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었다.


나는 헬리오스의 신년회 비스무리한 무언가에 초대되었다.


..굳이 비스무리하다는 표현을 쓰는 건, 제대로 된 신년회가 아니었다.


뭐, 갸루들과 함께 정신 없는 새해를 맞이하는 건, 꽤나 새로운 경험이긴 했지만.


여하튼 토센 조던, 골드 시티, 메지로 파머, 다이타쿠 헬리오스의 보호자의 역할을 하면서 이리저리 끌려다가...





우연히지만. 해버렸다.


뭘 했냐고 물어봐도 곤란하다. 어쩌다보니 취해버린 헬리오스랑 그.. 해버렸다.


갸루들이 실실거리면서 자리를 피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둘만 남은 방에서 흐느적거리는 헬리오스를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하다 보니 헬리오스가 울먹거리면서 삐져버려서.. 그... 위로하다보니...


여차저차 해버렸다.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겠다. 창피하니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나랑 뾰이한 헬리오스가,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피한다’라고 해도 나를 보면 도망가거나 무시하는 건 아니다. 헬리오스는 평소대로 헬리오스였다.


근데 문제는, 단 둘이서 남게 되거나 침묵 속에서 우리 둘이 눈을 마주칠 때다. 헬리오스가 동요하면서 피해버린다.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라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그녀 정도는 아니였다.


어쨌든 나는 헬리오스에게 ‘어쩌다 일어난 사고니까 넘어가자.’ 같은 느낌으로 설득했었고, 우리 둘 다 그렇게 넘어가기로 합의했었다.





하지만, 헬리오스는 그렇게 넘어갈 수 없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겠지. 알고보니 헬리오스는 처녀였다. 선명한 그때의 감촉이, 기억이 남아 있으니 확실하다.


구체적으로는, 헬리오스를 구석에 몰아넣고 등에 손을 넣어 집어 드니까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려오는게 헬리오스가 처음이라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좀 꼴렸...


아니, 넘어가자. 응. 굳이 더 기억하고 싶지 않다.


여하튼, 헬리오스는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았고, 잊을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지금도 이렇게, 헬리오스의 주변 친구들과 사진을 보면서 예전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도, 내가 그녀를 말없이 보고 있으면...





“그래서 말이야? 여기서 파머찌가...”




나와 눈이 맞으면...





“..파머,찌가..”


“..헬리오스양? 무슨 일 있어?”


“아아니아니아니, 별..별 일 없으니까..!”


“...그..그래?”





이렇게, 평소의 페이스가 없어진다.


그리고 누가 보아도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반응을 한다. 인싸인 헬리오스에게는 좀 특이한 반응이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건, 누가 보아도 뻔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금 대화를 하던 친구도 나를 흘낏 보더니 눈치를 챘다.


...뭐, 나보다도 이 사실을 먼저 알아챈 골드 시티는 ’적당히’ 가지고 놀아. 라고 톡 쏘듯이 한 마디했다.


그녀 나름대로는 살살 봐주라는 소리겠지, 걱정스러운 뉘앙스로 말했었으니까.


어쨌든 이 상황이 이어지면, 앞으로의 레이스에서도 방해가 된다. 실제로 이후로 제대로 된 레이스 회의를 한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어느샌가 눈치를 챈 친구들이 모두 자리를 피하고, 홀로 남겨진 헬리오스의 손목을 붙잡았다.


당황하면서 나를 올려다보는 헬리오스는, ‘앗!’ 이라고 말할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앗! 트레찌.. 아니, 어..”




..진짜로 '앗'이라고 말하네.


헬리오스답지 않은 모습을 보고, 나는 그녀를 끌고 걸어갔다.


목표는 딱히 정하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장소면 어디든 상관 없겠지.


자꾸 횡설수설하면서도 뿌리칠 수 있겠지만 굳이 가만히 있는 헬리오스를 끌고 갔다.




“헬리오스, 우리 이야기 좀 해.”


“에엣?! 잠, 잠깐..! 나는 아직...!”


“됐으니까 따라와.”





그렇게 걸어간 장소는, 어.. 화단의 뒤쪽이었다.


