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산부인과에서 이터니티 모델이 다소곳하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어


내로라하는 부잣집에 구입된 이터니티는 아직 명령권 각인도 채 끝나지 않은 막 출고된 모델이었지


병실에서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간호사가 급하게 재촉하는 소리가 들리자 이터니티는 재빨리 병실로 들어가는거지


그리고 거기에는 막 세상 밖으로 나온 한 생명이 있었어


자그마한 갓난아기는 산모와 남편의 행복한 미소 아래서 자그마한 두 손을 꽉 쥐고 우렁차게 울부짖고 있었지


남편이 기운이 없는 아내를 대신해 이터니티에게 눈짓하자, 이터니티는 소독을 마치고 조심스럽게 아기에게 다가갈거야


살며시 내민 이터니티의 손가락을 아이는 꽈악 잡았고, 그때까지 생기가 없던 이터니티의 눈동자에 생명이 불어넣어지듯 빛이 돌아왔지


아기야 단순한 파악 반사로 손바닥에 와 닿은 손가락을 꼭 쥔 것일 뿐이겠지만, 이터니티에게는 이 세상의 끝까지 함께한다는 맹세와도 같았지


그렇게 이터니티는 대외활동으로 바쁜 부부를 위해 아이의 보모가 되어줄거야


아이의 첫 뒤집기를 본 것도 이터니티였고, "맘마, 맘마."하는 옹알이를 들은 것도 이터니티였고, 처음 떼는 걸음마를 옆에서 지켜봐준 것도 이터니티였지


그리고 아이는 그렇게 점점 커가며 소년이 되고, 그렇게 사춘기를 겪어가면서 


맹목적인 이터니티에게 간섭받기 싫다는 이유로 그 나이대 애들이 그렇듯 자신도 모르게 이터니티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도 하겠지


이터니티는 잠시 주인과 멀어지자 처음으로 생긴 마음 속 균열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어


지금까지는 주인님이 자신의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당연한 현실이 깨져버리니 어쩔 줄 모르겠지


하지만 그런 아이라도 어릴 때부터 누나이자 엄마이자 선생님이었던 이터니티에게 마냥 모질게 대할수는 없었어


본성이 착하기도 했고, 부족한 것도 없어 구김살 없이 지냈던 아이였던만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이터니티와 화해할거야


다시 자신의 행복을 되찾은 이터니티는 돌아온 품 안의 주인님을 꼭 그러안으며 다시금 다짐하겠지


이제는 이분과 함께 내 삶을 마감하리라고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흘러서, 이터니티의 주인님은 장성하고 제 몫을 하는 어른이 되었어


주인님이 어디로 가든, 이터니티는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따르면서 수발을 드는 비서 역할을 수행했지


그리고 처음으로 주인님의 결혼 상대를 마주할거야


으레 그렇듯, 가문에서 정해준 짝이라지만 상대도 전혀 부족함 없는 인간님이었어


이터니티는 맞선으로 처음 보는 자리인데도 서로 활짝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둘을 보고는


두 퍼즐 조각이 딱 들어맞는 느낌을 받겠지


속으로 주인님의 인생의 반려를 찾은 것을 축복하며 조용히 자리를 지키겠지



이터니티의 예상대로 둘은 정말 천생연분이었어


때론 서로 싸우고, 토라지기도 하고, 다시 화해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결말은 다시 서로에게 돌아와 퍼즐이 맞춰지듯 껴안는 것이었지


이터니티는 세상에 둘도 없을 한 쌍이 서로를 아껴주고 지지해주며 아이를 낳고 생을 살아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세월이 흐르는 줄도 모를거야


어느새 하나도 변하지 않은 이터니티와 달리, 주인님과 주인마님은 새치가 늘어가고 주름이 깊어가며 그렇게 인생의 황혼기를 맞을거야


이터니티는 자신의 마지막 의무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


그날은 여느 때와 같은 맑고 화창한 날이었어


이터니티가 노쇠해진 주인님 부부를 위해 침실로 유동식을 가져갔는데, 문 앞의 벨을 울려도 대답이 없으신거야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하고 침실로 들어가니, 주인님과 주인마님은 서로의 손을 꼭 그러잡고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계셨지


그 이후의 일은 이터니티에게는 잘 기억나지 않을거야


처음 해보는 장례식인데도 익숙한 일인 듯, 운구절차부터 안치까지 두 분이 생전에 남겨두었던 유서대로 착착 진행해나갈거야


그리고 자신이 주인님의 시작부터 준비해두었던 마지막 보금자리에 두 분을 눕혀드리겠지


관에 반듯이 누워 서로의 손을 겹치고 누운 두 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예술품처럼 찬란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을거야


서로가 서로의 마지막 퍼즐조각인 마냥 딱 들어맞은 완벽한 모습을 홀린 듯 지켜보던 이터니티는 그제서야 깨닫겠지


이미 자신의 자리는 저 안에 없다고


주인님의 바람대로 뚜껑을 닫으며 두분께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 이터니티가


조용히 관을 껴안고 눈을 감으며 기능을 정지하는


그런 이야기도 있었을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