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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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소재로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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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방문 기둥에    

엄마와 내가 둘이서

 키를 체크하지 않게 

 무렵부터

나의 키와  모든 사고가

멈춰버린  아닐까


 아직 사람의

걸음마를 사랑하는 

잃어버린  과거의

콤플렉스인가

오늘도  어릴  나의 전부이던

작은 로봇을 안고서 울고 있어

 이상 내겐 사람 냄새가 없어

마음만 망치게 

폐인의 남은 바램만이

 오늘도  악취에 취해

잠이 들겠지  끝날 거야


-서태지 <로보트 -
















외동이었을 적엔   괜찮고 총명하고

사랑받는 아이었다.


하지만 으레 어느 집이 그러하듯이 외동으로서 사랑받는 시절은 그리 길지 않았다.


너는 천재라고 했다.


고졸인 아버지와 중졸인 어머니는 항상 배움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다.


서로 각자의 집안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첫째라 동생들을 위해 일하느라 대학을 가지 못했고,


막내였던 어머니는 오빠들을 먼저 대학에 보내느라 공부를 잘했음에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난임이었던 우리 부모님은  만나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썼다.


하지만 너는 그냥 어느날 정말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주듯이 새삼스레 찾아왔다.


그래서 너는 부모님에게 더욱  특별한 존재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겨우  구구단을 

너는 5  깨우쳤다.


내가 말도 안되는 유치한 만화책을 읽고 독후감을  


너는 데미안을 읽었다.


떡잎이 다르고 내린 뿌리의 깊이가 달랐다.

그래도 항상  너를 사랑했다.


어떻게 사랑하는 동생에게 열등감을 가진단 말인가?

 나의 자랑이었다.


누군가가  칭찬하면 내가 칭찬 받은듯이

당당하게 옆에 가서   동생이라고 자랑했다.


누군가가 시기와 질투에  놀리거나 괴롭혀서 내가 대신 괴롭힘을 받아도  전혀 괴롭지 않았다.


오빠라면 당연한거니까.


너를 처음  순간을 잊지 못한다.


너의 작고 앙증맞은 손이 나의 손을 붙잡았던  처음의 순간부터,


 너를 영원히 지켜주리라고 다짐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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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이 니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는 석달마다 항상  방문에 키를 기록했다.


그러나 우리 집이 딱히 잘사는 것은 아닐뿐더러 그저  두개 딸린 집에 키를 기록할만한 방문은  개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엄마는  키를 기록하지 않게 되었고 

너의 키만을 기록하게 되었다.


초등학생이  무렵 어느새 방문엔 너의 키가 나의 키를 따라잡게 되었다.


나의 기록 위에 너의 기록으로 덮어씌워져서


 기록은 희미하게 위에 씌워진 너의 기록 옆에 삐져나온 나의 삐침만이  기록이 존재했음을   있었다.


그때부터 점점 아빠와 엄마의 사랑이 줄어든다고 느낀 것은 초등학생이 나였어도 눈치   있었다.


학교 미술 시간에 같이 그림을 그려왔었다.


엄마와 아빠는  그려왔다며 칭찬했다.

하지만 나는  미묘한 칭찬의 무게의 차이를  느낄  있었다.


다음에도 우린 같이 그림을 그려왔다.


하지만 거실에 붙어있는 것은 오직 동생의 그림뿐이었다.


 그림은 아버지 서재의 쓰레기통에 쳐박혀 있었다.


내가 그린 것의 제목은 ’화목한 우리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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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수록 부모님의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재롱을 피우기 시작했다.


동생보다 똑똑한 아이는  되어도  착하고  잘듣는 아이는  자신이 있었다.


항상 저녁을 먹으면 내가 치우겠다며 들기도 힘든 냄비를 들고 끙끙거리며 식탁과 싱크대를 오고갔고,


퇴근하고 저녁까지 차린 엄마가 혹여나 힘들까봐


잘했다고 우리 아들 착하다고  칭찬  마디를 듣고 싶어서  살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열심히 매일같이 설거지를 했다.


고무장갑은 아직 손에 맞지 않기 때문에 철수세미를  때는 조금은 피부가 쓰라리고 아팠지만 그래도 견딜  있었다.