아마 학생회 부회장이나 니시노 플라워 양 정도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을 장소.


여기로 끌고온 헬리오스를 벽에 기대게 만들고, 손으로 벽을 짚었다.


어라, 이거 벽치기(카베돈) 아닌가?


....어쩐지, 헬리오스 얼굴이 토마토처럼 바뀌었더니. 방금도 ‘으아아아..’ 거리는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


노가드가 되어버린 헬리오스에게 나는 조용히 말했다.




“...헬리오스.”


“힉!”



이럴때는, 내 저음인 목소리가 도움이 되는걸려나.


진지하게 말하는 내 모습에, 헬리오스가 겁을 먹은건지 설렌건지 모를 반응을 했다.




“요즘 왜 나한테 집중을 못해?”


“...그.. 그건..”


“아니, 나한테는 집중 못해도 상관없는데, 레이스의 이야기에는 집중 해야지, 안 그래?”


“.......그건, 맞지만...”


“요즘따라 그게 더 심해, 알아 몰라?”




예전에는 이렇게 말하면,


‘웨이~ 그치만 레이스는 즐기는 편이 즐겁고? 즐거우려면 아게아게하는 짱친들은 많을 수록 좋고? 레이스는 트레찌가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같은 대답을 할텐데.


저렇게 대답해도 성적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으니까, 전에는 별로 신경 안 썼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이 상태로 출주하면 결과가 안 좋을게 뻔했다.


나는 레이스를 즐기는 헬리오스가 좋아서 그녀의 트레이너가 되었지만, 이대로라면 레이스에도 즐거음에도 집중하지 못할게 뻔했다.


...정확히는, 나 때문에 집중을 못하고 있는거겠지만.


입을 꾹 닫은 헬리오스를 내려보면서 나는 숨을 골랐다.


내 숨소리를 바로 듣는 헬리오스가, 내 입술에 집중하고 있는게 보였다.


전에 하면서 입을 맞추긴 했었는데, 그때가 생각나는 거겠지.





“···.”



나는 헬리오스에게 직구를 던졌다.


말을 빙빙 돌리는 건 내 취미가 아니기도 했고.




“헬리오스, 지난번에 같이 잔 것 때문에 그래?”


“···! 트레찌, 그거 바깥에서 말하면...!”


“...? 뭘, 섹스라면 네 나이때 애들도 한창...”


“아..안돼안돼! 그런 상스러운 말, 하면 안되잖아!”





뭐야 이 녀석, 이런 반응하니까 꽤 귀엽네.


전에 파머가 ‘헬리오스는 어떤 면에서는 순수하단 말이지~.’ 라고 말했었는데, 그게 이거였구만.


처녀 같은 반응의 헬리오스에게, 나는 이어서 말했다.





“헬리오스, 혹시 그 날 밤이 싫었어?”


“아...아니, 싫...싫었다기보다는...”


“그럼 어땠는데?”


“그..그건 내 입의 말하기에는...”


“역시 싫었구나, 그럼 다시는....”


“그..그런 게 아니라, 사..사실은..!!”





그리고 헬리오스는 쭈뼛거리며 이어 말했다. 아니, 말해버렸다.


뒤에서 몰래 듣고 있는 갸루 3인방에게도 확실히 들리고 있을 것 같다.


셋 다 흥미진진해보이는 얼굴이, 드라마를 보는 아주머니 같았다.


이걸 전혀 모르고 있는 헬리오스가, 꽤나 귀여운 고백을 해왔다.




“싫다기 보다는, 역으로 기억에 남아버렸달까... 자꾸 트레찌 얼굴만 보면 생각 난다고 해야할까..”


“···.”


“트레찌가 평소대로 말없이 움직이는데, 그게 묘하게 설랜달까, 그 때의 표정이랑 평소의 표정이랑 비슷해서 자꾸 생각 나버려서, 그..그게...”


“···.”


“어..어쨌든! 싫..싫은게 아니라, 오히려 해줬으면.. 아니, 우와아악! 방,방금 그..그거언 없던 말, 없던 말로!!!”





좋아, 내 추측이 맞았다.


나는 혼란스러운 헬리오스에게 정정하듯이 말했다.





