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짧게 돈키싱클 문학을 써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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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나는..! 난..!"

"우리가 악일 리 없어!! 이것은 필시 악의 무리의 꾀임이다!!"

"그만 두시오!! 어찌 그리도 부정하는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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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다 거짓이었어."

"그 영웅심도, 정의감도. 모든 것이 다."

"감정?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그게 가장 기본인데."

이제 마음에 들어? 돈키호테, 그녀의 본심과 치부가 드러나던 순간이었다. 그런 말을 하던 그녀의 표정은 오히려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어서 더욱 두려운 것이었다.

소름끼치도록 무표정한 얼굴과 거기에서 드러나는 살기어린 눈길이 향한 곳. 우린 그렇게, 돈키호테의 충격적인 고백을 듣고서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혼비백산하게 적들을 맞이했다.

적들의 억척스럽고도 과장스런 옷차림과 행동거지는 마치, 옛 서적에서 본 기사와도 같이, 선전물에서 광고되던 해결사들의 모습과도 같이 악을 처단하려 달려들었다.

그래, 악은 저들이 아니고, 우리라는 것이다. 그를 수차례 부정하던 돈키호테가 결국은 깨어지고, 제 본모습이 드러난 것이었다. 닥쳐!! 아까 전에 들려왔던 끝까지 부정하던 이의 마지막 비명이 귓가에 아른거리는 듯 했다.

그렇게, 놀이공원의 늘어지는 노랫소리와 함께 마치 K사 검문소에서의 일 마냥, 중지의 작은 형님을 만났을 적 마냥 우리는 처참하게 흩날렸다.

몇몇의 수감자들은 진즉 육편조각이 되어 그 곁에 함께 놓인 제각각의 머리카락과 사원증이 아니라면 알아볼 수도 없는 노릇일 정도였고,

다음 몇몇의 수감자는 사지가 분리된 채 바닥에서 꼴사납게 굴러다니고 있었고,

그들을 제외한 수감자는 이미 정신 침식으로 보이는 것을 죄다 짓이기에 바빴다.

마지막으로 남은 이는 우리가 모든 수를 동원해 지키려던 단테 씨와 그저 이를 지켜보라고 하는 듯 적들의 의도적으로 무시하던 탓에 비교적 멀쩡한 꼴의, 피를 흠뻑 뒤집어 쓴 돈키호테 씨. 마지막으로 장난스런 검날에 두 눈이 날아간 자신, 싱클레어 뿐이었다.

그 마저도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라 눈이 사라진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저 멀리서부터 미친듯이 째깍이는 초침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단테 씨가 수감자들을 되살리려 끔찍한 고통의 나락에 쳐박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왔다.

터벅, 터벅.

발걸음 소리와 함께 여태까지완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흉흉한 살기가 제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져, 그 압도감에 짓눌려버려 눈을 잃고 어떻게든 인기척을 느껴 제 무기를 휘두르면서 어찌 버티던 몸뚱아리를 바닥에 떨구고 말았다.

"아.. 아..!"

자신을 짓누르는 두려움에 무기조차 놓아버린 채 단발마만을 내뱉으며 뒤로 기어가던 참이었다. 분명, 죽고 말리라고.

그러나, 어째선지 살기는 점차 가라앉았다. 발걸음도 진즉 멈춘 지 오래였다. 툭, 투툭. 제 얼굴에 떨어지는 따스한 이 것은 무엇인가. 피일까. 아님 눈물일까. 그제서야 제 앞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싱클레어.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이의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언제나처럼 뒤에 호칭도 붙이지 않고, 과장된 말투도 없었지만, 그녀임은 분명한 목소리였다.

"그래도, 이건 알아줘.."

돈키호테, 그녀의 목소리가 잔뜩 물기를 머금었다.

"너와의 감정만은... 거짓도, 연기도 아니었어.."

그러다 이내, 울먹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제 눈이 수복되고, 시신경이 연결되었다. 아, 자신을 내려다보며 울고 있는 제 연인, 잘 알고 있는 돈키호테의 얼굴이었다. 내 얼굴에 떨어지던 것은, 눈물이 맞았구나.

"제발.. 믿어줘.."

그렇게 말하고는, 대답을 듣기 두려웠던 것일까. 뛰쳐나간 돈키호테 씨는 내게서 멀어져 다시금 살기를 뿜으며 적들을 짓이기는데 모든 힘을 쏟아붙고 있었다.

싱클레어는 어째선지 쓸쓸하고도 고통스럽고, 고독해보이는 그녀의 등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가 모든 감정을 털어내고, 다시금 일어선다면. 자신은 꼭 그녀를 끌어안으며 위로할 것이라고.

지금은 눈 앞의 적을 상대할 때다.
그렇게, 육편과 쇳조각이 날리는 소리와 함께 상념은 뭍혀갔다.