하필  어느새 저녁 상에 올라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제육볶음이 아니라 니가 좋아하는 볶음류의 요리였고따라서 철수세미를 쓰는 일이 점점 늘어가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식탁에 올라온 것은 꽤나 오래되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으려면 학교 급식에서나 찾아야 했었고매월  나눠주는 급식표에 빨간 동그라미를 칠만한 메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는 조금 절망할  밖에없었다.


그러나 엄마나 아빠가 나를  마디 칭찬해주는 일은단 한번도 없었고 어느새 그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너는 너의 방으로 가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그러면  당연하게도 엄마는 니가 먹을 메론이나 사과 따위의 과일을 깎아 마치 수라상을 대접하는 상궁처럼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린  책을 읽는  방해하지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너의 책상 위에  과일 접시를 놓는 것이다


아빠나 엄마가 너에게 관심을 쏟고 있을때에 옆에서 애교를 부리거나 재롱을 피우면 방해라도 된다는 듯이 귀찮게 하지말고 가서 책이나 읽으라며 밀어내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정말  집에서 혼자인것 같았으니까그런 관심이라도 고팠다.


너의 영재교육을 하는 것은 우리 집안의 사정으로는 상당히 빠듯한 일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6시에 퇴근하셨던 시간이8시나 9시가 되는 것이 비일비재였고 


전업주부이셨던 엄마는 근처 마트에서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한지가  되었다.


어느날 니가 무언가 배달을 먹고 싶다고 넌지시라도 말하면 엄마와 아빠는 바로 무엇이든지 시켜주었다.


하지만 정말로 내가 어느날 너무나 먹고 싶은게 있으서 말하면 엄마와 아빠는 조금 돈이 아깝다는 듯한 분위기로 마지못해  가게에서 제일  메뉴를 시켜주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요즘은  이렇게 배달비가 비싼건지...”


라면서 먹고 있는 나에게 조금 눈치를 주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엄마 아빠가 나를 위해 돈을 써주었다는 것이.


그래도 너는  열등하게 보지 않았고 

매일같이 싸운다는 다른  남매와는 달리 초등학교 때까지는 꽤나   따르고 좋아해주었다.


학교에서 누가  놀리기라도 하면 대신 화를 내주었고 서로 싫어하는 반찬이 나오면 서로 대신 먹어주기도 했다.


너에게 누가  나이에 어려운 인문학 책을 읽으라고 강요한 것은 아니었다만 읽기가 싫어지는 때가 오면 어느새 바닥에펴진 나의 이부자리 (집에 하나있는 침대는 동생의 방에 놓여있다.)  들어와 같이 말도 안되는 만화를 보며 낄낄거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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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무렵  나이에 아직도 나는 부모님께 재롱이나 떨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수학 점수를 90점을 넘어봤다.

 뛸듯이 기뻤고 당번인 것도 까먹은  집으로 달려갔다.


나도 드디어 칭찬 받아보겠지

머리를 쓰다듬어 줬으면 좋겠어


그러나 같이  너는 당연하게도 모든 과목에서 백점을 맞고 왔고 


우리  누구 닮아서 이렇게 똑똑해~?“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90 짜리 수학 시험지를 내민 나는 그래도 자그마한 칭찬 하나는 기대했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모든 기준이 너에게 맞춰져 있었던지 오래였고  순간 나는 동생보다 열등한 오빠부모님 마음속에서 나는 동생에게  투자할  있는 돈을 까먹는 하마노력하지 않는 아이로 전락한지 오래였던지 그제서야  수있었던 것이다


너는 이것밖에 못하니아니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이렇게 다르지?”


아빠가 다음번엔 백점 맞아오라고 했잖아아빠 엄마가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맨날 만화책이나 읽고,  공부는 안하고너 진짜 혼날래?“


너무 서러웠다.


내가 얼마나 부모님한테 걱정끼치기 않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다른  아이들은 장난감 하나 사달라고 투정을 부리는데  한번도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참을  있었다.


아직 부모님이  사랑한다고 믿고 있으니까

계속 착한 아이로 남아있으면 언젠가는 보답 받을 것이란 믿음이 남아있었으니까.


그리고   이후로 부모님의 비교는 더욱 심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저녁밥보다 눈칫밥을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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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일이 조금 힘드셨던  같다.


어머니도  날은 힘드셨던  같다.


나도  날은 마음이 아주 조금은 삐뚤어져 있었다.


 후진이가 좋아하는 저녁 메뉴라는 것에 조금 서러움을 느꼈다.


