부장은 예쁘니까 남자친구가 이미 있을수도 있지만 내 맘을 전하는 걸로 만족해..

"저...저기... 최부장씨 맞으신가요"

"네 맞는데요 누구

그녀가 뒤돌며 말했다

....김얀붕?"


"맞아, 나야"

"헐 대박, 너도 여기 입학한거야? 그동안 연락 없더니 뭐했어?"

"나 재수했지. 1년간 아무랑도 연락 안했어ㅋㅋ"

"하여튼 고등학교때 공부 열심히 하라니깐ㅋㅋ"

"나도 그거 후회해ㅋㅋ 근데 나 너한테 하고싶은 말이 있는데.."

"응? 뭔데"

"옛날 내가 따돌림 당할때 니가 내 유일한 친구였잖아..  그래서 뭐랄까 내게 있어 넌 굉장히 소중한 존재였고 이 학교도 사실 너 다시 만나려고 온거야....."

"...."

"야 미안하다ㅋㅋ 굳이 사겨달라는건 아니야 그냥 이 말 한번 해보고 싶었어 그럼 이만.."

"..도 좋아"

"응?"

"나도 좋아! 나도 얀붕이를 늘 좋아하고 있었는데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어 지금의 나라도 좋으면.. 나랑 사귀어줄래?"


세상에 나보다 기쁜 남자가 존재할까? 부장도 나와 같은 마음이엿다고?


"당..당연하지! 그럼 우리 오늘부터.."

"후후후, 아 맞다! 나 지금 수업이라서 얀붕아, 이따가 연락해줘! 이게 지금 내 전화번호야!"


아 행복하다, 나 만큼 행복한 사람이 있...


"어? 김얀붕!"


생각을 잘못했다. 나만큼 불행한 사람이 있을까? 연얀순, 또 너라고?


"너 여기서 뭐하는거야 김얀붕?"


"..."


"뭐야, 사람이 말하면 대답을 해야지"


"..."


"너도 이제 이 학교 다니는거야? 잘됐네, 나도 이 학교 다니거든, 나 사실 너한테 못했던 이야기가 있는데.. 지금이라면 솔직하게 할 수 있을거같아, 잠깐 우리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 물론 내가 살게."


"야."


"응?"


"너는 씨발 도대체 무슨 낮짝으로 또 내게 얼굴을 들이미는거야? 너 때문에 나는 있던 친구들도 전부 사라졌고 중고등학교를 따돌림 당하며 하루하루 개좆같이 보냈어, 그래놓고 하는말이 밥을 먹자고? 야 시발 존나 웃긴게 뭔지 알아? 난 너를 진심으로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는거야, 근데 넌 씨발 날 배신했고 이제 너같은 부류는 보기만 해도 역겨우니까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밥? 나는 이제 여자친구하고 먹을거니까 넌 니가 알아서 해!"


조금 모질긴 했지만 마음 속에 있던 말을 전부 쏟아부은 나는 도망치듯 그 현장을 빠져나왔다. 부장을 만나러 온 학교에서 연얀순을 다시 만나다니, 운도 지지리 없지..


"......여자친구가 있다고...? 왜? 나에겐 너밖에 없었잖아? 너에게 말 걸어주는것도 나뿐이였잖아? 이제서야 진심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용서 못해.. 왜 나를 배신한거야? 나는 너를.."


뭔지 모를 말을 쏘아붙이는 얀순이를 뒤로하고 나는 아주 빠르게 뛰어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얀순이를 싫어하는 얀붕이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는데 소설 쓰는게 처음이라 진짜 개좆같이도 못썼다. 반응보고 얀순이 side 부장 side 그리고 다음 전개 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