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물돼지!"
"물돼지 아니야!"
"물돼지 맞거든? 어제 TV에서 봤는데 범고래는 무슨무슨물돼지라고 부른대! 너 범고래 아니야?"
"...범고래야"
"그럼 넌 물돼지야!"
"물돼지 아니라고!!"
"물돼지~ 물돼지~"
"아니야... 흐윽... 우에에엥!!"
===========================================
...어쩐지 어릴 적 꿈을 꾼 것 같다. 눈을 떠 보니, 나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 있었고, 집까지는 두 정거장이 남아 있었다.
가방을 다시 메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버스 후문 쪽 기둥을 잡고 카드를 찍었다.
잠시 후 버스 문이 열리고, 나는 우리 집 근처에 내렸다.
오늘, 나의 하루는 이렇게 마무리 되는 듯 했다.
"야~ 꼬맹아!"
어딘가 중성적이면서 시원시원한 목소리. 내가 아는 사람 중,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한 명 밖에 없다.
"꼬맹아~ 안 들리나? 야! 꼬맹이!"
...특히, 나를 저런 식으로 부르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한 명 밖에 없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나는 애써 무시하려는 것처럼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금세 따라잡아, 내 어깨에 팔을 둘러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윽..."
"잡았다! 후후후... 요 꼬맹이... 어딜 도망가려고!"
나한테 달라붙어있는 이 여자는, 내 소꿉친구인 범고래 아인 오르카다.
분명 어릴 때는 키도 나랑 비슷하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는 통통한 체형이라서 내가 물돼지라고 놀리곤 했었는데, 어느날부터 학교 수영부에 들어가더니 얼마 안 가 전국대회를 휩쓸어버렸고, 키도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진 채 몸 곳곳에 근육이 가득한 몸이 되어버렸다.
어느날부터 오르카는 단순히 내가 그녀보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나를 꼬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꼬맹이라는 말 좀 안 하면 안 되냐?"
"응? 왜, 듣기 싫어?"
"당연히 듣기 싫지..."
"그치만 넌 나보다 키도 한참 작잖아? 그런 사람을 꼬맹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불러?"
"아니 좀 하지 말라고!"
"흐즈믈르그~ 푸흡... 꼬맹이~ 꼬맹이~"
이 녀석은 내가 싫어한다는 걸 알아채자마자 나를 수시로 놀려대기 시작했다.
"하... 야, 나 간다"
"어...? 야, 꼬맹아, 삐졌냐?"
"...안 삐졌어"
"에이... 삐졌네 뭐"
"안 삐졌다고"
"알았어, 알았어. 야, 따라와!"
오르카가 내 손목을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당장 뿌리치고 집에나 가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기에 그냥 가만히 끌려가기로 했다.
애초에 사람이 힘으로 범고래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녀가 나를 끌고 온 곳은 편의점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가, 초코 아이스크림 두 개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자! 이거 사줬으니까 화 풀어!"
오르카가 뻔뻔스러운 웃는 얼굴로 나에게 초코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누가 먹는데?"
"안 먹을꺼야?"
너무 더웠다.
"...먹을래"
"자"
비닐을 벗기고 아이스크림을 물었다.
시원하고, 달았다.
"...그냥 안 놀리고 안 사주면 안 되냐?"
"안 돼. 재미없어"
아무래도 한동안은, 이런 일상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
============================================
"...이제 괜찮아?"
"...응... 이제 괜찮아"
"아이스크림 사줬으니까... 화 풀어"
"...너 이래도 나중에 또 놀릴꺼잖아"
"응"
"히잉..."
오르카는 잠시동안 말 없이 아이스크림을 깨작였다.
달콤한 초콜릿 얼음이 입 안으로 부드럽게 퍼져나갔다.
"안 놀리면 안 돼?"
"안 돼, 재미없어. 대신"
"대신...?"
"...또 아이스크림 사 줄게"
살랑거리는 바람이 불어와 두 아이가 앉아 있는 그네를 살짝 흔들었다. 떨어져가는 해가 하늘을 주황색 빛으로, 그리고 어쩐지 초코 아이스크림이 떠오르는 듯한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