애석하게도 동생과 나의 음식 취향은  반대이기에 나는 항상 김치나 야채 반찬에 밥을 깨작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모습이 꼴보기가 싫었는지


너는 그렇게 깨작깨작 먹을거야 동생은 편식도 안하고 이렇게  먹는데 오빠라는 녀석이...”


엄마가 힘들게 차렸는데 그럴거면 먹지마!”


라면서 버럭 화를 내시는 것이었다.


나도 많이 서러웠다.


나도 정말 많이 노력했다.


반찬투정 한번   없었다.


정말 착한 아이로 살면 동생이 받는 사랑의 편린이라도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도 어린 나이 서러움에 참기 힘들었다.


 밥상에 숟가락을 집어던졌다.


나도 힘들다고!!!”


그러나 애석하게도정말 애석하게도 숟가락은 동생의 이마로 날아갔고


동생의 이마에서는  줄기 핏방울이 나기 시작했다.


동생은 아파서 울기 시작했고


나는 순간 내가 무슨 짓을 한건가심장이 철렁했다.


 마룻바닥이  앞에 다가왔지?


아버지가  뺨을 때렸다.

그것도  힘과 미움을 담아서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아버지가   뒷덜미를 잡아서 안방으로 끌고 갔다.


입에서  맛이 느껴지고세상이 어지러웠다.

혹여나엄마가 괜찮냐고 물어볼까  순간 찰나에도 걱정했다.


하지만 엄마는 세상이 무너진듯한 표정으로 동생의 얼굴을 살펴보며 피를 닦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매섭게 노려보는 엄마의 눈과 마주쳤다.


너무나 차가웠다.

 어린 나이에도 살의가 무엇인지   있었다.


아버지는 일어나지 못하는 나의 뒷덜미를 잡고 안방으로 끌고 갔다.


아버지는 분을 참지 못하시는지 씩씩 거리면서 골프채를 잡았다가 이내 놓았다.


도구를 쓰기 조차 아깝다는 듯이.


그리고 나를 구석에 던져놓고 발로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씨발새끼도움도 안되는 새끼니가 뭔데!”


아버지의 분풀이가 끝났을 무렵,


 만신창이가 되었고


  방가서 나오지마꼴도 보기 싫으니까


터덜터덜안방에서  방으로 옮겨갈  

엄마와 동생이 거실에서  보는 눈빛을 봤다.


경멸하는 눈빛

미워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견딜  있었다.


아빠의 폭력도엄마의 편애도

하지만 


 같은거 낳지 말았어야 했는데엄마는 후회된다


라는 엄마의  마디에


나는 결국 무언가가 끊어져 버렸다.


“...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너무나도 아픈 말이었다.


 방울 눈물이 흘렀다아니 피인가


나는 나와 우리 가족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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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편애와 나에 대한 무관심은 노골적으로 심해졌다


주말에 쇼핑을 가는 날에 내가 늦잠이라도 자는 것이면어느새 나는 집에 혼자 남겨진  모두가 이미 나를 두고 떠나버린 것이고.


중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초등학교때 샀던 옷을 겨우겨우 입고 다니는 것이고동생은 백화점에서 계절마다 옷을 사입는것이다.


저녁상에 반찬들은 모두 후진이 앞에 놓여져 있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길게 샤워하는 날에는 수도세가 많이 나온다며 밖에서 엄마가 쿵쿵쿵쿵 거칠게 문을 두들기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준비물  돈이 없어서

준비물 달라는  말을 했다가 혼날까봐

말을 꺼내지 못한지 오래됐다.


혼자 수업 시간에 준비물이 없는  무안함이 싫어서

좋아하던 미술 시간에는 항상 땡땡이를 치고 


운동장 그네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붕이가 미술시간만 되면 땡땡이를 친다고.


엄마는 나에게 미쳤냐며 가족 망신 시키냐며 회초리질을 했다.


동생은 알아서 잘하는데너는!”



 같은걸  낳아서!”



우리 가족한테 도움이 안돼 도움이!”



이젠 더이상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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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되었다나는 최소 출석 일수나 채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동생은 영재들만 다닌다는 비싼 사립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후 나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가족과 밥도 따로 먹게 되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냉장고를 뒤져 무언가를 조금 먹는 것이 고작이다.


나는 없는 사람이 된지 오래다.

아니 없어져야 하는 사람이 된지 오래다.


몸에서는 냄새가 나고머리는 장발이며

피부는 푸석푸석하게 변했다.


