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 들어가길 꿈꾸는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는 젊은 데몬이 있었어.


그녀는 타고난 출중한 능력과 안주하지 않는 노력으로 젊은 나이에 높은 자리를 꿰찼고, 아무도 그녀의 승진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지. 




다만 그녀의 빠른 승진을 주변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 했고, 빈 자리가 생겨버렸어.




그래서 잠시 그녀가 비운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지방지사에서 잠시 파견이 왔지.






그리고 데몬은 그 남자에게 첫눈에 반했어.




데몬 만큼은 아니지만 훌륭한 일처리 솜씨, 항상 입가에 띈 여유로운 미소, 그리고 사소한 부분에서도 느껴지는 타인에 대한 배려는 그녀가 여태껏 직장에서 봐왔던 남자들과는 다르게 느껴졌거든




하지만 그에게 다가가려고 하면 할 수록 데몬은 남자가 자신에게 벽을 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겠지.




데몬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어, 혹시 자신 같은 마물은 사랑할수 없냐고 말야.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그저 자신은 이미 결혼한 몸이기에 당신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고 대답했지.




그녀는 납득했어, 사무실엔 자신 이외에도 다른 마물들이 있었고, 그는 다른 마물들이 보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을탠데, 그에게 손을 대려는 마물은 보질 못했거든.




하지만 받아들일수 없었지, 그녀 수준의 데몬이라면 사람의 마력은 접촉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어.




아무리 장기 출장이라고 해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요 근래에 여성과의 접촉이 전혀 없던것 않아.






이런 남자가 남에게 거짓말을, 그것도 타인의 호감을 거절하기 위해 결혼을 했다는 거짓말을 할리가 없다고 믿은 데몬은 그의 뒷조사를 시작했어.




그리고 그가 정말로 결혼을 했었고, 정말로 아내가 있었던것 또한 사실이지만 이미 예전에 사별한 사이라는걸 알게 되지.




혹시나 그의 아내가 언데드로 부활할지 몰라 리치의 힘을 빌려 마법으로 그와 관련있는 영혼을 찾아봤지만, 이미 영혼까지 이 세상을 벗어났다는 사실에 그녀는 뛸듯 기뻐했어.




물론 그에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줄순 없었지만 말야.




더 이상 자신의 사랑에 방해요인이 없다는걸 알게된 그녀는 거리낄게 없었어.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무녀져 내렸지.




데몬녀의 어프로치는 집요했지만 남자는 철옹성 같았어.




운전을 알려달라고 했을땐 운전면허 학원을 알려줬고, 결혼 기념일을 위해서 칼퇴근을 했고, 아무 숫자나 불러보라고 했을떈 아내의 생일을 불렀으며, 식사는 항상 아내가 알려준 레시피로 도시락을 싸왔다며 미소를 짓는 남자에게 차마 권유할 수 없었거든.




남자는 자신의 아내를 정말로 사랑했어, 사별한지 그토록 오래 되었음에도 남자의 사랑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여전히 신혼 생활을 하는것 같아 보였을거야.




결정적인 사건은 회식자리에서 일어났지,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술을 잔뜩 먹인 데몬의 마음은 술에 취해 헤롱거리던 남자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버려.








머리를 푸셨네요, 제 아내도 머리를 풀고 편하게 있을때가 가장 어울리던데. 라는 말을 들었을때 데몬은 비참함마저 느꼈어.






데몬은 자신감이 있었어, 설령 그의 아내가 살아있었더라도 같이 마물로 만들어버리고 셋이 함께 남자와 살아갈 수 있을것이라는 자신감이.




그리고 그 자신감을 받쳐줄 돈도 있었고, 아름다움도 있었고, 힘마저 가지고 있었지.




하지만 그 자신감은 너무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지.




데몬은 정말 슬펐어.




너무 사랑하는데

정말 가지고 싶은데




남자는 데몬에게 마음 한 구석의 작은 자리조차 내주려고 하지 않아.






왜 난 이 남자를 진즉에 만나질 못했을까 하는 원망마저 느끼며 무너진 자신감과 서러움에 혼자 힘들어하던 데몬은 그를 포기하려고 했어.




미련은 남지만,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진 않았거든.






그 날 이후로 데몬은 남자에게 어프로치를 하지 않았어.


업무상 어쩔수 없이 거는 대화를 제외하곤 그에게 전혀 말을 걸지 않았지.



그렇게 그녀의 마음이 간신히 안정되어갈 무렵, 남자가 곧 다시 지방지사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말을 들어.


