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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의 장점은 음과 뜻을 공유하는 다른 단어를 끌어 와서 내가 모르던 단어를 빠르게 익힐 수 있다는 점임


한국어 화자는 자신의 어휘 뭉치 안에서, 한 음을 가진 한자의 여러 뜻을 떠올릴 수 있음


박상숙(2018)이 음이 ''인 한자를 분류한 결과를 인용하자면

처가, 장가, 가문, 상가, 가옥, 가출, 가계 - 집, 집안 (家)

건축가, 정치가, 상업가, 전문가, 기업가 - ~하는 사람 (家)

가격, 고가, 저가, 물가, 원가, 단가, 평가 - 값, 쓸모 (價)

가급적, 가능, 불가, 가동, 불가피, 허가 - 할 수 있다 (可)

가습기, 가열, 가속, 가해자, 가공, 첨가 - 더하다, 보태다, 함께하거나 돕다 (加)

가정, 가령, 가량, 가면, 가식, 가상, 가설 - 거짓, 임시 (假)

가요, 가창력, 가곡, 가사, 가수, 유행가 - 노래 (歌)


처럼, '가'라는 음을 공유하는 한자어 집단은 같은 의미를 공유하는 여러 개의 세부집단으로 나뉠 수 있음


이 정보에, 단어가 쓰인 전후 맥락을 고려해서 단어의 의미를 추론하는 것임


만약 마름 가량대로 그것이 삼등지였다면 마지기의 소출이 적어도 가마 꼴로는 나왔어야 옳을 일이었다.

출처 <<이문구, 오자룡>>


이 문장에서 내가 '가량'의 뜻을 모른다면 유추 과정이 작동함

'가량'이라는 단어는 '~였다면'과 호응하고 있고, 이건 내가 아는 '가정'이라는 단어가 문장에서 작동하는 방식과 비슷함

두 단어에 공통적으로 가 라는 음이 들어가므로, 가량의 가는 가정의 가와 같은 (혹은 유사한) 의미임을 짐작할 수 있음



이 과정에 한자 자체의 역할은 거의 없음

한국어 단어에 한자어가 많고 한자가 그 근간인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어 어휘력에 있어 한자가 활용되는 부분은 뜻 - 음 연관관계 정도임


한자교육은,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한자쓰기가 거의 항상 수반되고, 대부분의 경우 그게 주가 됨

이런 한자교육은 어휘력 부족 문제의 주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음


요즘 한자어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지고 어휘력 지적이 늘어나는 건

개별 한자 단어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 이전에

모르는 한자 단어를 마주했을 때 그 뜻을 유추할 수 있는 어휘 뭉치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 

또한 독서 부족으로 맥락을 통한 의미 추측에 곤란을 겪는 게 큰 이유라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