고등학생의 몰골이라곤 믿기지 않았다.


동생은 얼굴도  이뻐지고더욱  잘나가기 시작했다학교에 따르는 친구들도 많았다.


전교 1등은 물론이고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모범생으로 소문난지 오래다.


나는 동생에게 달린 유일한 단점이었다

동생은 그게 싫었다오빠가 한심했다.


한때 멋지다고 생각한 오빠가 저렇게 추락한 것이


오만한 후진이는 그것이 누구 때문인지도 모르고 그냥 오빠가 게으르고 못나서 저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저렇게  사람이었다고그렇게 합리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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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가는 것이 싫었다.


동생과 달리 속된 말로 내가 다니는 학교는 ‘꼴통학교에 불과했으니까.


고등학교 입학 지망서를 서명해달라고 부탁할때 엄마는 내가 어디를 쓰는지 관심조차 주지 않고 대충 서명했던 것이 기억난다.


가는 날이면 항상 건물 뒤에서 일진들의 분풀이 대상이 되거나셔틀을 하거나복도를 지나가면 놀림을 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가기 싫었다.


그래서 자퇴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부모님은 후진이에게 중졸 오빠가 있다는 것이  오점이라고 생각했는지


자퇴하면 정말 내쫓아버릴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래서 괴롭힘을 참으며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누군가 다리를 걸어 넘어지고


어느 날은 사물함에 썩은 우유가


어느 날은 대놓고 멸시를


어느 날은 선생님조차 나를 외면했다.


엄마는 내가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는 날엔 

꼬라지가 그게 뭐냐고 핀잔을 줬다.


그게 정말 가끔씩 엄마가 유일하게 나한테 하는 


가족도 나를 포기했고,

나도 그들을 포기했다.


아니포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고


똑같이 한심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후진이가 대학에 가야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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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이 같은 인재는 대학에 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돈의 문제는 별도일뿐.


전액장학금으로 학교에 들어가긴 해도


새로운 환경이 찾아온다는 것은 언제나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부모님은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새벽평소와 같이 처량하게 냉장고에서 남은 음식을 줏어먹던 후붕이는 동생 후진이와 마주친 것이다.


그날따라 후진이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의 진학 문제로 부모님의 근심이 날로 늘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후진이 또한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부모님이 자신만 편애한다는 것을


그래서 오빠가 저렇게  것에 어느정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후진이는 달콤한 현실에 빠져 자신의 오빠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외면했다.


그래서 후순이는 합리화와 도피를 선택했다.


어느 마음  구석에는 어릴때 다정하고 든든했던 오빠를 그리워하면서.


그래서 오빠가 돌아오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날 새벽 후진이가  후붕이의 모습은

너무도 초라하고한심했다.


그래서 후진이는자신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날 후진이는 말로  혀로 오빠를 찔러 죽였다.


후진아...”


오빠 그러고 살아?“


“...?”


오빠 진짜 오빠  그러고 사는지 하나도 이해가 안돼정상적으로 살려고 노력조차 안하는 거야?“


“...”


지금 오빠 꼬라지를 어떤지 보라고 한번 엄마 아빠가 명절  마다 오빠 집에 두고 우리끼리 가는지 알아쪽팔려서야쪽팔려서!!!“


오빠가  할줄 알아밥만 축내고 쪽팔리게 하고 어디가서 오빠 있다고  못해왜냐고쪽팔려서집에 도태된벌레새끼 기어다닌다고 말을 못하니까!“


엄마 아빠가 이번에 외가 가서 뭐라했는지 알아첫째 아들 죽은지 오래래오빠는  그정도야차라리 죽어 그냥도움도 안되는데 우리 가족 힘들게 하지 말고 그냥 어디가서 죽으라고


오빠가 무슨 노력을 했어달라지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냐고엄마 아빠가 오빠만 보면 한숨만 쉬고 답답해해그렇게쓰레기 같이 살거면 차라리 돈이라도 아끼게 죽어버려진짜 한심해앞으로 나한테 말도 걸지말고 어디가서 내가 동생이라고도 하지마


시끄러운 소리에 부모님이 내려오셨다.


“... 오밤 중에 무슨 일이니?”


후진이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후진이는 저런 한심한 오빠를 더이상 못견디겠다고 했다.


부모님의 표정엔 분노가 서렸다.


후붕이 때문에 새벽 밤중에 자신들이 깼다는 사실이 아니라,


후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단 사실 하나로.