데몬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지, 지방지사에서 본사로 온 사람이 자리를 마다하고 다시 돌아간다는 말을 들었으니 말야.


대체 어떻게 부장까지 올라갔을까, 하고 잠시 생각하다 그가 자신이 하던 업무를 모두 막힘없이 처리해오고 있었단 사실에 납득을 했어.


그리고 이번엔 다른 의미의 아쉬움을 느꼈지, 데몬 수준의 업무처리 속도를 보이는 인간은 정말 흔치 않을태니 말야.


그에 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다시 고개를 드는 그에 대한 미련 때문에 데몬은 고개를 흔들고 다시 일에만 집중하겠지.



그렇게 어영부영하다 결국 남자가 본사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마치고, 그의 송별회 겸 회식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옆자리에 앉았지.


그리곤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을 봤지, 평소라면 회식때도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으며 실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술도 적당히 마셨던 그였지만 오늘은 왠지 대화도 하는듯 마는듯 하며 깊은 생각에 빠진 모습으로 연신 술을 들이켰거든.


그가 회식이 끝날 무렵 만취해 정신을 잃는건 당연한 수순이었지.


회식이 끝나고 완전히 인사불성이 된 그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에 빠진 데몬이 정신을 차렸을땐 자신이 남자를 부축하고 있었고, 사원들은 모두 해산한 상태였어.


그에게 어프로치를 하던 것을 보아왔던 사원들의 배려아닌 배려였겠지만, 이미 그를 포기한 그녀에겐 이런 배려는 달갑지 않았을거야.


눈치없는 사원들을 내일 어떻게 굴릴지 고민하던 그녀의 정신이 번쩍 들었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그가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거든.


그녀가 그동안 전혀 없었던, 그리고 전혀 상상하지도 않았던 그의 스킨십에 기쁨 반 당황 반으로 그를 바라볼때 다시 그녀의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자신이 모르는 여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거든.


오늘이 당신의 기일이었는데, 찾아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같이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이지.


데몬은 정말로 머리 끝까지 화가났어.


그를 뿌리치고 그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어.


깜짝 놀라 술에 깬 남자는 자신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어떤 짓을 했는지는 눈치챌수 있었어.


눈가에 이슬이 맻힌채로 씩씩거리며 자신을 노려본다면, 자신이 분명 뭔가 굉장히 그녀에게 실례를 저질렀다는게 분명하니깐.


그리고 곧 꿈과 착각한 자신이 데몬을 아내와 착각해서 그녀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기억해냈지.



남자는 데몬에게 정중하게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사과했어,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마무리를 하게 되어 정말 미안하다고 덧붙였지.


하지만 데몬에게 남자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던 자신의 감정을 그녀는 더이상 조절할 수 없었거든.



그동안 억누르고 있었던만큼 그녀의 감정의 폭발은 격렬했어.


그에게 단숨에 다시 다가가서 양 손으로 그의 멱살을 잡고 그를 노려보며 외쳤지.


이미 당신의 아내가 죽었다는건 알고 있다고

그러니 질투하지 않을거라고

왜 날 돌아봐주지 않는거냐고

두번째라도 괜찮다고

왜 난 안 되는거냐고


대체 왜



남자는 당황했어, 정말 어찌할줄을 몰랐지.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자신도 취했지만 데몬도 취했다며 많이 취하신것 같으니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말했어.


데몬은 더 미칠것 같았지.



자신은 지금 그의 품에 안겨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부드러운 배려를 받고 있지만


이건 그녀의 것이 될 수 없다는걸 느끼고 있었거든.



남자를 품에서 밀쳐낸 그녀는 말했어, 왜 자신을 사랑할 수 없냐고.


그리고 남자는 대답했지, 자신은 인간이라고.


앞으로 몇배를 더 살아갈 마물에게 인간의 수명은 찰나처럼 느껴질 것이고, 그런 당신을 자신처럼 남겨진 사람의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은거라고 말야.



상상도 못했던 그의 대답에 데몬의 정신은 아득해졌어.



이 남자는 마물과의 결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고 있지 않았거든.


아무리 봐도 농담이나 거짓말을 하는 눈치가 아니었어, 이 남자는 정말로 마력이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지 못하는것 같았어.



데몬이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허탈함이었어.


하지만 곧 그녀의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해졌지.



다시 그의 멱살을 잡고, 이번엔 그를 끌어당겨 깊은 키스를 하고, 짧지만 긴 키스가 끝나고.


그녀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지.




이제부터 인간의 수명은 찰나처럼 느껴질 시간을.


나와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었냐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