“...헬리오스, 싫지 않았다는거지?”


“...어, 응. 역시, 이상하지..”


“아니,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나, 화내는 건 아니야. 단지...”


“단..단지?”


“원하면 해줄게. 언제든지 말해.”


“아, 응.. 아니 잠깐, 엑, 에에엑?!?!?!”




헬리오스가 리얼로 놀라버렸다. 리액션이 아니라.


그러면서 어딘가 흥분했는지 손을 아래로 내렸다. 사춘기의 남자아이 같은 반응이다.


터질 것 같은 얼굴에 급박해진 호흡, 누가 보아도 빼박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의심가는 듯한 몸짓이었다. 그래서 나는 쐐기를 박았다.




“진짜야.”


“....정말로?”


“정말로.”


“......그럼, 지금 해봐.”


“···.”




아무리 그래도, 얘들도 있는데..


살짝 빼려고 고개를 뒤로 젖히다가...


“여..역시, 거짓말이지! 그럴 줄 알았...”




그래도 헬리오스의 기고만장한 표정을 보는게 더 싫어서, 그대로 입술박치기 했다.


그대로 굳어버린 헬리오스는, 처음으로 맛있는 사료를 먹은 소동물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은근 귀여워서 눈에 담아두기로 했다.


내가 입술을 떼자 경직이 풀린 헬리오스가 언어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알..았...”


“..됐지? 더 하고 싶으면 나중에 불러, 일단 트레이닝에 집중해, 나도 피하지 말고.”


“........”


“알겠지?”





좋아, 이 정도면 일단 해결됬겠지.


이러고도 집중 못하면 점점 수위를 높이는 걸로 해결하자.


헬리오스에게 감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레이스 쪽이 우선 순위가 높으니까.


그런 관계가 되는 건 졸업하거나 은퇴한 이후라도 늦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갸루들을 째려보며 돌아가려고 한 순간,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트,트레찌..!”


“..? 왜, 헬리오스.”




쭈뼛거리는 헬리오스가, 치마 아래를 잡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설마, 지렸나.


어린 아이가 지리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아무튼 지린 것 같았다.


슬쩍 얼굴을 보니 누가보아도 발정기가 와버린 우마무스메의 표정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 수치심을 느끼면서, 그러면서 흥분을 잊을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또 쾌감을 다시 떠올리고 있는지.


말 그대로 '발정난' 얼굴의 헬리오스가 소악마적인 웃음을 띄고 있었다. 소악마적 웃음이 무섭다기보다는, 오히려 귀여웠다.


개허접스럽게 화단 아래를 적시고 있으면서,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소악마가 무서울 리 없었다.




“....나아, 아무래도 트레찌랑 같이 보낸 밤, 못, 잊을 것 같은데에..”


“···.”


“그..그그그그그게.. 그러니까아.. 오히려 감질나서 집중이 안 된다고 할까..”


“···.”


“트트트트레찌도 내가 집중 못하는 거 싫어하잖아? 그..그러니까, 에..으...”


“···.”




무뚝뚝하게 가만히 있으니까, 헬리오스는 결국.. 굴복했다.


협박이 통하지 않을 때부터 울먹거리는 표정이긴 했지만.




“....츄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나는 존나 곤란해진 것 같다.


헬리오스의 첫 경험을 가져가버리는 과정에서, 여러 의미로 안 좋은 스위치를 눌러버린 것 같다.


한 번도 정욕적인 쾌락을 느껴보지 못한 우마무스메의 몸에 마약과도 같은 자극을 주고 나니, 잊을 수 없는 거겠지.


하지만 방금의 헬리오스의 발언에서, 나도 여러모로 스위치가 눌려버렸다. 이건 참을 수 없었다.


옆에 기다리고 있는 갸루즈에게 가라는 손짓을 한 뒤에, 난 헬리오스에게 달려갔다. 사실 가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그대로 우리는 저녁에 니시노 양이 화단에 물을 주러 올때까지 뾰이했다.








"..어라? 여기에는 아직 물을 주지 않았는데요.."


약한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화단 하나를 남겨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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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 싸고 런


할배갤에서 연애 허접 헬리오스/트레이너 보다가 열받아서 찍 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