너는 장남이라는 놈이 한심하게 이렇게 살거야적어도  동생 발목은 잡지 말아야 할거 아니야아빠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낳은지 알아근데 이따구로 가족 힘들게 하고 부모님 얼굴에 먹칠할거야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고!“


후진아 엄마가 내일 맛있는거 사줄테니까화풀어니네 오빠 한심하게 사는거 하루 이틀 아니니까 그냥 신경 끄고 살아엄마도 저런거 낳은거 후회하면서 살고 있어그러니까 얼른 가서 자자





“...미안해..,”




후진이와 부모님은 후붕이를 말로 찔러죽인 그나마 남아있던 마음도 난도질한 뒤에 퉁명스럽게 문을 닫고 들어가버렸다.


후붕이는 잠시 멍하니 서서 생각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현관문을 조용히 열고 나가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공간이 자신의 목을 조이는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공중화장실에서 후붕이는 흐느꼈다.


후진이의 말이 아팠다.


초등학생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았을 때보다


엄마에게 회초리로  낳은 것을 후회한다고 했을때완 비교도 안되게 아팠다.


 집에 자신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울다 지쳐 고개를 들었을 무렵,

후붕이의 눈에 벽에 붙어있는 스티커가 눈에 띄었다.


귀신헬리콥터 남성 어릴수록 고가


후붕이는 그것을 보고 눈물 맺힌 눈으로 웃었다.

십년 만에 처음으로 웃는 것이었다.


후붕이는 그것을 보고 드디어 자신의 존재 의의를 깨달았다.


이유도 모르고 버텨왔던 날들의 이유를 찾은 기분이었다.


후붕이는 핸드폰이 없었다.

연락을  사람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스티커를 떼어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집에 돌아온 후붕이는 정말 오랜만에 후진이의 방문을 두들겼다.


“...후진아오빠야미안해


니가  말들곱씹어봤는데 전부  말이 맞아


못난 오빠라 미안해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


내가 우리 가족에게 무엇을 해줄  있을지 고민했는데이제는  존재 이유를 찾은  같아


걱정하지마절대 발목 잡지 않을거야


한심하게 살아왔지만이번에는 확실히   있어


미안해




후진이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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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붕이는 우는지 웃는지 구분할  없는 얼굴로 누워있다.


수술대라고 하기엔 너무나 지저분하고

침대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딱딱한 무언가 위에서


 부탁드립니다돈은  부탁드려요


이들이 정말로 돈을 부쳐줄지 말지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후붕이는 방법이 없었다조금이나마 그냥 포기하고 싶은자포자기 하고 싶은 마음이 없던 것도 아니니까.


그저 믿는 수밖에 없었다.


후붕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팔겠다고 했다.


신장콩팥심장 


 정도면후진이가 대학을 졸업할  까지는 충분할 것이다.


누워있는 후붕이는 마지막으로 어릴 후진이가 태어나기전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있을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후붕이를 만나기 위해서 엄마 아빠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포기하고 싶었지만 엄마 아빠는 후붕이를 만나기 위해 포기하지 않았어.


후붕이는 엄마 아빠 삶에 찾아온 축복이야.


태어나줘서 고마워엄마 아빠는 다른거 안바라고 

우리 후붕이가 건강하고 착하게만 자라줬으면 좋겠어









사랑해우리 아들








후붕이는  속에 들어오는 마취제를 받아들이면서


한때 사랑받았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웃는 얼굴 위에 눈물  방울 흘린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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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다음 후진이네 집에는 커다란 사과 박스 하나가 도착했다.


누가 두고 갔는지 모를 커다란 사과 박스.


사과라기엔 지나치게 무거웠고테이프로 꽁꽁 싸여있었다.



후진이가 들기엔 지나치게 무거웠기에


아버지께서도 겨우겨우 들어 식탁에 옮기시는 것이었다.


후진이 아빠 시켰어요?“


아니이게 뭔지 나도 모르겠는데



그리고 그들은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 박스를 여는 순간 깜짝 놀랄  밖에 없었다.


빈틈없이 꽉꽉 채워진 빳빳한 5만원 돈다발이 가득한 것이었다.


그리고  위에 초라하게 놓여있는 편지  


누가 보낸 것인지 알기 위해 후진이네 가족은 편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고


이내 모두 말이 없어졌다.









안녕하세요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후진아


후붕입니다


편지는 오랜만에 써보는  같아요.


