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냉정."


다른 할배들이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순수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교주, 냉정은 불안정한 속성이오. 탱과 힐이 없는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냉정."


"다시 한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이 게임의 성장요소가 지랄맞다는 걸 알지 않소?"


"냉정."


이번에는, 그 옆에 있던 우울이 나앉는다.


"교주, 지금 트릭컬에서는 우울 힐러를 픽업 중이며 28일 이후 클론팩토리의 로테이션이 바뀌어 코미와 키디언의 파밍이 가능할 예정이오. 교주는 우울덱을 쉽게 맞출 수 있고, 교주는 존경받을 것이오."


"냉정."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순수가, 다시 입을 연다.


"교주의 심정은 잘 알겠소. 오랜 헬조선 게임 생활에서 딜러지상주의자들의 간사한 꼬임수에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용서할 수 있소. 그런 염러는 하지 마시오. 다른 속성에도 우수한 딜러들이 많으니 만족스러운 딜링을 약속하오. 교주는..."


"냉정."


광기 대표가,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설득하던 순수는,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교주를 노려보면서, 내뱉었다.


"좋아."


눈길을, 옆에 쭈그리고 있는 활발에게 옮겨 버렸다.

설득자는, 앞에 놓인 캐릭터 목록을 뒤적이면서,


"냉정이라는 건 막연한 얘기요.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은 감정은 나도 압니다. 아야의 광역 딜링과 실라의 단일 딜의 매력을 누가 부인합니까? 그러나 탱커와 힐러가 아예 없습니다. 좋은 게임에서는 탱커과 힐러가 귀족이라는 걸 당신도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


"냉정."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게임의 교주가 어려운 길을 가겠다고 나서서, 할배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기를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냉정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데려오라는..."


"냉정."


"당신은 오픈 유저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다른 속성으로 갈아탈 수 있는데..."


"냉정."


"힙스터의 길을 걷고 싶다면 차라리 활발을 하란 말입니다. 활발은 다음 신캐가 예정되어 있어 떡상할 여지라도 있단 말입니다. 아니면 광기는 어떻습니까? 엘리스라는 신규 딜러가 확정된 속성에 지금도 pvp에선 나름 괜찮은 성능을 보이고 있소. 도대체 왜 2성만도 못한 프리클과 제이드가 3성 풀을 차지하고 있어서 신캐도 기대할 수 없는 곳에서 그러는 것이오?"


교주는 고개를 쳐들고, 반듯하게 된 연회장의 천장을 올려다본다. 영춘의 슬픈 눈빛을 마주한 채, 한층 가락을 낮춘 목소리로 혼잣말 외듯 나직이 말할 것이다.


"냉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