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루나라이트


(1)편: https://arca.live/b/yandere/69474373?category=%EC%86%8C%EC%84%A4&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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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의 관계가 처음부터 껄끄러운 것은 아니었다.


"얘 이름은 찰리야. 몰래 키우고 있으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오히려 비밀을 공유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은 지금도 확신할 수 있다.


"이렇게 껴안아주면 복슬복슬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


그 앨리스 루나라이트가 강아지를 안고 미소 짓는 걸 봤다고 말하면 분명 아무도 믿지 않겠지.

나는 가끔씩 지금도 8년 전 그 날만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너랑 나는 서로 사랑했어. 그러니까 나는 이 약혼을 깰 생각은 없어."


혹시 머리가 그 때의 충격으로 고장나버린 걸까?

서로 사랑했으니 약혼을 파기할 생각이 없다니 만약 내가 제대로 들은 거라면 

그녀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루나라이트님. 혹시"

"아리시아."

"..앨리스님. 저기"

"아라시아."


그녀가 어리광을 피우다니 과연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아리시아. 서로 사랑했다는 건..?"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내 기억 상실이 진짜인지 떠보는 걸까. 

아니면 더 커다란 거짓말을 하기 위해 확인해 보는 걸까.

그녀의 의중이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우리는 항상 이 곳에서 만났어. 너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면 나는 열심히 들어주고 참 소소했지만 행복한 일상이었지."


테이블을 아련히 만지는 앨리스의 모습은 정말로 기억 상실이었다면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을 정도로 감쪽같았다.


"당황스럽네요. 꽤나 어색한 사이였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니.." 


이대로 그녀의 페이스에 넘어가면 안 된다.

그리 판단한 나는 놀라는 척하며 은연히 그녀의 말을 부정하는 듯한 뉘앙스로 말했다.


"그거라면 너가 나한테 부탁을 했어. 잠시 동안은 서먹한 사이처럼 보이게 해달라고. 

나도 그 이유는 자세히 모르지만 루크를 믿었으니 그렇게 하자고 했지." 


하지만 앨리스는 그런 반응을 예상한 듯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기억을 잃기 전의 나한테 그 이유를 전가하다니 나는 그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익숙하고 불편한 침묵이 잠시 이어졌지만 이번에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그녀였다.

 

"괜찮아.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그대로니까."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수줍은 듯한 미소는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순간 그녀의 말을 믿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웃으시면 제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잖아요.'


"이제 돌아가자. 아버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나는 돌아가자고 내미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작지만 다시는 놓지 않겠다고 다짐한 듯 꼭 잡은 손.   

마냥 차가울 줄만 알았던 그녀의 손은 매우 따뜻했다.





그 뒤의 일은 말 그대로 일사천리였다.

은근히 로맨스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납득한 뒤 

오히려 그녀의 거짓말에 감동한 눈치였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도 공작가의 약혼을 깨뜨리지 않아서 내심 안심하고 계시겠지.

기억상실인 척 하는 내가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이 놈아. 그렇고 그런 사이였으면 이 아비한테도 좀 귀띔을 해주지 그랬냐."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 아버지의 가벼운 책망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계속 머리 속에서는 한 가지 커다란 의문만이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왜 그녀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약혼을 유지하려는 걸까.

그녀가 나를 정말로 사랑해서?


..아무래도 그건 아닐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8년 전 최악의 형태로 결별하고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그것도 침묵의 티타임 몇 번으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단 하나.

그녀가 약혼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녀가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약혼을 깨고 싶지 않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확실한 건 지금은 그저 정보를 모으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에이든. 고생했어! 일은 잘 마무리됐어?"


마차에서 내리자 정문 앞에서 스텔라가 나를 반겼다.

최근 그녀는 친했던 사람과 자주 만나면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집을 찾아왔다.

내 입장에서는 계속 연기를 해야 하는 부담감이 컸지만 사고의 책임감을 느끼는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그녀가 올 때마다 나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맞이했다.

아마 오늘도 나를 기다리다가 창 밖에서 마차를 발견하고 마중을 나왔겠지.


"이 녀석 인형을 사람으로 바꾸는 마술을 쓸 수 있었지 뭐냐. 

당사자끼리 서로 사랑했기에 약혼은 계속 유지하기로 했단다. 

앨리스 양이 말은 안 했지만 얘를 보는 눈에서 꿀이 떨어지더라고."


입을 열려는 찰나 대화에 끼어든 건 아버지였다.


"네? 그게 무슨 말이시죠? 서로 사랑했다고요?"


정색하는 반응을 보아하니 그녀도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말을 들었는지 아는 듯 했다.


"생각보다 내 아들은 거짓말 하는데 능숙했나 보구나. 

너는 눈치 채고 있을 줄 알았는데.

밖에서 이러는 건 좀 그러니 안에서 얘기라도 하고 가지 않으련?"


"성의는 감사하지만 저는 잠시 급한 일이 생각나서 이만.. 에이든 나중에 보자."


그녀가 정중히 거절하자 아버지는 거절당한 게 머쓱하신지 머리를 긁적이시고는 집으로 먼저 들어가셨다.


그런데 기분 탓일까.

급하게 떠나는 클로에의 뒷모습은 평소 그녀답지 않아 보였다.





에이든 일행이 돌아가고 얼마 뒤,

앨리스는 응접실에서 홀로 불청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루나라이트 양. 이렇게 단 둘이서 보는 건 처음이네요."

"나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는 클로에가 여기 온 이유를 짐작했지만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역시 인형 공녀라는 별명이 괜히 붙지 않았네요."

"..무슨 말이야?"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앨리스가 묻자 클로에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뻔뻔하게 모두를 속이고 철면피마냥 태연하게 있는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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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재인데 반응 좀 볼까?


?? 내가 잘못 본 건가?

......



다들 이렇게나 좋아해줄 줄은..

아쉽게도 얼마나 자주 올릴지는 약속 못 하지만 틈틈이 써 보려고 노력해 볼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