초등학교 어버이날 이후로 처음 써보는  같은데

모든 것을 놓은 이후로 쓰려니 많이 어렵네요.


그때는 어떻게든 어머니 아버지 한번은 돌아볼까 싶어서 열심히 썼었는데쓰레기 봉투에 섞여있는  보고 그만두었던기억이 있네요.


아마  편지를 보실  쯤이면 돈다발을 보고 놀라셨을거에요.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편지가 도착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첫번째로돌아보니 저는 우리 가족에게 폐만 끼치고 살았어요.


못난 아들못난 오빠였어요.


한심하게  안에나 쳐박혀서 매일 울기나 하고.

생활비나 축내고.


그래서 사라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없는게  행복할 것이 분명하니까요.


항상 어머니 아버지의 한숨의 원인은 저였으니까요.

죄송해요못나게 태어나서


엄마 말대로  태어나지 않는게 좋았을거에요.


 돈은  장기를 팔아서 만든 돈입니다.


충격 받으실까봐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다른 이유가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그래도 이제는 저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신  같아서 조금은아주 조금은 홀가분하게 수술대에 누울  있었어요.


끝까지 이기적으로 굴어서 죄송해요.


하지만 이젠 가족을 위해   있는 일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밖엔 없었어요.


살아있어서는 폐만 끼치니 죽어서라도 도움이 되어야 하겠죠그게 맞는거겠죠.


후진아오빠가 정말 미안해


가뜩이나 중요한 시기인데 스트레스 받게 만들고

나는 오빠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그래도  돈으로  대학 가서 유용하게 .

 목숨값이라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미안해서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해줘.


그동안 오빠 때문에 쪽팔려서 학교에서 많이 힘들었지이젠 그런 걱정 안해도 .


대학 가서는 멋진 남자친구도 사귀고 

MT 가보고

친구들도 많이 만나보고

여행도 가보고


내가 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해봐.

 마지막 바램이야.


 후진이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후진이에 비하면 저는 정말 못난 아들이었지만

그래도 주제넘게 정말 조그마하게 바랬던게 있다면


그냥 잘했다고

집에 돌아오면  먹었냐고

학교는 어떻냐고 


  마디를 듣고 싶었었나봐요.


마지막으로  말을 언제 들었는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지만,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다면 우리 아들  지냈냐고  마디만 해주세요정말 그게 제가 다음에 만났을때 바라는 전부에요.


저는 웃으며 떠났을테니 슬퍼하지 마세요.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행복하게 사세요.


그럼 이만 줄일게요.


다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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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를 읽은 후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후붕이 부모님 머릿 속에는 주마등이 지나갔다.


후붕이를 갖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들.


수많은 시험관 끝에 후붕이를 임신한 것을 알았을  뛸듯이 기뻐했던 기억.


그리고 후붕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조그맣던 쿵쿵뛰던 심장


 모든 기억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후붕이는  눈과 심장을 팔고


사랑하는 아들은,


 아들을 세상에 데려오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들은


20년이 지나 사과 박스에 담겨진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들이  책임임을 깨달았을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 깨달았을 


아들이 원한건 단지 칭찬  마디였다는 것을 알았을  


무너져 내리는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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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아빠가... 때려죽일 놈이다... 정말로 미안해...”


 관을 붙잡고 울면서 사과하는 만큼 아이러니한 일이 있을까?


사과할 후붕이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


아마전국에 있겠지 아니면바다 건너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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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이는 믿을  없었다.


진작에 성인이  오빠의 영정사진은 

민증을 만들때 썼던 사진이었다.


그것이 유일하게 구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은 무언가 우울해보였다.


후진이 핸드폰 갤러리에 엄마 아빠 후진이가 셋이 찍은 사진은 넘쳐났지만거기에 후붕이는 없었다.


그제서야 후붕이네 가족은 깨달았다.

후붕이를 추억할 사진조차 없다는 것을


그리고 오빠가 저렇게 된건 원래 저런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내가 오빠에게 마지막으로  말은...“



”...“


어디가서 죽어버려돈이라도 아끼게


후진이는 또다시 현실을 부정했다.

그럴리가 없었다.


오빠가 죽기 직전에 가족들에게 들은 말이 

그런  따위들이라면후진이는  수가 없었다.


이래서는 신데렐라를 구박했던 계모와 다를게 무엇인가?


아니계모보다 더했다.


