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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뉴스입니다. 유명 아이돌 얀순 씨가 현재, 교통사고로 중태인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뭐……?’

 순간 귀를 의심했다. 아무 생각 없이 듣던 뉴스에 익숙한 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어머, 저거 얀순이 아니니? 어떡해.”

 어머니의 반응으로 보아, 틀림없이 내가 아는 그 얀순이가 분명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죄송해요. 어머니, 저 좀 나갔다 올게요.”

 “……그래, 부디 별일 없기를 바란다…….”

 나는 방으로 돌아가 대충 벗어 던졌던 겉옷과 모자를 착용하고, 재빠르게 집을 나섰다.



 나에게는 소꿉친구가 한 명 있다.

 “얀붕아, 나중에 우리 꼭 결혼하자!”

 얀순이와의 인연은 정말 질기고 질겼다. 같은 유치원부터 초, 중, 고등학교까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유치원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니는 짝꿍이었다고 한다. 결혼하자는 약속도 했었으니, 그랬던 것이 크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얀붕이랑 얀순이는 사귄대요~ 얼레리 꼴레리~”

 “아니거든! 절대 아니거든!”

 초등학생 때에도 꼭 붙어 다녔던 우리 둘은 당연히 또래에게 많은 놀림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격하게 부정했다. 어릴 때는 그것이 꽤 부끄러웠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그랬던 것을 조금 후회했다. 그녀는 몇 년 동안 몰라보게 성장했다. 몸만 성장한 것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예쁘다고는 생각했었지만, 그녀가 아이돌이 될 정도로 아름다워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그녀의 인기는 당연히 최고였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실에서 보냈지만, 가끔 학교에 올 때는 학교 전체가 난리가 날 정도였다.

 “얀붕아! 나 왔어!”

 그리고 그런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모두의 시선은 내게 쏠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보기 위해 학교로 왔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나를 당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그녀가 떠난 뒤에는, 어김없이 주변에서 수많은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얀순이랑 무슨 사이야? 따로 연락도 해?”

 “혹시 사귀는 사이야?”

 “아니, 그게…….”

 오해를 받는 것이 싫었다. 나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지만, 그녀에게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질까 두려웠다.

 “아무 사이도 아냐. 정말이야.”

 나는 점차 그녀를 피했다. 소꿉친구라는 사실도 숨겼다. 우리의 사이는 점점 서먹서먹해졌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그녀를 향한 마음을, 조금 더 쉽게 접을 수 있었으니까.



 “헉, 헉, 헉…….”

 한계까지 차오른 숨을 가다듬으며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머릿속은 제발 그녀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얀붕이니?”

 “아주머니!”

 오랜만에 보는 얀순이 어머니의 얼굴에는 생기가 전혀 없었다.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시지 못한 것 같았다.

 “그동안 많이 컸구나. 고마워, 먼저 연락 줘서. 내가 먼저 연락했어야 했는데, 경황이 없었단다…….”

 “괜찮아요. 그것보다 얀순이는, 괜찮나요?”

 “그게…….”

 머뭇거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불길한 징조를 느꼈다.

 “기억상실, 이라는구나.”



 역행성 기억상실증. 외상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 그저 소설 속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의식은 돌아왔단다. 다만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기억나지 않는다는구나…….’

 아주머니가 흐느끼시던 모습은 생생했지만, 얀순이가 기억상실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

 그녀의 병실 코앞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만약 그녀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나는 괜찮은 척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요즘 그녀와 서먹해졌다 한들, 그녀와의 추억을 모두 없던 것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우스운 생각이었다.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뒤,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드넓은 VIP실. 안락한 가구가 놓인 공간 안쪽으로, 새하얀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얀순아.”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병실에는 그녀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

 그녀는 내 얼굴을 보더니, 짧은 탄식을 흘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초점이 없던 그녀의 눈에 금세 생기가 돌아왔다.

 “얀붕아!”

 그녀가 나를 힘껏 껴안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녀는 내 품에 안겨 엉엉 울기 시작했다.

 “얀순아…….”

 “너무, 너무 무서웠어……. 전부 내가 모르는 사람들뿐이어서……아무도 기억나지 않아서…….”

 나만을 기억해준 그녀를 위해 웃어야 할지, 나만을 제외한 모든 기억을 잃게 만든 잔인한 세상에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너만은, 너만은 잊지 않아서 다행이야…….”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품 안의 그녀를 위해서.

 “제발, 어디에도 가지 말아줘……날 두고 가지 말아줘…….”

 “알았어. 걱정 마. 네 곁에 꼭 붙어 있을게.”

 끝이 난 줄 알았던 우리의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에게는 소꿉친구가 한 명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아이가 이 세상에서 기억하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