신데렐라는 구원받았지만

오빠는 구원받지 못했다.


우리가 그를 죽였다.


오빠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아니야 오빠어떻게 버틴거야?“


오빤 어떻게 불평  마디 안하고 지금까지 버텼던거야?“


미안해미안해미안해차라리 그냥 내가 못난 저능아로 태어났었으면오빠는 최선을 다했는데 나는 오빠를 무시하기나 하고.. 오빠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아하고... 미안해... 미안해...“


후진이와 부모님은 눈물이 말라서 더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고그러다 잠들고그리고 다시 울고그렇게 발인할때까지 후회와 회한 속에 휩쓸리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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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엄마는 방에서 혼자 앨범을 끌어안고 울고 있다.


너무나도 많이 페이지를 넘겨서 이제는 너덜너덜해진 사진 앨범.


후붕이가 미움 받기 시작한 이후로 사진을 찍지 않아

 곳에는 후붕이가 어릴적그나마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들만 남아있었다.


엄마는 사진 한장 한장 보면서 그때의 추억을 곱씹고 있었다


정말 그곳에 후붕이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아들... 이거 우리 아들 처음 초음파 찍었을  사진이네...? 이때 엄마가 얼마나 기뻤는지 알아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올 정도였어...”





이거는 우리 후붕이 유치원 처음 들어갈때 사진이네... 엄마는후붕이가 처음으로 카네이션을 접어 왔었을  너무 기뻤어...”


이때는... 가족끼리 바다 여행 갔을 때네... 우리 아들이때는 투정도 많이 부리고 떼도 쓰고 그랬는데...”



그리고 앨범을 넘기다 보면 후진이가 태어날 무렵부터 후붕이의 사진은 점점 없어지고 


후진이의 사진만 가득한 것이었다.


 시기와 비슷하게


후붕이는 떼도 안쓰고 투정도 부리지 않았다는 것을 엄마는 깨달았다.


 모든 것이 자신을 한번만 돌아봐달라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번만 나에게 다시 사랑을 달라고


”... 엄마가미안해... 사진 많이 찍어놓을걸 우리 아들...“


매일같이 눈치만 보고 살고...”


맨날 투정 부려도 좋고떼써도 좋으니까... 한번만 돌아와주면 안될까 우리 아들엄마가 미안해... 돌아와서 한번만 안아줘....”


그렇게 후붕이 엄마는 오늘도 울다가 잠들었다.


돌아오지도 않을 아들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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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오빠의 장례식 이후로 멍하니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나선 자신의 손을 쳐다보다가 혼자 흐느끼는 것이다.


 손으로...  손으로...”


말도  듣고 착한 아들이었는데 나는 ...”


  사과 상자가 배송된 이후 달째  상자는 우리  식탁 위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것이 마치 오빠라도  마냥그리고 도저히 감히 건드릴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렇게 계속식탁 위에 놓여있는 것이다.


새벽에 아버지는 혼자  상자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것이다.


”...아들아빠가... 때려서 미안해... 많이 서러웠지아빠가  잘해주지는 못할 망정... 다음에는 아빠같은 못난 사람에게서 태어나지 말고...  좋은 부모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 ... 아빠가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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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계속 오빠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내가 오빠에게 했던 말들.


이제는 돌이킬  없는 말들


우리 가족은 오빠의 마음을 난도질했다.


오빠의 마지막 말은 ’미안해요’ 였다.


얼마나 서럽고 슬펐을까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말을 들어준게 장기 매매단이라니


그깟 돈이 뭐라고 우리는 오빠에게 그렇게 매몰찼는지내가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오빠에게 그렇게 말하다니.


후진이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마음이 망가지는  같았다오빠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버틸 수가 없었다.


어딘지도 모를 뒷골목의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생을 마감했을 생각을 하니 미쳐버릴  같은 것이다.


후진이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슬퍼하고 아파할 자격조차 없었다.


평소에 그렇게 매몰차고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이제와서야 후회한다니... 그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그래서 매일같이 오빠의 묘를 찾아가서 무릎을 끓고 울었다.


혹시라도 오빠가 들을 수도 있으니까


정말 미안하다고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오빠가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고


그렇게 후진이는 매일 같이 후붕이의 묘를 눈물로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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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으로 글쓰고 퇴고 한번도 안하고 스트레이트로 쓴거라 오타랑 구조가 이상할 수 있는데 감안해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